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14-25 조화롭고 풍성하게 채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는 질서와 조화만 아니라 피조물의 역할과 번성의 축복이 따랐다. 넷째 날에는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발광체인 태양과 달이 하늘에 만들어진다. 또한 별들이 창조된다. 다섯째 날에는 하늘(공중)과 물(수중)에 생명체들이 탄생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각자의 영역을 가득 채운다. 여섯째 날에는 땅(육상)에 동물과 인간이 창조되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마무리된다. 생명체는 식물과는 달리 호흡하는 생물들을 말한다. 하나님은 호흡을 가진 생명체들에게 복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신다.
창조 이야기는 분명히 자연계를 하늘, 땅, 물로 삼중 구분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영역에 맞는 고유의 생물들을 창조하여 서식하게 하신다. 이러한 삼중적 우주관은 레위기 11장의 정결하고, 부정한 동물 음식법에서도 나타난다. 레위기 11장에서 지표면이 기는 것들의 서식지로 땅과 별개로 취급되는 것은 사실이나 지표면도 땅의 영역이다. 생명체의 세계가 공중, 지상, 수중으로 삼중 구분된 가운데 음부(스올)라는 영역은 지하의 죽음의 세계로 취급된다.
1. 넷째 날 _ “하늘의 광명체” 창조(14~19절)
넷째 날에는 하늘의 광명체들이 창조된다.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넷째 날 태양과 달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최초의 “빛이 있으라”는 명령과 더불어 지구를 비추는 태양과 달, 별들이 이미 창조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날의 식물은 태양광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하기로는 첫째 날 창조된 광명체인 태양과 달, 별들이 지구에 온전히 발현되어 계절과 하늘의 시간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 넷째 날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광명체인 해와 달을 비롯하여 별들은 낮과 밤을 구분할 뿐 아니라,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결정하는 우주의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징조’는 동양의 춘분, 추분, 하지, 동지와 같은 천계 변화의 변곡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며, ‘계절’은 사계절, ‘날’은 365일의 날짜, ‘해’는 1년의 기간을 뜻할 것이다. 따라서 3절에서 ‘빛’의 창조가 이미 지구 생태계 조성을 위한 광명체들을 포함했다고 본다면(광합성이 필요한 식물의 서식에 필수적이므로), 앞서 말한 대로 태초에는 지구의 기상 조건에 의해 하늘에 또렷이 나타나지 않았던 해와 달이 이때 드러난 것을 묘사하는 것일 수 있다.
이와 같은 논리에 따르면 14절의 ‘광명체들이 있으라’는 명령은 이미 창조된 해와 달에 대한 지구 중심적인 문학적 묘사인지 모른다. 적어도 이때부터 해와 달이 지구의 시간표 기준으로 정상적인 기능을 하도록 자리 잡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1장의 우주와 지구의 창조 과정 및 생명체의 출현 순서는 과학적으로 드러난 생명체의 출현 순서(우주/지구-미생물-식물-동물-인간)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이 과학과 전혀 무관한 오로지 문학적 신학적 진술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과도해 보인다. 만일 문자적으로 6일 창조를 믿으면서, 식물 이전에 태양은 없었다면, 하루 뒤에 즉시 태양의 창조와 더불어 식물이 자생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가능할 수 있다.
2. 다섯째 날의 창조(20~23절)
다섯째 날에 둘째 날 준비된 하늘(궁창)과 바다에 생물을 채우신다. ‘생물(네페쉬 하야)’은 숨 쉬며 살아 있는 생명체다. 하나님의 명령과 더불어 물에 생물들이 번성하여 가득 찬다. 20절 ‘번성하게 하라’의 문자적 해석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떼 짓는 곳을 떼 짓게 하라”이다. 개역 개정은 “떼 짓는 것, 기는 것(췌레츠)”의 번역이 빠졌다. 물속의 떼 짓는 생물은 물고기 떼와 바닥에서 기는 것들을 포함할 것이다. 하늘의 궁창은 공중을 나는 새들의 영역이다. 각종 새가 하늘을 날면서 지구 생태계에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생명의 역동성을 더한다. 수중 생물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큰 바다짐승들’과 ‘떼 지어 움직이는 생물들(아마도 작은 생물체들)’이다.
