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셋의 족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상의 은혜 [창 5:1-32]
 – 2026년 01월 08일
– 2026년 01월 08일 –
창 5:1-32 셋의 족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상의 은혜
    
5장은 서사의 전환점이다. 전환점의 표지는 ‘톨레도트’다. 2:4에 이어 여기서 다시 나타난다(1절, 계보). 2:4에서는 우주의 내력에 이 단어가 사용되었으나, 본문을 포함하여 앞으로는 모두 사람의 내력, 즉 ‘족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1절의 ‘계보를 적은 책(세페르 톨레도트)’은 여기서만 사용된다. 이후로는 단지 ‘톨레도트’만 사용된다. 중요한 특징은 단지 인명의 목록만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사가 함께 담긴 족보다.
    
    
    
1. 아담과 그의 아들 셋(1~5절)
5장의 아담의 계보(톨레도트)다. 아벨을 대신하여 태어난 셋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에 4:17~25의 가인의 계보와 대보를 이룬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에 대해 본문은 ‘자카르’, ‘네케바'(남녀의 연합된 짝을 강조하는 ‘이쉬와 이샤’와 비교)가 사용된다. 이는 동물의 암수에도 사용되는 용어들이며, 인간의 생식 기능 및 생육과 번성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 용어 선택인 듯하다. 인간의 생육과 번성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라는 말에 암시되어 있다.
    
아담은 130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셋’이라 짓는다. 앞서 가인과 아벨을 낳았기에 셋이 첫 번째 아들은 아니다. 그런데 셋의 출생에 대한 언급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아담에서 셋으로 이어지는 선택받은 자의 계보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3절에서 또, 주목해야 할 표현은 아담이 “자기의 형상대로” 아들을 낳았다는 언급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은 이제 “자신의 형상”을 가진 자녀를 낳는다. 아담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또한 셋의 후손은 선택받은 자의 계보지만, 그들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은 죄로 인해 오염된 아담의 형상이다. 이 형상을 지닌 후손이 후대를 이어간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800년을 더 지내다 930세에 죽는다.
    
    
    
2. 셋에서 야렛까지(6~18절)
셋의 아들은 그가 105세에 낳은 에노스다. 에노스의 출생 이야기는 앞서 4:45~46에서 언급되었다. 셋은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을 대신하여 준 씨앗이며, 그가 아들 에노스를 낳음으로써 선택받은 자의 계보를 이어간다. 가인의 계열(4:45~46)과 비교할 때 비슷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이랏과 야렛, 므후야엘과 마할렐렐, 므드사엘과 무두셀라다. 또한 동일한 이름도 등장하는데, 에녹과 라멕이다. 가인 계열의 에녹은 가인이 추방된 후 낳은 첫 번째 아들이고, 셋 계열의 에녹은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 365세에 하늘로 올라간 인물이다. 가인 계열의 라멕은 포악한 폭군이고, 셋 계열의 라멕은 노아를 낳은 인물이다. 두 족보에서 모두 마지막 인물과 더불어 수직적 족보가 수평적 족보로 바뀐다. 가인의 수직적 족보는 7대손 라멕에서 멈추고 거기서 그의 네 자녀가 소개되는 수평적 족보로 전환된다. 셋의 수직적 족보는 10대를 이어가다 노아에서 끝나며 거기서 수평적 족보로 바뀌면서 세 아들이 나열된다.
    
흥미로운 것은 가인 계열의 인물들은 전혀 수명이 적시되어 있지 않았고, 셋 계열의 인물들은 장수했다는 기록이 첨부된다. 모든 인물이 천 살을 넘기지 않은 채 평균 수명 800~900세에 이르며, 므두셀라가 969세로 최장수를 누렸다. 이렇게 긴 수명은 오늘날 이해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어떤 학자들은 한 달 단위로 주장하고, 어떤 학자들은 고대 근동의 신화적 배경을 끌고 와서 문학적, 신화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수메르 신화의 왕명록은 몇 가지 면에서 비슷한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중세에서는 수비학(數秘學, 숫자에 숨겨진 신성한 관계가 있다고 믿고, 이를 통해 사회를 해석하는 신비주의적 학문)의 숫자 놀이를 찾으려 애썼다. 이런 여러 해석학적 시도가 있지만, 나는 태고의 인간 긴 나이를 문자적으로 믿는다.
    
