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7:1-10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에스라의 귀환
에스라서 후반부(7~10장)는 이스라엘 백성의 두 번째 귀환 이야기로 시작한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주전 458년)에 제사장, 레위인, 일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두 번째 귀환 사건도 첫 번째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진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율법에 익숙한 에스라를 통해 말씀 중심의 공동체를 세우길 원하신다.
7~10장은 에스라의 회고로 알려진 에스라서의 후반부를 구성한다. 전반부(1~6장)가 성전 재건의 주제를 다룬다면, 7~10장은 공동체 재건의 주제를 다룬다. 전반부의 중심 인물이 스룹바벨이라면, 후반부는 학자 에스라다. 에스라 후반부는 이스라엘 백성의 두 번째 귀환 사건으로 시작한다(스 7:1~10). 성전 재건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신앙의 열정은 식어가고 그들은 패배 의식과 좌절감 속에 살아가게 된다. 그들의 영적 침체는 신앙적인 측면을 넘어서 공동체의 분열 양상으로까지 나타나게 된다. 성전 재건 이후 공동체는 다시 한번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이것이 에스라의 등장 배경이다.
1. 에스라에 대한 소개(1~5절)
7장부터 시작되는 에스라서의 후반부는 에스라라는 한 인물의 계보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에스라의 등장을 알리면서 본문은 ‘이 일 후에’로 시작한다. ‘이 일 후에’에서 ‘이 일’은 바로 앞 사건, 즉 성전 재건이 완료되고 유월절을 지켰던 일을 가리킨다. 스룹바벨 성전은 다리오 왕 6년(주전 515년)에 완공되었고, 에스라가 등장할 때는 아닥사스다 왕(주전 465~424년) 때다(스 2:1, 12, 21; 8:1). 그렇다면 6장과 7장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 간격(약 60년)이 존재한다. 이때는 고레스 칙령으로 포로에서 돌아온 1차 귀환민들이 거의 다 죽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시점이다. 따라서 1세대 귀환민들의 신앙과 열정이 다음 세대로 전수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전기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라가 등장했다. 에스라는 그의 이름처럼 귀환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도움이었다.
에스라는 스가랴의 아들, 아사랴의 손자, 사독의 5대손,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으로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학자(서기관) 겸 제사장으로 소개된다. 스라야는 예루살렘 멸망 당시의 대제사장이다(왕하 25:18~21). 그렇다면 스라야와 에스라 사이에 적어도 120년 정도의 차이(주전 587년과 458년)가 존재한다. 그리고 3절에는 므라욧이 아사랴의 아들로 소개되지만, 역대기 족보(대상 6:7~10)는 그 사이에 여섯 명의 이름(아마랴, 아히둡, 사독, 아히마아스, 아사랴, 요하난)을 추가로 소개한다. 이것은 에스라서의 계보가 모든 세대를 다 제시하지 않고 개괄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에스라의 족보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론(‘아론의 16대손’_에까지 미친다(5절). 이를 통해 저자는 에스라가 정통 제사장 가문으로 공동체의 개혁을 주도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한 사람의 족보를 16대 조상까지 거슬러 이렇게 자세히 보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에스라라는 한 인물에 대해 저자가 갖고 있는 특별한 관심을 반영한다. 동시에 당시 귀환 공동체에서 에스라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2. 2차 귀환 행렬(6~7절)
6절은 에스라의 귀환을 보도한다(‘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이어서 에스라를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 소개한다(7장은 반복적으로 에스라를 학자로 부른다; 스 7:6, 11, 12, 21절). 여기에서 ‘모세의 율법’은 하나의 책으로 완성된 오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자(소페르)로 번역된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기록자, 서기관, 비서”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서기관(학자)은 바벨론 포로기에 생긴 새로운 직업으로, “율법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편, 페르시아 시대 “소페르”는 제국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에스라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유대인 업무를 전담하는 장관’과 같은 위치의 인물이다. “익숙하다(마히르)”로 번역된 단어는 “정통하다, 뛰어나다”라는 의미로 에스라가 갖고 있는 율법에 대한 전문성을 나타낸다. 이런 면에서 에스라는 포로기 이후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형성될 새로운 공동체 건설에 적합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 대해 갖고 있었던 신뢰를 강조한다(6b절,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그리고 그 배경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힌다(“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이전에 고레스와 다리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이 이번에는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주전 458년)에 제2세대 귀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7절). 본문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다”라고 밝힌다. 이는 두 번째 귀환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나타낸다.
에스라와 함께 귀환 행렬에 동참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제사장들, 레위인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딤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7b절).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어려움에 처한 유다 공동체를 새롭게 재건하는 일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로서 2세대 귀환 공동체의 주인공들이다.
