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으로 창조한 세상,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13]
 – 2026년 01월 01일
– 2026년 01월 01일 –
창 1:1-13 말씀으로 창조한 세상,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는 성경의 첫 책으로 하나님의 경륜(經綸, 다스림)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7일의 창조를 통해 제시되는 인간과 자연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청사진(1:1~2:3)은 인류 역사 속에서 10개의 톨레도트(족보, 2:4~50:26)로 구현된다. 본문은 7일 창조에 대한 요약적 선포(1절)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영이 감싸고 있는 어두운 물 덩어리 우주가 밤낮의 교차, 대기권을 포함한 우주 공간, 물(땅)과 바다, 또한 식물이 창조되어 모든 동물과 사람이 살아갈 쾌적한 장소로 만들어진다.
 
1:1과 2:1~3 사이에 하나님의 6일 창조 사역이 차례대로 배열된다. 첫째 날 빛이 창조될 때의 ‘시원적 우주의 모습’은 하나님의 영이 감싸고 있는 물 덩어리다. 첫째 날에서 셋째 날까지는 모든 피조물의 근원(3~5절)과 형태(6~13절)가, 넷째 날에서 여섯째 날에는 그 근원의 기능이 분화되고(14~19절), 그 형태는 살아있는 생물과 사람(20~30절)으로 채워진다.
 
 
 
1. 7일 창조 요약(1절)
1절은 하나님의 7일 창조를 요약하는 선포다. “7일”은 인류 역사의 서막이자, 사람과 다른 모든 피조물이 존재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우주가 창조된 최초 기간을 말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제7일에 명확하게 드러난다(창 2:2~3).
 
“창조하다(바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구약 성경에 48회 등장하는데, 오로지 하나님만을 주어로 취하며 따라서 특징적인 신적 활동을 나타내고 있다. ‘바라’의 본질은 천지를 존재하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역할과 기능을 조직하고 부여함으로써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2. 첫째 날 “빛” 창조(2~5절)
창조 묘사의 특징은 물질의 창조에 대한 언급보다는 창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묘사에 초점이 있다. 즉, 혼돈의 상태에 질서를 가져옴으로써 우주가 존재하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의도다. 본문은 혼돈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혼돈의 반대 개념인 조직화된 세계에 관심을 보인다. 즉, 하나님의 절대주권, 목적, 질서를 드러내는데 초점이 있다는 의미다.
 
2절의 ‘혼돈’은 형태가 없고 무질서한 상태를, ‘공허’는 텅 비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두 단어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의 상황을 비유하는 ‘황폐하고 생명체가 살지 않는 황무지’로 묘사되었다(신 32:10; 사 24:10; 34:11; 45:18; 렘 4:23). 흑암도 혼돈과 연결되어 무질서한 모습으로 빛이 창조되기 이전의 어두움을 가리킨다. ‘깊음’이 직역하면 ‘깊은 바다’를 의미하기에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묘사는 그 물들이 땅을 덥고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2절의 묘사는 3절부터 소개되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특징을 가늠하게 한다. 첫째, 존재하지 않던 것이 생겨났다. 둘째,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으로 창조된다. 셋째, 어두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빛이 세상을 비춘다. 넷째, 피조 세계 위에 하나님의 질서적 통치가 시작된다.
 
