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심판과 은혜, 구원의 방주 [창 6:1-22]
 – 2026년 01월 09일
– 2026년 01월 09일 –
창 6:1-22 심판과 은혜, 구원의 방주
    
인간의 죄가 최고조에 이른다. 인간의 부패와 타락은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불렀다. 당시는 폭력과 성적 일탈로 얼룩졌으며 폭압적인 통치자들뿐 아니라 모든 육체가 부패했다. 노아 시대의 무질서한 세상이 씁쓸하기만 하다.
    
    
    
1. 번성, 그러나 더욱 혼돈해진 세상, 하나님의 한탄과 심판 선고(1~8절)
하나님께서 번성의 복을 주셔서 인류는 죄악 가운데서도 번성하기 시작한다. 1절에서 ‘사람의 딸들이 나니’라고 언급한 것은 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힌트를 제공한다. ‘하나님의 아들들(브네 엘로힘)”이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셋 계열의 경건한 남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사람의 딸들은 가인 계열의 불경건한 여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불경건한 여자들이 반드시 가인 계열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억측이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고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지만, 맥락상 경건한 자손과 세속적 자손 혹은 일반적인 남녀(혹자는 남자는 하나님에게서 지음을 받았고,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지으면 받았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4절의 네피림은 후대 아낙 자손처럼 장대한 체격과 명성을 지닌 전사 집단으로 추측된다(민 13:32~33; 수 14:15). 이들은 이후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등장한다. 문맥상으로 가인의 후예처럼 세속적 업적과 명성만 쌓은 불경건한 자들로 이해해도 무방하며, 그들 모두가 폭압적인 통치자임을 드러낸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영이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신다(3절). ‘나의 영’은 창조 때에 혼돈의 수면 위에 임재하여 세계를 정돈하며 창조를 완성한 하나님의 성령을 연상시킨다. “루아흐”는 생명의 기운을 뜻하기도 하므로(창 6:17; 7:15; 겔 37:3~9) 이는 이간으로부터 생명의 기운을 가두어 가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로 사람에게 주어진 120년이라는 표현은 수명 감소와 홍수 심판까지의 유예 기간이라는 중의적, 상징적 의미로 이해된다. 또, 노아가 방주를 짓는 기간이 120년이었다. 다만, 인간 수명이 120세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아브라함(175세), 야곱(147세), 아론(123세)이 이 기한을 넘긴 예외도 있다. 하지만 모세의 120세 이후 120년을 넘긴 인물은 없다. 이런 흐름은 모세가 예고된 기대 수명을 채운 표준적 인물이며,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의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5~8절에서 하나님은 점차 죄로 가득 차게 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신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목적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태도에 따라 이끄시는 상황과 방법을 얼마든지 유연하게 행하신다.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더불어 지상의 모든 생물을 홍수로 쓸어내실 계획을 노아에게 드러내신다. 수중 생물은 홍수 심판에서 제외되는데, 그들의 거처가 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악이 넘쳐나 심판이 확정된 세상 속에서 노아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는다.
    
    
    
2. 노아의 족보와 부패한 땅(9~13절)
본 단락은 노아의 족보를 소개하며 서사의 전환을 이룬다. 노아에 대한 인물 평가가 이어지는데, 그는 그 시대의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늘 동행하던 자였다. ‘완전한 자’란 ‘흠 없는 자(타밈)’라는 의미다. 이 표현은 흠 없는 짐승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에녹의 삶과 평행을 이룬다. 에녹처럼 노아도 홍수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 노아는 세 아들, 곧 셈과 함과 야벳을 낳는다. 노아 시대에 세상은 극도로 부패하고 포악해졌는데, “모든 육체”란 모든 사람을 말하며 이는 온 세상의 타락과 부패가 권력자와 같은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닌 전체의 문제였음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인간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죄의 임계량이 넘었다는 설명으로 그 지나침을 이해할 수 있다.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의 임계점을 넘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실행된다는 것이다.
    
홍수 심판의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의 부패와 타락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메소포타미아 홍수 신화에서는 하늘의 신들이 지상의 인구 번성으로 그들의 소음이 하늘에까지 올라오자, 불면증에 시달리고, 견디지 못한 신들은 회의를 열어 인구를 솎아내기 위해 홍수를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는 인간의 죄가 홍수의 원인이 아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전 인류의 홍수 심판이 분명한 인간의 부패와 타락임을 밝히며, 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
    
    
    
3. 방주를 지으라(14~22절)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신다. 이 나무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삼나무 종류로 추정된다. 배의 안팎으로 역청을 칠해야 한다. 방주의 크기를 지시하시는데, 가로 300규빗(150m), 세로 150규빗(75m), 높이 50규빗(25m)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현대의 선박 전문가들은 이 비율이 대형 선박이 커다란 파도를 견딜 수 있게 할 만큼 과학적으로 대단히 안정적인 비율이라고 분석했다.
    
18~22절에서는 노아 가족과 생물의 보존을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노아와는 언약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언약은 홍수 후에 체결된다(창 9:9 이하).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을 보전하신다. 노아에게는 지상의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모든 짐승이 그 종류대로 ‘네게로 나아올 것이다(20절).’ 노아는 자기 가족과 모든 짐승을 위한 식량도 준비해야 했다(21절).
    
