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2:1-26 제사장과 레위인 명단_세상은 몰라봐도 하나님은 기억하실 그 이름들
본문은 1차 귀환 때부터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활동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목록으로 각각의 가문과 이름을 소개한다. 1~9절은 대제사장 예수아 시대의 제사장과 레위인의 이름이고, 12~26절은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 이후 시대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이름이다. 22~23절은 이들 목록의 출처를 밝힌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귀환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스룹바벨부터 느헤미야 시대까지 세대 간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1. 예수아 시대 귀환한 제사장 가문과 레위인 사람들 명단(1~9절)
느헤미야 시대의 귀환 공동체에 중요한 세 가지 일인 성벽 재건, 공동체 갱신, 성읍 정비가 마무리되었다. 귀환 공동체는 비로소 회복된 이스라엘로서 위상을 갖추게 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성벽 봉헌식이다. 느헤미야는 성벽 봉헌에 앞서 긴 목록을 제시하는데, 회복된 공동체의 종교 지도자들 명단이다. 전구에 흩어져 살고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명단으로 스룹바벨 때 시작한 1차 귀환부터 느헤미야 시대의 3차 귀환 때 귀환하여 활동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다.
먼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 가문들의 명단이 소개된다(1~7절). 이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귀국했던 사람들로 소개된다(1a절). 예수아는 1차 귀환 이후의 대제사장으로 학개, 스가랴와 함께 활동하였다(학 1:1; 슥 3:1). 따라서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느헤미야 당시로부터 오래전에 살았던 인물들이다. 예수아 시대 활동한 제사장들은 스라야(1b절)로 시작하여, 여디야(7a절)까지 총 22명이다. 그들은 ‘대제사장 예수아 때 활동했던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로 언급되며 끝난다(7b절).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의 의미는 제사장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1차 귀환 때 돌아온 제사장들의 명단을 보도하는 에스라 2:36~39은 가문별로 제사장들의 숫자를 제시한다(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 973명, 임멜 자손 1,052명, 바스홀 자손 1,247명, 하림 자손 1,017명). 이와 비교해 볼 때, 본문은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만 소개한다. 역대기에서 다윗은 제사장들을 24 반열로 조직하여 성전 일에 봉사하도록 했었다(참조, 대상24:7~19). 본문의 제사장 명단은 22명으로 두 명의 차이가 나는데, 이것은 아마도 필사하는 과정에서 빠진 듯하다.
제사장들의 명단에 이어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레위인들 8명(예수아, 빈누이, 갓미엘, 세레뱌, 유다, 맛다냐, 의 이름이 소개된다(8~9절). 첫 번째 귀환 때, 예수아와 갓미엘이 레위인 74명을 이끌고 귀환했다(에스라 2:40). 하지만 본문은 예수아와 갓미엘 외에 추가로 여섯 명을 언급한다. 이들 가운데 맛다냐는 찬송하는 일을 맡았다(8b절).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 편에 섰다’고 하는데(9절), 이는 박부갸와 운노가 맛다냐를 도와 성전 음악을 담당했음을 의미한다. 맛다냐와 박부갸는 아삽의 후손으로 느헤미야 시대에 예배를 인도했던 사람들로 소개된다(11:17; 12:25).
2. 예수아부터 얏두아까지 대제사장의 명단(10~11절).
대제사장의 계보는 귀환 1세대인 예수아부터 시작하여 요야김-엘리아십-유야다-얏두아로 이어진다(10~11절). 예수아는 귀환 공동체 첫 번째 대제사장이고 엘리아십은 느헤미야 시대 대제사장이다(느 3:1). 따라서 요야김은 1차와 3차 귀환 사이, 예컨대 에스라가 귀환할 당시의 대제사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1절에서 요야다에 이어 등장하는 요나단은 주전 410년경 대제사장으로 소개된다. 맨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얏두아는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할 당시(주전 331년) 대제사장으로 소개된다. 이는 본문의 계보 중 일부가 느헤미야 시대 이후 대제사장들의 이름으로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3. 요야김 시대와 그 이후 제사장과 레위인의 족장들(12~26절)
본문은 요야김 시대 제사장의 이름들이다(12~21절). 이들은 귀환 2세대에 활동했던 ‘제사장 족속의 족장들’이다. ‘족장(로쉬)’으로 번역된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지파나 족속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족속(아봇)’은 ‘가문’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가문들의 이름은 언약에 인봉한 제사장들의 목록을 제시하는 10:2~8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본문에서 여섯 명의 이름을 새롭게 추가하여 확대한다.
22~23절은 정보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자 목록들의 출처를 밝힌다. 이 목록은 대제사장 엘리아십, 요야다, 요하난, 얏두아 때 기록된 페르시아의 공식 문서다(22b절의 ‘책’, 23b절의 ‘역대지략’). 특히 요하난은 주전 410년경(다리우스 2세) 대제사장의 이름으로 언급된다. 이때 활동하던 레위인들의 이름은 제사장들의 이름과 함께 페르시아 제국의 왕실 일지에 기록되었다. ‘레위 자손의 자손들’은 엘리아십의 아들(후손)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23절).
