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여호와의 구원 역사 [느 9:1-22]
 – 2025년 11월 29일
– 2025년 11월 29일 –
느 9:1-22 여호와의 구원 역사
    
초막절이 끝난 지 이틀 후에 백성들이 대대적으로 모여 성회를 갖는다. 모인 시간의 절반은 율법을 읽고, 절반은 엎드려 자복한다. 지금까지 율법을 깨닫도록 도움을 준 레위인들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 높여 여호와를 송축한 후,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회고한다. 이를 통해 백성들은 한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다른 한편으로 그 크신 은혜를 저버린 조상들과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한다.
    
    
    
1. 7월 24일의 금식 성회(1~5절)
초막절 집회가 끝난 직후 백성들은 곧바로 금식 성회를 개최한다(1절). 그들은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권면에 따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시간을 가진 후(8:9~11),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를 자복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다 같이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쓴다. 저자는 ‘이스라엘 자손(1절)’이라는 표현을 통해 귀환민들이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잇고 있음을 암시한다. ‘굵은 베 옷’은 회개의 표시이고,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는 행동’은 극도의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자신들과 조상들이 지은 죄와 허물을 스스로 고백한다. ‘절교하다(바달)’로 번역된 단어는 ‘구분하다, 분리하다, 잘라내다’라는 뜻이다. 본문의 ‘자신들의 죄와 조상들의 죄(2절)’는 이방 사람과 통혼하며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든 이방 사람과 분리하는 것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자의식과 관련된다(스 9:2). 율법의 제의 규정에 따르면, 거룩한 것은 부정한 요소와 접촉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귀환민들의 마음에는 이방인들과 그들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사마리아 사람들과 그 땅 사람들[암하아레츠])을 제의적으로 부정하다고 여겼다. 에스라-느헤미야에서는 이방인과의 분리를 신앙의 순수성과 정체성 확립의 차원에서 이해했다(참조, 스 9~10장; 느 13:1~3).
    
금식하며 죄를 자복하는 모습은 ‘대속죄일(7월 10일)’의 의식을 연상하게 한다(참조, 레 16:29~31; 23:26~32). 나팔절(7월 1일)과 초막절 의식(7월 15~23일)을 다룬 8장에서 대속죄일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당시는 대속죄일이 7월 10일에 고정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추측하게 한다. 또한 본문의 대속죄일(느헤미야 당시)이 정결례를 먼저 행하는 등의 실제적인 이유에 의해 2주 뒤인 7월 24일에 지켜졌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구약에는 이런 경우들이 종종 소개된다(예, 민 9:11; 대하 30:15). 하지만 본문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음을 강조하기에(1~2절의 주어는 ‘이스라엘 자손, 이스라엘의 씨’) 타이 행사는 대제사장 중심의 속죄 의식이 아닌 일반 백성 중심의 회개 운동으로 전개되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대제사장 중심의 대속죄일 대신 백성들의 역할을 부각하려고 일부러 대속죄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3~5절에서 백성들은 낮 4분의 1(약 세 시간) 동안 서서 율법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3a절). 세 시간 동안 서서 율법을 듣는 것은 “말씀에 대해 갈급함과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열정”을 보여준다. 이는 이 성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부흥의 자리였음을 의미한다.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죄를 자복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한다(3b절). 그때 여덟 명의 레위인은 단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4절), 그들은 ‘예수아, 바니, 갓미엘, 스바냐, 분니, 세레뱌, 바니, 그나니’이다.
    
    
    
2. 고백의 기도_이스라엘 역사 요약(5b~22절)
세 번째 율법 낭독은 레위인들의 고백의 기도(5b~37절)로 이어진다. 이것은 성격상 백성들을 대신해서 드리는 공적 기도인데,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하며 그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확인하는 고백의 기도” 성격을 지닌다. 내용은 1)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6절), 2) 역사를 회상하는 형식의 고백(6~31절), 3) 청원(32절), 4) 현재의 죄에 대한 고백(33~35절), 5) 애통(36~37절)이다.
    
여덟 명의 레위인들이 단에 올라서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동안(4절), 또 다른 여덟 명의 레위인들(예수아, 갓미엘, 바니, 하삽느야, 세레바, 호디야, 스바냐, 브다히야)은 하나님을 송축하며 기도를 인도한다(5a절). 그들은 백성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한다(5b절). 이어서 본격적인 레위인들의 기도가 시작된다.
    
