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 [창 21:1-21]
 – 2026년 01월 30일
– 2026년 01월 30일 –
창 21:1-21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
    
드디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라가 이삭을 낳았다. 아무도 늙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삭의 출생은 동정녀 마리아의 그리스도 출산에 견줄 수는 없지만, 분명 과학을 넘어선 기적이 틀림없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명령대로 이삭에게 할례를 행한다. 이스마엘이 젖 뗀 이삭을 놀린 것을 계기로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다. 하나님은 그런 하갈과 이스마엘을 돌보신다.
    
    
    
1. 사라의 출산(1~7절)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그분의 약속이 드디어 성취된다. 하나님께서는 1년 전 18:14에서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방문하셨다.’ 출산이 임박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찾아오셨고, 사라는 드디어 아이를 낳는다. 아브라함은 명령대로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지었으며(창 17:17),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에 할례를 시키라는 명령에 순종하여(창 17:12) 할례를 행했다(4절). 이삭을 가질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다. 사라는 짧은 시로 노래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을 웃게 하셨다는 고백이다. 듣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웃을 것이라고(이츠하크) 노래한다. 사라는 자신의 짧은 시에 이삭의 이름을 넣어 교묘한 말놀이를 한다. 이것은 웃음의 반전이다. 앞서 아브라함은 엎드려 불신의 웃음으로(창 17:17), 사라는 냉소적인 웃음으로(창 18:12) 하나님의 약속과 예고에 반응했다. 하지만 지금은 환희와 감격의 웃음이며, 모든 사람이 이 웃음에 동참한다.
    
7절은 이삭 출생의 기적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여자의 기능을 다한 사라가 ‘아기들’의 젖을 먹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복수인 ‘자식들’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이삭을 통해 태어날 후손들을 미리 확신하는 말이다. 성기능이 사라졌을 노령의 아브라함이 아들을 가졌다. 100세와 90세 된 부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2. 사라와 하갈의 갈등(8~13절)
시간은 금새 흘렀다. 이삭이 자라 젖을 뗐고 그날 아브라함은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8절). 유대 전통에 따르면 이삭이 젖을 땐 나이는 세 살 정도로 추정된다(제2마카비서 7:27). 젖을 뗀 날은 경삿날로 잔치를 벌였다(참조, 삼상 1:22~25; 왕상 11:20; 시 131:2; 호 1:8).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사라와 하갈의 오랜 갈등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삭이 자라면서 잠복해 있던 문제가 터진다. 각자의 아들을 둘러싼 적통 논쟁이다.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기 시작했다(9절). 이 구절에서 하갈의 아들 이름인 이스마엘이 생략되고, 하갈을 언급할 때도 처음으로 그녀가 ‘애굽 여인’임을 밝힌다. 이는 그들을 의도적으로 낮추기 위한 표현으로 추측되며, 저자는 이를 통해 두 모자의 적통 논쟁을 결론짓는다.
    
한편, 이스마엘의 놀림은 ‘메차헤크’로 표현하는데, 이 단어는 앞서 19:14에서 롯의 사위들이 롯의 경고와 설득을 ‘농담으로 여겼다’는 말에도 사용되었다. 이 표현은 상대를 무시하고 희롱하는 행위를 표현한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어떻게 놀렸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라가 이삭에게 달려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할 정도로 이 놀림은 심각한 내용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라가 사용한 ‘내쫓으라(가레쉬)’라는 단어는 통상 이혼에 사용되는 단어다. 즉,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완전한 결별을 요구하고 있다. 고대 근동 사회의 관례대로 이스라엘이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는다는 말은 여종 아내의 아들도 유산의 몫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분쟁은 유산의 문제라기보다는 장자권 경쟁에 두려움을 느낀 사라의 사생결단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 당시 장자의 권한은 매우 커서 장자권을 다른 아들에게 넘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창 48:14; 49:4; 대상 5:1).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연루된 일로 심히 괴로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네 아이(나아르)’로, 하갈을 ‘네 여종’으로 부르신다(12절). ‘나아르’는 이스마엘이 이미 성장한 청소년임을 가리키는 단어다. 만일 이스마엘이 어린 소년이었다면 여성 홀로 아이를 데리고 광야를 떠도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보내야 하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다’라고 하시면서 앞서 약속했던(창 17:20) 그의 후손 번성과 번영을 상기시키신다(13절).
    
