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설상가상… 전화위복… [창 12:10-20]
 – 2026년 01월 18일
– 2026년 01월 18일 –
창 12:10-20 설상가상…. 전화위복….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람… 마침내 세겜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는 선명한 음성을 듣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그곳에 제단을 쌓아 놓고는 다시 벧엘로 옮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또 점점 남방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오늘날 가나안 중부 지역에서 브엘세바에 이르는 남부 지역까지 거처를 옮기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땅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남방(브엘세바)에 거주할 때 기근이 찾아온다. 이에 아브람은 가뭄을 피해 애굽에 거류하려고 내려간다. 여기서 거류한다는 원어의 뜻은 장기체류의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추정하자면 세겜, 벧엘을 거쳐 점점 남방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찾아온 기근을 피해 아예 장기간 기근이 휩쓰는 남방지역을 떠나 기근 없는 애굽에서 장기 체류할 목적으로 내려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은 이렇다. 12:6은 하란을 떠나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아브람을 기다리는 것은 이미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이었다고 기록한다. 그 땅을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도착한 그날 밤이었다(7절). 그런데 어쩌랴…. 이미 이 땅은 가나안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었다. 그래서 제단만 쌓아 놓고는 벧엘로 옮긴다. 하지만 벧엘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거기에서도 제단만 쌓고 남방으로 옮긴다. ‘가나안 사람들이 살기 좋은 중부의 산림지대를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막 하란에서 도착한 아브람은 어떤 관계나 기반도 없는 그 땅을 단지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의 자손들에게 주셨다는 환상만으로 그들과 충돌을 일으킬 만한 여력이 없었다. 한마디로 밀리고 또 밀려 남방으로 내려갔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밀려 내려간 남방은 우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근이 찾아오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지역이었다. 우르나 하란의 풍부한 자연을 경험한 아브람에게는 여간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연환경이 비슷할 수 있는 세겜이나 벧엘은 이미 정착한 가나안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밀려나 버렸다.
 
 
 
1. 설상가상…. (10-16절)
하나님이 보여주신 땅(세겜, 벧엘….)은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밀려 내려간 남방…. 설상가상 기근이 덮쳤다. 그것도 웬만하면 견디겠는데 “심한 기근”이 덮쳤다(10절). 설상가상이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려니 걱정되는 것이 딱 한 가지다. 아내 사래의 미모다. 집안에서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야 상관없겠지만 애굽은 도시다.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인정할 만한 미모다. 이에 아브람이 걱정이 된다. 이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아내가 자기 소견으로 죽임당할 수 있는 이유가 된 것이다. 설상가상이다.
 
여기에 자기 꾀(계략)를 생각해 낸다. 동생(누이)이라 하자. 실제로 누이였으니 틀린 말은 아닌데. 찜찜한 대화가 부부 사이에 오간다. 아브람은 이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남매지간이라 하면 최소 죽임당하지는 않겠다고 여겼다. 문제는 아브람의 걱정거리였던 그 미모는 바로 왕도 탐낼만한 미모였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설상가상이다.
 
바로는 지참금을 주고 사래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아브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참금(양, 소, 노비, 수나귀, 낙타)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땅에서는 ‘이런 능력(?)이 없어 가나안 사람들에게 밀려 남방으로 내려갔다 설상가상 심한 기근이 덮쳐 애굽으로 내려왔는데. 여기서 재물이 들어오다니. 그러나 이 재물은 피눈물 날 재물이었다. 아내를 판 재물이 될 수 있었다. 자기 꾀에 예상 못 한 상황이 겹쳐 설상가상. 이런 혼란도 없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벗어난 인생이 이런 설상가상의 삶이 아니겠나. 하나님 없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지만 삶은 정리되지 않고 무질서만 더해진다. 설상가상이다.
 
 
 
2. 하지만, 하나님의 개입과 상황 정리(17~20절)
아브람의 연약한 불순종이 가져온 혼란을 정리할 길을 하나님께서 내신다. 바로에게 “큰 재앙들”을 내리신다. 원문은 ‘큰 재앙’이 아니라 ‘큰 재앙들(다른 의미는 다양한 방식의)’이다. 아마도 바로가 사래에게 가까이하지 못 하도록 하는 어떤 재앙들이 한꺼번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 나라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재앙에 대처하게 하여 사래를 품을 시간조차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의 입장에서 하찮은 이방인 여인 하나를 취한 것이 ‘큰 재앙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원인이 된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여러 다양한 재앙들이 바로에게 임한다. 이에 바로는 즉각적으로 깨닫는다. 아브람을 부르고 책망한다. “어찌하여(18, 19절) 그리고 결혼 지참금으로 주었던 것과 사래를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려보낸다.
 
바로에게도 설상가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상황을 정리하신다.
 
