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7:1-24 잠기는 세상, 떠오른 방주
노아의 나이 600세에 대홍수가 시작된다. 이 홍수(마불)는 일반적인 물난리가 아니다. 전 지구상을 뒤덮은 압도적인 대홍수였다. 비가 내리기 7일 전에 노아와 가족은 방주 안으로 들어간다. 모든 육상 동물들이 암수 쌍으로 노아에게 모여들었다. 노아는 가족들과 더불어 모든 짐승을 배에 태웠다. 7일 후에 홍수가 시작되었다.
홍수는 지하의 깊은 샘들이 모두 터져 나오고 하늘의 창문이 열린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나옴으로써 시작되었다. 큰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이 열린다는 표현은 지구상에 쇄도한 물난리에 대한 시적인 묘사였다. 이것은 홍수가 단순한 큰비가 내린 기상이변이 아닌, 지각 변동이 수반된 대격변이었음을 말해준다. 비는 예고대로 40주야를 쏟아졌으며, 지각 변동과 더불어 모든 지하수가 터져 솟구쳤을 것이다.
인간의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이 정화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거쳐야 한다. 노아가 방주에 승선한 지 7일 후에 비가 쏟아져 40일 동안 계속되었다. 방주가 물 위로 떠 올랐고, 높은 산들도 물에 잠기며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죽었다. 오직 노아와 함께 방주에 승선한 가족과 동물들만 생존했다.
1. 하나님이 인정하신 노아(1~5절)
1절은 노아의 의로움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온 가족이 방주로 들어가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이는 노아가 당시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며 하나님과 동행하여 그 앞에 의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노아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노아 한 사람의 의로움으로 그의 온 가족도 방주로 피하는 은혜를 얻은 것이다.
2~4절은 이런 노아의 의로움이 하나님의 창조된 세계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정결한 동물 일곱 쌍씩, 정결치 못한 동물 한 쌍씩 방주로 데려가라고 지시하신다(2절). 이미 6:20에서 하나님께서는 동물들이 각 종(種)대로 노아에게 나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노아는 그에게 다가온 동물들을 방주로 들이면 된다. 새들은 다른 동물들처럼 정결함과 그렇지 못한 종류로 구별되지 않았다. 일곱 쌍씩 방주로 데려가야 한다. 3절은 이렇게 하는 이유를 온 땅에 그 씨가 살아남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새의 종(種)을 보존하기 위한 이와 같은 언급은 정결한 동물들에게도 유효하다. 정결한 동물들을 다른 동물들보다 더 많이 데려가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으로 추측한다(참고, 8:20). 그리고 노아에게 홍수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 주신다(4절). 이제 7일 후에는 40주야 동안 비를 내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실 것이다.
5절은 노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음을 6:22에 이어 다시 언급한다.
2. 방주에 들어감과 40주야 쏟아진 큰비(6~12절)
노아의 통솔 아래 그의 가족과 동물들이 방주로 들어간다. 이 단락은 홍수 심판의 참혹함보다는 하나님께서 심히 만족하신 이 세상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는 강렬한 희망을, 노아를 통해 강조한다.
6~9절은 홍수가 땅을 휩쓸기 시작하여 머문 기간은 노아 나이 600세에 일어났다(6절). 그런데 이 단락은 그전의 7일간 일어난 일들을 보여준다. 사람들과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가는 모습이 묘사된다(7~9절). 먼저 노아가 아들들, 그의 아내, 또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다(7절). 노아 다음에 그의 아들들이 언급된 것은 이들이 노아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경륜을 이어갈 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다음에 정결한 동물, 부정한 동물들, 새와 땅에 기는 모든 생물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암수 짝을 지어 노아에게로 와서 방주로 들어갔다(8~9절).
10~12절은 땅 위에 홍수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묘사한다. 방주의 문이 닫힌 뒤 7일 후에 홍수가 땅을 덮는다(10절). 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11a절)에 시작되었다. 참고로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홍수가 나기 5년 전에 죽었다(5:28~31). 이는 라멕이 노아를 통해 세상 정화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라멕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해 주시리라(5:29)”고 바란 소망이 머잖아 도래할 것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홍수는 창조 둘째 날 궁창 위아래로 나뉜 물들(1:6~8)이 합해지면서 시작되었다. 지하수가 터지고, 하늘에서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40주야 동안 지속되었다(참고, 8:2).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의 시작을 노아의 나이로 명시하시며, 홍수 심판 이후 정화된 세상에서 노아가 창조 시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어갈 자임을 나타내신다.
