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느헤미야의 기도 [느 1:1-11]
 – 2025년 11월 20일
– 2025년 11월 20일 –

느 1:1-11 느헤미야의 기도

수산궁에 있던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온 형제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슬퍼한다. 그가 들은 소식은 유다 지역이 능욕을 받아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이 불에 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한다. 느헤미야는 조국의 문제를 놓고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당시 느헤미야의 직책은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다.

아닥사스다 왕(주전 465~424)은 아하수에로 왕(주전 486~464)을 이어서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 되었다.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가 활동했던 당시의 왕이다. 주전 460년경 아닥사스다 왕 치세의 제국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애굽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제국 내 서쪽의 아테네인들은 주변국들과 더불어 제국에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요청을 받아들여 유다 총독의 신분을 부여하여 예루살렘으로 파송한다. 아닥사스다 왕은 충성스러운 신하인 느헤미야를 강 건너편 영지로 보내 제국의 서쪽을 요새화하고, 유다 지역에 반란의 여지가 없는지를 살피려 했을 것이다.



1. 예루살렘의 황폐함에 대한 소식(1~3절)
느헤미야는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로 시작한다. 1b절은 책의 역사적인 배경을 설정하는데, 원문은 ‘제20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었는데’로 되어 있다. 그리고 2:1에 가서야 비로소 20년의 통치 기간의 주체가 아닥사스다 왕임을 밝힌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서로 연결된 책이라는 것에 의해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 7:1에서 이미 언급되었기에 1:1에서 왕의 이름을 생략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한편, 아닥사스다 왕 20년은 주전 445년으로 에스라가 귀환한 지 13년이 지난 시점이다. 당시 느헤미야가 있던 수산궁은 페르시아 왕이 겨울철을 보내는 장소로 페르시아의 겨울철 수도와 같은 곳이다.

2~3절은 예루살렘 소식에 관한 내용이다. 느헤미야는 이 시기에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의 방문을 받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다(2절). 이들은 에스라-느헤미야의 문맥에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공동체를 가리킨다. 느헤미야가 들은 소식은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것이다(3b절). 에스라 4:11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읍은 아닥사스다 왕 때 귀환민들이 재건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2차 포로 귀환단을 이끈 에스라에 의해 성읍 재건의 시도가 이루어졌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재건은 대적들의 반대로 중단되었고(스 4:12~23),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훼파되기에 이른 것이다. 귀환 공동체의 성벽 재건 작업을 멀리서 지켜보던 느헤미야는 형제들을 통해 이 계획이 좌절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2. 느헤미야의 기도(4~11절)
하나니의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울고,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여” 등의 연속된 4개의 동사를 사용하여 깊은 슬픔을 표현한다. 극심한 절망과 슬픔 속에서 느헤미야가 한 일은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느헤미야서 안에는 느헤미야가 기도하는 장면이 모두 아홉 번 등장하며 본문은 그 첫 번째 기도다. 본문은 느헤미야가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었고, 느헤미야의 지도력 원천이 기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공동체의 탄식시(시편 74, 79, 80, 85편 등)를 연상시키고,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본문의 기도는 먼저 하늘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5a절). 주목할 것은 ‘하늘의 하나님(엘로하이 하샤마임)’은 당시 페르시아 사람들이 신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들은 페르시아의 신이 하늘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칭호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늘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다(참조, 창 24:7). 이어서 느헤미야가 믿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준다(5b절). 여호와는 ‘크고 두려우신 분’이며,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어서 백성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연결된다(6절). 느헤미야가 표현하는 “여호와의 종(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 6a절)”이나 “주의 종(6, 8, 10절)”은 포로 귀환민들을 여호와의 언약 백성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통해 느헤미야는 고레스 왕 때부터 이루어진 바벨론 포로 귀환을 언약의 회복으로 이해한 것이 틀림없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 흩어지게 된 이유를 하나님께 대한 범죄 때문이라고 밝힌다(7a절, ‘크게 악을 행하여’ ; 신 4:26~27). 이스라엘이 범한 “큰 악”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긴 것으로 요약된다(7~8절). 언약과 관련하여 8절의 “범죄(마알, 포로됨의 직접적인 원인)”는 언약 파기를 암시한다. 구약에서 “마알”은 언약적인 개념으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행동”을 나타낸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과 언약은 매우 밀접한 관계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결국 하나님과 맺은 언약 파기로 나아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에 충실한 삶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가 지속되기 위한 조건이 된다(5절,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9절에서 느헤미야의 기도는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주제로 바뀐다. 본문에 의하면 회복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약속, 즉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에 기인한다.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이라는 주제는 느헤미야 기도의 핵심이다. 9b절은 신명기 30:4에 나타난 이스라엘 회복과 새 언약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다. 느헤미야는 이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한 것이다.

