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8:1-8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드리는 감사의 노래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시다. 그 앞에 어떤 신이든 권세자든 용납되거나 하나님의 찬양을 가로챌 수 없다.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을 받아, 그에게 감사 찬양을 드린다. 하나님의 응답은 단순히 시인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의 왕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이 세상 모두를 살피고 아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보면 시편 138편은 시편 제5권에서 처음 등장하는 “다윗의 시”이다. 그리고 이 시편을 시작으로 145편까지 ‘다윗의 시’ 단락이 이어진다. 본 시는 시인이 그의 간구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의 개인 감사시다. 본 시의 시대 배경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은 없다. 다만 시인이 성소를 향해 예배했다(2절)는 말을 통해 그가 현재 하나님의 성소에서 먼 곳에 있거나 갈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1. 시인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그 이유(1~3절)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깊은 감사 마음과 표현이 ‘감사하다(2회), 찬송하다. 예배하다’라는 동사를 통해 드러난다. 시인의 감사는 첫째, “온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다. 이 고백은 신명기 6:5의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직역하면 ‘온 마음으로, 온 뜻으로, 온 힘으로)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마음과 최선의 태도를 보여준다.
둘째, 감사와 찬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신들 앞에서(1절)’의 ‘신들’은 우상, 천사, 인간 왕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문맥상 우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들이 누구든지 간에 시인의 찬양과 기도를 받을 대상에서 제외된다.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는 표현에서 그의 시선이 하나님께만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시인의 감사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로 연결된다. 시인은 성전을 향하여 예배한다고 말하는데(2절), ‘예배하다’는 원래 ‘절하다’의 뜻으로 ‘경배하다’의 의미가 있다. ‘성전(헤칼)’이라는 단어는 왕이 사는 궁전과 신이 사는 궁전 둘 다에 사용된다. 시인이 이 성전을 향했다(2절)는 표현은 지성소를 향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시 28:2; 134:2),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방향을 향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욘 2:4; 단 6:10). 1절의 ‘전심으로 당신께’, ‘신들 앞에서 당신께’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2절의 ‘당신의 성전을 향하여’도 시인이 어디에 있든지 그가 경배하는 대상이 하나님뿐이며, 그가 하나님께만 주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넷째, 감사의 근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있다. ‘인자하심(헤세드)’은 언약을 기초로 한 하나님의 인애와 신실함을 나타낸다. ‘성실하심(에매트)’은 ‘꾸준함, 성실함, 진실, 진리’ 등을 뜻하여 하나님의 변함없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응답하는 방법, 과정, 결과에는 이와 같은 속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결과적으로, 그의 이름에는 그가 하신 일과 그의 성품이 각인되어 있다. 시인은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이름을 상기하며 그에게 감사한다.
이어지는 2절 하반절부터 3절은 시인에 왜 하나님께 감사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이유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다(2절)’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름의 우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이 그의 이름 자체에 나타나는 것보다 그의 말씀(또는 약속)에 더 드러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말씀을 모든 것보다 높게 하셨다(NAB, NIV, NRS, ESV, TNK)’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 번역은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의 위대함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둘째 이유는 시인이 간구한 날에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으며, 구체적으로는 시인의 영혼을 강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3절). ‘강하게 하셨다’는 말은 그를 북돋아 주고 살아나게 하셨음(7절)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를 부르는 자의 소리를 듣고 그에 마땅한 응답을 해줄 의지와 능력을 지니셨다. 시인처럼 하나님께 간구하여 응답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총 150편의 시편 중에는 본 시와 같은 감사의 기도(시 18, 32, 34, 92, 118, 138편)보다는 탄식과 탄원의 시(시 3~7, 12~13, 56~57, 74, 78~80, 102편 등)가 더 많이 등장한다(시편의 삼 분의 일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기쁨보다는 고난과 어려움이 더 자주 찾아오는 인생의 실제를 보여준다.
시인은 여러 위기와 난관을 만나며, 그때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찾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였다. 그의 기도는 당시의 위기로 인한 탄식과 괴로움을 쏟아내는 간구의 내용으로 구성되지만, 기도의 마지막은 대부분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는 고백, 찬양, 감사 등으로 전환되며 마무리된다(시 3, 13, 55, 79편 등).
2. 세상의 왕들이 전해 들은 하나님의 영광(4~6절)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시인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왕과 ‘신들’을 포함하여 온 세상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이다(시 22:27~29). 시인이 하나님께 감사할 주체로 ‘모든 왕’을 언급하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나라의 우두머리로서 백성을 다스리며, 자기가 섬기는 신을 최고의 신으로 생각한 점이 잘못된 것임을 암시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참된 왕이며 그들의 경배를 받아야 할 대상임을 알아야 한다. 왕이든 신이든 어느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1절).
그들이 핑계 댈 수 없는 이유는 그의 말씀 자체나, 약속, 더 나아가 행하신 일을 들었기 때문이다. 4절의 ‘주의 입의 말씀’은 그들이 들은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말씀임을 확증한다. 이 말씀은 시인이 경험한 2절의 ‘주의 말씀’과 연결되며, 5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도(길)’와 ‘여호와의 영광’과도 연결된다. 세상의 왕들도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과 붙드심(3절)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2절)이 어떻게 그의 하시는 일에 드러나는지 실제 자신들이 겪어보고 알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 영광의 위대함이 나타나므로 이들의 감사 노래는 시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만 집중될 것이다.
