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8:1-18 수문 앞 광장에서 일어난 말씀 회복
각기 성읍에 거주하던 백성들이 일곱째 달 초하루에 율법을 듣기 원하여 예루살렘 성의 수문 앞 광장에 모여든다. 학사(서기관) 에스라는 그들의 요청에 따라 율법을 가져와 수문 앞 광장에서 낭독한다. 레위인들이 에스라가 읽은 말씀의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자, 백성들은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의 절기는 일곱 가지로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다(레 23장). 일곱 절기는 크게 봄철에 지키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과 가을철에 지키는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로 구분된다. 특히 7월에는 세 개의 절기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 몰려 있어 성스러운 달로 인식된다. 히브리인의 세계관에서 숫자 “7”은 ‘창조의 수, 완전수, 안식(예배)의 수’다. 이런 배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일곱째 달에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인 것이다. 나팔절은 7월 초하루에, 대속죄일은 7월 10일에, 그리고 초막절은 7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지킨다. 이중 초막절은 대속죄일의 은혜와 한 해의 추수를 감사하는 의미에서 가장 성대하게 지킨다. 초막절이 끝나면 모든 절기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성회(아체레트)”로 모인다.
1. 첫 번째 집회 _ 나팔절(1~12절)
1절은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8~10장 단락은 귀환 공동체의 수문(Water Gate) 앞 광장에서의 집회와 언약 갱신 의식을 다룬다. 이 단락은 율법 선포(8장) – 회개와 고백(9장) – 언약 갱신(10장)으로 성전과 성벽 재건 이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 중 8장은 첫 번째 집회인 율법 낭독과 해석(1~12절) 그리고 두 번째 집회인 초막절 의식(13~18절)으로 구성된다.
귀환 공동체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하므로 어느 정도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제 언약을 갱신하고 공동체 내의 회복과 부흥을 꾀할 단계가 되었다. 일곱째 달이 이르자 모든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인다(1a절). 그리고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 낭독을 부탁한다(1b절). 이 모습이 특별한 것은 이 모임이 지도자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1b절).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에서 “모든 백성”은 8장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1, 3, 5, 6, 9, 11, 12절).
2~6절에서 일곱째 달 초 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 앞에서 율법책을 낭독한다(2절). 일곱째 달 초하루는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절이다(참조, 레 23:24). 백성들은 한 해를 말씀으로 시작하고자 한 것이다. 이 모습에서 토라(모세오경, 말씀) 중심의 공동체를 세우기 원하는 귀환 공동체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 율법을 듣는 대상은 남자 어른뿐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되고 있는 것이 이 열망을 보여준다(2b, 3절).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학사 겸 에스라가 읽어주는 율법에 귀를 기울인다(3b절). 이때 에스라는 여러 명의 조력자들(제사장들 혹은 레위인들)과 함께 나무 강단 위에 서서 율법을 낭독한다(4절). 율법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서는 것은 전적인 순종을 다짐하는 행동이다. 율법 낭독은 하나님께 대한 송축과 회중의 응답으로 진행되었고, 모든 백성은 동의의 표시로 손을 들어 아멘으로 화답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한다(6절). “얼굴을 땅에 대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다.
7~12절은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 레위 사람들이 회중에게 말씀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강단에 에스라와 함께 섰던 조력자들은 율법의 한 부분씩 교대로 낭독하고, 열세 명의 레위인들은 율법이 낭독될 때 회중 사이를 다니면서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7절). 오랫동안 고국을 떠나 살았던 귀환민들은 페르시아의 공용어인 ‘아람어’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때문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율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역이 필요했다. 이 역할을 레위인들이 맡았는데, 율법에서 강조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신 33:10; 대하 17:7~9; 35:3).
