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3:1-11 날마다 주의 인자한 말씀으로
시편 143편은 제5권의 “다윗의 시” 단락(138~145편)에서 여섯 번째 등장하는 시로, 탄식시다. 시인이 탄식하는 원인은 대부분의 시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수의 핍박(3, 9, 12절)이며, 그 상황 또한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시대적 배경이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특정할 수 없다.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에게 진실과 공의의 응답을 주신다. 시인은 이 사실을 의지하여 하나님이 그를 원수들에게서 건져주시기를 간청한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만이 아니라 그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가르침과 인도함도 함께 요청한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 종의 자세다.
1. 하나님의 응답을 간구하다(1~2절)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신실하심(진실)과 불의 없는 공정함(정의)을 근거로 응답을 요청한다. 시인이 자신의 무고함이나 공로 혹은 원수의 악행에 대한 앙갚음에 호소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실과 정의를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여 언약 백성인 시인의 간구에 속히 반응하시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며, 하나님이 심판으로 자신에게 오시지 않기를 간청한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부른 것은 시인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드러내며, 시인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또 종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에 순종하며, 온전히 헌신하기로 작정했음을 암시한다. 또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보살핌이나 공급이나 간섭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아달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종들이 상전의 손을 바라보며 여종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듯, 시인의 눈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며 그의 은혜를 기다린다(시 123:2).
하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시므로, 그의 눈에 의로운 인생은 하나도 없다. 시편 14편과 53편에도 하나님이 하늘에서 살펴보시니 사람들이 다 타락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함으로써 이를 확증한다(14:1~3; 53:1~3). 시인은 그가 하나님 눈앞에 의롭고 진실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안다. 죄인으로서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 진실과 정의를 요청할 수 없지만, 인생이 다 보잘것없는 죄인임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시인의 간구를 들어 주시길 바란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전적인 은혜다.
2. 원수로 인한 탄식과 하나님이 하신 일(3~10절)
3~4절은 시인이 주의 긍휼을 구하며 간구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원수들의 극심한 핍박 때문임을 밝힌다. 142편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기술한 바 있다(시 142:3). 시인의 원수들(3, 9, 12절)은 시인의 영혼을 뒤쫓았고(‘핍박하며’, 3절; 시 142:6), 그의 생명을 땅에 눌러 부숴버렸다. 시인은 오래전에 죽은 자처럼 어두운 곳에 방치되어 있다.
이런 비유적 표현들은 원수의 끈질기고 거센 핍박과 이에 따라 시인이 극한의 고통과 절망의 상태에 있음을 생생하게 나타낸다. 그의 육체와 함께 영도 속에서 쇠약해지며(시 142:3), 깊은 내면에서 마음마저 까무러칠 만큼 비참하다.
5~6절은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는 현실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옛적에 행하신 수많은 일들을 회상하며, 암흑(3, 4절)에서 일어나 빛(6절)을 향해 나간다.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일은 시편 105, 106, 135, 136편에서처럼 하나님의 창조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과 구원을 가리킨다. 이를 회고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솟아난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펼치고 기도한다. 마치 마른 땅(직역하면 ‘피곤한 땅’)이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길 기다리듯, 기진한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펼치고 기도한다.
7~10절은 하나님의 응답과 가르침과 인도를 구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은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갈망한다. 그는 오랫동안 기도해 왔다. 이제는 하나님이 응답을 서두르셔야 한다. 시인의 영이 피곤하다는 말은 그의 영이 ‘다했다, 기진했다’라는 의미로, 자신은 더 이상 손쓸 것이 없음을 표하며, 하나님께 긴박한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다면, 시인은 무덤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진술한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는 모습’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 관한 관심과 호의를 접고 반응하지 않음을 나타낸다(시 13:1; 30:7; 사 64:7; 미 3:4). ‘무덤(구덩이)에 내려간다’라는 말은 죽어 스올로 내려감을 뜻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물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스올 구덩이로 내려간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하나님과 시인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이런 단절된 관계는 시인에게 죽음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시인은 아침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인자한 말씀’, 8절)을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걸을 수 있도록 길을 알려달라고 간청한다(8절).
지금은 죽음과 같은 밤이므로 밝아오는 아침을 기다리며, 하나님이 그의 얼굴을 자신에게 향하여 비추시어(민 6:25~26) 조속한 응답의 은혜를 내려주시길 고대한다. 이 기다림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가르침에 대한 갈망도 함께 들어 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실 때라도, 시인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자하심과 은혜를 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시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데, 그 힘은 온전한 신뢰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얼굴을 숨겼지만, 시인은 자기 영혼을 주께 올려 드린다(8절, 드림이니이다). ‘영혼을 올린다’는 말은 8절 전반부의 ‘의뢰하다’와 같은 의미다.
9절에 와서야 시인은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라고 직접 구조를 요청한다. 시의 나머지에서 자주 나오는 ‘기도에 응답하소서(1, 7, 8절)’나 비유적이고 간접적인 간구(11절)도 결국은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를 대신하는 간구다. 이 간구에 이어 나오는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에게 숨었다는 뜻이다. 10절에서는 8절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를 구한다. 절망의 순간에도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그분이 원하시는 그것 행하기를 원한다. 그 뜻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이 절실하다.