다섯째 날의 창조 작업을 나타내는 동사는 하나님의 창조 작업에만 사용되는 “바라”이다. 이는 매우 의도가 있는 것으로 호흡이 있는 생명체의 창조임을 알 수 있다. 새와 물고기의 창조 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어 번성할 수 있게 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법이지만, 이것은 자신이 친히 생물들을 축복하여 온 땅을 생물들로 가득 채우려는 창조주의 의지와 계획에 대한 표현이다. “복을 주다”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최초로 나타나는데, 최초 복의 대상이 생명체들, 곧 새와 물고기들이었다는 것이다.
3. 여섯째 날의 동물 창조(24~25절)
여섯째 날의 창조물은 공중의 새와 수중 생물에 이어 땅의 생물들인 육상 짐승과 인간이다. 이 단락은 짐승의 창조가 언급되고 이어지는 단락에서 창조의 절정으로 인간 창조가 묘사된다. 육상 동물들이 종류별로 구분되어 나열된다. 가축, 기는 것, 땅의 짐승, ‘땅의 짐승’은 매우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범주로 보이지만, 앞선 ‘가축’과 대비되는 ‘야생 동물’로 볼 수 있다. 새나 물고기의 경우와 달리 육상 동물에는 복이 선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복이 선언되고 생육과 번성의 명령이 내려진다(28절). 그러나 육상 동물에게는 복뿐만 아니라 생육과 번성의 명령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를 통해 생육과 번성이 하나님의 복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육상 동물의 복과 번성이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우주 창조의 절정이자 생물 창조의 절정인 남녀 인간에게 선언된 복과 번성의 명령 아래 동물이 자동으로 포함되기 때문일 것이다.
2장에서 아담이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짓는다. 반면 식물의 작명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식물계 또한 그에게 위임되었기에 인간이 식물의 이름도 지었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나님이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곳이 이 세상이고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어떤 것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경배받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첫 사흘 동안 ‘혼돈’을 몰아내고 생명의 공간을 만드신 후 이제 나머지 사흘 동안은 그 공간 안에 생명체를 두심으로 ‘공허’를 채우셨다. 처음 사흘 동안은 본질이나 공간을 만드신 후 나머지 사흘 동안은 그 본질에 나온 것들이나 공간을 주관할 주체들을 만드신 것이다. 전반부는 질서 없는 ‘혼돈’을 극복하고 후반부는 내용 없는 ‘공허’를 채우는 방식이다. 창조주를 떠나면 삶은 질서를 잃고 무의미해질 것이다. 삶의 틀과 내용 모두 주님이 창조하시도록 내어 드려야 할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해와 달과 별은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것이 광명체에 불과하며, 인격이 없는 하나님의 작품일 뿐이다. 역할을 스스로 정할 수 없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대로 존재할 뿐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주야와 시절을 나누는 충성스러운 종에 불과하다.
