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시 시작하는 믿음의 행보 [창 13:1-18]
 – 2026년 01월 19일
– 2026년 01월 19일 –
창 13:1-18 다시 시작하는 믿음의 행보
 
애굽에서의 큰 죽음의 위기가 하나님의 개입으로 해결되고 소유도 더 풍부해졌다.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 간에 다툼이 생겨 헤어질 상황에 이른다. 아브람은 주거지의 선택권을 먼저 룻에게 넘김으로써 불필요한 언쟁이나 문제를 만들지 않고 평화롭게, 지혜롭게 갈등을 해결한다. 롯은 눈에 보기 좋은 소돔 땅을 선택하여 떠났지만,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남는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 그가 보고 두루 다니는 땅을 아브람과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1. 가나안으로 복귀한 아브람(1~4절)
아브람은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가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가뭄을 피해, 주님과 소통 없이 떠난 애굽이었고, 큰 위기를 만났지만, 주님의 큰 은혜로 더 큰 ‘축복(가축뿐 아니라 금과 은도 풍부함)’과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풍부했다(카베드)’로 번역된 단어는 ‘심히 무거웠다’라는 의미로 일반적인 ‘풍부함’을 묘사하는 ‘라브’를 사용하지 않고 ‘카베드’를 사용하여 언급한 것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매우 ‘심했다(카베드)’는 표현과 대조하여 선명한 대조 효과를 위한 것이다. 
 
또, 금과 은이 아브람의 재산 목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앞선 본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모세는 어찌되었든 애굽에서 아브람이 여호와께 복을 받았음을 강조한다. 표현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애굽 백성들에게 은과 금을 받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출 12:35~36). 이를 통해 아브람의 애굽 피신과 가나안 복귀는 출애굽 사건을 예고하는 사건으로 이해해도 된다. 
 
아브람은 정확히 역순으로 가나안 땅에 복귀한다. 그들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이르는데, 이곳은 이집트로 가기 전에 거처로 삼았던 곳이다. 거기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제사한다. 
 
 
 
2. 아브람과 롯의 결별(5~13절)
5~9절은 아브람과 롯의 종들이 목초지를 둘러싸고 분쟁을 벌인 이야기다. 롯도 아브람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풍성하게 받아 심히 많은 가축을 보유하게 되었다. 아브람은 이런 측면에서 이미 복의 통로가 되었다. 그런데 가축이 많아서 그곳의 목초지는 롯과 함께 목축을 하기에는 매유 협소하였다(6절). 그들은 애굽에서 돌아온 후 유목민의 삶의 형태에서 이제 정착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정확히 표현하면 반-유목민의 형태다. 영구적인 주거지를 확보하고 주변 지역을 제한적으로 돌아다니는 형태다. 
 
이런 형태의 삶은 우물의 존재가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우물은 생존을 위한 대단히 중요한 자산이 된다. 자연스럽게 세력이 커지면서 자주 목초지와 우물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창 26:12~22; 36:6~7). 아브람과 롯 사이에도 각자의 목자들 간에 목초지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한다.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거기 있었다는 말이 부연된다. 그만큼 그 땅이 더는 여유가 없었음을 시사한다. 추측하기로는 아브람과 롯이 정착과 목초지를 두고 분쟁하던 지역은 이 두 종족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브람은 롯에게 형제 의식을 강조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는 조카 롯에게 통 큰 양보안을 내놓는다. 롯에게 그가 원하는 땅을 먼저 선택하라고 한다. 당시 관례대로 하면 아버지가 없었던 롯은 아브람에게 입양되었을 것이다. 아브람이 롯의 후견인이면서도 그의 권리를 양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쟁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었는데, 아브람의 통 큰 양보는 결국 하나님의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10~13절은 아브람을 떠나는 롯을 보여준다. 롯은 자신의 눈에 가장 좋아 보이는 요단강 유역의 땅을 선택했다. 수자원이 풍부하고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그 땅은 목축에 가장 적합한 땅으로 보였을 것이다. 롯이 바라본 땅은 요단강 남단 지역과 사해 서쪽 지역이었다. 그에게는 ‘여호와의 동산’ 즉 에덴동산과 같이 보였고 애굽 땅과 같아 보였다. 그런데 이 지역은 약속의 땅 변두리였고, 훗날 롯의 후손은 거기서 동쪽으로 더 나아가 요단강 동편에서 모압과 암몬이 주인이 되었다. 즉 롯은 아직은 약속의 땅을 선택했지만, 그곳은 변두리였고, 그곳에서 더 동쪽으로 진출하는 순간, 약속의 땅을 등지게 되는 땅을 선택한 것이다. 
 
롯이 관찰한 요단 계곡과 사해 서편에는 샘들이 많아 여리고, 엔게디, 그리고 더 남쪽으로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여러 도시에 사람이 몰려 살았다. 창세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에는 그곳이 매우 기름지고 물이 넉넉한 땅이었다고 보고한다. 반면 사해 서편 반대쪽에는 고지대로 강과 하천이 없고 샘도 많지 않아 물이 부족했으며, 항상 비를 기다려야 하는 지역이었다. 롯의 선택으로 인해 아브람은 물이 넉넉하지 않았던 벧엘 근처의 가나안 땅에 머물게 된다. 
 