*한편, 아브람의 애굽탈출은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기적적인 일과 다름이 없다는 측면에서 출애굽의 모형이다. 일개 이방인이 바로에게 결혼 지참금을 받는 일 하며, 하나님께서 큰 재앙들을 내리셔서 사래를 바로의 욕정에서 보호해 주신 것이 그렇다. 더 나아가 이 재앙들이 사래와 관련이 있고 아브람의 부인이었다는 사실들을 어떻게든 알게 하셔서 진노의 처단이 아니라 서둘러 쫓아내게 하셨다. 하나님의 개입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어떤 혼란도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된다.
 
 
 
3. 전화위복(20절)
큰 기근이 들어 피하듯 들어간 애굽에서 큰 재물을 받아 나온다. 기근을 피해 갔다가 인생의 더 큰 기근을 만날 뻔했지만 결국 풍요를 채우고 나왔다. 기근이 삶을 덮쳐 말라죽을 것 같은 심령이 애굽이면 좀 괜찮으려나 했으나 더 바짝 마르는 영혼이 될 뻔한 그곳에서 확실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도무지 상상도 하지 못한 기막힌 섭리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과 신뢰를 가득 채운 심령으로 애굽을 빠져나온다.
 
큰 기근이 든 지옥과 같은 환경을 피해 천국인 것 같은 애굽으로 피했으나 그곳이 더 지옥이었음을 절감하고 하나님 없는 삶의 결단과 행동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경험하여 진정한 천국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동행)임을 삶에 새겨 돌아온다.
 
전화위복이 아니면 설명할 길 없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하나님의 개입과 섭리가 아니었다면, 누리지 못할 설상가상, 전화위복의 은혜이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전화위복의 근원이시다. 그 은혜의 샘이 마르지 않는 인생이 복 되다.
 
 
 
나는?
-기근과 애굽으로의 이주로 인해 아브람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다. 생명을 부지하려는 아브람의 속임수로 인해 바로는 사래를 아내로 삼았고, 이에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 일을 바로잡으셨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아브람의 연약한 믿음과 인간적인 잔꾀를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룰 때까지 그를 보호할 전능자이심을 분명히 알리신다.
 
-10절, 하나님께 묻고 그 뜻을 좇아야 한다.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의 최대 실수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약속의 땅을 벗어난 것이다. 낯설고 새로운 땅에서 만난 기근이 아브람이 약속의 땅을 버리고 떠나게 한 것인데, 이는 결국 그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상황과 말씀 중 무엇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는가? 지금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믿음으로 사는 삶에서 늘 되묻는 질문이다.
 
-약속의 땅에 기근이 닥쳤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으로 부르셨지 고난이 없는 땅이나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땅으로 부르지 않으셨다. 그 땅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땅에 살 만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추는 것이다. 기근이 있는 약속의 땅은 기근 같은 인간의 상태에 믿음을 형성하기 위한 조건이다.
 
-11~16절, 정직함을 상실한 계획, 임기응변을 지나치게 기대는 계획은 수치(羞恥)를 불러온다. 생명과 가산을 지켜내기 위한 아브람의 치열한 노력이 가련하고 처량해 보인다. 그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보여야 할 정의로운 자세가 온 간데없기 때문이다. 이전의 사래는 아브람의 이복누이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을 함께 성취해야 할 아내로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용할 존재가 아닌, 자기 생명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존재다. 악한 과정에 선한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선한 결과는 반드시 계획과 과정도 선하다. 좋은 결과만 구하지 말고,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정직함과 성실함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
 
-원하면 무엇이든 가지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애굽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지혜를 의지했다. 그 힘 아래서 재물은 얻었지만, 아내는 빼앗겼다. 자기 안전에 대한 위협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위태로워졌다. 복의 근원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화의 근원이 되고 만다.
 
-17~20절, 하나님은 은혜와 신실함으로 자신의 언약을 이루어 가신다. 사래는 아브람의 아내일 뿐만 아니라, 열국의 어머니가 되어야 할(창 17:16), 언약의 또 다른 당사자다(롬 9:9). 그런데 사래를 누이라고 한 아브람의 거짓말로 사래는 바로의 궁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아브람은 아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사래는 무사히 아브람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아브람과 그의 자손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것이다. 나는 돌아오도록 가르쳐주시고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즉각 반응하는가?
 
-아브람은 약속을 위태롭게 했지만, 하나님은 그 약속을 회복하셨다. 아브람은 이방인에게 꾸짖음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재앙으로 이방 왕을 꾸짖으셨다. 아브람은 약속의 땅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신다.
 
 
 
*주님, 주님의 뜻을 좇지 않는 걸음에는 언제든지 주님과 상관없는 결정으로 화를 자초할 수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악한 과정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음도 기억하겠습니다.
*주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식 결정이 아닌 말씀의 약속을 따라 우직하게 붙잡는 믿음의 인내와 능력을 구합니다.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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