스 5:1-17 다시 시작된 건축, 다시 일어난 반대
대적들의 반대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으나 선지자들(학개와 스가랴)의 독려로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방해에 부딪히게 된다. 강 건너편 총독이 성전 재건 공사를 중단할 목적으로 부하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찾아왔다. 하지만 유다 지도자들의 답변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리오 왕에게 상소하기로 한다.
유다 장로들은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책임을 세스바살에게 맡겼다고 말한다(15절). 장로들의 보고에 의하면, 성전 지대를 놓은 사람은 세스바살이었고, 그때 이후 지금까지 건축해 왔지만, 건축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3장에 의하면 성전 기초 공사를 한 사람은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다(3:8~10). 이들이 세스바살을 언급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실제 공사는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감독했지만, 첫 번째 귀환 행렬과 성전 재건 과업의 총책임자는 세스바살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세스바살의 이름이 고레스 칙령에 언급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주장에 신빙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언급일 가능성이다.
1. 성전 건축 공사의 재개(1~2절)
성전 재건 사역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 백성들은 또 다른 장애에 부딪히게 된다. 당시 강 건너편 지역의 총독인 닷드내는 유다인들의 성전 재건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 보았다. 닷드내와 함께 거론된 스달보스내는 추측하기로 서기관 정도의 직책일 것이다. 그들의 ‘동관’들은 ‘감찰관’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닷드내는 자기가 담당하는 영지에서 성전 재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이에 대해 조사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더욱이 당시 페르시아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이었기에 만약 이런 일들을 방치하면 대대적인 반역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2. 총독 닷드내의 조사(3~5절)
닷드내를 비롯한 대적자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에게 찾아와 그들이 어떤 권한으로, 혹은 누구의 허락으로 성전을 건축하는지 캐묻는다(3b절). 그리고 주동자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다그친다. 정황상 백성들은 이들의 방문과 질문에 상당한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닷드내의 요청에 따라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건축하는 자들의 이름을 알린다(4절). ‘건축하는 자들’은 건축의 책임자들 혹은 지금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원문을 직역하면 ‘건축하는 자들’이다. 성전 재건에 대한 관리들의 추궁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성전 재건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5a절).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자신들의 한계를 느껴 다리오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회신을 기다리기로 했기 때문이다(5b절).
당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편지의 회신을 받기까지는 최소 4~5개월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본문은 작업이 중단되지 않은 이유를 ‘하나님께서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5a절). 아람어 원문은 ‘하나님의 눈이 유다 장로들 위에 머물러 있었다’이다. ‘하나님의 눈’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살피심에 대한 은유다(참고, 시 121:3~4). 강 건너편 총독과 관리들은 그 공사를 당장 멈추게 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할 권한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힘이 그들을 막아선 것이다. 본문은 이 과정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셨음을 강조한다.
3. 닷드내의 보고(6~17절)
닷드내는 유다인들의 당당함과 확신에 찬 태도에 위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유다인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왕의 의향을 묻기 위해 편지를 보내기로 한다. 편지는 강 건너편 총독인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및 동료 관리들이 올린 것으로 소개된다(6절). 편지의 내용은 다리오 왕에게 한 문안 인사로 시작하여 현재 유다인들이 진행 중인 성전 재건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한다(7~8절).
닷드내와 관리들이 유다에 가서 본즉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로 분주하게 일하는 것을 목격했음을 밝힌다. 닷드내는 그들이 짓고 있는 성전을 ‘크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표현한다(8a절). ‘크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당시 페르시아가 통치하는 백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신을 이렇게 불렀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단지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그 지역의 주신임을 의미한다.
닷드내와 관리들이 공사장을 찾았을 때, 유다인들이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돌을 떠다 성전을 짓고 나무를 날라 벽을 쌓고 있었다(8b절). 이들의 모습이 닷드내와 관리들에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부지런히 일하므로 공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에’). 특히 돌과 함께 나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성전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9~16절은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의 질문과 유다 장로들의 대답을 기록한다. 공사 진행 과정을 지켜보던 닷드내와 관리들은 유다 장로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한다(9~10절). 첫째, 누가 성전을 재건하라고 했는가? 둘째, 누가 성곽 공사를 마치라고 했는가? 셋째, 누가 그 공사를 책임지고 있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11절~16절이다.
장로들은 먼저 자신들을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밝힌다(11절).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천지의 창조주인 ‘아후라마즈다’ 신을 가리킨다. 이 서신을 읽는 다리오 왕은 그렇게 읽혔을 것이다. 그러나 장로들이 말한 ‘하늘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가 되시는 여호와를 가리킨다. 여호와께서 온 땅의 주권자가 되심을 의미한다. 이 말을 통해 장로들은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성전 재건 사업이 왕마저도 쉽게 거스를 수 없는 신적인 권위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린다.
유다 장로들은 이어서 자신들이 성전 재건에 착수한 배경을 설명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건축하는 성전이 옛적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솔로몬)에 의해 건축된 성전임을 밝힌다(11절). 그런데 그 성전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해 진노하시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통해 파괴하셨다는 것이다(12절). 이어 장로들은 고레스 원년에 있었던 사건을 언급한다(13절).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고 유다 총독 세스바살을 통해 바벨론으로 가져온 성전 기물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한 사건이다(스 1장). 장로들은 ‘고레스 칙령 이후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해 오고 있다’고 함으로서 자신들은 페르시아 왕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성전 재건을 중단하게 된 것은 유다인들의 의지와 상반되게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반박은 성전 재건이 반역적인 시도라는 참소에 대한 효과적인 응답이었다.