이 하나님은 높이 하늘에 계시지만 낮은 자들을 살피신다. 시편 113:4~9은 이와 관련한 자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하나님은 땅보다 하늘보다 높으신 분이나, 스스로 자기 몸을 굽혀 세상의 낮은 자들(가난한 자, 궁핍한 자, 임신하지 못한 여자), 즉 무엇엔가 결핍되고 남의 도움이 필요한 자를 살피신다. 그의 살피시는 이유는 그들의 결핍과 부족을 알아내 그들이 바라는 것 이상으로 채워주시기 위함이다.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을 이토록 아끼시고 사랑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살피심은 낮은 자들에게만 주목되는가? 그렇지 않다. 6절에서 하나님은 멀리 하늘에서도 교만한 자를 아신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낮은 자의 모든 상황을 아시듯, 교만한 자의 마음과 악한 말과 행동을 속속들이 인지하고 계심을 뜻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악행을 심판하신다(7절).
3. 시인과 함께하여 보호하시는 하나님(7~8절)
시인은 현재와 미래에도 하나님이 돌보실 것을 확신한다. 하늘의 하나님이 세상에서 겸손하거나 교만한 자 모두를 살피시므로 원수들로 인해 곤경에 처했더라도 하나님만 신뢰하여 구원을 다시 경험할 것을 확신한다.
시인의 영혼을 북돋아 주신 하나님(3절)은 그를 소생시키시고, 친히 오른손으로 시인을 구원하실 것이다(7절). 그러나 교만한 원수들에게는 그의 손을 뻗어 분노를 막으실 것이다. ‘주의 손을 펴서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실 것이다’를 직역하면, ‘내 원수들의 분노 위에 당신은 당신의 손을 뻗을 것이며’로서 하나님이 원수들의 분노가 표출되는 악행을 친히 심판하실 것을 나타낸다. 이 손은 그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구원과 보호가 되지만, 그를 신뢰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은 간구하는 시인을 위해 보상해 줄 것이다(8절). ‘보상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끝내다, 종결하다, 보복하다, 보답하다’의 뜻으로서, 하나님이 시인을 위해 원수들에게 보복해 주실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2, 8절)을 떠올리며, 인자하심의 영원함을 찬양한다(시 136:1).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만든 피조물을 버리지 않고 인자와 성실로(2절) 시인에게 응답하셨듯이, 앞으로도 누구든 하나님께 간구할 때, 그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새로운 이유가 담긴 감사의 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시편 138편은 응답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진실하셔서 곤란 중에 자기 백성이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신다. 지쳐 쓰러진 우리에게 힘을 한껏 북돋아 주신다. 그리하여 친히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말씀을 다른 모든 것 위에 높이 올리셨다. 말씀하신 대로 응답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살아계시되 자기 백성과 사랑과 신실함으로 관계하시며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입증한다. 역사 속에서 자신의 성품을 친히 입증하시는 신을 본 적 있는가?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열방의 왕들이 인정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하신 일을 본 주변 왕들로부터 감사와 찬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감히 낮고 천한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분이지만, 이 땅 위의 낮은 자를 친히 굽어보시고 오만한 자의 마음도 다 알아보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세상 앞에서 별 볼 일 없는 작은 나라였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자기 영광을 드러내시고, 오만하게 헛된 신을 의지한 이방 나라를 치셨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로 살 때, 세상 앞에서 주님이 높아질 것이고, 주님도 우리를 높여 주실 것이며, 거기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것이다.
-시인의 삶은 역사 속에서 일하셨던 그 하나님이 역사하신 삶이었다. 그분이 시인을 구원하셨고, 힘을 주셨고, 시인의 원수들의 분노를 잠재워주셨다. 원수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그런 하나님이시니 시인은 극심한 고난 중에 있었지만, 하나님께 부디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책 속의 하나님, 역사의 하나님이 오늘 나의 하나님으로 경험될 때, 진정으로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 아니겠는가?
*시인은 응답하시고 힘을 주시는 인자하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의 찬양을 드린다(1~3절). 최근 기도드린 것 가운데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 있는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감사의 이유를 생각해 내어 ‘전심으로’ 찬양하며 살아낼 때 그 감격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주의 말씀과 주의 행사를 듣고 본 이스라엘 주변 왕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4~5절). 말씀으로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와 공동체의 삶을 통해 드러나신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할 수 있을까? 잠잠히 묵상하고 감사하는 하루이기를 바란다.
*시인은 극심한 고난 중에 하나님께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부르짖는다(8절). 연거푸 당하는 고난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것조차 의심할 만큼 힘겨워하는 지체들은 없는지 더욱 돌아볼 일이다. 그가 겪는 고난이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은혜의 장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할 때, 반드시 응답하시리라.
*주님, 깊은 고난 중에서도 언제나 주님의 신실하신 손을 의지하도록, 그 능력의 손을 뻗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