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8:1-20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던 두 번째 귀환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소개한다. 아하와 강가에서 에스라는 족장들을 보내 레위인과 성전의 일꾼들(레위인 40여 명, 느디님 사람 220명)을 불러 모아 무리에 합류시킨다. 2차 귀환자들의 총수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합쳐 1인당 부양가족을 5명으로 계산하면 약 9,000명가량이다. 본문은 첫 번째와 동일하게 두 번째 귀환자를 출애굽 행렬로 묘사한다.
1. 귀환자들의 계보(1~14절)
1절은 계보의 서론이다. 1~14절은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던 두 번째 귀환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소개한다.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는 구체적으로 주전 458년을 의미한다. 이때는 첫 번째 귀환이 이루어진 때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시점이다. 에스라와 귀환민들은 “바벨론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표현된다(1b절). “올라왔다(알라)”는 표현을 통해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올라온 출애굽 행렬의 모습을 환기시키려 한다(참조, 출 3:17). 돌아온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로 제사장(2a절), 왕족(2b절), 그리고 일반 백성들(3~14절)이다.
2절은 제사장과 다윗 왕조의 계보다. 귀환자들의 계보는 제사장과 다윗의 후손(왕족)으로 시작한다. 2장의 계보와 비교할 때 왕족이나 일반 백성보다 제사장 계보를 앞세우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제사장 가문은 비느하스 자손과 이다말 자손으로 구분되는데, 비느하스는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의 아들이고, 이다말은 아론의 넷째 아들이다(출 6:25). 각각의 혈통에 속한 제사장으로는 게르솜과 다니엘이 있다. 다윗 자손으로 소개되는 핫두스는 스룹바벨의 후손이다(대상 3:19~22).
3~14절은 일반 백성들의 계보다. 바로스 자손 150명(3절), 바핫모압 자손 200명(4절), 스가냐 자손 300명(5절), 아딘 자손 50명(6절), 엘람 자손 70명(7절), 스바댜 자손 80명(8절), 요압 자손 218명(9절), 슬로밋 자손 160명(10절), 베배 자손 28명(11절), 아스갓 자손 110명(12절), 아도니감 자손 60명(13절), 비그왜 자손 70명(14절)이다. 본문은 이들을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모두 18명의 가족의 우두머리를 포함, 모두 1,514명으로 회복된 이스라엘의 중심을 이룬다.
한편, 1차 귀환민들의 명단을 보도하는 2장과 비교할 때, 요압을 제외한 모든 족장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2차 귀환민들 대다수가 1차 귀환자들과 관계된 인물임을 의미한다. 에스라에 등장하는 귀환 공동체의 명단들(스 2, 7, 8장)은 현재의 공동체를 과거 이스라엘과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즉, 이러한 명단들은 포로기 이전의 공동체와 앞으로 회복될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하면서 구속사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2. 아하와 강가에서(15~20절)
15절은 에스라가 아하와 강가에서 이후에 합류한 성전 종사자와 레위인들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에스라와 귀환 무리들이 바벨론에서 출발하여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이르자 그곳에서 3일간 머물게 된다. 에스라는 이곳에서 일행을 점검하다가 행렬 가운데 레위인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첫 번째 귀환 행렬에서도 레위인들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전체의 약 1.5%, 스 2:40). 추측건대 레위인들은 자신들에게 부과될 과중한 사역을 염려하여 귀환을 꺼렸던 것 같다. 귀환 공동체가 조상들의 신앙을 전수하고 지속적인 예배를 드리는 일에 레위인의 역할을 절대적이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재건에 있어서 레위인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들을 위한 행렬에 합류시키려 한 것이다.
16~20절은 에스라가 학식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가시뱌 지방의 족장 잇도에게 보내 예루살렘에서 봉사할 성전 봉사자들을 불러 모으려 했다(17절). 에스라의 부탁을 받은 9명의 족장(엘리에셀, 아리엘, 스마야, 엘라단, 야립, 엘라단, 나단, 스가랴, 므술람)을 포함한 11명의 사람이 아하와 강가에서 가시뱌로 떠난다. 가시뱌는 당시 바벨론 근교에 있는 유대교 집단 거주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 지방은 포로민이 함께 모여 예배드렸던 곳이고, 레위 사람들도 이곳에 모여 살았던 것 같다.