    
    
3. 내쫓긴 하갈과 하나님의 약속(14~21절)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송별을 준비했다. 기본 식량과 물을 챙겼다(그러나 그 외에 다른 필수품들도 준비해서 보냈을 것이다). 당시 흔히 사용하는 가죽 부대는 염소 가죽으로 만드는데 약 15리터의 물을 채울 수 있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멀리 브엘세바 광야까지 걸어가 거기서 방황했다. 이는 그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상황일 수 있다. 오래 방황한 끝에 그들은 15리터의 물을 모두 마셔 결국 탈진하게 되었다. 아마 이스마엘이 사방으로 물을 찾다가 먼저 탈진해서 쓰러졌을 것이다. 하갈은 이스마엘을 관목 덤불에 던지듯 눕혔다. 이는 하갈이 그를 부축하여 자포자기하듯 죽음에 방치해 놓았다는 의미다. 하갈은 아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차마 볼 수 없어 화살이 날아가는 거리까지 멀리 걸어가 앉아서 울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의 소리(콜)를 들으셨다. “콜”은 흔히 하늘을 향한 기도 소리를 뜻한다. 죽어가던 이스마엘이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의 가느다란 기도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하갈에게 하늘에서 음성으로 응답하신다. “하갈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마엘(‘그가 들을 것이다’)이란 이름의 뜻이 의도적으로 생각나게 하는 표현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뒤덮인 관목 덤불 아래도 살피시며, 거기서 새어 나오는 죽어가는 작은 기도 소리도 다 들으신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마지막 기도에 응답하셨다. 하갈에게 아이에게로 가서 그를 일으켜 손으로 붙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는 창 16:10에서 하갈의 태중에 있는 이스마엘에 대해 말씀하신 약속의 확증이다.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눈을 밝히시어 애타게 찾던 샘물을 볼 수 있게 하셨다. 하갈은 샘물을 가죽 부대에 채워 죽어가던 아이에게 마시게 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과 함께하셨다. 그는 잘 성장하여 광야에 거주하면서 활을 잘 다루는 용사가 되었다. 이스마엘의 생활 방식은 이미 16장에서 예고되었다(16:12). 그는 들나귀같이 될 것이며,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친다. 그는 모든 형제를 대항하며 살 것이다. 이는 그의 ‘유목 생활’을 의미한다.
    
이 예언대로 그는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된다(20절). 활 솜씨는 그의 사냥 실력과 전투적 성향을 시사한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에 정착했으며(21절), 하갈은 그를 위해 애굽에서 아내를 얻어 결혼시켰다.
    
    
    
나는?
-인간의 눈에 불가능하게 보였던 이삭의 출생을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신다. 창조 때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되어’ 이 세상이 시작되었듯이, 그 창조의 말씀으로 지금도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 나라 역사로 지어가는 것이다. 이삭을 주심으로써 자손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17:17)과 사라(18:12)의 불신 미소를 참다운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어주셨고, 이 창조의 역사를 듣는 모든 사람에게도 웃음을 주신다. 예수님의 오심도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요, 우리에게 구속된 미래를 주심으로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환하게 웃게 하는 복음의 오심이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름을 ‘이삭’으로 짓고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한다. 소리 없는 순종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고 자신의 비웃음을 회개하며 그동안 조롱거리에 불과했던 ‘열국의 아비’란 이름 역시 명예롭게 될 것임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잔칫날에 16세의 이스마엘이 약 3세의 이삭을 희롱(비웃음)한다. 약속의 자녀가 육신의 자녀에게 수난을 당한다. 손쉬움과 조급함을 추구하다 편법을 동원한 아브라함의 불순종(16장)은 기쁨의 순간에도 그에게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또 이삭만큼이나 귀한 아들 이스마엘을 떠나보내는 고통스러운 순종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하시기에(22장) 앞서 미리 인간적인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법을 아브라함에게 가르치려 하셨던 것일까? 자기 잘못 때문에 겪는 아픔마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전처럼(16장) 자비로운 처리를 바란 아브라함에게 이번에는 사라의 말을 따르게 하신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룰 대상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낸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으로 받은 언약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 언약을 통해 이스마엘도 큰 후손의 조상이 될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갈의 고향 애굽으로 가는 광야 길에서 모자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고, 또 성장하는 내내 이스마엘과도 함께하셔서 한 민족으로 자라게 하신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다(1~2절). 사람처럼 식언(食言)하거나 말한 것을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시다(민 23:19). 그러므로 하나님 약속을 믿고 인내하며 순종하는 사람은 절대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말씀대로 행하신 하나님께,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여 화답한다(3~4절).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17:19),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고, 이삭이 약속의 자녀임을 고백하며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한다(17:9~11). 우리는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무엇으로 화답해야 할까?
    
*하나님은 소망 없는 자에게 기쁨의 웃음을 주신다(6~7절).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웃었다(17:17; 18:12). 그것은 소망을 잃은 자의 허탈한 웃음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의 웃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이삭(웃음)’을 주셨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결국은 나에게 웃음을 주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해야 할 것이다.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낳은 아들은 아브라함의 근심거리가 되었다(8~11절). 약속의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잔칫날에 이스마엘은 이삭을 놀림거리로 만들었고, 분노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불신앙으로 일어난 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일은 처음에는 좋아 보여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으로 울부짖는 자의 소리를 들으신다(14~21절). 버림받아 죽게 된 모자(母子)를 찾아오셔서 생수로 그들의 갈증을 해소하신다. 또한 이스마엘과 함께하셔서 그를 양육하시고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어가신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우리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고, 아브라함은 말씀하신 대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짓는다. 약속의 자녀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웃게 하지만, 육신의 자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을 근심하게 한다.
    
    
    
*주님,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불신앙에서 나오는 육체의 욕심을 다스리는 절제로 삶을 채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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