-바다의 ‘큰 물고기’도 하나님 주관 아래 있고, 하늘에 여러 새가 제각각 나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고 솜씨다. 하나님이 직접 하신 것도 있지만, 물을 통해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땅을 통해 생물을 내게도 하신다. 아무것도 스스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존재하게 하실 수 있고 그 존재에 생명력을 부여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을 넘어서 온 피조물에까지 미치며, 그 모든 생명이 본연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며 서로를 위해 존재할 때, 그 생명이 온전히 발휘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복 주시며 채우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첫 사흘 동안 만드신 궁창(하늘)과 바다와 마른 땅에 해와 달과 별, 그리고 갖가지 종류의 새와 물고기, 가축과 짐승을 만들어 채우시며 생물들이 번성하고 충만하도록 복을 주셨다. 나는 하늘의 해와 달을 볼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번성해서 하늘과 땅에 사는 각양각색의 생물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복을 감사하며 반응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무작정 채우시기만 하지 않으셨다. “조화”롭게 채우셨다. 그 조화는 기능이 창조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적으로 작동할 때 가능하다. 하나님은 해, 달, 별을 만드시고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심으로 세상을 밝히셨다. 이를 통해 식물과 동물뿐 아니라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살 수 있게 하셨다. 이로써 당시 사람들이 숭배했던 해와 달과 별은 단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피조물에 불과함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볼 때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뿐 아니라 나를 바라보시고 챙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을 넘어 온 피조물에까지 미친다. 인간의 탐욕으로 함부로 대할 대상이 아니다.
*온갖 생물들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궁창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땅의 짐승들을 짓되 종류대로 다양하게 창조하셨다. 어떤 모습이든 간에 모든 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답고 놀라운 피조물이다. 인간의 지혜와 기술로는 작은 벌레 한 마리조차 만들 수 없다. 그렇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다양한 생물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온갖 다양한 생물들을 한 종류가 아닌 종류대로 다양하게 창조하셨을까? 하나님의 감각이 놀랍고 신비하기만 하다. 그 지혜의 깊음을 감히 측량할 수 없다. “종류대로(민)”라는 것은 우연한 진화의 산물로 보는 것을 분명하게 반박하며,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설계도)대로 목적을 가지고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자연스레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그 목적에 따라 획일적이 아닌 다양성안에서 통일성을 이루어 “보시기에 좋았더라” 기뻐하시는 선언을 받을 수 있었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고대 근동의 해, 달, 별, 거대한 바다 생물등 주변의 동물들과 자연을 신적 존재로 숭배한 영향을 따라 뇌리에 깊숙히 박혀 있던 우상숭배 문화 속에서 그것들이 오직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동시에 천하만물의 창조가 하나님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이를 이루시는 능력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모세의 창조 이야기를 듣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어땠을까? 그들은 이미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위엄찬 임재까지 경험했다. 광야 생활 한 가운데서 일용할 양식과 시원한 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누리고 있었다. 말해 무엇하랴. 모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신화에 그치지지 않고 흥미진진한 하나님의 능력을 더 풍성하게 알게되는 충격과 감동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매일,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한 이에게는 더 풍성하고, 더 조화로우며, 더 능력있는 하나님을 만나게 한다. 하나님 백성으로 더 하나님의 조화롭고 풍성하신 은혜와 능력을 깨우치고 그 안에서 굳게 다지게하는 통로다. 바로 그 말씀이 내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시되, 풍성하고 조화롭게 채우신다. 이 은혜가 나를 믿음으로 살아내도록 이끈다.
*해, 달, 별을 창조하심으로 시간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 흘러가는 시간이 헛되게 흐르지 않고 의미있게 삶을 새롭게 하신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본, 점성술, 사주팔자와 같은 우상에게 기대지만, 그리스도인은 시간의 창조주, 시간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삶의 운명을 거는 것이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인생의 어둠을 몰아내고 영혼에 구원의 새 아침을 여신(요 8:12) 새창조가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이고, 성령을 통해 그 구원의 삶을 풍성하고 조화롭게 살아내게 하신다. 이 놀라운 은혜를 누리려면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창조의 리듬(안식과 노동의 조화)에 맞춰 살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선한 질서의 선한 빛을 발하는 시대의 광명체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 때와 시기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복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새해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주님, 공허와 혼돈에 채워주신 생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세상에 풍성함을 가져왔음을 봅니다. 나의 공허하고 혼돈스러운 삶에도 먼저 찾아오셔서 질서와 채움을 주님이 뜻대로 풍성하게 역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