에스라의 명령을 받은 11명의 지도자는 가시뱌 지바으로 가서 세 가문의 레위인 39명(말리 자손 1명, 세레바 가문 18명, 하사뱌 자손 중 여사야의 친지들 20명, 18~19절)과 220명의 성전 수종자를 아하와 강가로 데려온다. 이들이 성전 종사자들을 모집한 일은 3일 만에 이루어졌는데(15절), 에스라는 이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밝힌다(18a절,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레위인을 포함한 성전 종사자들의 총수는 220명으로 앞서 계수된 제사장, 다윗 왕가 및 일반 백성들의 숫자 1,514명을 더하면 귀환자들의 총수는 1,773명이다. 부양가족을 5명으로 환산하면 여자와 아이들을 합하면 총수는 약 9,000명쯤 될 것으로 본다. 이 숫자는 1차 귀환 때 49,897명의 대략 2/1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재건하는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1, 2차 귀환민들은 페르시아에서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본문에 소개된 레위인을 포함한 귀환자들의 수는 적으나,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이 처한 어려운 형편을 고려할 때 이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두 번째 귀환 행렬도 첫 번째와 동일하게 출애굽 행렬로 묘사하고, 열두 지파를 연상하게 하는 열두 자손의 이름과 별도로 레위인의 합류를 보도하는 내용도 민수기의 인구 조사와 유사하다. 무엇보다 귀환 목적도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자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또한 에스라는 이 남은 자들의 귀환을 1차 귀환과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간주한다(사 41:9; 43:14~21; 52:11~12).
나는?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족장들과 그 가계는 대략 남자의 숫자가 1,500명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약 구천 명쯤 되었을 것이다. 개척 정신으로 처음 귀환한 약 오만명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다. 그러나 저자가 돌아온 자들을 열두 족장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나, 이들이 대부분 1차 귀환자 가문과 관련된다는 사실은 비록 소수지만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처럼, 안정된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불안정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이들이야말로 포로 전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상속하여 공동체를 재건할 사람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많지 않은 수가 참여했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편안함과 보장된 삶을 버린 이 소수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나라를 세워가실 수 있다.
*아하와 강가에서 귀환한 백성들을 살펴보던 에스라는 레위인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이스라엘을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공동체로 다시 세울 때 꼭 필요한 일꾼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전 없이 지낸 70년 동안 성전 제의를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어진 재건된 공동체에서 성전 봉사자요 율법 교사인 레위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레위인 없이는 건물이 있어도 불완전한 성전일 수밖에 없다. 에스라는 전할 말을 주면서 일곱 명의 족장과 두 명의 명철한 사람을 “밋도와 그 형제 느디님 사람들”에게 보내 귀환을 독려하기에 이른다.
*에스라가 2차 귀환을 추진할 때도 도우신 하나님께서(7:8) 레위인들이 귀환에 참여하게 하는 일도 도우셨다. 에스라는 지도자로서 매우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시행했다. 문제를 발견하고 전할 말을 준비하고, 적합한 사람을 신중하게 선발하여, 전략 지역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 일을 진행하고 성사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러니 우리는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뢰하며, 우리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모으는 일에 함께 해주신다.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위해 함께 할 백성의 우두머리들을 모을 때 하나님이 도와주신다(7:28).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하자고 격려하는 일은 내 노력과 설득의 기술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때 협력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 우리 공동체에 우리와 더불어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내 달라고 늘 기도하는 것은 공동체를 세워가는 중요한 몸부림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감동에 반응하여 성전과 제사가 회복되는 귀한 일에 기꺼이 동참하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해 모인 이들을 바라보면서 공동체의 비전에 함께 마음을 모으기 위해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세워가는 성도들의 모습이 떠올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더욱 동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떠올려지는 성도들도 있다. 주님께서 마음을 감동하셔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이뤄가는 일에 자원하는 성도들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사흘 동안 거하면서 귀환 백성을 점검한다. 레위인이 없음을 보며 지도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을 잇도에 보내 레위인의 동참을 요청한다. 예루살렘 귀환 목적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기에 이들이 없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주님이 기뻐하는 공동체로 세워가기 위해 함께 하자고 설득하고 권면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더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하나님 나라 진실한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 필요한 신실한 예배를 위해 치밀하게 점검하고 갖춰야 할 것에 성실하게 임해야 하겠다.
*소수의 레위인들이 요청에 응답하여 동참했다.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섬길 기회에 반응하여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걸음에서 이처럼 하나님을 더욱 하나님으로 섬길 수 있는 자리에 불러 주신다면 주저하지 않고 기쁨으로 나서야 하리라.
*주님, 하나님을 예배하러 올라가는 이들의 걸음을 이끄시는 돌보심을 봅니다. 환경이나 여건보다 부르심에 반응하는 그 모습을 본받겠습니다.
*주님, 더 온전히 섬기기 위해 사람을 보내 레위인을 찾는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지혜를 봅니다. 자원함만 기다리는 것도 믿음이지만, 찾아 나서며 권면하는 것도 믿음임을 봅니다. 맡겨 주신 더온누리 공동체를 이렇게 감당해 나가겠습니다.
*주님, 부르심에 반응하는 레위인들을 보며 우리 공동체로 불러 주신 비전에 함께 하기 위해 반응하는 성도들을 더 예비하여 주실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부름을 기다리는 성도를 생각하며 담대하게 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