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1:17-25 마지막 때, 성도의 삶은?
거짓 교사들의 등자에 관한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하라고 말한 후, 거짓 교사들이 어떤 자들인지에 대해서 요약하며 설명한다(17~19절). 복음에 합당한 삶은 먼저 믿음 가운데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고(20~21절), 연약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그들이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22~23절). 마지막으로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영광송으로 서신을 마친다(24~25절).
거짓 교사들은 불의를 향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분열시키고 분파를 만드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행위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유다는 성도들에게 경건하고 거룩하게 행하여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촉구한다.
1. 거짓 교사들의 특징(17~19절)
거짓 교사들의 정체와 그들에게 임할 심판에 대해서 설명한 후 이제 독자들을 향한 권면의 메시지를 전한다. 먼저 거짓 교사들의 등장에 관한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하라고 명한다. 사도들이 한 말을 빌려서 거짓 교사들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한다. 유다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에 대해 네 가지로 설명한다. 5~16절에서 설명한 것을 요약하는 성격을 가진다.
첫째, 그들은 경건하지 않고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다. 타락한 천사들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처럼 거짓 교사들은 불의하고 정욕적인 자들이다. 둘째, 그들은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과 그 복음을 따르는 성도들을 조롱하는 자들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비방했던 것처럼 거짓 교사들도 복음을 훼방하고 성도들을 조롱하는 자들이다. 셋째, 그들은 분파를 만들어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들이다. 고라와같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분파를 만들고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들이다. 넷째, 그들은 육에 속하여 성령이 없는 자들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물 없는 구름이요 뿌리가 뽑힌 열매 없는 나무들이었던 것처럼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성령을 가졌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은 육체의 정욕에 속한 자들일 뿐이다. 그들이 성령을 받지 못한 증거는 그들의 불의한 행위로 증명된다. 정욕에 따라 행하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경건하지 않고, 말씀과 경건한 삶을 조롱하는 행위는 그들에게 성령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육에 속한 존재와 영에 속한 존재로 구별하면서 스스로는 영에 속한 자라고 주장하고 자랑했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성도들은 사도들이 미리 경고한 말씀을 기억하여 거짓 교사들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경건한 신앙을 위한 권면(20~21절)
유다는 거짓 교사들의 네 가지 특징에 대하여 설명한 후 이제 독자들의 경건한 신앙을 위한 네 가지 권면을 전한다. 첫째,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너희 자신을 세우라. 유다는 믿음의 공동체인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성전인 건물에 비유한다. ‘세우다’라는 동사는 ‘집을 짓다’라는 뜻이다. 집을 지을 때 든든한 기초 위에 세워야 하듯이 독자들은 믿음의 기초 위에 집을 세워야 한다. 유다는 특별히 ‘너희의 믿음’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기초하여 형성된 독자들의 믿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대조된다. 너희 자신을 세우라는 표현에서 ‘너희 자신’은 복수형으로 ‘너희 자신들’이라는 뜻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자기 자신을 세우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합하여 한 믿음의 공동체가 한 집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지 않고 자신을 세우려 한다면 그것은 복음에 역행하는 것이며 거짓 교사들처럼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성도들은 각자의 능력과 달란트로 자신을 드러내고 세우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인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렇게 건물을 세우는 이미지는 거짓 교사들의 분열시키는 활동과 반대된다. 거짓 교사들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자들이지만 성도들은 그것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성령으로 기도하라.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켜 성령이 없는 자라고 했던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19절).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게 된 독자들은 성령을 받은 자들이다.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 예언을 받았고 영에 속한 자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그들은 육에 속한 자이지 성령에 속한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속한 자다. 성령에 속한 자들은 경건하고 거룩하게 행하는 자다. 참된 복음에 근거한 믿음은 필연적으로 성도들을 경건함과 거룩함으로 인도한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 유다는 1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라고 했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라고 말한다. 이러한 역동적인 관계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고 해서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유다는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고 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힘써 싸워야 한다.
넷째,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린다는 것은 종말적인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심판과 구원을 위한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긍휼히 역심을 입어 구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는 소망 가운데 믿음의 싸움을 힘써 싸워야 한다.
3. 믿음이 약한 자들에 관하여(22~23절)
유다는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약한 자들을 향해서 어떻게 행할 것인지에 관해서 설명한다. 유다는 두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는데, 의심하는 자들과 불 가운데 있는 자들이다.
먼저 의심하는 자들은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미혹되어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이 회의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자들을 향해서 무시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반면에 어떤 자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불은 종말론적인 심판을 상징한다.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는 것은 심판받기로 확정된 자들을 구원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대로 두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친 자들을 권면하여 복음으로 돌이키게 하라는 뜻이다. 이러한 자들은 의심하는 자들보다 거짓 교사들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은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거짓 교사들처럼 정욕적이고 불의한 죄의 행위에 빠진 자들이다. 유다는 이러한 자들을 대할 때에 성도들이 도리어 그들의 죄에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라는 것은 죄에 빠진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되 그들의 죄는 미워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자들을 대할 때에 두려움과 긍휼히 여김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죄 가운데 미혹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구원해야 하지만, 그들의 죄에 물들지 않도록 항상 두려워함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4. 영광송(24~25절)
유다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에 대한 영광송으로 편지를 마무리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로부터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기에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지키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흠 없는 자가 되도록 정결하게 하신다.
