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에덴동산, 인간의 특권과 한계 [창 2:4-25]
 – 2026년 01월 05일
– 2026년 01월 05일 –
창 2:4-25 에덴동산, 인간의 특권과 한계
    
하나님은 사람이 순종과 섬김을 통해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위해 최적의 거주지인 에덴동산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며 사는 사명을 주셨다. 또한 그에게 합당한 돕는 배필인 여자를 만들어 주신다. 이로써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을 이루어 결혼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순전한 공동체를 이루게 한다.
    
    
2:4의 “내력(톨레도트)”은 창세기 구조를 나누는 핵심 단어다. 4절에서 처음 나타나는 ‘톨레도트’는 모두 인간 족보와 관련하여 사용되지만, 이 부분에서 유일하게 세상의 기원 및 역사와 관련하여 사용된다. 인간 창조를 포함하여 세계 창조의 이야기가 고대 근동의 창조 신화와 비슷한 이유로 학자들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고대 근동의 창조 신화에서 차용된 것으로 본다. 창세기의 노아 홍수 또한 메소포타미아의 다양한 홍수 신화들과, 나아가 모든 대륙의 홍수 전설들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입장에서 보면, 이는 인간이 공통의 기억을 간직하면서 인종별로 확산할 때 한 가지 이야기가 다양한 판본으로 변형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겠다.
    
 
    
1. 인간 창조의 서막과 에덴동산(4~14절)
4~6절은 대지에 아직 비가 내리지 않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오는 상황(6절), 땅을 갈 사람이 없어 채소와 식물류가 창조되지 않은(5절) 가운데 인간을 창조하신다.
    
7~9절은 인간의 창조와 에덴동산의 창설을 다룬다. 인간은 땅의 흙으로 빚어진다(야차르). “사람(아담)과 땅(아다마)이란 단어는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다. 이는 인간의 존재가 땅을 근원으로 한다는 사상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기(‘생명의 호흡’)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신다. 잠언 20:27과 에스겔 37:3~9를 참고하면 인간에게 부여된 생기는 동물적인 호흡이 아닌, 영혼과 같은 것일 수 있다.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인간은 “생령(네페쉬 하야)”이 된다.
    
하나님은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신 뒤 인간을 그곳에 두신다. 흔히 에덴의 어원은 “들판, 평원”으로 알려져 있고, 전통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두 큰 강 사이의 비옥한 농토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풍요로움을 뜻하는 아람어 어근 “아단”에서 기원을 찾기도 하고, “기쁨”이라는 뜻의 동음이어 히브리어인 에덴과 관련짓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곳에 아름답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히는 각종 나무가 나게 하셨다. 동산 가운데에는 특별한 두 나무인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선악과)를 두셨다.
    
10~14절은 에덴에서 흐르는 네 개의 강을 묘사한다. 에덴은 네 강의 발원지로 묘사된다. 비손 강과 기혼강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이는 하윌라와 에티오피아 지역인(사 20:3; 렘 46:9) 구스 온 땅을 흐른다는 언급에 근거하여 이 두 강을 나일강의 두 줄기 상류인 청나일과 백나일로 추론하기도 하지만 구약에서 ‘구스’로 언급된 지역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장 합리적인 추론으로는 비손 강과 기혼강은 힛데겔(티그리스) 강과 유브라데(유프라테스) 강의 한 지류라는 것이다.
    
비손 강이 흐르는 하윌라 온 땅은 순금, 베델리엄과 호마노같은 진귀한 보석 산지임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묘사는 부와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넘치는 에덴동산의 모습을 표현한다. 또 보석 성곽을 두른 종말의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 좌우에서 열매 맺는 생명나무의 환상(계 21장; 22:1~2)을 예표하여 종말에도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히 준비됨을 알려 준다. 에덴과 관련된 이러한 보석류와 순금의 언급은 에덴이 성막의 원형임을 암시하며, 계시록에 묘사된 천상 낙원의 모형임을 암시한다.
    
