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1:1-16 우리 안에 거짓 교사들이 있다!
유다서는 짧다. 그럼에도 알차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1~2절은 발신자, 수신자, 문안 인사로 구성되는 당시 편지 양식이 그대로 담겨있다. 3~4절은 이 편지를 보내는 목적을 밝힌다. 교회 내로 가만히 들어온 이단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것이다. 5~16절은 구약 성경과 당시 통용되던 외경의 내용들을 인용하여 이단의 잘못을 비판하고 그들이 받을 심판을 서술한다.
1. 문안 인사(1~2절)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이다(마 13:55; 막 6:3). 그는 본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미쳤다고 생각했었다(막 3:21, 31; 요 7:5).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인정하고, 자기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았다. 헬라어 본문은 완료 시제인 ‘사랑을 얻고’와 ‘지키심을 받은’으로 표현하여 그들이 과거에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의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그러한 대상임을 암시한다.
유다는 거짓 교사들로 인해 어려움에 부닥친 수신자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더욱 풍성하기를 기원한다. 긍휼은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며, 평강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그의 백성이 누리는 복된 상태다. 하나님의 사랑은 긍휼과 평강의 근본 원인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평강을 누리게 한다.
2. 거짓 교사들의 등장(3~4절)
3절은 믿음의 도를 위해서 힘써 싸우라고 권면하기 위해 이 서신을 기록했다고 밝힌다. 유다는 원래 구원론에 관한 일반적인 교리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설명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직면해 있는 독자들의 상황을 깨닫고는 이미 그들에게 주어진 복음의 진리를 굳게 지키라는 목회적인 권면을 위해서 이 편지를 기록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4절은 거짓 교사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설명한다. 거짓 교사들은 몰래 숨어 들어온 도적과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유다는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첫째,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며,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 거리로 바꾸는 자들이며, 셋째, 예수께서 우리의 유일하신 주인이시며 구원의 주가 되신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예언되었다.
3. 거짓 교사들은 어떤 자들인가?(5~16절)
5~16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거짓 교사들이 어떤 자들인지에 대해서 여러 예증적인 설명을 통해 밝힌다. 8절은 그들을 가리켜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이라고 4절에서 언급한 내용을 재진술한다.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은 이미 과부터 있었던 거짓 선지자들의 후예일 뿐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거짓 선지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회상해 본다면 현재 거짓 교사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의 거짓 선지자들을 심판하셨고, 앞으로도 그러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6절의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에 관한 설명은 ‘타락한 천사들(Watchers)’에 관한 에녹 1서 6~19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추측된다. 에녹 1서는 창세기 6장의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자신들의 처소였던 하늘을 떠나 땅으로 내려와 타락한 천사들로 간주한다. 자신의 위치를 떠난 천사들은 성적인 정욕으로 인해 타락했다. 이것은 그다음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음행이 다른 육체를 따라간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육체를 따라갔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은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난 잘못된 성적인 음행으로 인해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8절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켜 꿈꾸는 자들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들도 앞에서 설명한 심판받은 세 부류와 같은 존재라고 정죄한다. “꿈꾸는 자”는 원래 예언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꿈꾸는 자”는 참 예언이 아니라 거짓 예언하는 자를 가리킨다(신 13:1~2). 이는 유다의 거짓 교사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예언자라고 주장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유다는 그들을 가리켜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하는 거짓된 예언자들이라고 선언한다.
9절은 거짓 교사들이 천사장 미가엘과 다투었던 사탄과 같은 자들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모세의 언약’에 나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하나님이 미가엘에 모세의 시체를 거두고 잘 장사 지내 주라고 명령하셨다. 하지만 사탄은 모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게 하려 했다. 사탄은 미가엘과 다투면서 사람을 죽인 모세가 그렇게 존귀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모세를 정죄했다. 이에 대해 미가엘은 자신이 직접 사탄을 정죄하기보다 하나님이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한다는 말로 사탄에 대한 정죄를 하나님께 맡긴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미가엘과 하나님의 판단과 권위에 도전하는 사탄의 대립을 볼 수 있다. 거짓 교사들은 사탄처럼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이다. 10절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행태를 두고 알지 못하는 것을 함부로 비방하는 자들로서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자들이라고 규정한다.