2b절은 창조 이전에 하나님의 영이 심연의 수면 위에 운행하셨음을 설명한다. “영(루아흐)”은 “숨, 바람”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구약에서 성령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용어다. 이런 용례에 근거하면 ‘성령’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와 창조 사역에 성령의 능동적인 동참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첫 창조는 “빛”이다(3절). 이 빛은 ‘혼돈, 공허, 흑암’의 상태를 완전히 바꾸며 질서와 생명을 가져왔다. 이 빛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고 각각 낮과 밤으로 부르셨다. 이로써 저녁과 아침이 되며 하루가 지난다. 이런 창조 사역은 오로지 “말씀”으로 이루어졌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첫째, 하나님이 전능하심을, 둘째, 그의 말씀은 말한 그대로 실체를 이루는 살아있는 힘이 있으며(사 55:11), 셋째,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를 그대로 실현되고, 넷째, 이러한 말씀하시는 방식이 성경 전체에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시, 율법, 구원, 심판 등을 포함한 모든 통치 활동의 전반은 “말씀”을 통해 전달되고 이루어진다. 즉, 말씀을 통한 창조는 하나님이 피조물과 그의 말씀으로 소통하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피조물은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의 뜻에 맞는 삶을 살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또한 “말씀”은 잠언에서 지혜와 연결되는데(잠 8:22~31), 지혜는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창조 과정에 참여한 인격적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는 지혜가 하나님의 창조 지성(지식과 이성과 능력)뿐 아니라 성령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하는 근거가 된다. 실제로 성령은 성막이나 성전 건축, 사사와 선지자의 사역 등에 지혜를 주시는 분으로(출 31:3; 사 11:2; 미 3:8) 자주 등장한다. 신약성경은 이와같은 창조 때의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로 계시하고, 그를 통해 만물이 창조되었음을 전한다(요 1:1~18; 골 1:15~20). 이는 예수님의 창조 사역 동참, 창조 이전부터 실존(골 1:15; 벧전 1:20)하여 하나님과 영원부터 교제(요일 1:2)했음을 밝힌다. 이 “말씀”은 개념이나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인격적 실재임을 요한 사도는 증언했다(요 1:14; 요일 1:1).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4절), 빛을 낮이라, 또 어둠을 밤이라 이르셨다(5a절). 이로써 빛과 어둠의 기능이 정해졌다. 낮과 밤이 교차되기 시작하면서 날이 생겼다. 밤과 낮의 교차는 날의 계속성을 의미한다. 즉, 밤과 낮의 교차가 지속되는 질서를 세우신 것이다. 저녁이 오고 난 뒤에 아침이 오는 것이 최초로 지속되는 시간이 흐름이었고, 한 주기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또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더라’는 표현에는 하나님께서 각 날의 창조를 낮에 마치셨다는 관점을 드러낸다.
 
 
 
3. 둘째 날 “궁창/하늘” 창조(6~8절)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 ‘물과 물을 나누라’고 명령하셨다(6절). ‘궁창’을 하늘이라고 칭하셨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궁창(라키아)”은 동사 ‘라카’에서 파생했는데, 라카는 손바닥이나 천막과 같은 것을 ‘펼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고대인의 관점에서 거대하게 하늘에 펼쳐져 온 땅을 뒤덮고 있는 창공을 의미한다. 고대인들은 하늘을 거대한 덮개와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8절에서 궁창을 하늘이라고 칭했다. 물은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뉜다. 이것은 땅 위의 강과 호수, 바다에 담긴 물과 더불어 하늘에 갇혀 있는 물(비구름이 담고 있는 물)이 있다는 뜻이다.
 
둘째 날에만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반복 문장이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물의 창조가 셋째 날의 육지의 조성과 더불어 마무리되기 때문일 것이다. 낮과 밤, 또 낮과 밤의 교차와 하늘의 조화로 날씨 시스템이 작동한다. 낮과 밤의 교차로 데워진 공기는 고기압을, 밤에 식은 공기는 저기압을 형성한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순환하여 공기의 움직임, 바람이 일거나 잦아드는 현상이 생성된 것이다. 이렇게 낮과 밤의 교차가 하늘에 미치는 영향은 셋째 날 창조되는 식물의 존속에 반드시 필요한 질서다.
 
 
 
4. 셋째 날 “땅/바다/식물” 창조(9~13절)
무질서했던 혼돈의 상태가 정돈되고 질서있는 세계로 진행되고 있다. 뭍이 드러나고 물이 한 곳에 모여 ‘바다’라고 불린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풀과 채소와 초목이 종류대로 나오게 하신다(11절). 이 모든 것은 농경을 위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땅과 물의 원천, 다른 한편으로는 씨앗을 통한 식물의 재생산, 이 모든 요소는 식물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하나님이 씨를 맺는 풀과 과일나무를 종류대로 만드셨다. 이렇게 각 식물은 고유의 유전인자를 보유하고, 창조된 대로 자신의 종을 유지할 것이다.
 
저녁이 왔고 아침이 왔다(13절)는 관용구는 밤낮의 교차가 계속되는 동안 기후 체계가 작동되고, 물과 바다의 경계가 지속될 것이며, 각 식물은 모든 종을 존속할 것임을 말한다.
 
