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1:1-15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학개는 주전 520년경 포로귀환 공동체가 성전 재건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허락해주신 예언의 메시지다. 주전 536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귀환 공동체는 성전 재건을 시작한 후 대적들의 방해로 인해 약 16년간 성전 재건을 중단한 상태였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 백성들의 마음을 회복케 하시고 결국 516년 성전이 완공된다.
1. 배경(1절)
1절은 학새서의 전반적인 시간적 배경을 소개한다. 다리온느 페르시아 제국을 다르신 왕이다(주전 522~486).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에 힘입어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자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다리오 왕에게 조서를 올리고 다리오 왕은 성전 재건을 허락했다. 총독 스룹바벨은 597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던 여호야긴의 손자로서 다윗의 직계 후손이었고 나라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왕위에 올랐을 수 있는 왕족이었다(대상 3:17~19).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536년 포로 1차 귀환을 이끈 지도자들이었는데 16년간 성전을 재건하지 못한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학개서의 네 번의 예언은 약 네 달이라는 상당히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주어졌다(여섯째 달 초하루-아홉째 달 이십사일). 그래서 시간적인 흐름을 살펴보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성전 중단 상황 설명(3~11절)
2절은 주전 520년 당시 성전 재건이 중단되었던 상황을 알려준다. 백성들은 성전 재건을 재개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가 아닌 다른 시점에 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상 성전 재건을 원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16년 동안 중단되어 있었기에 성전 재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속마음이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라는 완곡한 표현에 녹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3~11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전 재건을 수행하지 않고 있는 포로 귀환 공동체의 백성들을 책망하신다. 4절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이 좋은 집에 거주하고 있는 데 반해 하나님의 집은 황폐한 채로 남아 있음을 대조 기법을 사용하여 말씀하셨다. 5절이 핵심 메시지인데, “너희 길에 마음을 두라”이다. 구약성경에서 “길”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과 태도를 뜻한다. 지난 16년 동안 성전을 재건하지 않은 채 지내온 백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마음을 다해 반추해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6절이다.
6절은 대조 기법을 사용하여 백성들이 원한 삶의 모습과 실제 삶의 모습을 비교한다. 많이 뿌려도 적게 거두었고, 먹어도 배부르지 못했고, 마셔도 흡족하지 못했다. 삯을 받아도 모이지 않았다. 이 모습들은 사실상 시내산 언약의 저주를 가리키고 있다. 신명기 28장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시내산 언약의 축복과 저주를 설명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면 복을 얻게 되지만 그 율법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됨을 말한다. 그 저주의 내용 중에 학개 1:6의 내용과 신명기 28:38이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특히 “노력하였으나 결과를 얻지 못함”이 바로 학개 1:6의 주제이기에, 신명기에 나타나는 시내산 언약의 저주를 언급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7절에서 5절의 명령을 다시 반복하신다. 각자 자신의 길에 마음을 두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책망이 아니다. 자신의 길에 마음을 두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자세히 살피라는 권고다. 성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판단되는 문구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8절에 나타난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확하게 명령하신다. 성전을 재건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9~11절에서는 성전 재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고난이 닥쳐왔음을 다시금 자세히 서술해 나가신다. 백성들은 거둔 것을 집으로 가져갔지만,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 건축에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축복을 주지 않았고,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 등 모든 일에 가뭄이 찾아왔다. ‘곡물, 새 포도주, 기름’은 소선지서에서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목록으로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이다(참조, 호 1:8). 하나님은 포로귀환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성전을 건축함을 통해서 다시금 언약의 복된 상태를 누리기 원하셨다.