    
    
2. 아담에게 부여된 직무와 금지 명령(15~17절)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며(아바드, 노동하다, 섬기다) 지키는(샤마르) 직무가 부여된다. 아담은 에덴에서 무노동의 삶을 산 것이 아니다. 그는 노동을 했다. 한편, 히브리어 아바드는 ‘예배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므로 에덴의 노동은 일종의 예배 행위였음을 추론할 수 있다.
    
하나님과 첫 교제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은 그를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고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15절). “두었다(누아흐)”는 “안식하게 하다”라는 뜻이며, 머물게 한 것(8절)만 아니라 평안과 형통을 주셨음을 의미한다. ‘경작’은 심판으로 생겨난 노동이므로(3:23), 경작하고(아바드) 지키는(샤마르) 행위는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며(아바드) 순종하는(샤마르) 일로 풀이할 수 있다.
    
아담에게는 모든 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선악과는 금지된다. 이는 하나님의 첫 명령이다. 참고로 생명나무가 금지되었다는 언급은 없다. 이에 대한 이유는 3장에서 언급된다. ‘선악을 아는 지식’은 분명 하나님께만 독점된 지식이다.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스스로 자율권을 획득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인간은 하나님처럼 자기만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것은 독립선언이며, 이러한 자기주장이 죄의 본질이다.
    
    
    
3. 돕는 배필(18~25절)
하나님께서는 독처하는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마련하신다. ‘돕는 배필’은 여자가 단지 남자의 도우미로서 열등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돕는 자가 도움을 받는 자보다 더 우월한 것도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상호보완적인 존재로(이것도 이해를 위한 설명이다. 실제로 상호 보완적이라면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전제한 것이 된다), 짝을 이룸으로 완전케 된다.
    
하나님은 모든 짐승도 흙으로 창조하시고 아담이 이름을 짓게 하신다(19절). 이름을 지어주는 부여한다는 것은 그가 생물들에 대한 통치권이 있음을 의미한다. 고대에서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이 권위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동물 창조에 대한 언급은 그들이 사람보다 늦게 창조되었다는 뜻이 아닌, 동물들이 아담처럼 ‘흙(아마다)에서’ 지음받은 생명체임을 밝힘으로 동물의 물질적 기원이 같음을 상기시킨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부르는 대로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담에게는 그의 짝이 될 만한 상대가 없었다.
    
한편, 하와를 창조하신 방법과 과정은 흥미롭다. 우선 아담을 깊은 잠(타르데마)에 빠지게 하신다. 이 잠은 구약 대부분의 용례에서 하나님의 개입으로 발생한 영적 현상으로서의 깊은 수면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그것으로 하와를 만드셨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갈비뼈로 아담의 짝을 만든 사건이 의미하는 바다. 메튜 헨리라는 신학자는 “하와를 아담 위에 군림하도록 머리로 만들지 않으셨다. 그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발로 만들지 않으셨다. 그와 동등하도록 그의 팔 아래 보호를 받도록 그의 옆구리로 만들었고, 그의 사랑을 받도록 그의 심장 곁에서 만드셨다”고 해석했다. 과연 아담은 하와를 본 순간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소리친다.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 인간의 발언인데, 어떤 측면에서는 인류 최초의 사랑 고백이다. 이 표현 역시 남자와 여자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24절은 흔히 “창조의 결혼 규례”로 불린다.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에서 결혼을 통해 새 가정을 꾸리더라도 대가족의 일원으로 족장의 통제하에 함께 거주했다. 따라서 이것은 물리적인 떠남이 아니라 관계적 의미의 떠남이다. 남자의 우선순위는 이제 더는 부모가 아니라 아내다. 둘이 합한다는 동사 “다바크”는 “어떤 것에 들러붙어 있는 상태와 한 가지에 집착하는 끈질긴 집념을 표현”하는 동사로 부부의 강한 결속을 잘 표현한다. 부부의 결속은 이처럼 견고하며, 따라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마 19:6).’
    
한편, 이 창조 시의 결혼 규례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 곧 일부일처제, 이성 간의 결혼이 하나님의 선명한 의도임을 보여준다. 그들의 벌거벗음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 측면만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최초의 부부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나 장벽이 없으며, 서로에게 열린 마음과 신뢰감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죄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의 완전했던 부부관계가 어긋났으며, 이에 따라 두 사람은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치부를 부끄러워하며 감춰야 했다.
    