주의할 것은 이 인간 나이를 근거하여 아담의 탄생 시기와 창조의 시기를 계산하려는 것은 어리석다. 왜냐하면, 본문의 족보를 비롯하여 성경의 족보는 언제나 중요한 인물들만을 수록하는 신학적 족보이기 때문이다. 족보에 나열된 인물들 사이에 몇 대가 빠진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현재의 족보도 인물과 인물 사이에 여러 세대가 빠졌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3. 에녹 이야기(19~24절)
야렛이 낳은 아들 “에녹(하노크, [‘전수자’라는 의미])”이 5장 족보의 주인공이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그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는데, 이후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셔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365세를 살았다. 그는 5장에서 유일하게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인물이다. 5장은 아담 후손의 죽음이 반복된다. 이는 결국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확증하는 반복이다. 따라서 5장은 창세기 3장에서 “너희가 반드시 죽는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이고, “너희가 죽지 않으리라”고 한 사탄의 말은 거짓임을 명백하게 증명한다.
    
하지만 5장은 동시에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영생의 길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생명나무의 길은 그룹들에 의해 막혔지만,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면 그 길은 열린다. 이 점에서 에녹은 5장의 죽음 이야기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생명의 이야기다. 마소라 사본은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홍수가 일어난 그해에 죽었다. 그렇다면 에녹은 노아를 예고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노아 또한 홍수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생명을 얻었으며, 또한 둘 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동일한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렇다(창 6:9).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22절)”라는 독특한 표현은 24절에서 다시 반복된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말은 삶의 여정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적극적인 믿음과 온전한 순종을 함축한다. 노아 또한 “하나님과 동행한 자”로 소개되며 그의 동행 특징을 “의, 완전함, 온전한 순종”으로 설명(6:9, 22)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에녹의 하나님과의 동행의 결론은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시므로” 그가 죽음을 겪지 않고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인물들이 900세 이상 장수한 축복에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다. ‘데려가다(라카흐)’는 ‘취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엘리야를 “취하여(왕하 2:5, 9)” 하늘로 “올리신(알라, 왕하 2:1, 11)” 사건과도 맞닿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약에서 예수의 부활 이후 승천(막 16:19; 행 1:9~12)과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게 될 사건(계 11:12)과도 이어진다. 이처럼 에녹에 대한 기록은 모든 인물에게 반복되었던 “죽었더라.” 대신 하늘로 옮겨지므로, 그의 특별한 믿음을 바라보게 한다. 에녹은 히브리서 저자가 칭찬하듯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자(히 11:5~6)였다. 에녹의 승천은 죽음 너머, 생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장차 하나님 백성에게 주어질 영생의 소망을 예고한다(단 12:2~3; 계 11:12).
    
    
    
4. 므두셀라에서 노아까지(25~32절)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무기를 던지는 자 혹은 그의 죽음이 보낼 것이라는 뜻)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 그 후 782년을 살며 자녀를 낳으며 969세에 죽었다. 므두셀라 이름의 의미처럼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임한다는 상징은 실제 그가 죽은 해에 홍수가 일어나므로 하나님의 정하신 때와 섭리가 이름에 암시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라멕(28~29절)은 182세에 낳은 아들의 이름을 ‘안식하다(누아흐)’에서 파생된 ‘노아(안위)’로 부르며 ‘이 아이가 여호와가 저주하신 땅으로부터 “우리의 일과 우리 손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위로할 것”을 바라본다(29절). 이와 같은 이름을 짓고 뜻을 명시하는 형태는 아담(3절) 이후 노아에게서 나타난다. 사용된 단어도 ‘저주받은 땅, 일, 고통’과 같은 표현은 범죄한 아담에게 선고된 심판(3:17~19)과 동일하다. 죄의 결과로 생긴 고통은 아담 이후 900년이 지난 라멕의 때에도 여전히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편, 이와 같은 표현은 저주와 고통의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소망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이런 관점은 가깝게는 노아의 600세(7:6)에 임할 홍수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참된 위로를 내다보게 하고,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종말의 심판 속에서 완전한 구원과 안식으로 이끌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구원을 바라보게 한다. 라멕은 그의 조상들의 평균 연령이 못 미치는 777세에 사망했다.
    
족보의 마지막 인물인 노아는 그가 생존한 상태에서 족보가 끝난다. 그는 500세가 되어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죽음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족보에서 노아의 생존은 에녹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베푸시는 생명의 보존과 구원을 고대하게 한다.
    
    
    
나는?
-5장의 셋 후손들의 족보는 4장의 가인 후손들의 족보와 대조되며 등장한다. 두 족보를 비교하면, 4장의 가인의 족보는 그 후손들이 이룬 화려한 문명들 중심으로 열거되지만, 아담의 족보는 오직 그들이 자식들을 낳고 살다가 죽은 이야기뿐이다. 또 4장은 가인 후손들의 나이가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5장은 모두 나이를 세 번씩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에서 어쩌면 하나님과 동행한 평범한 이들의 일상은 하나님 나라 역사에 편입되지만, 하나님 밖에서 이룬 인간의 성취는 제아무리 위대하게 보이더라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은 문명의 성취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에 더 주목하신다.
    
