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무너지는 소돔, 무기력한 인생 [창 19:24-38]
 – 2026년 01월 28일
– 2026년 01월 28일 –
창 19:24-38 무너지는 소돔, 무기력한 인생
    
하나님의 심판이 의인 열 명이 없이 죄로 물들었던 소돔과 고모라에 임했다. 유황과 불을 보내 죄악의 도시를 뒤엎으셨다. 심판의 범위는 소돔과 고모라뿐 아니라 롯이 탐냈던 주변의 넓은 목초지와 성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 땅에서 나는 모든 식물과 작물들이 포함되었다. 소알도 주변 성 중 하나였지만, 롯의 간청으로 심판을 면했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당부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었고, 탈출한 롯의 두 딸은 그들의 아버지를 통해 자식을 낳아 대를 잇고자 했다. 소돔과 고모라의 삶의 방식과 다를 바 없었다.
    
    
    
1.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24~26절)
여호와께서 심판 버튼을 누르자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이 쏟아졌다. 이 유황불 심판은 유황 성분으로 가득한 역청이 생산되던 소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할 때, 지상의 대격변으로 인한 파멸로 이해될 수 있다. 어떤 학자는 “과학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지진으로 인한 대격변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맹렬한 지진이 발생하는 동안 고열, 가스, 유황, 역청이 갈라진 지각층의 틈새를 통해 뿜어져 나왔을 것(비교, 14:10)”으로 추측하며 흔히 지진에 동반되는 벼락이 가스와 역청에 불을 붙였을 것으로 해석한다. 25절(29절에서도)의 ‘엎으셨다’라는 표현을 통해 소돔과 고모라가 위치한 지역이 물댄 동산처럼 물과 초지가 충분한 보기에 좋은 땅이었지만, 그 이후 오늘날과 같은 황무지와 같은 땅이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만다(26절). 그녀는 소돔 사람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소돔에 두고 온 모든 것들이 아까웠기에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주님께서도 언급하신 것처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 9:62)’라고 하신 말씀을 선명하게 연상시킨다.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것은 추측하기로 대격변으로 지하의 유황과 가스가 분출될 때 소금 덩어리들도 솟구치면서 롯의 아내를 덮쳤을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2.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는 아브라함(27~29절)
아브라함은 이 모든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으로 다시 갔다. 그곳은 여호와 일행이 소돔을 내려다본 장소이자 아브라함이 여호와에게 그 성을 위해 중재를 시도한 곳이다. 이미 그 성의 심판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해가 뜨자마자 상황을 보기 위해 그 장소로 달려간 것이다. 이미 심판이 실행되어 소돔과 고모라 및 주변의 땅들에서 연기가 옹기 가마에서 피어오르는 것처럼 솟구치고 있었다(2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롯을 살려주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롯을 구출해주셨다고 언급한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롯이 구원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입어 강권적으로 붙들려 소돔에서 빠져나와 구출되었다. 동시에 여전히 부족하지만, 의인으로 평가되었으며, 소돔을 떠나기로 믿음의 선택을 한 사람이다. 또한 옷을 향한 아브라함의 끊임없는 기도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그분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의 결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3. 옷이 모압과 벤암미를 얻다(30~38절)
30~35절은 대를 잇기 위한 두 딸의 그릇된 시도를 서술한다. 소알로 피신한 롯은 그곳에서 살기를 두려워했다. 왜 그랬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추론을 할 수 있다. 빈털터리로 빠져나온 상황이기에 모든 것을 잃었다. 가난한 그가 소알 땅에서 과연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물론 아브라함은 최선을 다해 지원했을 것이다. 또, 신변 보호가 과연 보장되었을지 의문이다. 소돔에서 성문에 앉아 있을 만큼 영향력이 있었다지만, 소돔의 폭도들에게 결국 ‘이 자가’라는 말을 듣고 봉변을 당했을 만큼 롯은 언제나 주변인이었다. 소알에서도 그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롯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이 그토록 가기를 거부했던 산으로 올라가 동굴에 거주한다(30절).
    
동굴에서 삶은 그의 비참한 상황을 말해준다. 가진 재산이 없었기에 정상적인 거주지가 아닌 동굴로 들어갔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동굴은 무덤으로 사용하거나, 도망자들이나 산적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더구나 롯에게는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도 없었다. 그의 삶은 완전히 막을 내린 듯 보인다. 더구나 이어지는 20장에서 자신의 후견인이었던 아브라함이 새로운 거처로 떠나면서 롯과 완전히 결별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롯은 독자적인 계보를 이루면서 독립된 두 민족의 조상이 된다.
    
이렇게 롯의 족보와 후손들의 역사 시발점이 된 사건이 본문에서 소개된다. 롯의 큰딸은 작은딸을 꼬드겨 자신들의 씨를 낳아 집안의 대를 이을 공모를 한다. 큰딸은 롯도 이제 늙었고 인생의 순리를 따라 배필을 구할 방법이 이 땅에는 없다고 말한다. 이미 두 딸은 소돔 성에서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처지였고 폭도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었다. 롯과 딸들의 처지에서 그 지역에는 더 이상 믿을 남자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살아남은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도 빈털터리가 되어 동굴에 기거하는 가난한 롯의 딸들이자 이방 여자인 그녀들을 며느리로 삼으려 했을지도 의문이다.
    
