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2:10-23 세 번째와 네 번째 예언
학개가 전달한 네 개의 예언 중 세 번째 예언과 네 번째 예언이다. 그동안 부정했던 백성들이었지만 이제는 복을 주겠다고 선언하시는 예언 및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예언을 동시에 내려주신다. 백성들의 마음 및 지도자의 마음을 깊이 만져주시는 회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깊이 있게 증거한다.
1. 세 번째 예언(10~19절)
세 번째 예언은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주어졌다. 두 번째 예언이 주어진 후 약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고, 하나님은 새로운 예언으로 그들의 마음 북돋우기를 원하셨다. 이번 예언은 “거룩함과 부정”의 주제를 가지고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셨다.
학개는 먼저 12절을 통해 거룩한 고기를 옷자락에 싸서 옮기다가 다른 옷자락 등에 닿으면 그 닿은 것이 거룩해지느냐고 물었고, 제사장들은 이에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정리하면 ‘거룩은 전염되거나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3절에서는 ‘부정의 전염성’에 대해서 질문한다. 누군가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졌는데, 그가 12절에 언급된 기름, 음식 등을 만지게 되면 그것들이 부정해지겠느냐는 질문이다. 제사장들은 이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거룩은 전염되지 않고 부정은 전염된다는 이 대조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부정은 너무나 쉽게 공동체 가운데 퍼지게 되기에, 조그만 잘못으로 인해서도 공동체 전체가 금방 타락하게 됨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학개는 14절에서 바로 이 점을 선언한다. 하나님 앞에서 백성이, 나라가, 그 백성들이 한 모든 일까지도 다 부정하다는 것이다. 이 선언은 포로 귀환 공동체 전체가 부정케 되었다는 선언이다. 그들이 성전 건축을 하지 않았기에, 그로 인해 모든 공동체나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까지도 다 부정으로 전염되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 부정함의 결과는 첫 번째 예언에서 언급되었듯,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 대신 저주를 경험하게 되었고, 두 번째 예언에서 언급된 것처럼 그들의 마음이 위축되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이러한 백성의 부정함 자체를 다루시고 새롭게 하려고 시도하고 계신다. 그 내용이 15절 이하에 이어진다.
15~19절은 축복 선언이다. 먼저 15절에서 ‘오늘부터 마음을 두라’라고 권고한다. 이 말은 오늘부터 일어날 일에 마음을 두고 살펴보고, 기대하라는 의미다. 16절은 성전 주춧돌이 놓이기 전에는 이십 더미를 얻을 것이라 예상했다가 열 더미를 얻었고, 포도즙 오십을 얻을 것이라 여겼는데 이십을 얻을 뿐이었다. 이는 신명기 28장의 언약의 저주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에 언약의 축복 대신 저주가 임하여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이 17절에서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기근과 메뚜기와 우박 재앙으로 백성들을 치셨지만,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이런 재앙들은 여호와께 돌아와 그분을 경험하게 하도록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백성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첫 번째 예언과 두 번째 예언의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학 1:13; 2:4)”라는 하나님의 선언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먼저 돌아오셔서 그들과 함께 해주셨던 것을 상기시킨다. 백성들이 그 은혜를 깨닫고 성전 재건을 다시금 시작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예언을 통해서 그들의 곤란한 삶의 근원적 문제였던 “부정함” 즉, 죄와 불신앙으로 오염된 근본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려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너희가 이제 성전 재건을 시작했으니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라는 메시지다.
18절에서 하나님은 ‘오늘부터 일어날 일을 살펴보라’고 하신다. ‘오늘’이란 세 번째 예언이 내려온 아홉째 달 이십사일을 가리킨다. 19절은 백성들이 그동안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서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오늘부터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 선포한다. 백성을 향해 먼저 돌아오시고 그 은혜로 성전 재건을 시작한 백성들을 보시고서는 그 행동을 기뻐하시면서 복을 더 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회복시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2. 네 번째 예언(20~23절)
네 번째 예언은 총독 스룹바벨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은 이 예언을 통하여 공동체 전체를 변화시켜 주셨는데, 이제 네 번째 예언을 통해서는 그 공동체의 지도자인 스룹바벨의 마음을 만지시고 변화시켜 주신다. 네 번째 예언은 세 번째 예언과 같은 날 주어졌다. 아홉째 달 이십사일이다. 하나님은 공동체가 은혜를 받고 변화된 그날, 지도자도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변화되기를 진심으로 원하셨다.