레위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화로운(영광스러운) 이름에 대한 송축으로 시작한다(5c절). 성경에서 이름은 “존재 자체”를 나타낸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영광 가운데 임하신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송축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세상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기 때문이다(6절).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아타 후 야훼 레바데카, 6a절)”는 직역하면 “당신 그분은 홀로 여호와시라”이다. 이는 여호와만이 참 신이라는 유일신 신앙 고백이며(신 6:4), 여호와의 독특성과 초월성에 대한 표현이다(사 44:6, 8; 45:6, 21~22; 46:9). 하나님을 송축하는 대상에는 하늘의 천사들도 포함되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하늘과 땅과 바다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창조주)이기 때문이다(6b절).
    
레위인들의 기도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에 대한 회고로 이어진다(7절).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이후 전개될 이스라엘의 구원을 준비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이 충성됨(혹은 신실함)을 보셨다(8a절)’고 고백하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며(창 12:1~4; 히 11:8),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창 12:7, 8; 13:8) 모습을 통해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스라엘이 따라야 할 본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신다. 8b절은 땅에 대한 약속이 아브라함의 후손(그의 씨)에게 한 약속임을 강조한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언급하는 것은 귀환 공동체가 가나안 땅을 차지할 자격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을 입증하셨다. ‘주는 의로우심이로다(8c절)’는 아브라함의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이 동일하게 자신들에게 임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9~15절은 출애굽과 광야 여정 속에 나타난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출애굽 사건과 홍해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10~11절은 각각 애굽에서의 열 가지 재앙에 대한 사건과 홍해 사건을 요약한다. 12~21절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 모티브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출애굽 사건은 시내산 언약 체결과 율법 수여(13~14절)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는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삼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세우기 위함이다(출 19:5~6).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는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 백성의 표증으로 율법을 주셨다. 따라서 언약 체결과 율법 수여는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은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지침이다.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그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본문은 율법을 가리키는 다양한 용어(정직한 규례, 진정한 율법, 선한 율법과 계명)를 사용하여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3b절). 이 율법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다(14절). 15절은 광야 여정의 이야기로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음을 회고한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을 통해 물을 공급하셨다.
    
16~18절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결정적인 반역 사건인 정탐꾼 사건과 금송아지 사건을 다룬다. 저자가 시간상으로 후대의 사건인 정탐꾼 사건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이것이 땅 약속과 직접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열 명의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는 백성들 사이에 큰 동요를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반역으로 발전했다(17a절). 본문은 이런 의미가 담긴 “마라(패역하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런 행동은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한’ 모습으로 표현한다(16절). 하지만 이스라엘의 이런 반역에도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셨는데, 이는 그분의 성품 때문이었다(17b절).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신 분이다(출 34:6).” 이렇게 큰 은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반역은 계속된다. 또 하나의 반역 사건인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출 32장)은 창조주 하나님을 송아지 형상 안에 가두는 행위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범죄다(18b절).
    
19~22절은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의 반복적인 배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광야에 버리지 않으셨다(19절). 변함없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물을 공급하셨다(20절). “주의 선한 영을 주신” 사건은 하나님의 영이 회중에게 임하신 사건(민 11:16~30)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율법에 대한 무지가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나가지 않도록 특별한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광야 시절에 대한 회고는 40년 여정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로 끝맺는다(21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공급하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신 사건으로 입증된다(22a절). 이어서 하나님께서 요단 동편 아모리 족속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하게 하셨는데(22b절), 이는 임박한 가나안 땅 정복을 예고한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반역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이루신다.
    
    
    
나는?
-초막절 집회 후에 백성이 주도하여 금식성회를 연다.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권면에 따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시간을 보낸 후에 이제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를 자복한다. 백성(이스라엘 자손)은 다 같이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쓴다. 이 행사는 대제사장 중심의 속죄 의식이 아니라 일반 백성 중심의 회개 운동인 것이다. 모든 세워짐의 출발은 돌아옴이다. 그것도 지도자 중심의 이벤트가 아니라 성도의 자발적인 돌아옴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시작이다.
    