레위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임무를 맡았다. 첫째, 예배 도중 찬양과 감사를 인도하는 것으로 이 일을 책임지는 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갓미엘의 아들)와 예수아다(24a절).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만들어놓은 규정대로 순서를 따라 찬양 사역을 감당하였다(24b절).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는 예언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데, 특히 모세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했다. 본문은 의도적으로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개하면서 모세와 같은 인물로 소개한다. 역대기에 의하면 다윗은 성전 찬양대를 조직하고, 규례를 만든 인물이다(대상 25장). 모세처럼 이스라엘의 예배를 세운 인물이다(모세의 성막 예배 – 다윗의 성전 예배). 본문은 포로기 이후 레위인들이 다윗이 만든 규례대로 성전 예배를 드렸음을 언급함으로써 예배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강조한다. 둘째, 성전 창고를 지키는 일을 감당했다(25b절). 책임자들은 맛다냐를 비롯한 여섯 명이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제사장들과 함께 레위인들의 역할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예루살렘 성전 예배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레위인들의 헌신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참고할 것은 당시 레위인들의 삶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26절은 끝으로 이상의 인물들이 모두 대제사장 요야김 시대, 그리고 느헤미야와 에스라 시대에 활동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임을 밝힌다.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 총독 느헤미야,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를 언급하며 대제사장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언급하는 1절과 수미쌍관(인클루지오) 구조를 이루며 전체 단락을 마무리한다. 본문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목록은 느헤미야 7장의 목록에 비해 월등히 많다. 이것은 이어지는 성벽 봉헌식을 준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성벽 봉헌식에 최대한 많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관심을 두고 참여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또한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함께 언급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헌신한 사람들의 후손이 성벽 재건에도 참여했음을 알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이와 같은 논조는 귀환민들의 세대 간 연속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찬양이 지속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나는?
-성벽 봉헌식 전에 조상들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귀환 1세대인 스룹바벨 시대의 제사장과 레위인들(1~9절), 귀환 2세대의 대제사장 요야김 시대의 제사장들(12~21절),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부터 낙성식 때까지의 레위 족장의 명단(22~26절)이 이어진다.
-더온누리공동체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신앙 선배들의 기도와 헌신과 열정이 오늘 우리 공동체를 이루었음을 살피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이루신 일들을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신앙은 전수하고 이어받아 세워가는 것이다.
-레위인들의 역할이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예배 도중에 찬양과 감사를 인도하는 일이다. 다윗이 만든 규정대로 순서를 따라 찬양했다. 특히 다윗을 거론함으로써, 이 회복 공동체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는 하나님 나라로서 그 정통성과 합법성을 갖춘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성전 창고를 지키는 일이다. 활발한 예루살렘 예배 뒤에는 레위인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었다. 앞에서 찬양하든, 뒤에서 창고를 지키든 오늘 우리 헌신을 통해 예배는 진행되고 공동체도 유지된다.
-본문은 유독 긴 제사장들과 레위인 목록을 소개한다. 이것은 이어진 성벽 봉헌식에 많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관심을 두고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을 그 후손들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이것도 역시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헌신한 사람들의 후손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대를 이은 충성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의 나라를 세우는 신앙의 사명이 잘 전수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배하는 백성과 함께하신다. 모든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통해 하나님이 제사장 가문을 잘 보존해 주셨고, 백성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우셨음을 추측하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교제하고 있는가? 우리 가문의 신앙 전수는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신앙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가?
*본문에 기록된 이름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이다. 무엇보다 귀환 공동체의 녹록치 않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를 끈질기게 전수한 이들의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예배는 특정 세대만의 성취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회복되고 전수되어 왔음을 이들의 명단이 증거한다. 그들의 눈물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느헤미야 시대의 하나님의 역사가 완성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즉, 과거의 헌신과 충성이 이어져 현재의 하나님의 역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성벽이 아무리 견고한들 그 안에 예배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성벽이 없더라도 예배의 자리를 지켜온 이들이 있었기에, 완성된 성벽 안에서 영광스러운 예배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몰라봐도 하나님은 기억하실 그 이름들을 느헤미야는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어느 날 갑자기 성장한 것이 아니다. 앞서간 신앙의 조상들이 헌신과 충성을 다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지금 우리 세대의 봉사와 헌신도 훗날 신앙의 계대를 세워가도록 사용하실 것을 믿고 충성을 다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주께 헌신하며 오늘을 채워 가야 할 것이다.
*역사는 승계되고 진보된다. 느헤미야는 3차 귀환을 이끈 지도자였지만, 1차 귀환단을 이끌고 돌아온 스룹바벨과 예수아 등 앞 세대 지도자들을 언급하며 그들이 이스라엘 역사에 차지하는 무게감을 비중있게 기록으로 남겼다. 지도자가 바뀌면 전 지도자들의 공과 업적을 폄훼하거나 축소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인 세상과 정치계에 울리는 경종처럼 들린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에게 소망이 없다.”,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 것 같지만, 역사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교훈을 외면하면,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그날”이 오늘 1주년(2024년 12월 3일)이 된다. 감사하게도 우리 민족은 내란과 쿠데타의 역사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은 거리로 달려나가 뻔뻔스럽게 역사를 무시한 그들을 그들만의 권좌에서 끌어 내렸다. 이 의미있는 날에 역사를 잊지 않은 느헤미야의 모습을 묵상하는 것도 참 특별하다. 우리 민족의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가 역행이 하니라,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순행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아침이다. 하지만 여전히 잔재하고 있는 내란에 부역했던 정치인들과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철저하게 대가를 치루게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리라. 하나님의 공의가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리라.
*이 시기에 개인적으로도 삶의 중요한 포인트를 지났다. 더욱 겸손하게 더욱 성실하게 다시 맡겨진 사명의 자리를 감사함으로 감당하리라. 오늘이 담목 3일차의 심정과 각오로 나아가리라.
*주님, 앞선 믿음의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길을 이어받아 걷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저도 훗날 다음 세대에게 건강한 하나님 나라 믿음을 전수하겠습니다.
*주님, 역사의 주관자 되셔서 오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됨을 빚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이 훗날 소환되어도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