3. 홍수의 구체적인 상황(13~24절)
이 단락은 6~12절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방주에 오른 자들에 대한 요약과 범람한 홍수로 인해 세상에 일어난 일들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임과 동시에 홍수 심판의 엄중함을 드러낸다.
먼저 13~16절은 방주 승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지하수가 터져 나오고, 큰비가 쏟아지기 7일 전, 그날에 방주로 들어간 자 중 노아의 세 아들의 이름(셈, 함, 야벳)이 언급된다. 이는 심판 맥락에서 홍수 이후 정화된 세상에서 번성하게 될 조상이 될 것을 암시한다. 이어서 방주로 들어간 동물들이 자세하게 언급된다. 모든 들짐승이 그 종(種)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種)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種)대로, 모든 새가 그 종(種)대로(14절). 암수 한 쌍씩 방주로 들어갔다(15절). 이는 모든 동물이 노아에게로 나아올 것(6:20)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이렇게 승선이 마무리된 후에 하나님은 직접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16절).
17~22절은 홍수로 인한 땅의 상황을 알려준다. 40일 동안 홍수가 계속되면서 일어난 일련의 현상들이다. 먼저 물이 불어나서 방주가 땅 위로 떠올랐고(17절), 물 위에 떠다녔다(18절). 물이 더욱 넘쳐나면서 모든 높은 산들이 물에 잠겼고(19절), 물에 잠긴 산꼭대기에서 넘쳐난 물의 수면 사이는 15 규빗(약 7m, 20절)이었다. 땅 위의 움직이는 모든 육신(생물, 바사르),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움직이는 모든 것, 또한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21절). 홍수 이전 육지에서 인간을 포함하여 코로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다(22절).
23~24절은 하나님의 홍수 심판에 대한 묘사와 결과 요약이다. 하나님은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사람을 포함하여 가축과 기는 것과 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땅에서 쓸어버리셨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먼지를 씻어내듯이 땅에서 씻어내 버리신 것이다(23a절). 이로써 부패한 인간(바사르) 때문에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이 깨끗해져 하나님의 경륜이 구현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마련되었다. 이 정화된 세상에서 노아와 그로 인하여 방주에 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세우신 경륜(經綸, 천하를 다스림의 계획이나 포부)을 이루실 것이다. 물은 150일 동안 땅에 넘친다(24절). 이 물은 심판의 물이기도 하지만, 방주가 물에 뜰 수 있도록 노아와 방주에 탄 자들이 구원받게 한 물이기도 하다.
나는?
-하나님은 노아가 폭력과 야만이 가득한 세대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산 의로운 삶을 인정하신다. 이에 그를 새로운 시대의 동반자로 삼으셨고, 그 가족들도 함께 방주로 구원하셨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노아와 같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을 보기 원하신다.
-베드로는 노아를 일컬어 ‘정의를 부르짖던 설교자(벧전 2:5)’라고 표현했다. 그는 세상이 심판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세상을 비판만 하지 않았다. 불의와 죄에 휩쓸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알리려교 노력했다. 마지막 때가 가까올수록, 양비론자, 냉소론자들이 넘칠 것이다. 이들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함 가운데서 냉소적인 정의를 외치며 정작 세상을 판단만 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런 세상에 필요한 사람은 “따뜻한 복음주의자”다. 복음의 핵심인 사랑으로 섬기며, 희생하고, 나누는 삶이 세상을 따숩게 한다.
-목회자로서 세상을 향해 차가운 정의보다, 따뜻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살아내는데 삶을 집중해야 하리라. 정의로움을 호소하나, 정작 의로운 삶을 살아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요즘이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인 것은 노아뿐이었다. 나머지는 노아의 선포를 들으면서도 모른 체 했고, 방주를 짓는 대공사를 보면서도 모두 외면했다.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확고한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날이 예고되어 있지만, 여전히 노아 시대처럼 주의 강림 약속을 조롱하는 이들이 많다(벧후 3:4). 하지만 그날이 되고 구원의 문이 닫히면, 기름을 예비하지 못한 신부가 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0~12).” 하셨듯,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이다.
