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1:1-36 예루살렘이나 어느 곳이나 하나님 나라
예루살렘과 주변 성읍에 정착한 사람들의 명단을 소개한다. 따라서 문맥상 7장(귀환자들의 명단)의 관심사와 연결된다. 거주자들의 이름은 백성의 지도자들로 시작해서, 제사장, 레위인, 기타 봉사자(성 문지기, 느다 임 사람, 노래하는 자들)의 순으로 소개된다. 마지막 단락은 마을과 주변 성읍들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목록을 기술하는데, 이는 문맥상 예루살렘 밖을 재정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1. 서론(1~2절)
11~12장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 이후 내부 정비 상황을 보여준다. 11장은 예루살렘과 주변 성읍에 정착한 사람들의 목록을 제시한다. 7장 4절에서 성벽 재건 직후 예루살렘 성읍의 인구는 희소했음을 밝혔다. 그 이유는 각자 자기들 성읍에 살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7:6, 73). 이제 공사가 마무리된 후 대적들의 위협으로부터 성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거주할 사람이 더 필요했다. 이 때문에 귀환 공동체는 이 문제에 있어서 원칙을 정하게 되었는데,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지도자들은 될 수 있으면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었다(1a절). 이렇게 하는 것은 귀환 공동체를 예루살렘 중심의 공동체로 세우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남은 백성들 가운데 제비를 뽑아 10분 1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한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고 축복한다(2절). 따라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은 지도자들과 백성들 가운데 10분의 1인데, 백성들 가운데 10분의 1은 자원하는 사람들과 제비 뽑아 결정된 사람들로 구성된다. 백성들은 좀 더 안전한 곳에서 정착하기를 원했고, 지금까지 살아온 지역과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예루살렘 거주를 자원하는 것은 결단과 헌신의 행동이었고, 그래서 공동체가 이들을 위해 복을 빌었다.
2. 예루살렘 거주자 명단(3~24절)
이 단락은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의 명단이다. 소개되는 순서는 백성의 지도자들(3~9절) – 제사장들(10~14절) – 레위인들(15~18절) – 기타 봉사자들(19~24절) 순이다. 정착한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성읍에 거주하고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경우였다. 그들의 이주는 매우 헌신적인 행동이었다.
이주 목록은 먼저 유다 자손 가운데 베레스 자손 아다야가 소개된다. 아다야는 웃시야-스가랴-아마랴-스바댜=마할랄렐 계보로 연결된다(4b절). 이어서 소개되는 마아세야는 바룩-골호세-하사야-아다야-요야립-스가랴-실로로 연결된다(5절). 예루살렘에 정착한 베레스의 자손은 468명으로 ‘그들은 다 용사였다(6절)’라고 소개된다.
유다 자손 지도자들에 이어 베냐민 지파 지도자들의 명단이 소개된다(7~9절). 베냐민 자손 중에는 살루 집안, 갑배와 살래 집안으로 전체 928명이다. 그 가운데 시그리의 아들 요엘은 감독(파키드, 공동체의 행정 책임자; 9, 14, 22, 42절)으로 소개된다.
제사장들 가운데는 이다야, 야긴, 스라야 집안에 822명(12절), 아다야 집안에서 242명, 그리고 아맛새 집안에서 모두 128명으로 전체 1,192명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를 ‘큰 용사’들로 소개되는데, ‘큰 용사(깁보레 하일)’는 구약에서 자주 ‘용맹스러운 군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표현은 예루살렘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제사장들도 성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사장의 자손들로 예루살렘에 정착한 것이다.
레위 사람 중에는 핫숩의 아들 스마야, 삽브대와 요사밧, 아삽의 증손 맛다냐, 박부갸, 압다가 소개된다(15~17절). 이들 중 삽브대와 요사밧은 ‘성전 바깥 일(성전 물품 구입, 조달, 성전 유지와 보수)’을 감당했고, 아삽의 증손 맛디냐는 성전에서 기도할 때 ‘감사하는 말씀(찬양 인도나 찬양대를 지휘하는 일)’을 인도하는 책임을 맡았다(17절).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 전체는 총 284명이다(18절).
