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끝날”에 세상 중심에 서신 하나님 [미 4:1-13]
 – 2025년 12월 24일
– 2025년 12월 24일 –
미 4:1~13 “끝날”에 세상 중심에 서신 하나님
    
1~3장은 주로 혹독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에 있지 않다. 심판은 결국 회복의 메시지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다. 4장부터는 하나님의 본래 의도인 시온의 회복이라는 놀라운 소식이 선포된다. 시온은 세상에서 가장 높아지며, 많은 민족이 여호와의 길을 배우기 위해 나오게 될 것이다. 모든 무기가 사라지고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평화의 나라에서 남은 자들이 평화를 누린다. 그렇지만, 지금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방 민족이 그들을 공격해 올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온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1. 여호와가 통치하실 날(1~5절)
본 단락은 이사야 2:2~4과 매우 유사하다. 두 본문은 모두 내용상 포로기 이후의 본문으로 추정되고 시온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3장)가 이곳에서 회복의 메시지로 전환된다. 이는 결국 시온의 회복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시온의 회복에 관한 메시지는 이후의 단락에서도 계속 확장, 발전한다.
    
3:9~12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이전 심판의 메시지는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었지만, 본문은 하나님께 신실한 “남은 자”들이 메시지의 대상이다. 하나님에게 맞서 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는 심판이 임하지만, 악한 상황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남은 자들에게는 구원과 회복을 베푸신다는 것이 이 단락의 핵심 메시지다. 내용에서도 시온,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데, 3장에서는 시온이 죄로 물들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선포했다(3:10, 12). 이는 하나님이 떠나시거나 침묵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단락에서는 시온이 여호와의 율법으로 가득한 곳이 되며(2절), 여호와의 전의 산은 세상에서 가장 으뜸이 된다고 선포한다(1절). 이는 하나님이 침묵을 거두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어지는 내용은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됨으로 드러난 여러 양상의 결과들을 다룬다.
    
2절은 온 민족이 여호와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목할 것은 “도”와 “길”과 “율법”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남 유다는 북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상인 공의와 정의가 무너졌다. 정치적 지도자와 종교적 지도자와 부자는 공의와 정의를 왜곡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좇아서만 살았다(3:11). 그러나 “남은 자”들의 회복을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는 이런 불의가 사라지고 율법에 드러난 하나님의 온전한 이상이 실현될 것이다.
    
3절은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로 인해 공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지고, 칼과 창 같은 무기는 농기구인 보습과 낫으로 바뀌어 전쟁이 사라질 것이며, 나라 사이의 분쟁도 없어지고, 심지어 전쟁 연습마저 없어지는 온전한 평화가 임할 것을 언급한다. 4절은 여호와의 통치로 인한 풍요로움을 언급한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감람나무와 더불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풍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들이다. 각자가 자기 나무 아래 앉았다는 것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풍요로운 결실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5절은 온전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끝 날(4:1, 여호와의 날)의 이상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의 “남은 자” 곧 그의 신실한 백성은 하나님만을 의지한다. 이는 이미 여러 언약을 통해 드러난 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관계의 온전한 회복을 가리킨다. 그것은 2~4절에서 이미 언급한 온 민족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고, 전쟁이 없어지며 평화가 찾아오고, 풍성한 결실을 누리게 되는 결과가 따라오지만. 하나님께서 알려주는 궁극적인 이상은 하나님만이 진리라고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다.
    
    
    
2. 하나님 나라의 백성(6~8절)
본 단락은 2:12의 “남은 자”를 더욱 자세하게 규정한다. 남은 백성의 회복을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영원히 통치할 것이라는 약속으로 표현한다(7절). 또한 1~5절에서는 “끝날(여호와의 통치의 날)”에 이뤄질 일들을 언급했다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뤄진 그 혜택을 누릴 자들,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누가 될 것인가를 언급한다.
    
6절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획을 밝히심으로써, 이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말씀임을 강조한다. 하나님 심판의 메시지는 악을 행하는 지도자들과 제사장들, 선지자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가 되겠지만,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를 들은 남은 자들에게는 희망과 확신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7b절의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의 절정을 이룬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현재의 고통에서 구원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의 이상이 자기 백성 가운데 실현되는 것이다.
    
8절의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회복된다는 것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분 백성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시온에서 끌려가는 비참함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회복의 때는 1~5절의 묘사된 것처럼 온전한 회복과 평화가 드러나는 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메시지를 듣는 당시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현재의 암울한 상황, 하나님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상황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고 희망과 확신 가운데 “남은 자”로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3. 포로에서의 회복(9~13절)
1~5절이 먼 훗날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할 그날에 대해 예언하고, 6~8절이 그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백성들에 대해 예언한다면, 9~13절은 가까운 미래의 고통(남 유다의 멸망) 또는 현재의 고통(주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에서, 먼 훗날 임할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하고 견디라는 취지의 메시지다.
    