    
    
나는?
-하나님이 후회하신다. 하나님은 ‘번성’하는 복을 주셨지만, 인간은 여전히 자기 좋아하는 대로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사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다. ‘용사’의 등장이나 ‘강포(폭력)’한 삶은 힘 있는 자의 횡포가 사회 전반에 만연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존재감을 지웠던 조상들의 죄를 반복한 것이다. 급기야 ‘보시고, 심히 좋다’ 하셨던 그 창조 세계가 이제 죄악으로 가득 차고 사람의 마음이 늘 악한 것을 보시고는 후회(한탄)와 근심하기에 이르신다. ‘후회하실’ 정도로 진정한 관계를 원하셨으나, 인간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인간이 하나님을 철저히 떠나자, 하나님께서도 자기 영을 거두신다. 수백 년 살았던 인간의 수명이 점점 120년 안팎으로 단축된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인간 세상에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능이 지배하고 힘 있는 자의 횡포만 가득했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에 인간과 온 피조물을 함께 홍수로 심판하신다. 첫 아담의 죄악으로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 큰 혼돈을 안고 살아야 했는데, 이제는 아예 처음의 혼돈 상태(창 1:2)로 되돌아가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번성(6:1)과 문명의 발전은 창조 전의 무질서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면 고대의 유명한 자들이 홍수와 함께 사라졌듯, 우리 또한 잠깐의 영화 끝에 영원한 파멸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 멸하지 않고 노아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으로 살게 하셨다. 이것은 인간을 향한 새로운 사랑의 출발이다. 홍수는 심판을 위한 심판이 아니었다.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잃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이 사랑은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증명되었다.
    
-노아에게 삼 층 높이의 방주를 짓도록 명령하신다. 심판 중에도 새 창조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신다. 땅에 있는 모든 생명의 기운이 있는 것들을 멸하는 중에도 노아와 언약을 맺어 그의 가족과 혈육 있는 동물들은 한 쌍씩 생명을 보존케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과 함께하지 않으신다(3절).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자기 욕구를 채우는데 급급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수 없다(레 11:45).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에게 남는 것은 유한한 생명에 대한 절망과 탄식뿐이다.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실 수 있도록 거룩한 삶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새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겔 11:18~19), 예수님을 통해 성령께서 그렇게 우리에게 임재하셨다.
    
*하나님은 근심하셨다. 타락한 인간들의 삶은 한탄하기에 충분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뜻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상을 통치하고 누리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라는 의미였지만, 인간은 자신이 정복해 가는 세상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죄악으로 채워갔다(1, 5절). 우리가 넓혀가는 세상이 하나님의 기쁨이 아닌 근심거리가 되어가고 있는지, 우리가 이룬 삶의 성장과 성공 속에 하나님의 의가 있는지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반응을 해야 하겠다.
    
*역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진노와 심판이 예고되는 긴장 속에서도 노아를 통해 세상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세상만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탐욕과 죄악은 그토록 기대하던 세상과 함께 종말을 맞겠지만,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는 새롭게 시작될 세계를 위한 거룩한 씨앗이 되어 생존하게 될 것이다. 악한 세상,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라도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
    
*무도한 자들의 포악질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으신다(13절). 방주는 넉넉하게 준비하게 하셨다(14~16절). 모든 종류대로 모든 생물을 다 태울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그런데 죄악된 인간만은 철저히 그 방주를 외면했다. 120년의 세월 동안 방주를 만들며 자기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방주의 빈자리가 채워지기를 기대했을 노아처럼, 복음을 전하고 나누는 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보존하고 지켜나가게 하셨다.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홍수 심판의 목적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방주에 들인 생명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먹을 식량까지 저장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확고하다.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지라는 것이다.
    
*가장 급박한 심판의 와중에서도 새 창조의 희망을 남겨두신 것이다. 멸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해 선택한 노아와 그의 가족들처럼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라도 은혜의 빛을 준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노아처럼 명령하신 대로 모두 준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좇을 때, 노아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좇았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당장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았던 일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히 11:7). 나는 오늘 무엇을 바라보고 좇아갈까? 내가 좇는 가치가 내 가치를 결정하지 않겠는가!
    
*홍수는 악에 대한 심판이다. 땅 위에 있는 포악함의 제거다.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만 심판 가운데서 구원받을 것이다. 천하 모든 육체가 멸절되는 중에 살아남을 것이다. 악이 승리하는 세상에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으신다.
    
*방주를 만들어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방주로 끌어들이고, 양식을 챙겨 가족과 함께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마른하늘에 방주를 짓는 것 역시 홍수가 온다는 말씀만큼이나 믿기 어렵고 실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순종만이 노아를 홍수 심판에서 구원할 유일한 길이었다.
    
    
    
*주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않도록 말씀으로 붙잡아 주십시오.
*주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준행한 노아와 같이 마름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댓글 남기기

매일성경 묵상

잠기는 세상, 떠오른 방주 [창 7:1-24]

창 7:1-24 잠기는 세상, 떠오른 방주    노아의 나이 600세에 대홍수가 시작된다. 이 홍수(마불)는 일반적인 물난리가 아니다. 전 지구상을 뒤덮은 압도적인 대홍수였다. 비가 내리기 7일 전에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심판과 은혜, 구원의 방주 [창 6:1-22]

창 6:1-22 심판과 은혜, 구원의 방주    인간의 죄가 최고조에 이른다. 인간의 부패와 타락은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불렀다. 당시는 폭력과 성적 일탈로 얼룩졌으며 폭압적인 통치자들뿐 아니라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의 심판과 원시 복음 [창 3:14-24]

창 3:14-24 하나님의 심판과 원시 복음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선악과 사건의 심판으로 뱀과 여자는 원수가 된다. 여자는 해산의 고통과 남자에 대한 종속을,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죄란 무엇일까? [창 3:1-13]

창 3:1-13 죄란 무엇일까?    뱀이 등장한다. 이 뱀은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간교함과 벌거벗음의 히브리어는 비슷하여 말놀이가 형성되는데, 교묘하게 인간의 운명을 예고한다. ‘인간은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