-백성은 낮 1/4 동안(3시간) 서서 율법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백성이 금식하며 낮 1/4일 동안 서서 율법을 듣는 것은 “말씀에 대해 갈급함과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열정”을 보여준다. 이 성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부흥의 자리였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온전히 들렸을 때 비로소 회개가 나오고, 회개가 있고 난 뒤에 정갈한 찬양과 기도가 나온다. 말씀이 이끄는 예배가 참 예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존귀하고 영화로운 이름의 여호와께서는 모든 천군의 경배를 받으셔야 마땅하다. 또한 아브람을 불러 택하시고 친히 가나안 땅과 씨를 약속하시고는 “말씀하신 대로” 그 언약을 친히 이루심으로서 자신의 의로움과 역사의 주인 되심을 보이셨다. 우리의 지나온 삶이 우리가 바라고 기대한 대로 전개되지 않았을지라도, 서둘러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아직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남았고, 이루실 약속도 남았기 때문이다.
    
-광야의 여정은 약속을 지키신 구원의 여정이었다. 부르짖는 백성의 소리에 응답하여 바로의 손아귀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으로써 온 땅에 여호와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셨다. 홍해의 난관도, 광야의 위험도 여호와 앞에서는 고분고분 길을 내었고, 물을 내었으며, 양식을 내었다. 또 하나님은 시내산과 모압 평지에서 친히 이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심으로써 스스로 약속에 묶이셨다. 광야 길을 안전하게 지나 약속한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고 맹세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서 하셔야 할 모든 일을 다 하셨다.
    
-광야의 여정은 백성들의 반역을 참아낸 사랑의 여정이었다. 배은망덕한 백성이 하나님을 지웠고 귀를 막았으며 마음을 닫았다. 반역했고 자기 하나님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랑밖에 베풀 것이 없는 분처럼 용서하시고 또 기다리면서 더디 깨닫고 믿는 백성에게 기회를 주셨다. 선한 영을 통해 가르치셨다. 광야 40년 내내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공급해 주셨고, 대적들의 침략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다. 이 은혜와 긍휼 때문에 광야 인생길을 지나왔다.
    
    
*백성들은 죄에 대한 회개의 표시로 굵은 베를 입고 머리에 흙먼지를 뒤집어썼다(1절).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나의 삶을 회개하고 표현하는 길이어야 하겠다.
    
*참된 회개는 죄를 끊는 결단과 행동이 따른다. 백성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슬퍼만 하지 않고 과감하게 이방인과 절교하는 결단을 내렸다. 말씀이 죄를 일깨울 때 기꺼이 반응하며 나아가야 하리라.
    
*하나님은 결코 지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백성을, 자기 우상을 만든 백성을 용서하시고 버리지 않으셨다.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요, 우상숭배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내 생각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무심히 여기지 말아야 하리라.
    
    
    
*주님, 자발적인 금식 기도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으려는 마음을 봅니다. 저의 일상에도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일에 자발적이고 진지하기를 유지하겠습니다.
*주님,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 안에 거하겠습니다. 딴 길로 가지 않겠습니다.

댓글 남기기

매일성경 묵상

느헤미야의 개혁 1 [느 13:1-14]

느 13:1-14 느헤미야의 개혁 1    본 장은 느헤미야의 추가적인 개혁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지금까지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성벽을 재건하고 공동체 건설에 헌신했다. 잠시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예루살렘 성 봉헌식 [느 12:27-47]

느 12:27-47 예루살렘 성 봉헌식    느헤미야가 에스라와 함께 성벽을 봉헌한다. 본문은 성벽 봉헌을 성전 봉헌 버금가는 의식으로 소개한다. 이 일은 고레스 칙령이 명령한 일(하나님의 집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서약과 다짐 [느 10:1-39]

느 10:1-39 서약과 다짐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레위인들의 기도에 감화를 받은 귀환자들은 언약에 인봉을 한다. 10장은 언약에 인친 자들의 명단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명단은 유다 총독 느헤미야의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여호와의 구원 역사 [느 9:1-22]

느 9:1-22 여호와의 구원 역사    초막절이 끝난 지 이틀 후에 백성들이 대대적으로 모여 성회를 갖는다. 모인 시간의 절반은 율법을 읽고, 절반은 엎드려 자복한다. 지금까지 율법을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