레위인들이 에스라가 낭독한 율법을 해석하고 백성들에게 그 의미를 깨우쳐 주자, 백성들은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9a절). 그것은 지금까지 율법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탄식의 눈물이었다. 그렇지만 수문 앞 광장 집회가 열린 날은 나팔절로 이날은 “여호와께 거룩한 날”이요(레 23:24),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는 날(신년 축제)”이다(민 29:1~6; 신 12:12; 16:11). 여기에 근거하여 느헤미야, 에스라,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성일에 슬퍼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9절).
느헤미야는 슬퍼하는 대신 ‘살진 것과 단 것’을 먹고 공동체와 함께 즐거워하도록 지침을 내린다(10절). 그러면서 슬퍼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제시한다(10b절). 지금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즐거워할 때라는 것이다. 백성들은 곧바로 깨달은 말씀을 실행에 옮긴다(12절).
이처럼 수문 앞 광장의 집회는 말씀을 듣고, 깨달은 말씀을 실행에 옮기는 영적 각성 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2. 두 번째 집회 _ 초막절 의식과 여덟째 날 성회(13~18절)
에스라가 모든 백성에게 율법을 낭독해 준 다음 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율법의 말씀을 더 깊이 알기 위해 에스라에게 찾아온다(13절). 그리고 그들은 말씀을 읽는 중에 초막절 규례를 접하게 된다. 추측하기로 그들이 읽은 본문은 레위기 23장이었을 것이다. 레위기 규정에 따르면 초막절은 7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지키게 되어 있고(레 23:24), 초막절이 끝난 다음 날 성회(아체리트)로 모여야 한다(레 23:36).
고대 이스라엘의 초막절은 일종의 감사제의 성격을 지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진다. 첫 번째 감사는 1년 동안 풍성한 수확을 주신 것이다. 초막절은 가을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이며, 초막절을 지킴으로 한 해의 모든 추수가 종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초막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성대하게 지키는 절기다(민 29장의 초막절에 드리는 제물의 양). 두 번째 감사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다. 초막절은 광야 시절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회상하는 기간이다. 이런 배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동안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뭇가지와 시내 버들’을 가져다가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지내야 한다(레 23:40~42).
에스라를 찾아온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이 규정에 따라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곳곳에 초막을 짓는다(16a절). 초막을 짓는 장소는 가옥의 지붕 위나 뜰 안, 성전 뜰, 수문 광장, 에브라임 문 광장이다(16b절).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은 지붕 위나 뜰 안에,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은 성전 뜰이나, 무순 근처,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 등에 초막을 만들었을 것이다.
저자는 백성들이 규정에 따라 함께 초막절을 지킨 일은 여호수아 때 이후로 없었던 일이라고 강조한다(17b절). 이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부터 줄곧 초막절 규례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본문은 여호수아 시대를 언급함으로, 이 사건을 여호수아 당시 행했던 언약 갱신 의식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수 5~8장). 이는 포로 귀환을 제2의 출애굽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느헤미야 문맥에서는 10장의 언약 갱신 의식을 준비하는 기능을 한다.
18절은 에스라가 초막절 동안 매일 모세의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낭독했음을 언급한다. 이것은 면제년의 초막절 언약 갱신 의식을 염두에 둔 말이다(참고, 신 31:10~13). 백성들은 끝으로 규례에 따라 일주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고 여덟째 날 성회를 연다(참고, 레 23:36). 율법을 존중하는 일에 지도자와 백성들 모두가 뜻을 같이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임은 성전에서 제사장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문 앞 광장에서 백성들이 주도하여 율법 학자 에스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임이라는 것이다. 이 수문 앞 광장 사건 이후로 이스라엘 신앙생활의 축은 제사에서 율법으로 옮기게 된다. 귀환 공동체는 수문 앞 광장의 말씀 부흥을 통해 “토라 공동체”로서 기초를 다지게 된다. 예루살렘 성전이 제의의 중심인 것처럼 율법(토라)은 귀환민들의 삶과 정신에 있어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성전을 짓고 성벽을 완공한 백성은 이제 “자발적으로” 모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부탁한다.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자들은 모두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에스라가 큰 소리로 낭독해 주는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이때 에스라가 낭독해 준 말씀을 레위인들이 백성에게 잘 해석하여 다 깨닫게 해주었다. 백성과 지도자들이 말씀을 중심으로 한마음 한뜻 된 공동체,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가 아닌가!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백성들은 하나같이 울었다. 몰라서 불순종한 것이 그들의 신앙 양심을 찔렀고, 잊고 지냈던 것이 생각났으며, 지금 자신들이 선 자리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약속의 성취임을 깨닫고는 감격한 것이다. 이때 총독 느헤미야와 학사 에스라와 레위인들이 우는 백성을 만류한다. 이에 백성은 슬픔과 근심을 그치고 즐거이 먹고 마시고 나누었다. 말씀이 준 울음과 웃음이었고, 말씀이 살아나자, 백성도 살아난 것이다.