결국 롯은 아들이 없어 대가 끊길 위기에 있다. 큰딸은 이러한 상황에서 끔찍한 음모를 꾸민다. 아버지를 술에 잔뜩 취하게 해서 동침한 뒤 후손을 이어가자고 계획한 것이다. 곧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근친상간은 후대의 레위기에서 사형 및 끊어짐의 중벌과 더불어 금지되었다(레 18, 20장). 거기에 가장 가까운 근친인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는 적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로 생략된 것이다. 저자(모세)는 당시 관례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든 이방 민족들에게든 용인될 수 없는 반인류적 행위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롯의 두 딸은 아버지를 만취하게 만들어 이 일을 감행했다. 이렇게까지 한 것은 그만큼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딸과의 성적 결합은 허용될 수 없었으며, 그런 방식의 대 잇기는 상상 밖의 일이다. 이런 두 딸의 도덕적 관념은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에서 받은 영향이다. 무엇보다 두 딸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이 오랜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음이 자명하다. 이 이야기는 노아가 술에 취한 이야기와 비슷한 구조이고, 이에 따라 자녀들의 미래가 결정된 공통점이 있다.
    
36~38절은 롯의 두 딸이 각자 아들을 낳은 후 이름을 각각 모압과 벤암미로 지었다고 서술한다. 모압의 이름 뜻은 ‘아버지로부터’이며, 벤암미는 ‘내 백성의 아들’이다. 모압은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벤암미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이들 민족은 두 딸의 행동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들의 처지에서 두 딸의 행위는 오히려 용기 없이는 불가능했을 이야기로 대를 잇기 위한 일념으로 감행한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치켜세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세는 분명하게 그들 뿌리의 부정적이고 파행적인 측면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는?
-소돔과 고모라를 작정하신 대로 소멸하셨다. 정욕이 춤추는 대로 살고 ‘힘’과 우격다짐이면 다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 일이 아들의 재림 이전 시기를 사는 후세의 경건치 않은 자들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셨다(벧후 2:6). 롯의 사위들처럼 재림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조롱하는 세상도 결코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임을 선명하게 경고한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업신여기고 두고 온 세상의 영화를 아쉬워하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의인 롯과 함께 살았지만, 그녀는 남편의 하나님보다는 소돔에 더 사로잡혀 산 것이다. 믿음에 정체란 없다. 그것은 관계이기에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물러나는 것이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썩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서서 소돔의 의인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던 바로 그곳에서(18:22),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소돔과 고모라가 잿더미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년에 아들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소돔의 멸망은 “후손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라”는 명령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했을 것이다. 우리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아브라함이 선 곳에서 함께 보면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가장 먼저 구하는 삶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손님들을 위해 딸들을 이용하려던 아비 롯(19:8)은 이제 자손 잇기를 위해 딸들에게 이용당한다. 풍요를 좇아 걸어온 롯의 인생은 결국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사위에게도, 소돔 사람들에게도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소알도 있고 아브라함의 권속도 있었는데도 딸들은 태연하게 소돔에서 보고 배운 대로 행한다. 롯은 두 딸을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소돔의 자녀로 키운 꼴이 되었다.
    
*죄악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려서 소돔과 고모라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과 땅에서 난 모든 것을 멸하셨다(24~25절). 이처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은 심히 두렵고 떨리는 날이 될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심판을 늦추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깨닫고 지금이라도 깨어 근신하며 살아내야 한다.
    
*롯의 아내는 이중적인 신앙의 전형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롯의 아내는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소돔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뒤돌아보다가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26절). 롯의 아내와 비교할 때,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신앙을 세워가고 있는지 곰곰이 성찰해 볼 일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기억하신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하나님께 기도드린 자리에 서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목격한다(18:22). 그 심판 중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셔서 롯을 구원해 내신다(27~29절). 아브라함의 기도가 롯을 살린 것처럼,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눅 23:34)가 우리를 살렸다.
    
*롯의 구원은 그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이었다. 이처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약 5:16). 혹시 여전히 나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가? 아직 믿지 않는 가족, 친지, 이웃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그치지 않아야 한다.
    
*롯의 두 딸이 대를 잇기 위해 아버지와 동침한 것은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죄악의 영향이 분명하다. 성적으로 타락의 극치를 찍었던 도시의 문화에서 여태껏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비록 세상 속에 살지만,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신다.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질 때, 롯과 가족들은 철저하게 무기력했다. 구원받아 새롭게 출발한 삶은 녹록지 않았고 믿음으로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보다는 소돔의 문화를 따라 쉽고 감각적인 방법으로 살아낸다. 결국 그토록 원했던 소알 땅에서 스스로 도망쳐서 그토록 거부했던 산으로 올라가 동굴에서 지내며, 두 딸의 소돔과 고모라보다 못한 행동에도 무기력하기만 한 삶을 살고 만다. 두 딸은 죄악의 도성에서 구원받았으나, 죄악의 삶에서는 탈출하지 못했다.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하나님을 떠난 도성이든 인생이든 반드시 무너진다.
    
    
    
*주님,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목격하며, 이 일을 행하시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여 뒤돌아보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내는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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