11~13절은 거짓 교사들에 관한 비유적 설명이 이어지는 단락이다. 이번에는 가인과 발람과 고라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거짓 교사들은 이들이 갔던 전철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탐욕적이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들이다. 가인은 유대적 전통에서 불의한 자들의 원형이다. 자기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공정한 처사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가인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교사들의 전형이다. 발람은 탐욕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거역한 존재다. 발람은 미디안의 왕들로부터 돈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민 22장). 결국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음을 깨달은 발람은 모압 왕에게 한 가지 꾀를 베풀어준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여인들과 음행하고 그들의 우상을 섬기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고라의 길은 패역한 길이었다. 민수기 16장에서 고라는 율법에 규정된 아론의 제사장직을 무시하고 자기가 제사장이 되고자 했다. 그들은 모세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분파를 만들고 대적했다. 거짓 교사들도 이와 같은 반율법주의적인 잘못된 가르침으로 분파를 만들고 사도들의 복음을 무시했다. 그것은 패역한 것이며 심판을 받을 행위다.
12~13절은 가인과 발람과 고라의 길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준다. 그들은 자기의 몸만 생각하는 탐욕자들이며, 성도들에게는 희망을 줄 것같이 말하지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비를 주지 못하고 구름과 같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다. 오히려 그들은 수치를 드러낼 뿐이며, 흑암 중에 떠도는 별처럼 영원히 멸망할 자들이다.
3. 심판에 관한 에녹의 예언과 적용(14~16절)
유다는 이제 거짓 교사들에게 임할 심판에 대해서 에녹이 미리 예언했었다는 사실에 관해서 설명한다. 유다는 에녹 1서 1:9를 인용하는데, 에녹이 비전 가운데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해서 받은 예언이다. 에녹은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신 사건을, 심판을 위해 오신 것으로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의로운 자에게 평화와 번영을 주시고 불의한 자는 그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고 했다.
유다는 이 심판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법적인 행위로 묘사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을 형벌하는 심판으로 묘사한다. 심판을 받을 대상은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다. 유다는 경건하지 않음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데, 16절은 경건하지 않음이 구체적으로 “원망하고, 불만을 토하고, 정욕대로 행하고, 자랑하고 아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나는?
-이 공동체에 몰래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였다. 경건한 윤리를 무시하고 참다운 자유를 훼손한 채 방종을 정당화하였으며,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격하하였다.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부인할 때, 육체로 경건하게 살고 육체로 선한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할 근거를 잃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처럼 본능으로 육체를 더럽히며 살았다. 이 시대의 많은 이단들과 거짓 믿음을 가진 자들이 돈과 성 문제에 있어서 비윤리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미 출애굽한 사람들이 자동으로 최종 구원에 이른 것은 아니었음을 기억하고, 음란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은혜를 멸시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음란하고,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없는 시대에, 인간의 죄악에 침묵하지 않으시고 불로 심판하셨던 하나님을 더 적극적으로 전하고 기억하고 깊이 묵상해야 한다. 사랑과 자비만큼이나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도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들의 꿈(환상)을 신성시하며, 말씀 사역자의 권위를 무시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시기와 탐욕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가인과 발람과 고라의 길이 있고, 말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있다. 열매도 없이 거품 같은 삶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거룩한 자와 함께 주님의 심판에 참여할 자가 있다. 경건한 자가 있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는 자가 있다. 뿌리 뽑혀 열매 없는 가을 나무 같은 자들이 있는가 하면 사시사철 열매를 맺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나님은 성도를 사랑하여 주실 뿐 아니라 지켜주신다(1~2절). 세상 그 어떤 것도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롬 8:39).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 둘러놓으신 성벽은 어떤 힘과 권세로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므로 성 밖에서 요동치는 사탄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오늘도 평화로운 주님의 품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리라
*교회 안에 몰래 들어온 거짓 교사들을 분별해 내야 한다. 그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주님의 사랑을 부인하게 한다. 성도와 교회를 병들게 하는 거짓 교사들은 용납과 용서, 자비와 긍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처음부터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말씀에 반항하려고 준비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하수인인 거짓 교사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리 안에서 힘써 싸워 주님의 교회를 지켜야 하리라. 교회를 지키는 것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고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다.