9절은 현재의 고통에서의 괴로움 또는 미래의 고통에서의 가상적인 괴로움을 표현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분명히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왕이 있고 모사가 있어도 그들은 백성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0절의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라는 표현은 풍자적으로 생명을 낳기 위해 산고를 겪듯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 고통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포로로 끌려가고 바벨론에 이르렀을 때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진다(10절). 하나님의 구원은 심판이라는 역경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다시 붙드는 가운데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는 과정임을 기억한다면 포로로 끌려가며 고통을 당한다고 괴로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다고 원망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게 되지 않겠는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주전 722년) 한참 후에야 남 유다가 망하게 되지만(주전 586년), 심판의 메시지로 인하여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것은 남 유다가 그동안에도 수많은 전쟁에서 강대국으로부터 고통을 당하였기에 미가의 선포는 생생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11절의 온 민족이 모여 시온을 친다는 메시지도 먼 훗날에 일어날 예언이라 할지라도 바로 가깝게 일어날 것처럼 고통을 느낄 수도 있었다.
    
11~12절은 유다가 당할 고통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준다. 온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을 치려고 의기양양하게 모이지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은 것이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깨닫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온 민족이 득세한 듯하지만, 결국 딸 시온이 일어나서 온 민족을 치며 승리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13절).
    
    
    
나는?
-왕이 사라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빛나게 된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왕을 요구하면서 하나님을 버린 것이었고(삼상 8:4~8), 이제 나라가 망하고 왕이 사라지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왕 되심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인간의 나라가 멸망했을 때,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진정한 나라가 시작한다. 오늘 나의 삶에서, 우리 교회에서 인간 왕이 사라질 때 하나님께서 왕 노릇을 시작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면, 더 이상 무기가 필요 없어진다. 그간 존재하던 무기는 모두 농기구로 바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중대한 표시는 세상에 가득한 평화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무기가 필요 없고 전쟁이 사라지며 다툼과 분쟁이 없어진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강대국을 의지하고, 군사력을 기댄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기업에서 평화로이 거하게 될 것이다. 치우치거나 불균형함 없이, 모두 평균케 되어 고르게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날들을 소망하고 있을까? 우리 공동체는 이런 일들을 꿈꾸며 구하는가?
    
-바벨론은 수치의 장소요, 심판의 장소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그 백성을 건져내실 것이다. 이를 보면, 치욕은 치욕만이 아니며, 자랑도 자랑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전에 성전을 자랑했지만, 성전은 파괴되고 그들은 포로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포로 됨을 수치로 여겼지만,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그들을 속량하시고 열방에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들로 말미암아 열방의 재물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될 것이다.
    
*메시아가 만물을 회복할 때 성전이 있는 시온산은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잠시 받을 환란에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백성을 궁극적으로 회복하시고 거룩한 도구로 삼으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현재의 고난을 인내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평화의 나라를 세우신다. 종말의 때에, 우상으로 물들었던 봉우리들 위에 시온산이 우뚝 설 것이며, 거룩한 성전에서 언약 백성을 향해 하늘의 율법을 선포하실 것이다. 모든 열방은 시온으로 나아와 왕이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이 임하는 온 땅에 하늘의 평화가 충만할 것이다(1~4절).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를 세우고 이 일을 이루시고 참 안식을 선물로 주셨다. 이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약한 자들을 일으켜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신다. 앗수르의 공격과 바벨론의 위협이 계속될 것이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유다를 사랑하며 붙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잠시 받는 고난 때문에,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새 생명이 태어날 것에 대한 기대로 해산의 고통을 이기는 여인처럼, 잠깐의 고난을 잘 참고 견뎌내야 한다. 지금 내 앞에 산처럼 버티고 있는 시련이 있을까? 스스로 일어설 수 없을 때도, 하나님이 우리 왕이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찌끼 같던 백성을 무장시켜 거룩한 군대로 삼으신다. 이제까지 대적에게 조롱받던 이스라엘을 무장시켜 대적을 치는 타작의 수단으로 삼으실 것이다(11~13절). 하늘 백성의 삶 속에 일어나는 대적의 위협들은 두려워할 필요 없다.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해야 한다. 선지자는 유다 백성에게 포로 이후에 있게 될 이스라엘의 회복까지 미리 보여줌으로써 백성들이 당장 직면하게 될 환란을 믿음으로 견디도록 도전한다. 이상과 비전이 없는 백성은 결코 소망을 가질 수 없다. 소망이 없는 백성은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의 걸음에 힘을 공급하여 주실 것을 확신한다.
    
    
    
*주님, 잠깐 있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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