3. 예언에 대한 순종과 결과(12~15절)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수아)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를 들었다”는 “청종하다, 순종하다”로 해석해야 한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여호와께서 학개를 보내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생각하며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주인공으로 여겨, 그분의 말씀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13절에서 학개를 통해 중요한 말씀을 전달하신다. 바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선포다. 이 선포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다. 하나님 자신이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선포를 직접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백성들의 의식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전 건축이 먼저 이루어져 하나님의 집이 완성되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순서를 뒤집으시고 성전이 아직 재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라고 먼저 선포하셨다. 백성들의 입장에서 이 예언은 매우 급진적인 메시지였다. 성전이 아직 건축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벌써 오셨다는 것은 바로 성전이 반드시 재건될 것이라는 확인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선포를 통해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시작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완성되도록 역사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14~15절은 이러한 학개 선지자의 예언 선포로 인한 결과를 기록한다. 그것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마음, 포로귀환 공동체의 모든 백성의 마음이 감동되었다는 것이다. “마음(루아흐)”으로 번역된 단어는 “영혼”이라는 의미가 있다. 5절과 7절에서 하나님은 “너희 마음을 너희의 길에 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통해 좀 더 근본적인 내적 변화를 언급하시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감동시키다”로 번역된 단어는 “잠든 상태를 깨워 일으키다”, 혹은 “방향성, 운동성을 부여하다”라는 뜻이다. 즉, 그들의 영혼이 사실상 움직이지 않는 잠든 것 같은 상태였는데 학개의 메시지를 통해 그들의 영혼이 깨어나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하나님의 선제적인 선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백성들은 여섯째 달 십사일에 하나님의 전 공사를 재개하게 되었다.
학개 1장에 나타난 첫 번째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백성들을 단순히 책망하시는 데서 머물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예언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그들의 영혼을 움직여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을 반드시 완성하시며, 그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도록 친히 일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학개는 성전 건축을 재개하라고 외친다. 백성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핑계로 성전 건축을 재개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때, 하나님은 두 지도자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게 지금이 바로 성전을 건축할 때라고 일러주신다. 지도자는 백성들을 배려해야 하지만, 그들이 정해준 때보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더 민감해야 한다. 불평과 하소연 사이에 정확한 영적 실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막무가내의 열정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나태와 안일로 이끄는 방임적인 자유도 경계해야 한다.
-학개는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태도와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형편 간의 관계를 잘 생각해보도록 촉구한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이 한결같이 무익한 결과로 끝난 것은 우연이 아니고, 자기 집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는 열심이면서도 하나님의 집은 지붕도 없는 채 방치하였기 때문인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들은 어려운 경제를 경제논리로만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어려움과 문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맘몬(물질, 돈)의 노예가 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살폈어야 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 시작하라. 하나님은 지금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 전을 건축하라고 하신다. 레바논의 백향목과 크고 귀한 돌로 지은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평범해도 좋으니 근처에서 당장 구할 수 있는 나무로 지으라고 하신다. 그래도 기쁘게 받으시고, 그 전에 영광 중에 임재하겠다고 하신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이 세상 무엇보다 주님을 더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돈이 없고 지식이 짧고 직장을 잃고 몸이 건강하지 못해도 나는 주님이 기뻐하실 영광의 처소가 될 수 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선지자의 말을 청종하고, 백성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반응하며, 온 백성은 하나님께서 일깨워주신 마음을 따라 성전 재건에 착수한다. 하나님은 “동행”의 약속으로 함께해주신다. 하나님과 지도자와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 먼저 세워질 때 눈에 보이는 성전도 세울 수 있다.
*지도자부터 제사장, 일반 백성 모두가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랄 통해 말씀하신다. 말씀으로 회복시키시고 성전을 재건하도록 독려하신다. 말씀의 힘이 놀랍다. 무기력에 젖어 있던 영혼을 다시 “일깨운다. ”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 중단했던 성전 재건의 역사를 다시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힘을 잃은 지 너무 오래됐다고 낙심하면 안 된다. 믿음으로 “말씀”을 통해 공급해 주실 하나님의 새 힘을 소망해야 한다.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중단한 채 오랜 시간을 흘려 보낸 것은 자신들의 경제력이 미약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수확을 늘리는 일에는 열심이었다(2~11절). 이런 그들의 삶은 오랫 동안 쉬었던 땅에 농사를 지으면 풍작을 거두리라고 예상했으나, 수확량은 너무나 적었고 허기조차 채우기 힘들 정도로 핍절한 삶이 기다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들의 불순종이었다.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빼앗아 간다. 자기 이익 챙기는 일에는 빠르면서도,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마음 성전에는 잡초가 무성한 상태가 아닐까?
*백성들의 지도였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한 무명 선지자 학개의 선포를 겸손하게 받아들인다(12절). 하나님의 말씀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에 임한다.
*성전 재건에는 지도자와 온 백성이 함께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각자 책임과 본분을 다할 때 아름답게 세워져 간다.
*주님, 주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맏음으로 살아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