17절은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다리오 왕에게 한 요청이다. 그것은 왕께서 직접 바벨론의 서적 곳간에서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아보고, 유다 장로들이 하는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주십사 하는 것이다. 고레스 왕은 이미 10년 전에 죽었고, 공사의 근거가 되는 칙령은 18년 전에 선포된 것이었다. 총독 닷드내와 관리들은 20여 년 전의 일을 자세히 알 수 없으므로 다리오 왕에게 상소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 한 것이다.
나는?
-성전 건축이 16년째 중단되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나서서 성전 건축을 재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반대자들이 엄연히 버티고 있고, 제국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건축 열의는 식었고, 기근으로 인해 경제는 어렵고 빈곤은 심화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은 잊혀가고, 소망의 불꽃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이때 두 선지자가 일어나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나게 하고, 현실에 갇혀 상식적인 판단에만 파묻힌 백성들을 미래의 환상을 통해 깨운다. 뼈아픈 현실에서 도망하지 않으면서도 재 가운데 베옷을 입고 회개하여 현실을 뛰어넘는 은혜를 구하는 영적 부흥을 이끌었다. 그 부흥의 힘으로 유다 백성들은 다시 성전 재건에 뛰어들 수 있었다.
-예언자들은 독려하고 지도자들은 순종했다. 자기 집만 짓는 데 열중하던 이들이 책망의 말씀을 듣고 각성하여 주의 나라를 돌아보게 되었고, 환상을 통해 다시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오랫동안 앙상한 골격만 갖춘 채 방치되던 성전이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본 총독과 관리들은 우려하기 시작한다. 바사 제국 내 여러 반란이 갓 진압된 시점이었기에 그럴 만했다. 닷드내와 관리들은 성전 건축을 반역의 전 단계 정도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자체 진상 조사를 한 후 제국에 확인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조사를 받는 동안 그들은 이 성전 건축이 궁극적으로 고레스가 명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된 일이며, 따라서 “사람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된다(슥 4:6)”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실 일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닷드내에게 조사를 받는 동안 이스라엘은 성전 건축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독자적인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신 일이었고, 고레스 왕이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 지원하여 시작한 일이며, 이스라엘이 진행하다 마치지 못한 일이었다. 처음엔 대적들의 훼방으로 중단되었지만, 그들이 사라진 후에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건축 의지를 꺾었기에 속개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는 우리를 자기 합리화나 책임 전가의 함정에서 건져 새로운 사명 앞에 세운다. 나와 우리 공동체의 지나온 시간을 들어보아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리라.
*낙심과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의 종들을 일으키셔서 희망을 일궈 내신다(1~2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는 학개와 스가랴의 사역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삶 속에 적극 개입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선지자들의 예언 사역을 통해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힘을 내어 다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때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여 손에 힘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영적인 길이 보일 것이다.
*극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굽어 살피셔서 시작한 일을 마칠 수 있게 하신다(3~5절). 닷드내 총독 등이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 건축을 중단시키지 않고 중립적으로 사건을 처리한 것은 하나님의 눈이 유다 장로들 위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도 나를 둘러싼 여러 상황에서 “하나님의 눈”이 지켜보고 계심을 신뢰해야 한다. 여러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하나님은 맡기신 선한 역사를 이루기까지 도와주실 것이다.
*성전 재건의 역사에는 극심한 반대자들도 있었지만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반대하는 자들도 있었다.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는 성전 재건 역사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기까지 공사를 중단시킨다. 그들은 자기 나름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왕에게 편지를 보내 사태를 파악한 후에 다시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했다(6~17절). 이런 반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을 깊이 돌아보고 더욱 사명을 굳게 하는 계기로 삼았다. 때로 어떤 반대에 부딪힐 때 무조건 밀어붙이기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백성의 장로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생활하게 된 것이 자신들의 범죄로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임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 때문에 거룩한 땅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졌는지를 철저히 인식하며 성전 재건을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좌절과 고통만 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펼치시는 섭리를 신뢰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돕더니(2절)”, “돌보셨으므로(5절)”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도우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다. 백성들은 인간이 전하는 말이었지만, “일어나” 성전을 다시 건축한다. 일어나 다시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도우신다. 대적들이 함부로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마음의 두려움을 주어 총독이라도 먼저 본국에 물어보고 확인할 생각을 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태도에서 형언할 수 없는 담대함과 동시에 떳떳함을 느끼게 하셔서 두려움을 갖게 하신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속에서 담대하게 살아내면, 하나님의 “도움”이 임한다. 5절의 “돌보심”으로 번역된 단어는 직역하면 “눈(eye)”이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는 것이다.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걸음을 지켜보신다. 지켜보신다는 것은 함께 하신다는 의미가 아닌가! 순종이 동행의 은혜로 이끈다. 순종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결단과 결행의 이유일 뿐이다.
*주님, 상황과 여건을 이끄시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겠습니다.
*주님, 반대는 늘 일어나겠지만,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이에 일어나 순종할 때 돕고 돌보아주시는 은혜가 이어짐을 신뢰하여, 순종의 걸음 지체하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