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14-24 하나님의 심판과 원시 복음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선악과 사건의 심판으로 뱀과 여자는 원수가 된다. 여자는 해산의 고통과 남자에 대한 종속을, 남자는 소산을 얻기 위해 고통과 죽음을 선고받는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고 장차 인간의 근원적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원 계획도 선포하신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끊어지고 생명나무로 가는 길도 차단된다.
1.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14~21절)
심문을 마친 하나님의 판결이 선고된다. 판결 순서는 뱀, 여자, 남자 순이다. 먼저 뱀이 저주를 받는다. 여기서 뱀이 다른 짐승들보다 ‘더욱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 다른 짐승들도 저주를 받았다는 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1절에서 ‘다른 짐승들보다 더욱 간교했다’는 진술이 다른 짐승들도 간교했다는 뜻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편, 요한계시록 12:9과 20:2에서 “옛 뱀의 심판”을 언급한다. 옛 뱀을 용이라고도 칭하는데,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다’고 규정한다. 이 옛 뱀은 본 장에서 등장한 뱀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이다. 따라서 하와에게 나타난 뱀은 ‘사탄’이다. 결국 실제적인 뱀이라기보다는 하와의 환상 중에 나타난 뱀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추론이 타당한 이유는 아담이 에덴에서 친히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에 근거한다.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것은 완벽하게 교감을 나누었다는 의미다. 사탄은 하와에게 환상 가운데 피조물 중에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 유혹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일 후에 뱀은 사탄의 상징이 되었으며, 그것의 기는 특징에는 저주의 상징이 새롭게 부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조물로서의 뱀 자체는 여전히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편,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문자적인 이해보다는 뱀이 비참하고 굴욕적인 신세로 전락한 것을 의미한다(시 72:9; 미 7:17).
뱀에 대한 심판 선고인 15절은 흔히 “원시 복음”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뱀은 여자와 원수가 되고 이 관계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에게서 계속된다. 결국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에 치명상을 입히나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 상징적으로는 뱀의 후손은 택함 받지 못한 자의 계열을, 여자의 후손은 선택받은 자인 이스라엘을 예고하는 예언일 수 있다. 양자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가벼운 상처를 입지만, 적들은 치명상을 입고 패할 것이다.
여자에 대한 심판은 임신의 고통이다. 또, 남편을 갈망하나 남편은 여자를 다스리게 된다. 많은 학자는 이것을 여자의 남편에 대한 지배 욕구를 뜻한다고 해석한다. 이는 창세기 4:7에서 ‘죄가 너를 원한다(문자적으로 ‘죄의 소원이 너를 향한다’)”는 말에서 뒷받침된다. 죄는 가인을 지배하기를 원하나, 가인은 오히려 죄를 다스려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렇듯 여자는 남편을 지배하길 원하나 정작 남편이 그녀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최초의 남녀는 동등한 관계였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었다.
아담에게는 힘든 노동의 수고를 해야 소산물을 먹게 되는 심판이 주어진다. 또 인간은 죽음과 더불어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담은 그의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준다. 이름 뜻 그대로 그녀는 모든 산자의 어머니, 즉 인류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일시적인 잎사귀 옷 대신 오래 견디는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신다. 이것은 그들의 죄로 인한 수치를 덮기 위해 구약에서 최초로 짐승이 희생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직접 이 일을 행하셨다.
2. 에덴에서 추방(22~24절)
아담과 하와에 대한 심판 선고는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으로 이어진다. 앞서 선악과의 나무 열매가 금지될 때 생명나무 열매에 대한 금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해석은 여러 학자가 선악과만 금지되었고 생명나무 열매는 금지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 열매를 먹으면 영생한다는 효과와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열매마저 먹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한 것(22절)을 볼 때,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 열매를 아직 먹은 것 같지 않다. 아마도 생명나무 열매는 아담이 선악과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면 때가 되었을 때 그에게 영생을 허락하기 위해 준비된 특별한 선물이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그렇다면 선악과 금지 명령처럼 생명나무도 잠정적이고 조건적으로 금지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선악과 금지가 최초의 계명이라는 사실이다. 이 계명을 믿음으로 잘 지키면 생명나무의 영생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여 내쫓긴 인간은 에덴에서와 달리 땅을 개간하고 직접 수고를 하며 수확을 얻어야 한다.