 
 
나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기 좋다고 감탄하셨다. 자신의 뜻을 따라, 자신의 성품을 따라 ‘말씀’으로 무에서 유로, 혼돈에서 질서로 세상을 지으셨다. 그 창조세계가 본래의 의도와 목표를 따라 창조되도록 오늘도 창조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신다. 비록 인간의 죄가 그 아름다움을 망가뜨렸지만,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오늘도 새롭게 창조하신 백성들과 공동체를 보면서 ‘심히 좋다’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셨고, 이 세상에 시간과 질서를 가져오셨다. 창조신앙은 모든 신앙의 시작이고 근본이다. 하나님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근원이시고 세상은 그분의 의지에 의해서만 존재하기에, 모든 피조물이 자기 자신을 알고 지으신 분을 의뢰할 때만 존재의 참 의미를 누를 수 있다.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인본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은 오히려 창조의 질서를 잃고 인간은 스스로 자기 존엄성을 해친 채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빛으로 흑암을 밀어내고 낮과 밤을 지으셨다. 어둠은 제거되지 않았지만 빛이 있는 한 무력하다. 이 빛으로 어둠을 이기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빛으로 어둔 세상에 보내셨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춰주심으로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셨다(고후 4:6). 하늘이라 부르는 궁창을 만들어 또 하나의 혼돈의 세력인 “물”을 처리하신다. 물과 물 사이에 궁창을 만들어  궁창 위와 아래의 물로 나누고, 궁창 아래의 물은 다시 바다와 뭍으로 나누신다. 혼돈이 심판의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창 7:11), 어떤 경우에도 악은 주께서 정한 한계를 넘을 수 없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근원이시다. 그분과의 연결이 생명이고, 그분과의 단절은 죽음이다. 그분과의 연결이 의미이고 가치이며, 그분과의 단절은 헛됨이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존재의 기원(어떻게 창조했나)을 설명하는 것 보다, 창조의 의미(보시기에 좋았더라)를 다룬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전제로 하기에, 존재의 창조가 아니라 의미의 창조, 가치의 창조를 다룬다.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탄할 만 하지만, 그 존재가 제 역할을 할 때 더욱 아름답다.
 
*나의 삶을 새롭게 창조(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믿음의 사명임을 잊지 않겠다.
 
*창조 전 상태를 어둠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여 어둠을 밀어내신다.’ 어둠은 제거되지 않았지만, 빛이 있는 한 무력하다. 인간은 빛의 존재가 되도록 의도 되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 안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고 빛의 열매를 맺는 존재로 창조되어 갈 것이다. 역사 역시 어둠을 몰아내고 빛의 나라를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나의 삶, 죄의 어둠도 몰아내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을 비춰주셨다. 주님의 빛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은혜를 누리는 빛 가운데의 삶을 알 수나 있었을까? 더 나아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감격을 기대할수나 있었을까? 나의 빛 되신 주님 안에서 그 나라를 소망하며 나아가리라.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다(1절). 태초에 하늘과 땅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지으셨다. 하나님은 우주의 시작이며, 역사의 시작되신다.
 
*그렇게 시작된 세계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신다(2~13절).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서 빛을 창조하셔서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고, 물 가운데 궁창을 만들어 나누고 아래 물이 모이게 하심으로 뭍이 드러나게 하셨으며, 공허한 땅을 각양각색의 풀과 채소와 나무로 채우셨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로, 혼돈에서 질서로, 공허에서 충만으로의 창조다.
 
*하나님 없는 삶은 뒤엉킨 실타래와 같아서 무질서하고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나의 믿음의 걸음이 하나님의 질서(말씀)를 따름으로 더욱 질서있고, 충만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말씀으로 창조하셨다(3, 6, 9, 11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빛이 셍기고, 물이 나뉘며, 뭍이 드러나고 풀과 채소와 나무가 각기 종류대로 생겼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능이 있어 생명을 창조하고 만물을 존재하게 한다(요 1:1~3). 또한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스리신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나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주님, 말씀으로 창조하신대로 질서와 의미가 도드라진 것처럼, 지금 여기에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하며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나의 삶을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빛의 자녀처럼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채워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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