3. 예루살렘 여정과 에스라의 결심(8~10절)
에스라와 그 일행이 ‘아닥사스다 왕 7년’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출발하여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첫째 달(아빕월)은 옛적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달(출 12:2)이다. 첫째 달(아빕월)에 바벨론을 떠난 것은 새로운 출애굽을 상징한다. 일행은 바벨론을 떠난 지 4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셈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약 1,500km나 되는 먼 거리일 뿐만 아니라 매우 덥고 위험했다(참고, 스 8:21~22). 그렇지만 에스라 일행은 아무런 해를 받지 않고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본문은 구체적인 여정은 생략하고 단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다”라고 밝힌다(9절).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다”라는 표현은 7~8장 단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스 7:6, 7, 28; 8:18, 22, 31). 이 표현을 통해 에스라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귀환 행렬 전체에게 임했음을 보여준다.
10절은 에스라가 이렇게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입은 이유를 밝힌다. 그것은 에스라가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여,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고자 했다. 그는 삶으로 본을 보이는 지도자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에스라라는 인물을 주목하신 이유다. 이제 에스라는 율법을 통해 유다 공동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올바로 세우고자 마음을 확고히 정했다(‘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본문은 이를 통해 앞으로 공동체의 회복(재건)에서 율법이 차지하게 될 중요성을 암시한다. 당시 예루살렘 공동체가 여러 가지 문제로 위기를 경험하고 있었지만, 그 핵심은 신학적인 문제에 있었다. 해결책은 공동체와 개인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확고히 세우는 것이다. 에스라의 사역으로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 큰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토라 중심의 공동체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제사에서 말씀으로 신앙의 중심축이 옮겨가게 된다. 이후 이스라엘의 종교가 토라 종교로 정착하는 데 에스라가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다.
나는?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으로서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다. 이 족보는 그가 신앙의 유산을 잘 이어받아 여호와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개혁과 재건을 앞장서 추진하기에 적절한 사람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위기의 시대를 구하고 이끄는 지도자는 갑자기 출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치밀한 준비하심 속에 정하신 때에 드러나게 하시는 신비로운 섭리였다.
-하나님의 율법에 능한 학사 에스라의 삶을 도우셨다. 그래서 그가 유배지에서도 제사장으로서 율법의 정신을 잘 간직하였을 뿐 아니라, 제국의 법에도 유능한 관리로서 왕의 돈독한 신임을 받게 해주셨다. 율법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참되나 왕으로 인정하고 순종한 그를 세상의 왕에게서도 인정받도록 높이신 것이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또 가르쳤다. 연구는 비현실성에서, 준행은 불확실성에서, 가르침(나눔)은 위선에서 우리를 건져준다.
-하나님은 에스라를 통해 2차로 백성들이 유배지에서 귀환하도록 도우셨다. 무슨 이유로든지 첫 귀환에는 즉시 합류하지 못했지만, 늦게나마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약속 실현에 참여하겠다고 결단한 이들을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이다. 선구자가 될 만큼 결단력 있지 못하고, 앞장설 만큼 리더십이 없었지만, 주께서 기다려주셨다. 주님은 억지로 귀환시키지 않으셨지만,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늘 도와주셨다.
*에스라를 소개하며 대제사장 아론에서부터 에스라까지 이어지는 제사장 족보(1~5절)를 통해 오랜 포로 생활에서도 신실하게 자기의 정체성을 지킨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의 순수성이 내 자손과 후배들에게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에스라의 등장은 성전 재건 이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상당한 기간(다리오 6년~아닥사스다 왕 7년까지 약 60년)이 지나면서 세대가 교체되었고, 신앙의 열정은 식어 갔다. 영적 침체를 넘어 공동체 분열 양상까지 보인다. 재건 공동체의 큰 위기 속에 에스라가 등장한다. 그를 소개하면서 한 사람의 족보를 16대 조상까지 서술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저자는 정통 제사장 가문 출신의 에스라가 개혁을 추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위기 때마다 주님은 영적 쇄신을 이끌 사람을 예비하신다.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연구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 율법을 실천하는 자였다. 또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는 일에 마음을 굳게 하였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연구하는 일에 더욱 부지런해야 함을 다시 확신하게 된다. 또한 깨달은 말씀을 준행하려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나아가 깨달은 말씀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겠다. 말씀 묵상하는 공동체인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이 아름다운 일이 내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다른 지체들에도 넘치는 은혜의 물결이 되게 해야 하겠다.
*하나님은 에스라를 도우셔서 에스라가 왕께 무엇을 구하면 다 받게 하셨다. 에스라는 비록 바사(페르시아)의 포로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자로서 바사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하나님이 율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사람 앞에서도 높여 주신 것이다. 이 모든 일상의 형통함 속에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그 삶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늘 있음을 믿는다.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바벨론으로 돌아오는 무리를 선한 손길로 보살피셔서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바사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에스라에게 많은 권한을 갖고 돌아오게 하셨고,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 제사장, 레위인, 노래하는 사람, 문지기, 성전의 막일꾼들(느디딤 자손)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귀환에 동참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예배하는 공동체를 회복하시려고 신실하게 일하신다.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순종하게 하시고, 순종하여 내디딘 걸음을 선한 손으로 붙잡아 주신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오늘을 이끄신다.
*주님, 하나님의 선한 손이 오늘의 삶도 붙잡아 이끌어 주실 줄 압니다. 더욱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에 능통하고, 그것을 지켜 행하며 가르치는 공동체가 되도록 목회에 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