-백성들이 돌아간 후에 족장들과 제사장들, 레위인들은 좀 더 율법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 학사 에스라 주위에 모였다. 백성을 더 율법에 따라 충실하게 인도하고 책무를 신실하게 감당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말씀 앞에서 항상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는데 성실한 지도자로 사야 하겠다. 지도자에게도 지도자와 학습 공동체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나에게는 학사 에스라와 같은 지도자가 있을까? 나는 누구에게 에스라와 같은 지도자일 수 있을까?
-지도자들이 말씀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닫자, 그들은 곧바로 백성과 함께 초막절을 지킨다. 제2의 출애굽 백성인 그들은 첫 출애굽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지킨 것처럼 초막을 지었다. 여호수아 이래로 이렇게 간절하게 혹은 대대적으로 초막절을 지킨 적이 없을 정도로 율법의 요구에 충실했다. 더 잘 알게 된 만큼 더 잘 순종하였고, 순종이 있는 곳에 큰 기쁨도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였다. 성벽 공사를 끝낸 후 그들이 맨 먼저 한 일은 말씀을 듣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아무것도 그 결핍을 대신 메워 줄 수 없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폈을 때 백성들은 일제히 일어나 경의를 표하며 아멘으로 응답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으로, 이 말씀을 대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고 행할 것을 명령하실 때 잘 들을 준비 되어 있는가?
*에스라가 낭독한 말씀은 단지 읽기만 하는 말씀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레위인들이 말씀을 해석했다.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성도에게, 말씀이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다고 여기는 성도에게, 말씀을 해석하여 깨닫도록 드려 줄 수 있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씀을 이해하고 가까이하도록 돕는 것이 곧 수문 앞 광장에서 일어난 회개의 발판이었다.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전하고 나누며 말씀으로 교제할 때 이와 같은 역사가 일어난다.
*백성들은 말씀을 깨닫고 울며, 웃었고, 지도자들은 더 깊이 알고 싶어했다. 이것이 말씀이 역사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열매 아니겠나! 우리 공동체에 이와 같은 말씀 역사가 예배 시간마다, 말씀이 가르쳐지는 곳마다, 역사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8장은 진정한 부흥은 지도자들로부터 시작되는 원리를 보여준다. 늘 앞장서서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성도는 말씀으로 살아내는 본을 보며 순종의 걸음을 뒤따른다. 말씀의 본을 본 성도는 더욱 더 말씀에 대한 은혜를 갈망하고 스스로 자원하여 말씀을 붙잡으며 나아가려고 발버둥친다. 그 과정에서 말씀의 맛을 본 성도는 기쁨이 넘친다. 말씀에 순종하여 기쁨을 회복했을 때, 그 기쁨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영적 갱신을 일으키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내가 말씀으로 먼저 치열하게 살아내야 할 거룩한 의무를 성실히 감당하리라 다시 결심하는 아침이다.
*주님, 그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온전히 지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