시인은 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가? 하나님이 시인을 자기 백성 삼아 언약을 맺으시고, 자신의 말씀과 언약을 지키길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출 19:5~6).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므로 억지로 순종하지 않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배워 행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행하며 시인은 ‘공평한 땅’으로 인도함 받기를 원한다(10절). ‘공평한 땅’은 울퉁불퉁하지 않고, 평평하고 거칠 것 없는 평지의 땅을 뜻한다. 하나님은 선하시므로 시인을 안전함과 평안함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3. 시인의 구원과 원수의 심판을 간구하다(11~12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자신의 구원(11절)과 원구의 멸망(12절)을 하나님께 간청한다. 11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과 공의를 힘입어 소생함을 얻고 환난에서 나올 수 있기를 구한다. 하나님이 시인을 살리는 일은 그의 생명을 연장해 주는 의미가 아니다. 오랫동안 송장같이 내버려진 시인(3, 7절)을 다시 살리는 능력이 나타나는 일이다. 이는 시인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자 시인이 죽은 줄 알고 있던 원수들에 대한 확실한 응징이며, 하나님의 능력, 진실함, 공의의 조화로운 실현이다.
이제 12절에서는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간청한다. 1, 11절에서처럼 하나님의 속성인 인자하심에 호소한다. 시인은 하나님이 원수들을 끊고, 다 멸하시기를 간청한다. ‘끊다’는 ‘침묵시키다’의 의미다. 이는 뒤에 나오는 ‘멸하다’와 같은 의미로 ‘죽어서 침묵하는 것’을 뜻한다. 이 원수들의 악행과 무자비함은 3~4절에서 세 문장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시 구석구석에 담겨 있는 시인의 비탄과 절망감을 고려하면, 그들의 핍박이 상상 이상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그가 하나님의 종임을 다시금 고백한다(2, 12절). 2절에서는 시인이 하나님 소유이자 헌신된 종이니 자기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했는데, 12절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므로 자신을 살리고 원수는 멸하여 언약적 사랑을 이뤄달라고 하며 기다린다.
나는?
-시인은 원수들의 핍박으로 살았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생명을 낼 수 없는 마름 땅, 죽은 땅과 같다. 몸과 맘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시인은 절망했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속이 상했다. 시장이 멎은 듯했고, 온몸이 마비된 듯했다. 그때 시인이 한 것은 ‘기억과 묵상’이다.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충실하셨던 증거들을 기억하고 떠올렸다. 그 묵상을 통해 그 역사 속의 하나님이 지금 시인의 하나님도 되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단비를 기다리는 마른 땅처럼 두 손을 들어 하나님을 찾는 간절함이 생겼다. 믿음의 대상에 대해 바로 알고 믿음의 내용이 채워졌을 때 고난을 감당해 낼 새 힘을 얻었다.
-기억을 소환하여 깊이 되새길 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더욱 바라보고 붙잡을 은혜가 생긴다. 그 은혜가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낼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오늘도 그 은혜가 나를 살린다.
-시인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그분의 진실과 의에 기대어 호소한다.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신에게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달라는 요구다. 물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주 앞에서는 아무도 의로움을 주장할 수 없고 심판을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주의 인자하심(헤세드)이 시인을 구원하고 원수를 멸할 수 있다고 믿었다. 주께서 친히 자기 이름의 명예를 위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다. 언약을 지키려고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만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다.
-시인은 솔직하게, 적나라하게, 간절하게 구원을 호소한다. 자신에게서 숨지 말아 달라고 구한다. 악몽 같은 밤이 지나 아침이 오면 구원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한다. 할 일과 바로잡을 일을 가르쳐주시면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로우심을, 진실하심을 보여주시고, 주의 이름에 합당하게 대우해달라고 구한다.
*악인들의 괴롭힘 때문에 심장이 멎을 듯 고통스러워하는 가운데서도, 시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신 역사를 떠올리고 묵상하며 구원을 호소한다. 하나님은 진실과 의로 백성의 간구에 응답하신다(1~2절). 이는 언약 백성에게 변치 않고 성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보게 한다. 시인은 하나님이 전혀 자기 기도에 귀 기울이시지 않는 듯 고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다시 용기 내어 간구한다. 그가 의지한 것은 자기의 정당함이나 의로움이 아닌, 오래 참으시며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이었다. 나에게도 그 언약을 지키시려고 하나뿐인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리라.
*다윗은 원수의 핍박으로 몸과 마음이 몹시 상했다. 때로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더는 가망 없는 사람 같았고, 심장 박동이 멎는 듯 두려울 때도 있었다. 더욱이 주님이 은혜의 얼굴을 숨기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숨고, 속히 구원하시길 요청한다(3~4, 7, 9절). 하나님이 절대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망에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의 신실함이 도전이 되는 아침이다.
*다윗의 영혼은 단비를 기다리는 메마른 땅처럼 두 손을 들고 애타게 하나님을 찾는다(5~6, 8절). 이토록 간절한 기도의 열망은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의 업적들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즉, “역사적인 사실”과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기도한 것이다. 믿음의 내용 없이 감정에 요동치는 신앙은 고난을 맞서기 어렵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내 삶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억할 때, 주를 향한 신뢰를 더욱 키워갈 수 있다.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과 선하신 인도하심을 의뢰한 것은 언제나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라는 언약을 확고히 붙들었기 때문이다(10~12절). 특히 극심한 환난 중에도 자신이 이 언약 안에서 “주의 종”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 뜻 행하기를 원했다. 지금 나의 형편은 어떤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리라. 주의 종인 나에게 이 어려움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시려는지 묵상하리라.
*주님, 날마다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겠습니다. 주의 종에게 주의 뜻을 가르치시고 다닐 길을 보여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