-가인의 족보에는 문명이 강조되고, 셋의 족보에는 수명이 강조되는 것은 문명이 발전하는데, 인간의 기력은 쇠하고 수명은 줄어들고, 천 년의 삶을 바라보던 인간이 120세까지(6:3) 줄어드는 한계 속에서, 그 한계를 모르고 세상에서 초인으로 살고자 한 가인의 후예들의 어리석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반면 셋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에노스(연약하다, 깨지기 쉽다)’임을 인정하며 살았고, 자기들이 에노스임을 알자, 생명의 근원인 창조주를 비로소 찾는다(4:26). 그리고 셋의 족보에만 보이는 “수명(나이)”은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고 쌓아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면 단 하루도 인정받지 못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한 이들의 시간은 고스란히 인정받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관점의 대표적인 인물은 가인의 후손 중 5대손인 라멕과 아담의 족보에서 셋의 5대손으로 등장하는 에녹이다. 라멕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 재판장이 되어 복수를 다짐했지만, 결국 그는 죽었다. 반면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고(히 11:5),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판단을 믿으면서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올라갔다(히 11:6). 또한 에녹은 아담의 족보에서 일곱 번째에 해당하며 365년을 살다 갔다. 완전함을 상징하는 “7”의 삶을 살다 갔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에녹의 삶은 불평하고 정욕대로 행하며 자기 자랑하는 경건치 않은 자들로 가득한(유 1:14~16) 그의 세상 속에서 의인의 심령으로 시대를 거스르며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았다(히 11:5). 어쩌면 에녹의 삶은 지금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반영한다. 악한 세상의 방해 속에서 살아가지만, 의인의 심령으로 주와 동행하며 경건하게 살아내는 것이 곧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삶이다.
    
-에녹은 5장 족보의 주인공이다. 죽음의 족보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그의 연수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삼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내용은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채웠다. 그런 그에게 ‘승천’의 길이 열렸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동행의 시작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아들의 탄생 과정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므두셀라의 이름은 ‘죽음(심판)을 보내다’는 뜻인데, 유다서에서 에녹이 그 불의한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다는(유 1:14, 15) 표현이나 그 아들(므두셀라)이 죽은 해에 홍수 심판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러 이유가 추측되겠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지 않으면(히 11:5)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예를 들어 비교할 수 있는 인물은, 이 땅에 죄와 무질서를 부채질했던 가인의 후손 라멕과 동일한 이름인 아담의 후손 라멕은 그 죄로 인해 지친 인간의 삶에 그의 아들 노아를 통해 위로를 주셨다고 고백한다. 죄에 젖어 죄를 생산하며 살기보다는 죄가 가져다준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것이 이 땅에서의 하나님 백성의 삶이 아니겠는가?
    
*5장의 시작은 가인의 첫 살인이 벌어지고 난 후 점점 포악함이 넘치는 세상으로 인한 혼돈이 이는 가운데, 처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대로 다시 사람을 묘사하며 족보를 시작하는 것에(1~2절)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녀를 지은 것을 다시 언급된 것은 그렇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신 그 인간을 회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표현이 아닐까? 셋의 족보는 그 의지의 표현이자, 역사다. 그리고 마침내 그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신 대속의 구원 사건을 재조명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사건은 그저 우연이나, 즉흥적인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근원일 뿐 아니라 구원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시고 함께 하신다. 셋의 족보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상(누구를 낳고 그 후 얼마를 지내며 자녀들을 낳고 살다가 몇 살에 죽었다는 식)의 단순 보고다(4~24절). 평범한 일상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돌봄이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의 열매다.
    
*에녹의 이야기는 얼마를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의 중요성을 깨우친다. 에녹은 그의 조상 아담(930세), 셋(920세), 에노스(905세)와 그의 아들 므두셀라(969세)에 비해 356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부요하게, 혹은 이름을 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느냐다.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망각하지 않는 하루이기를 바란다.
    
*믿음과 구원의 계보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신다. 하지만 사람이 함께 감당한다. 라멕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아들 이름을 안식을 의미하는 노아라고 지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잘 전하고 믿음으로 양육하였기에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변함없이 계승되었으리라. 지금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이 믿음을 잘 전수하고 있는가?
    
    
    
*주님, 결국 아무리 이름을 남기고, 성공을 거두는 인생이어도 하나님과 동행함이 없다면 의미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제 안의 하나님의 형상에 걸맞은 삶을 살아내도록 오늘도 도우실 줄 믿습니다.
*주님, 평범함이 쌓여 하나님의 역사가 됨을 믿습니다. 내가 이룬 역사를 자랑하며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의 종말을 알게 하셨으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상을 소중히 채워가는 은혜를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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