이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는 큰 기쁨으로 서게 될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심판으로 인한 두려움에 떨면서 서게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으로 인해 크게 기뻐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토록 있을 것이라는 영광의 찬송으로 편지는 마무리된다.
나는?
-사도들의 경고를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마지막 때에 있을 일을 미리 사도들을 통해 경고하셨으니 경건하지 않은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조롱꾼들의 등장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본능적으로 이성 없는 짐승처럼 육체의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 나타나 공동체를 분열시킬 것이다. 교회는 일찍이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 영적 세력에 맞서도록 성도들을 무장시켰다면 이토록 쉽게 양들을 이단들에게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다. 규모를 확장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사도의 다급한 경고를 성도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사도들은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과 지혜로 당시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교회를 대적하고 조롱하는 무리들에 대하여 가르쳐준다(17~19절). 이는 알고 대비하라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이단들은 시대에 따라 변해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분별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영적 민감함과 분별력이 교회의 분열을 획책하는 자, 육에 속한 자, 성령이 없는 자들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낼 수 있다. 날마다 묵상을 통해 말씀을 익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리를 따라 성령의 인도 아래 살고 미혹된 자들도 건져내어 살려야 한다. 거룩한 믿음, 성령의 기도, 그리고 사랑, 이것이 말세를 사는 성도들의 승리 조건이다. 구원은 끝나지 않았다. 주의 거처로 다 지어진 것도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건설 중인 성도다.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주의 긍휼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각자 자신을 지키고 세워가야 하는 백성들이다. 동시에 이미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어 말씀을 의심하는 자들은 불쌍히 여기고, 이미 그들의 손에 빠진 자들은 구원해 내야 한다. 그들이 범한 죄는 미워하되 그들에게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믿음은 성도의 삶의 기초와 같아서 믿음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성도의 믿음을 흔들려는 사탄과 그의 세력들이 있기에 성도는 더욱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믿음을 잘 지켜야 할 것이다(20~21절). 그리고 더 나아가 믿음의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되, 그들의 죄에 물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분명한 답변과 확신 없는 애매함은 의심하는 이들이 일으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22~23절). 내가 가진 역량으로 형제를 도울 수 없다고 판단되면, 속히 물러서는 지혜로 먼저 자신을 지키고, 그 후에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자기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는 그날까지 보호하시고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이다. 그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사탄의 미혹도 간교해지고 거세지겠지만, 그럴수록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더욱 꼭 감싸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께만 영광과 위업과 권력과 권세가 언제나 영원까지 있음을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으니 꼭 이루실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 부족한 모습에 절망하지 말고 잘 변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낙심하여 포기하지도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신다(24~25절).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다. 성도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자기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큰 사랑 때문에(요 13:1),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실패의 두려운 마음을 불어넣으려는 악한 세력들을 경계하라. 또 하나님 자녀의 복된 자리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온갖 거짓에 속아 낙심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시다.
*마지막 때,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유다는 본문을 통해 “기억하라(17~18절), 세우라(20~21절), 여기라(22~23절), 찬양하라(24~25절)”고 권면한다. 사도들이 한 말을 기억하고,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 자신을 세우며(성령 안에 기도하고, 사랑안에서 자기를 지킴으로), 공동체안의 연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의심[믿지 못하는]하는 자, 불에서 끌어내고,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긍휼히 여김으로), 교회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김[의탁함, 신뢰함]으로)는 것이다. 우리 공동체도 기억하고. 세우며, 여기고, 찬양하는 신앙의 기본적인 축을 성실하게 다져가며 건강한 공동체로 자리매김하면 좋겠다.
*마지막 때의 교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또, 진실하지 못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가 진실과 정의를 강조할 것이다. 트러블메이커가 피스메이커를 자처할수도 있다. 이렇게 혼란해진 시대의 교회는 그러면 그럴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이들의 분동에 의심하는 이들을 사랑으로 챙기고, 죄와 벗하며 불구덩이에 빠진 이들을 구해내고, 죄를 철저히 미워하되 죄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자비를 베푸는 일에 어색해서는 안 된다. 또, 스스로 진리 안에서 강하여야 한다. 동시에 강한 진리 안의 삶은 긍휼(자비)의 열매와 함께 와야 한다. 유다의 가르침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살도록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대신 구원의 값을 치뤄주셨다. 조금만 더 구원의 은혜 안에서 힘을 내보자.
*주님, 하나님 말씀을 통해 모든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하는 힘과 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기억하고, 세우며, 여기며, 찬양하는 삶을 유지하겠습니다. 힘을 불어 넣어주십시오.
*주님, 이런 삶이 쉽지 않음을 압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도우심이 더욱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거하기를 발버둥치며, 은혜를 누리며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