21절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향해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다’라고 하신다. 이 표현은 본론(22절)의 도입부다.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는 하나님은 그 능력으로 열방의 왕국들을 진동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특히 그 열방들의 병거 및 그 병거를 탄 자들을 엎드러뜨리실 것이요. 그들은 서로를 죽이고 멸망하게 될 것이라 하셨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스룹바벨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스룹바벨은 여호야긴의 후예로, 다윗 가문을 이어 왕이 될 존재였다. 그런데 그는 지금 열방 제국인 페르시아의 총독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나님은 그런 스룹바벨에게 페르시아 제국을 두려워하지 말고 성전 건축을 담대하게 수행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움직이셔서 성전 재건이 문제없이 이루어지게 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이 선포를 들었을 때 큰 담대함을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23절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내 종”이라 부르시면서 그를 인장 반지로 삼겠다고 말씀하셨다. ‘인장 반지’란 왕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로서, 한국적 의미의 옥쇄다. 이 구절은 예레미야 22:24을 반추한다. 하나님은 고니야(여호야긴)가 하나님 손의 인장 반지일지라도 빼어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줄 것이며(렘 22:24~25), 그 후손 중에는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다시 없을 것이라고 저주를 선언하셨다(렘 22:30). 스룹바벨은 이 저주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저주를 받은 가문의 후손이 유다의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기에 성전 재건이 중단되었을 것이라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스룹바벨을 향해 주님은 “내가 너를 인장 반지로 삼겠다”고 선언하심으로 스룹바벨의 마음 상처와 괴로움을 위로하시고 풀어주셨다.
스룹바벨은 이 말씀을 듣고 더욱 힘을 내어 성전 건축에 박차를 가했을 것이 틀림없다. 우리 하나님은 공동체뿐 아니라 공동체의 지도자 개인의 마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그를 위로하시고 말씀으로 세우셔서 다시금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이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성전은 결국 완성되었고, 우리의 삶에도 그 하나님의 왕국은 반드시 완성되고야 말 것이다.
나는?
-성전을 부정한 채로 방치할 때 모든 것이 부정했다. 이스라엘이 부정했고 백성들도 부정했고 백성들이 하는 모든 일이 부정했다. 이 같은 타협 없는 단호한 메시지는 초라한 성전에 실망하여 성전 재건 움직임에 반대하고 그 대신 성전 대용인 번제단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데 만족하려는 분위기를 반영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보다 더 앞세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부정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으면 세상의 찬사도 부정함을 거룩함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성전 건축의 부진함에서 백성이 하는 모든 일들까지도 부정으로 전염되었음을 밝힌다.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작더라도 성전이면 족하다. 하나님이 그 작음에 비할 수 없는 큰 영광으로 충만히 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집보다 그의 나라를 우선하는 태도요.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마음이 아닐까! 믿음 없음이라는 부정한 마음을 버리는 것 아닐까!
-성전 재건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대한 만큼 수확하지 못하도록 폭풍과 곰팡이와 우박으로 쳤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외면하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동안 그들의 수고를 헛되게 하신 것이다. 성전에 대한 마음보다 농사일에 마음을 두고 있었을 때, 그들의 수확은 형편없었다. 이십 고르를 기대했던 곡물은 십 고르뿐이었고, 오십 고르의 포도밭 수확은 이십 고르뿐이었다. 무화과, 석류, 감람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다. 하나님이 기근과 메뚜기와 우박 재앙으로 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백성은 깨닫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성전의 지대를 쌓기 시작한 첫날부터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겨우 준비를 마치고 시작했을 뿐인데 금새 마음을 바꾸신 것을 보면, 얼마나 간절히 이 백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는지 알 수 있다.
-돌아오는 탕자를 먼 발치에서 알아보고는 뛰어나가 마중한 아버지의 성마른 사랑이 오늘도 주께로 돌아가서 주님을 우선순위로 여기는 우리의 삶을 축복으로 바꿀 것이다.
-성전이 온전케 되면 하나님은 다윗 왕가의 손에서 빼내어 느부갓네살에게 넘겨준 인장 반지를 다시 스룹바벨에게 넘겨주겠다고 하신다. 이것은 다윗 왕가에 내린 심판을 철회하시고 이제 온 세상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스룹바벨의 정치력이나 인간의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스스로 자멸하게 하심으로써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것은 공의로우시고 겸손하신 다윗의 후손 예수님을 통해(슥 9:9~10)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것이다.
*주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반응이 도전됩니다. 무엇이든 더 미루지 않고 지금, 주님의 마음을 따라 순종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