여기에서 등장한 ‘동쪽’ 모티브는 창세기 초반에서 인간이 죄를 지은 후 하나님과 멀어질 때 동쪽으로 떠난 것으로 묘사한다(창 3:24; 4; 16; 11:2). 롯이 동쪽으로 이동한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는 소돔에서 멈추며 거기에 거주한다(창 14:12). 하지만 소돔은 최악의 범죄 도시였다(13절). 결국 롯이 선택한 땅은 심판을 받았으며, 그의 후손들인 모압과 암몬은 결국 약속의 땅 경계선을 넘고 만다. 
 
 
 
3. 이 땅을 네게 주리라(14~18절)
롯이 떠난 후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셨다. 그분은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약속의 땅 사방을 둘러보라고 말한다. 벧엘은 가나안 땅 동서남북이 모두 보이는 봉우리가 있다. 서쪽으로 지중해, 동쪽은 요단강 건너의 산들, 북쪽으로 헤르몬 산, 남쪽으로 사해가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땅과 후손의 약속을 확증하신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다.’ ‘네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번성케하리라’에서 ‘땅과 후손’이 아브라함 언약의 두 가지 핵심 요소이며, 이후 오경과 성경의 역사는 이 두 가지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 땅 사방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니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그 땅의 사방 전체가 아브람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상징적 표현이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이미 그 땅을 북에서 남으로, 다시 남에서 북으로 이동을 거듭했고, 이후의 삶에서도 이 땅 전역에서 많은 사건들에 연루되며, 활동 범위가 북쪽의 단 지역까지 이른다(창 14:14).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헤브론으로 이동함으로써 실제로 그 땅을 두루 다닌다. 그곳은 벧엘에서 남쪽으로 약 46km에 위치한다. 헤브론은 이후 역사에서 벧엘 못지않게 정치적, 종교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중심지가 된다. 헤브론 인근의 마므레 라는 곳에도 세겜 땅의 모레처럼 상수리나무들이 있었다. 벧엘과 헤브론의 중간 지점에 예루살렘이 위친한다. 아브람은 이곳 상수리나무 아래(이방인들의 제의 장소로 추정됨)에 새롭게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분께 예배를 드렸다. 
 
 
 
나는?
-애굽에서 나온 아브람은 땅의 약속을 받은 후 맨 먼저 예배로 화답한 지역인 벧엘과 아이 사이(12:7, 8)로 올라간다. 애굽 행의 실수를 통해 깨달은 후 다시 하나님만이 가나안의 유일한 주인임을 고백한 것이다. 또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눈을 들어’보게 하신 곳을 보고 헤브론으로 이동한 후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 가나안의 신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그 땅의 주인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아브람은 가나안과 브리스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골육’끼리 다툴 수 없어 롯에게 거할 땅을 먼저 선택하게 한다. 자기 안전을 위해서 약속의 땅을 떠났던 이전의 태도와는 달리 가나안 땅이면 어디든 하나님이 지키실 것을 믿었기에 양보한 것이다. 피 말리는 경쟁을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라도 삶의 성패는 경쟁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고, 먼저 배려하고 나눌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롯은 애굽과 에덴동산처럼 물이 넉넉한 요단 들을 선택하고는 동쪽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약속의 땅 가나안의 경계이며, 훗날 심판을 피하지 못한 큰 죄인들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하고 있다. 롯이 ‘눈을 들어’ 영적인 시각이 아닌 물질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음을 암시한다. 
 
-롯이 ‘눈을 들어’ 풍요로운 땅을 선택하여 떠난 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금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시되 이번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확증해주신다. 이로써 이 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롯에게 먼저 거할 땅을 선택할 권리를 양보한 아브람의 믿음을 인정하신 것이다. 아브람이 ‘눈을 들어’ 본 동서남북은 롯이 차지한 땅까지 포함한다. 그가 보고 밟는 모든 땅이 아브람의 몫이 될 것이고, 땅의 티끌만큼 많은 자손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예배하는 사람과 함께 하신다(1~4절, 18절). 아브람이 다시 쌓은 제단은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증표로 볼 수 있다. 즉, 제단을 쌓은 자리는 회복의 자리이고, 다시 소명을 깨닫는 은혜의 자리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 없이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즉시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은 일하는 자가 아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양보할 수 있다(5~9절). 아브람은 가족의 어른으로서 얼마든지 먼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지만, 조카 롯에게 과감히 양보한다. 이는 곤경 속에서 자신을 돌봐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모든 땅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달려있고 내가 선택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의연하고 대범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부재는 곧 재앙이다. 땅이 기름지고 물이 넉넉해도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13절)’이 있는 땅은 영원히 번성할 약속의 땅이 아닌, 곧 심판 받을 재앙의 터전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추구하는 자리는 어디인가?
 
*하나님은 인간의 기대와 한계를 뛰어넘어 일하신다(14~17절). 조카 롯에게 땅의 선택권을 양보하고 가나안 땅에 머물고자 한 아브람의 외로운 마음을 위로하신다. 눈으로 보는 모든 땅과 종과 횡으로 다니며 밟는 모든 땅을 아브람과 그 자손들의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은, 하나님을 신뢰한 아브람의 결단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확인해 주신다. 작은 이익에 눈이 멀면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소망 안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주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동행을 먼저 바라며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눈을 들어 영적인 시각으로 사방을 바라보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눈으로만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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