그가 내쫓긴 곳은 에덴의 동쪽이다. 에덴의 동쪽이라는 표현은 에덴이 성막의 원형임을 암시한다. 성막은 서쪽에 지성소가 배치되고 맞은편인 동쪽에 성막 입구가 위치한다. 이는 왕이신 하나님이 보좌인 법궤에 좌정하여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한 배치다. 따라서 동쪽은 하나님의 맞은편으로, 동쪽으로 갈수록 하나님과 거리가 생긴다. 반대로 거기서부터 하나님께로 접근이 가능하다. 따라서 에덴동산 동쪽에 불 칼을 든 그룹들을 두어 지키게 하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봉쇄한다. 이러한 표현은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막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에덴의 동쪽이라는 방향 묘사는 성막과 관련되어 있다. 신약에서 드러난 생명나무 열매는 곧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 하신 말씀은 이에 비추어 이해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은 심문을 마치시고 뱀과 여자와 남자에게 각각 상응하는 벌을 내리셨다. 뱀에게는 저주였고, 여자에게는 고통이었으며, 남자에게는 수고였다. 간교한(아룸) 존재가 저주받은(아투르) 존재로 추락한다. 여자만 누리던 출산의 환희는 산고의 고통으로 그 의미가 크게 줄어들었고 남자는 죽는 날까지 가시덤불과 엉겅퀴의 땅을 갈아 먹을거리를 장만하게 된다.
-하늘을 읽어야 할 존재가 땅에 매여 평생 흙을 일구는 존재로, 누림의 존재가 매임의 존재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엔 에덴에서 쫓겨난다. 하나님의 주도로 시작된 창세기 2장은 에덴의 기쁨으로 끝나지만, 3장은 뱀의 유혹으로 시작되어 결국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나는 비극을 끝난다.
-뱀의 목표는 선악과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였다. 인간이 에덴에서 추방당했으니 그 목표가 달성된 듯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떻게든 인간을 지켜내려 하신다. 에덴에서의 첫 범죄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이 결론이 아니었다. 첫 인류의 범죄를 심판이 아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다. 심판 속 은총이고, 절망 속 희망이다. 죄에 대한 인간의 해결책은 가리고, 숨고, 회피하고, 떠넘기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해결책은 정죄가 아닌 속죄다. 찾으심이요, 부르심이다. 약속하심이며(15절), 덮어 주심이며, 열어 놓으심이다(24절).
-하나님이 먼저 찾아가 부르셨다는 것은 아직 관계를 끝내지 않으셨다는 사인이요.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고 대책이 있다는 뜻이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다. 아담에게 던진 첫 질문도 추궁이 아니라 성찰을 위한 질문이다. 그 질문을 통해 “왜 이렇게 어긋났는지, 왜 어둠에 숨는 존재가 되었는지” 삶을 돌아보기를 바라신 것이다. 또한 저주로만 끝내지 않고 구원자를 약속하신다. 그리고 가죽옷을 입혀주시고 에덴으로 들어올 문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심으로써 회복의 희망을 주신다.
-죄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어 준다.
*지은 죄에 대해 심판하신다. 죄로 인한 가장 큰 벌은 죽음으로써, 흙으로 돌아가는 벌이다(14~19절). 죽음은 죄의 삯이다(롬 6:23).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늘 하나님 앞에서 낮추고, 죄를 멀리하고자 애써야 한다.
*심판하시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을 유혹한 뱀을 엄중히 심판하시는 가운데 사람을 향한 구원의 사랑을 함께 보여주신다. 여자의 후손 가운데 구원자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한편, 뱀이 받을 심판의 소식은 사람에게는 구원의 소식이었다. 이 구원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죄의 저주를 이기고 참 생명을 맛보며 살 수 있다.
*죄는 고통을 준다. 죄 때문에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이 고통이 되고, 남편과 아내의 아름다운 관계가 경쟁과 지배의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노동 자체는 귀한 것이지만, 죄 때문에 우리의 노동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성도라고 해서 고통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고통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는 고통당하는 이들과 가정을 위로하고 도와야 할 것이다.
*죄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어 준다. 하나님은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다(21절). 예수 그리스도로 모든 죄의 부끄러움을 덮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찬양하리라.
*주님, 사탄의 유혹이 하나님의 품에서 쫓겨나는 비참함을 불러올 수 있음을 알고 늘 주님의 뜻을 구하며 마음을 다잡고 주님 안에 거하겠습니다.
*주님, 심판을 하시나, 여전히 긍휼을 아끼지 않으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