-노아 시대의 거인 ‘네피림’도 유명한 ‘용사’들도(6:4) 하나님께서 직접 닫으신 방주의 문을 열 수 없었다. 기회가 있는 지금, 이 경고를 듣고 주를 경외하는 삶으로 속히 돌이켜야 할 것이다.
-홍수 심판을 실행하시는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의 질서를 무너뜨리신다.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다시 한데 모이게 하여 홍수를 일으키신다. 궁창을 만들어 혼돈의 물(창 1:2)을 나누고 경계를 지어 보기에 좋게 하셨지만, 인간의 죄악이 다시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로 되돌리고 만 것이다. 40일 동안 땅과 하늘이 없어졌다. 이 심판으로 땅과 하늘의 모든 숨 쉬는 것들은 다 죽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곳에 샬롬과 안식은 사라지고, 혼돈이 확대 재생산된다.
-결국 방주의 문이 닫혔다. 하나님께서 직접 닫으셨다. 구원의 문이 닫힌 것이다. 은혜의 기다림에도 시효가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주신다. 선택 없는 구원은 없음을 확고하게 하셨다. 한편, 방주의 문이 닫힌 것은 누군가에게는 심판이지만, 노아와 그 가족에게는 구원이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지만, 실은 인간이 스스로 기회의 문을 닫은 것 아닌가!
*노아는 하나님께 어떤 존재였을까? 더는 가망이 없어서 하나님의 영이 떠날 만큼 악한 시대에 노아는 하나님의 위로가 되었다. 그만이 의인이었다. 그만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께 의로운 그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기로 하셨다. 그가 있었기에 가망 없는 역사를 끊고 새롭게 하기로 결정하실 수 있었다. 나는 이 시대, 나의 하나님께 그런 존재로 살아낼 수 있을까?
*인간 죄악의 결과는 참혹했다. 세상이 물에 잠겼다. 하늘의 문이 열렸고 깊음의 샘물이 터졌다. 40주야를 계속 비가 내렸다. 역창조 사건이 벌어졌다. 안식이 찾아왔고, 보기에 심히 좋았던 그 세상이 이제 물 아래 잠겨버렸다. 죄에 물든 세상을 보고싶지 않은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인간의 죄악이 불러온 참혹한 결과다.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의 죄악은 이미 노아 시대의 죄악보다 더 참담한듯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마다치 않는 하루하루이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심판하지 않으신다(1~4절).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를 의지하며 신뢰하는 사람을 끝까지 돌보시고 책임지신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몸을 숨길 때 하나님의 자녀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베푸시는 은혜와 긍휼을 받아 누린다. 노아의 의로움이 가족과 세상에 재창조,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열어준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세상과 구별되어 의로움의 걸음을 주저하지 않으리라.
*중요한 것은 숫자, 규모가 아니다. 믿음이다. 방주에는 정결한 짐승 일곱 쌍과 부정한 짐승 두 쌍, 그리고 노아와 일곱 가족과 모든 동물과 가축 암수 한 쌍씩뿐이었다(5~9절, 13~15절). 하지만 새 인류를 이루고, 온 지면에 생물들을 다시 번성하게 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것을 맡기시든 “주님,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라고 자족하고 감사하며 사역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 노아 이전부터 오래도록 악한 세상에 대해 심판하실 것을 경고해 오셨고, 회개할 기회도 주셨다(유 1:14~15). 그러나 당장 실현되지 않는 일들이었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조롱했다(벧후 3:3~4). 노아의 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기록된 말씀대로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은 생명과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방주를 제작한 노아라도 방주 문을 여닫을 권한이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그 문을 닫고, 다시 여실 수 있다.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 우리의 복음 전파의 걸음이 분주해야 할 이유다. 언제 닫힐지 모르지만, 이미 그때를 예고하신 지 한참 되었다.
*주님, 인간의 죄악이 세상을 망쳐버렸습니다. 망친 세상 다시 새롭게 하시려고 새 창조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찬양합니다.
*주님, 노아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낸 그의 올곧은 걸음을 본받겠습니다.
*주님, 방주의 문을 직접 닫으실 때, 노아의 가족 외에 아무도 오지 않는 인간의 완악함이 후벼팠을 주님의 마음이 고통스럽게 다가옵니다. 이제 물속에 가라앉아야 할 인생들을 보시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 가늠조차 못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걸음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오늘을 믿음으로,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