*회개하지 않은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5~7절). 출애굽 이후 하나님을 대적하고 맞섰던 자들은 광야에서 모두 멸망하였으며(고전), 음란과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는 일순간의 심판으로 진노의 영원한 본보기가 되게 하셨다. 세상은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죄와 짝하여 두려움 없이 살아가지만,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그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멸하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에녹은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예언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에녹의 예언은 무시되었고, 하나님이 내미신 구원의 손길은 외면당했다. 에녹 시대의 목이 곧은 사람들의 모습과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별반 다를 바 없다면, 우리에게 여전히 주어지고 있는 회개의 기회를 사장하고 있다.
**교회의 적은 교회안에 있다. 누구라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큰일을 벌여 교회를 흔들지 않는다. 가만히 속삭이고,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신앙생활하며 이를 은근히 강요한다. 그래서 일단의 무리가 형성되면 과격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세속적인 방식을 옹하는 수준이지만, 점점 진리의 말씀을 호도하는 행태로 강화되어 간다. 그러므로 교회의 거루겅을 지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믿음의 형식과 내용을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기록된 말씀을 성령의 은혜로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단순함이 교회 공동체를 거룩하게 한다. 우리 공동체를 그런 단순한 공동체로 더욱 집중하며 단단히 다져가야 겠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수선하다. 여기에 진리의 말씀을 빙자한 여러 사상과 특정 지도자들의 주장들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양 맹신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깊어지고 있다. 초기 교회의 어수선함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혼란스러움은 초기 교회의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성적인 방종과 무절제)”로 바꾼 것처럼 현대 사회도 성적 방종과 개인의 욕망 추구를 “은혜”로 정당화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인간이 아무리 제멋대로 해석하여도 하나님의 정한 뜻이 담긴 말씀은 변치 않는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가 믿고 싶은대로가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믿어야 한다. 그래야 정죄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과 긍휼의 대상이 되어 은혜안에 거하고 누리게 된다.
*특히 본문은 개개인의 삶에서 “탐욕(발람의 길)”, “교만(고라의 패역)”, “사랑 없음(가인의 길)”의 삼각 악의 축을 늘 경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이익을 위해 아첨하는 태도나, 불평과 원망의 강팍한 말을 분별하지 못하여 행하는 입술의 죄, 판단과 정죄가 사랑보다 앞서는 메마른 삶이다. 또한 공동체는 진정한 지도자를 그 열매로 분별하는 지혜를 붙잡아야 한다. 지도자의 삶 속에 삼각 악의 축이 지배하는지를 분별하여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들에 대하여 더욱 분별해야 할 부분은 “꿈과 환상”을 주장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날은 현대 사회의 특징인 합리성을 초월한 사적 경험을 내세워 말씀을 부정하고 성도의 믿음을 흔드는 이단들이 많다. 건강한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부활, 재림과 심판을 선명하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공동체다. 이와같은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세상의 일시적인 가치(헛된 자랑, 정욕)을 쫓지 않도록 가르쳐 지키게 하는 공동체다. 우리 더온뉘 공동체의 걸음이 이와 같아야 하리라.
*주님, 악의 삼대 축(탐욕, 교만, 사랑 없음)이라는 거울로 늘 나의 삶을 비춰보며 경계하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을 생각하며 믿음의 도를 굳게 붙잡고 경건하게 살아내기를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교회 안에 늘 적이 있음을 알고 깨어 분별하며 공동체를 그들로부터 지키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