느헤미야는 귀환민들을 가리켜 “주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라고 칭한다(10절; 참고, 신 9:29). 신명기 인용을 통해 느헤미야는 고대 이스라엘과 귀환민들 사이의 연속성을 드러낸다. 즉 귀환민들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남은 자들”이요. 회복된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마지막으로 백성들과 자신을 위한 기원으로 마무리된다(11절). 그는 귀환민을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이라고 언급하면서 여호와의 종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을 호소한다. 마지막으로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해달라”는 요청은 곧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왕이 자신의 요청을 허락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당시 자신의 직책이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음을 회고한다(11c절).



나는?
-본문 내용을 통해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정리해 보고 싶다. 먼저 느헤미야는 공동체와 하나인 지도자였다. 그의 몸은 페르시아 대제국의 궁전에서 안락했지만, 그의 마음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있었다. 공동체의 소식을 먼저 물었고, 형제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는(스 4:23) 그의 마음도 무너졌고 새까맣게 탔다. 일련의 모습은 느헤미야가 공동체와 마음이 하나였음을 증거한다.

-느헤미야는 공감과 눈물의 지도자였다. 그는 공동체의 불행을 자기 불행으로 여기고 울며 수일 동안 슬퍼했다. 하지만 지기 권력을 사용하여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기 전에 신앙적인 대책을 마련한다. 페르시아의 왕을 찾기 전에 하늘의 왕을 찾아 금식하고 기도한다. 이 환난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오직 그분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회개와 기도의 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먼저 회개했다. 예루살렘의 고난을 그들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나와 내 집이 범죄하였다”고 하여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한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의 한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문화와 종교에 동화되지 않고 언약을 기억하고 말씀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익명 동역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회개한 자에게 회복을 달라고 기도한다. 또한 직접 왕에게 나아가 간청할 때 왕의 은혜를 입도록 그 마음을 주장해달라고 언약에 기대어 기도한다. 언약을 기억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도 약속을 기억하시어 행동에 나서달라고 담대하게 요청한다.


*느헤미야의 관심사는 평안하고 안락한 수산궁에 있지 않았다(2절). 그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었으나 자기 백성, 특히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내 삶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공동체의 형편과 성도들의 삶에 더욱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예루살렘의 성 훼파와 느헤미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자기 죄로 여기고 회개한다(4~7절). 공동체의 어려움과 시련을 보면서 그것이 몇몇 사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기도 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하여 드리는 기도였다(신 12:5). 막연하게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구한다. 나의 기도가 약속의 말씀을 근거하며 드릴 때 나의 욕심에 사로잡혀 내 중심의 기도가 되기 쉽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주님, 느헤미야는 “울고,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주께서 들려주시는 하늘의 소식들을 들으며 이처럼 기도로 반응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느헤미야는 공동체와 몸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하나였고, 공동체의 아픔에 눈물을 흘릴 줄 알았으며, 무엇보다 직면한 문제들을 기도로 돌파하는 지도자였음을 봅니다. 저도 그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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