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2:1-13 다시 거룩하게 하기 위해 선두에 서신 여호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죄악을 고발하는 언약소송 형식이 2장에서도 이어진다. 미사 선지자는 사회 곳곳마다 만연한 죄악들을 더 구체적으로 고발혀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로 본장을 마무리한다(12~13절).
1~2장은 미가서의 도입에 해당하는 본문으로, 심판이 주를 이루지만 끝에는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가 나타난다. 특히 “남은 자”에 대한 언급(12절; 4:7; 5:7, 8; 7:18)은 앞으로 더 발전하여 이스라엘의 심판이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하나님의 심판 목적은 “회개와 돌이킴”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 백성의 죄악과 징벌(1~11절)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는 재앙 신탁은 심판이 임박했다는 긴박감을 조성하면서 죄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1장에서는 언약 소송의 형식을 빌려 죄악을 지적하는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언약을 파기하는 죄들을 짓고 있음을 언급한다. 1절의 “죄와 악”은 각각 속임수와 사악함을 가리키는데, 죄를 짓는 자들의 간교하고 사악함을 지적한다. “죄(아벤)”는 본디 “해악, 속임수, 사악함”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의도적으로 속이거나 해를 끼쳐 이익을 챙기는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악(라아)”은 사악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욥 8:20; 사 31:2; 습 1:12).
또한 권력을 쥔 자들이 우연히 또는 의도하지 않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밤에 계획하고 그것을 낮에 실행하는 사악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2절의 “탐하여”는 십계명의 제10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명백하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는 행위다. 이처럼 지도자들은 탐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권력으로 빼앗고 강탈했다. 특히 “산업(나할라, 기업, 물려받은 재산)”의 강탈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각 지파와 가문별로 물려받은 재산을 가리킨다. 땅은 하나님이 언약을 맺은 대가로 이스라엘에게 허락한 것으로, 본래 하나님에게 속한다(레 25:23; 민 36:2, 7). 하나님에게서 위임 받았기에 대대로 물려받으며 존속시킬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하나님께서는 기업이 다른 다람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기업 무름 제도”나 “안식년, 희년”제도를 통해 땅을 유지하게 하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로 남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이런 땅(기업)을 빼앗는 행위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행위였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빼앗은 해우이가 본문에서 지적하는 전형적인 죄다(왕상 21장).
3절의 “그러므로”는 1~2절에서 지적한 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언약을 파괴하였으므로 이제 심판을 내리시겠다는 의미다.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라는 표현은 정복 당하여 목에 멍에를 지는 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표현이다(신 28:48; 사 10:27). 언약에 불순종할 때 언약적 저주의 내용에도 포함된 것이다. 4절의 “산업”은 언약을 맺은 이후 가나안 땅을 할당받는 것을 가리키며, 산업을 옮긴다는 것은 언약에 불순종했으므로 땅에서 쫓겨난다는 의미다.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시는도다”도 비슷한 의미다. “패역자”는 우너래 “반역자”를 의미하나, 본문은 부유한 자들이 멸시하던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 결국 자신들이 풍자하며 멸시한 자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에스겔 48장의 예언과 비슷한데, 자신들이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과 그들의 집과 기업을 빼앗았지만, 이제 자신들이 빼앗기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5절에서 “여호와의 회중”은 여호와의 백성에 속해 절기에 참여하고 의사를 결정한 회합을 가리킨다. 그렇기에 5절이 의미하는 것은 여호와가 인정하는 백성에 속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6~7절은 심판 선포에 대한 반응을 묘사한다. 6절은 올바른 예언을 하는데도 자신들이 득기 싫다고 거짓 예언 취급을 하는 반응을 묘사한다. 7절에서는 자신들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인데, 자신들을 급하게 심판하실 이유가 없다고 항변하는 반응을 묘사한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도, 안일하게 대처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8~9절은 6~7절에서 지적한 대로, 선포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자들에게 다시 그들의 죄악을 지적한다. 의복을 벗어 빼앗는 행위는 언약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출 20:15; 22:26~27). 9절의 “백성의 부녀들”은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를 가리킬 것으로 추측한다. 과부와 그들의 어린 자녀들은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로 율법의 보호 대상(출 22:22)이기에, 명백하게 언약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보호해야 할 대상에게서 하나님이 허락한 영광, 곧 복을 탈취하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있다.
10~11절은 언약에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따를 것이라고 선언한다. 10절의 “쉴 곳”은 구약에서 “안식이나 안식처”로 자주 번역된다. 특히 선지서에서는 종말적으로 “남은 자”에게 허락된 복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사 32:15~18). 그렇기에 “쉴 곳”에서 떠나는 것은 언약을 파기한 백성이 맞이하게 될 운명을 가리킨다(레 18:24~28; 신 23:14). 11절은 6절의 논의를 다시 끌어들이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자들에게 조롱의 말로, 심판의 메시지를 마무리한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읶르이고, 포도주와 독주가 상징하는 것처럼 백성이 원하는 대로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예언하는 선지자가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된다는 것은 참 선지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좇아 살라는 조롱 섞인 말로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는 것이다.
3. 회복의 하나님(12~13절)
긴 심판의 선언 후, 미가는 짧으면서도 강렬한 회복 메시지를 전한다. 회복의 대상은 야곱과 이스ㅏㄹ엘 둘 모두다. 하나님이 불러 모으는 남은 자는 마치 우리의 양 떼처럼, 초장의 양 떼처럼 안전한 장소에 머물며 풍요를 경험한다. 더불어 그들은 많은 사람으로 인해 떠들썩해진다. 그때 성문으로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있다(13절). 그의 정체는 “그들 앞서 길을 여는 자”이며 “그들의 왕”이다. 그는 막힌 성문을 꺠고 무너뜨리며 길을 연다. 그러면 뒤따르는 백성도 성문을 무너뜨리며 지나간다. 이전의 지도자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 위에 군림하며 백성을 착취하고 억압하던 이들이었는데, 회복의 시대에 세워질 왕은 백성 앞에서 친히 길을 열며 백성과 함께 걷는 사람이다. 더구나 선두에 여호와께서 계시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절대로 완전한 멸망을 원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잘 회복되어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원하신다.