끝으로 기타 봉사자들이 소개된다(19~24절). 그들은 성 문지기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 172명이다. ‘성 문지기들’이 레위인과 별도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아직은 레위인으로 인정되지 않은 듯하다(역대상 9장은 성 문지기들도 레위인으로 인정한다). 20절은 제사장과 레위인들 가운데 일부가 예루살렘 성읍 근처 자신들의 기업에 살았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은 오벨(예루살렘 성전 남쪽, 다윗성의 북쪽 끝 언덕 지역)에 거주하였고, 시하와 기스바는 그들의 책임자가 된다(21절).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가운데 미가의 가문 웃시는 레위 사람의 감독으로 성전의 일을 맡아 다스렸다(22절). 본문은 그들에게 (페르시아) 왕의 명령이 주어졌음을 언급한다(23절). 이는 노래하는 자들이 페르시아 왕의 임명을 받았으며, 제국이 피정복민의 제의를 통해 제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에 정착한 자들의 목록(3~24절)은 역대상 9장에 언급된 귀환자들의 목록(2~27절)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정착자 총수는 역대기 기록이 조금 증가한 수치로 기록했고, 소개하는 순서는 백성의 지도자-제사장-레위인-기타 봉사자들로 일치한다(참고, 대상 9:2~3, 10~13, 13~16, 17~27). 이 기록들이 공통의 전승에 의존하여 기록되었거나, 역대기 저자가 느헤미야서 본문을 기초로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3. 예루살렘 밖 지역 재정비(25~36절)
이 단락은 예루살렘 밖의 지역을 재정비하는 내용을 이룬다. 이 단락에 등장하는 지명은 귀환민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정착했던 성읍들을 가리킨다. 이 성읍들(유다 성읍[25~30절], 베냐민의 성읍[31~36절])은 느헤미야 당시 ‘유다도’의 영토를 잘 보여준다.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활동했을 당시, 유다도(예후드)는 페르시아의 한 행정구역(메디나)으로, 북쪽으로는 사마리아, 남쪽으로는 에돔과 접경을 이룬다. 하지만 ‘오노(35절’처럼 유다도 범위 밖의 성읍들도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얼마간 이주의 자유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제 귀환민들은 옛적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은 것처럼(참조, 수 13~19장),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유업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지도자 계층은 자원하여, 백성들은 부르심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귀환하여 예루살렘과 주변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 명단이 등장한다. 지도자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며 환경이 열악한 예루살렘에 거한다. 예루살렘 바깥의 어느 마을도 국가정책을 몰라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고, 유다 전체를 여호와 신앙으로 하나 되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종교적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예루살렘은 그리 살기 좋은 성은 아니었다. 그래서 1/10만 예루살렘에 살게 하였고 그것도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 나는 원치 않지만, 하나님이 원하셔서 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 지도자는 솔선수범해야 하고 성도는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복되고 형통한 길이다.
-자원하는 사람은 예루살렘 거할 수 있었다. 선택받아 순종하는 것보다 자원하여 순종하는 것이 더 귀하다. 대적들의 위협에 늘 노출되는데도 하나님의 선택에 순종한 사람들의 명단이 나열된다. 유다 자손들, 베냐민 자손들, 제사장들, 레위인들, 문지기들, 노래하는 자들이 차례로 열거된다. 영적으로 이 순종의 명단에 나의 이름도 기꺼이 기록되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자원해야 하겠다.
-예루살렘 성읍 안 만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성 밖에 정착한 사람들의 명단도 함께 언급된다. 그곳 역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어야 마땅한 공간이다. 부르신 곳이면 어디든지, 언제든 나서는 것이 신앙이다. 누구든 자신의 수준과 처지에 맞도록 반응하며 믿음의 걸음을 걸을 수 있다. 어디에서든지….
*성벽이 완공된 것이 끝이 아니다. 예루살렘이 도시로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인구가 턱없이 모자랐다. 여전히 백성들은 예루살렘보다 주변 지역에 안정되게 거하기를 원했다. 이에 지도자들은 먼저 백성 중에 1/10을,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했다. 한편, 제비 뽑힌 이들은 억지로 이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원하여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기록한다.
*1절은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으로 부른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은 개인적인 안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공동체적인 결정에 헌신하는 일이었다.
*본문은 예루살렘에 정착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자세하게 기록한다. 이는 예루살렘이 특정한 계층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함께 세우고 지켜야 할 공동체였음을 보여준다. 믿음의 공동체는 한두 사람의 헌신만으로 서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구성원의 헌신과 참여 위에 세워진다.
*본문에서 특이한 것은 일부 제사장과 일반 백성들에게 “용사”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세우는 일은 예배와 기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또한 본문은 예루살렘에 정착한 사람들의 명단으로 시작했으나, 마지막 부분에서는 유다와 베냐민 전역에 흩어져 사는 백성들의 마을까지 상세하게 언급한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은 가나안 땅 전체에 다시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방 땅의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위에서 언약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온 땅이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야 할 거룩한 땅이다. 하나님 백성은 그 어디서든지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도 세상 속에서 흩어진 자리마다 하나님 나라를 선명하게 드러내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이나 다른 지역이나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
*주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곳의 삶 속에서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더욱 말씀으로 살아내겠습니다. 제가 걷는 모든 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