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는가? [미 7:14-20]
 – 2025년 12월 28일
– 2025년 12월 28일 –
미 7:14-20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는가?
    
1~6절의 탄식 이후, 7~20절은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주제로 전환되며 14~20절은 그 연장선에 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7~13절)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고(14~17절), 다시금 구원의 확신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18~20절). 미가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이 하실 놀라운 일들을 바라본다. 이 일들이 남은 자에게는 구원의 기쁨을 안겨 주지만, 이방 민족들에게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이어 미가는 하나님과 같은 신이 없음을 고백하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찬양한다. 또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언약을 지키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가의 마지막 단락에는 이스라엘의 고대 신앙 전통 두 가지가 사용되고 있다. 하나는 아브라함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출애굽이다.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은 이스라엘의 뿌리가 어떻게 세상 가운데 존재하게 되었으며, 떠돌던 시절부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셨는지를 보여준다. 출애굽 전통은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이루시고 성취하신 하나님을 보여준다. 신앙 전통은 그저 고대의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힘과 근거가 된다.
    
    
    
1. 백성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14~17절)
14절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다. 세상 전체가 욕망을 따라 움직이고 서로 죄악을 행할 때, “나”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제까지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킨다. 그가 다만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고백한 후,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옛적 출애굽 때에 그의 백성 양 떼들을 인도하시고 바산과 길르앗에 정착하게 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양 떼 된 백성들을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출애굽기 15:1~18에 소개된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기업의 산에 심으셨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노래 역시 미가의 고백(7:18)과 비슷하게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라고 고백한다는 점에서(출 15:11), 미가서는 출애굽 때를 현재 자시 시대와 견주어 비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언자의 간구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15절을 통해 그 옛날 출애굽 때 행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이적을 보이리라고 약속해 주신다. “이적(팔라)”으로 번역된 단어는 “놀라운 일들”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 초자연적인 어떤 일이 일어나 엄청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서 놀라운 일들을 행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행사하시는 일은 엄청난 것이다. 초점은 초자연적인 기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심에 있다. 출애굽 때처럼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보이실 것이다.
    
14절의 기도는 정착과 안정에 대한 것인데, 15절의 응답은 출애굽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이스라엘이 열방 가운데 흩어질 것이라는 말씀이 여러 번 예언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옛적에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처럼, 오늘도 새로운 출애굽을 행하실 것임을 의미하는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약속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구하고 찾는 자에게 그의 행하심이 약속이 되고 현실이 됨을 보여주신다. 하나님께 구할 것은 단순하게 우리의 욕망이나 충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삶이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신 일은 그저 오래전에 있었던 영광스러운 순간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의 사건은 오늘의 힘겹고 괴로운 현실을 위한 기준이 되고 나아가야 할 소망의 근거가 된다. 과거를 과거로만 여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여 오늘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이도 있다. 신앙 전통은 단순히 추억의 대상이 아닌, 오늘을 위한 지침이며 기준이자 현실이다.
    
16~17절은 기도하는 이의 고백이다. 주께서 행하실 때 열방들이 부끄러워하며 흙에 뒹굴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열방이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그들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출애굽 때에 열방이 부끄러워하고 낙담했듯(출 15:14~16),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는 일을 보고 열방이 부끄러워하며 납작 엎드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것이다. 열방은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듯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 먼저 땅에 엎드려야 한다. 17절이 그려주듯,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떠는 것이 요구된다. 자신들이 자랑하고 의지하던 모든 것들로부터 납작하게 엎드리게 될 때, 그들은 비로소 이제까지 그들을 가두고 있던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하나님 여호와께 합당한 경외를 드리게 될 것이다. 자신들만이 최고이고, 자신들이야말로 강함의 상징이라 여겼지만, 그것이야말로 ‘좁은 구멍’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비로소 땅에 엎드리게 되고 그때 그들은 그 좁은 구멍에서 나오게 된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며 그 약속을 붙잡고 기도할 때,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지 그들만의 행복이 아니라, 열방의 회복과 여호와 경외로 이어지게 된다.
    
    
    
2.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18~20절)
18~20절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은 미가로 하여금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라고 고백하며 찬양하게 한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백성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다시금 약속하시며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19절은 그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두 가지로 표현한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죄악을 발로 밟는 분이시다.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발로 밟아버린다면, 그것은 파기되고 버려지며 효력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죄악을 폐기 처분하셨고, 더 이상 힘이 없게 하셨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빠뜨리셨다. 출애굽 때,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인해 애굽의 모든 군대가 깊은 바닷속에 던져졌으나(출 15:5),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의 죄악을 그렇게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 깊은 바다에 던져진 애굽 군대가 다시 이스라엘을 뒤쫓지 못하게 되듯, 깊은 바다에 던져진 죄악들이 다시 이스라엘을 뒤따르지 못할 것이다.
    