나는?
-하나님은 탐욕을 꺾으신다. 미가 선지자는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이 밤마다 침상에서 불법을 계획하고 아침이 되면 곧바로 실행하는 악행을 고발한다. 그들의 권세는 공의를 세우는 데 사용되지 않았고, 약한 자의 집과 밭을 빼앗는 탐욕의 도구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탐욕에 대해 너희가 악을 계획했듯이 “내가 재앙을 계획한다”고 선언하신다(3절). 땅을 약탈한 자들은 앗수르에게 빼앗길 것이며, 그 땅은 더 이상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그들이 자랑하던 권세와 재산은 수치와 조롱의 원인이 될 것이다(4절). 그들은 ‘여호와의 총회’에서 제외되어 언약 공동체와 단절될 것이다. 경제적, 정치적 힘을 가진 이들이 약자의 삶을 짓밟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인은 불의를 묵인하거나 동조하지 말고 선지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하나님은 거짓을 드러내고, 정의를 세우신다. 미가는 부유한 권력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부패한 모습을 고발한다. 권력자들은 불법적으로 재산을 취하며 약한 이들의 삶을 짓밟았다. 그들과 결탁한 거짓 선지자들은 재앙은 오지 않을 것이며, 오직 풍성한 축복만 있을 것이라고 왜곡된 메시지를 전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불의하게 얻은 땅은 결코 그들의 안식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회적 약자와 정의를 외면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양을 모으시고 길을 여신다. 미가는 심판 메시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드러낸다(12~13절). 하나님은 멸망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신다. 우리가 경험하는 개인적, 사회적 위기와 교회의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모으시는 목자이자 왕이시다.
-하나님은 흩어진 양 떼를 모아 우리로 이끄시는 분이다. 또한 하나님은 ‘길을 여는 자’로 등장하신다. 그분은 성문을 열어 자기 백성이 자유롭게 나가도록 인도하신다. 이것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우리도 새로운 도전과 변화, 또는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그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거짓 평안을 외치며 말씀을 왜곡한 유다는 점점 더 비정해지고, 비윤리적으로 변해갔다. 하나님은 그런 땅을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그 땅에서 백성들을 쫓아내신다. 그러나 때가 되면 친히 선두에 서서 그의 백성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오신다. 어떻게 해서든지 거룩한 땅을 지키시고 유지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이 놀라울 뿐이다. 자기를 외면하다못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드는 행동을 서슴치 않은 백성이었지만, 그들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위해 무던히도 참으시는 그 인내의 사랑이 회복의 은혜를 받게 했다. 그 사랑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악용하는 지도자들을 심판하신다. 타락한 지도자들은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남의 소유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1~5절, 이런 몹쓸 지도자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불의하게 모은 재산이 자기보다 더 힘 있는 자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권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부당하게 탈취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혹시 내가 가진 힘을 조금이라도 남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없는지 늘 성찰해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전한다(6~7절).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지 않고 오히려 그 말씀을 멋대로 왜곡하는 것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교만이다.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가 꼭 들어야 할 말씀을 들려주실 때 그 말씀이 내 마음 안에 머무르기를 소망한다. “꼭 들어야 할 말씀”을 듣는 겸손함과 지혜로움이 마르지 않기를 바란다.
*말씀을 잃은 공동체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저주의 땅’이 되어 버린다. 백성들의 겉옷을 탈취하고 불쌍한 과부를 내쫓으며 어린 자녀를 고아처럼 내버려둔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든지 술 잔치를 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예언자로 세우겠다’고 말할 정도로 타락한 사회가 된다(8~11절).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 평안을 외칠 때, 공동체는 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완전히 망가진다. 우리 더온누리공동체를 더욱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기 위해 나에게 깨우쳐 주시는 것을 성실하게 순종하리라.
*이런 억압된 사회, 소외된 사회속에 살아가는 사랑하는 백성을 그 원수의 속박에서 풀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두에 서신다. 선두에 서신 하나님께서 대적을 무찌르고, 백성을 해방하시기 위해 돌파구를 여신다. 백성들도 그분을 따라 약속의 땅을 향해 감격스러운 여정을 시작한다(12~13절). 이처럼 우리를 사탄의 속박에서 해방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묵상하는 내내 ‘그 악한 지도자’가 떠올랐다. 동시에 그런 악한 지도자에게서 우리를 건져주신 주님의 은혜가 그만큼 더 감사하기 그지 없다. 나의 삶의 걸음에서 악하고 거짓된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성실한 사역자로 서있어야 함을 더욱 결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두에 서서 악하고 위중한 지경에서 우리를 구해주셨으니, 이렇게 구원받은 나라를 더욱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살아숨쉬는 공동체 되도록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에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에서 조금 더 힘을 보태 노력해야겠다.
*주님의 선두에서 이끌어 주신 구원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의 삶도, 공동체의 걸음도 과연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단연코 그렇지 않다. 오늘도 선두에 서신 주님 뒤만 따르며 꿋꿋히 믿음으로 살아내리라.
*주님, 말씀 앞에 늘 겸손하여, 제게 맡겨주신 공동체가 늘 주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살아내도록 성실하게 감당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