    
    
나는?
-인간은 흙이다. 흙으로 지음을 받았고,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여기까지면 동물과 다름없다. 하지만 인간만은 하나님의 형상뿐 아니라 하나님의 “숨(생기)”을 받은 “생명체”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할을 위임받았다. 인간 창조는 인간의 존귀함과 한계를 동시에 잘 보여준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흙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숨을 받은 인간은 다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채워지거나 온전해질 수 없는 고귀한 존재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숨이 우리를 생명체로 만들어 하나님의 역할을 하도록 위임받은 존재다. 그렇기에 겸손하게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삶이어야 한다. 홀로 설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롯이 설 수 있는 은혜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 그러나 그 은혜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존재, 우리는 그런 존재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쁨의 동산 에덴을 다스리고 경작하게 하셨다(7~20절). 노동은 창조 때부터 인간에게 공동 운명체(?)인 자연을 가꾸고 관리하기 위해 주신 신성한 책임이었다. 죄로 인해 그 노동의 본연의 가치와 노동에서 오는 기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땀 흘리는 노동은 인간의 본질이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그리스도인은 성실하게 일하고 정직한 땀의 대가를 양식으로 취하며 하나님 나라를 일궈가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과 한계를 선명하게 규정하셨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단지 그의 소유권을 의미하는 것에서, 그들을 돌보는 책임에 더 무게를 두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래서 에덴동산을 관리하는 노동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노동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 세워놓은 질서에 “딱” 들어맞아 좋아하셨던 그 만물을 임의로 흐트러트리면 곤란하지 않을까? 하기야, 죄가 들어오기 전의 아담의 노동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만물을 유지, 관리하는 것이었지만, 죄가 들어온 이후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전락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인간은 영생하는 생명나무를 비롯한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을 수 없게 하셨다(16~17절). 생명을 생명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견줄 수 없는 존재지만, 자유를 갖고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지음받았다. 사람에게 이 금지 명령은 “올무나 함정”이 아니라 자유의 한계를 정하여 참 생명을 누리도록 돕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면서 그들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남녀는 동등한 가치를 갖지만 동시에 상호보완적이고 의존적인 관계로 존재하게 하셨다. 결혼을 통하여 남녀 간의 온전한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과 자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이 땅에서 삶은 홀로 채워가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채워가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부부관계는 인간의 창조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나왔듯이 ‘하나’ 되어야 함을 강조하신다. 남자와 여자의 창조 방법은 다르다. 그렇기에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서로 다른 남녀가 연합해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이고, 뜻이며, 의미였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가 되는 원리는 단지 부부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정, 직장, 교회 등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죄에 빠져 하나 됨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회복된 연합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엡 1:10, 22~23). 새해에는 부부, 가정, 교회, 사회 직장 등에서 주 안에서 하나 되어 가기를 기대한다.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가 더욱 그리하여, 더욱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하리라.
    
-급격하게 늘고 있는 비혼주의나, 동성 간의 결혼, 강한 자아 중심이 가져오는 고립주의, 지나친 독립주의 등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의 몸부림인지 창조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근본을 보여주시며 넌지시 일깨우신다. 인간이 철저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었듯, 하나님의 백성은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온전케 해주시려고 맺어주신 부부관계, 공동체(교회)와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건강해지는 은혜를 갈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소중한 관계들은 연약하고 부족하며, 한계가 뚜렷한 인생들이 상호 보완하고 온전한 존재로 나아가라고 베푸신 한량없는 은혜다. 그 관계를 인정할 때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특권, 흙으로 지음 받은 분명한 한계, 창조주 하나님과의 선명한 경계(선악과)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선을 지킬 때 사람다움의 가치가 한층 세련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형상다움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를 잘 인식하여 더욱 겸손하게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 안에서 하나 되어 나가겠습니다.
*주님, 인간과 하나님의 분명한 경계(선악과)가 오늘날에도 분명히 있음을 압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경계를 넘으려고 가만히 행하려는 본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마음과 시도를 기록된 말씀으로 제어해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사는 존재로 창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돕는 배필을 더욱더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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