조상들의 시대에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행하심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단어는 “인애(헤세드)”와 “성실(에메트)”이다. 헤세드가 사그라지지 않는 한결같은 사랑이라면, 에메트는 관계 안에서 거짓 없고 숨김없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거짓 없는 진실함으로 그 백성, 그의 기업 이스라엘을 돌아보셨다.
    
마지막 절은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인애와 성실로 표현한다. 옛적에 맹세하신 그대로다. 미가서에서 몇 번 사용된 “옛적”이라는 표현은 의미가 깊다. 14~15절은 옛적 출애굽 때와 같이 놀라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구하고 있고, 20절은 옛적 조상들의 때와 같이 인애와 성실을 베푸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보내실 새로운 통치자는 상고와 영원부터 정해진 존재다(5:2의 상고라고 번역된 단어가 7:20에서 옛적으로, 영원은 7:14에서 ‘옛날’로 번역했다). 이와 같은 맥락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건지시고 조상 때처럼 인애와 성실을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이 보내실 새로운 통치자와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 야곱을 향한 사랑은 우연이나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계획된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언제든 용서받지만, 이러한 은혜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애와 성실, 인자와 진리야말로 미가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최대의 근거다. 이러한 신이 어디 있으며, 누가 주와 같을까? “미가”라는 이름이 “누가 여호와와 같을까?”라는 의미라는 점에서, 미가는 미가와 미가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존귀함과 영광을 드러낸다. 그 존귀와 영광의 핵심에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옛적처럼 오늘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인애와 성실이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인자와 성실로 행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들은 마땅히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걸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은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구원 행동이 오늘에 이루어지도록 구하는 것이다. 과거를 과거로만 여기지 말고, 오늘을 향한 약속을 깨닫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신뢰의 기도는 역사의 하나님을 현재의 하나님이 되게 한다. 오늘도 악을 심판하시고 정의와 공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 은혜와 구원의 회복을 구할 때, 이방은 이를 보고 놀라게 된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지금도 이루어짐을 볼 때, 그들은 땅바닥에 엎드릴 것이다. 바로 그때 그들이 지내오던 좁은 구멍에서 나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강하고 높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좁은 구멍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작고 좁은 존재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의 크심은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세계에서 제일 강하고 크게 됨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옛적에 행하신 일대로 오늘도 행하시는 하나님, 그 약속을 따라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필적할 수 없는 분으로 고백하게 한다.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인애와 성실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그분의 강함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과 신실함에서 나온다. 이스라엘을 열국 가운데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드시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배반한 백성임에도 끝까지 언약적인 사랑을 베풀어 기어코 그들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로 바꾸시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이고, 그의 영광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구원의 목자가 되신다. 출애굽 때에 자신의 백성을 흑암에서 건지셨던 것처럼,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회복하실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잃어버린 땅을 회복해 주시고 그 땅을 다시 목초지로 만들어달라’고 간구한다(14~15절). 이는 목자가 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양으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출애굽을 완성하실 선한 목자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눅 2:13~23; 요 10:11). 지금 내가 속히 떠나야 할 애굽은 어디인가? 또한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하나님의 백성을 두렵게 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날이 도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날에, 대적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두려움으로 치를 떨 것이다. 마치 티끌을 핥는 뱀처럼, 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처럼 두려움으로 비틀거리는 비천한 존재가 될 것이다(16~17절).
    
*구원의 또 다른 측면은 심판이다. 혹시 결국 낮아질 사탄의 세력을 너무 크게 보며 두려워하지 않는가? 신앙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걷는 순례의 길이다.
    
*하나님은 신부인 언약 백성을 향해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주신다. 백성의 죄를 책망하실지라도 영원히 노를 품지 않으신다. 징계의 기간이 끝나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용서하신 죄에 대해서는 다시 거론하지 않으신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시다. 신랑이 되신 하나님이 매일 우리 삶을 이끌어 가시는데, 혹시 나는 하나님을 ‘일부’로 생각하지 않는가? 죄책감으로 무기력해진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영적인 해방과 자유를 주실 구원의 주님 앞으로 겸손하게 나아가야 하리라.
    
    
    
*주님, 징계의 시간을 인내하며, 구원의 회복을 기쁨으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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