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 세례 요한 [요 1:19-34]
 – 2026년 02월 02일
– 2026년 02월 02일 –
요 1:19-34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 세례 요한
    
본격적인 예수님 이야기의 시작은 예수님을 증거한 세례 요한에 대한 것이다. 19~28절은 요한과 두 부류의 대화를 담고 있는데,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온 종교 지도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이다. 그들의 대화 주제에 따라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19~21절은 요한의 정체에 관한 질문과 요한의 대답이며, 22~24절은 요한 스스로 인식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다. 25~28절은 요한이 세례를 주는 이유를 말한다. 29~34절은 자신의 물세례 사역과 예수님의 성령 세례 사역을 대조하여 예수님의 탁월성을 드높인다. 특별히 자신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시 때문임을 강조한다.
    
    
    
1. 요한의 첫 번째 증언 _ 종교 지도자들과 요한의 대화(19~28절)
1세기 당시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성령이 끊어졌다는 인식이 있었다. 역사의 끝에 하나님이 구원의 문을 열 때 성령이 임한 선지자를 보내겠다는 말라기의 약속(말 3:1; 4:5~6)을 기대하고 있었다. 요한의 세례는 선지자의 모습을 연상케 했기에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을 보내서 요한의 정체를 본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생략하고 곧바로 성인 사역으로 직행한다. 상당히 의아스럽지만, 요한복음은 예수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이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림돌 줄 하나였음을 계속 말하기 때문이다(1:45~46; 7:41~42, 52). 다윗의 자손 메시아는 베들레헴 출신이어야(미 5:2) 하기에 마태(마 2:23)나 누가(눅 2:39)처럼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출생했음을 설명해도 되지만, 요한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19~21절은 바리새인들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보내 요한의 사역과 정체성을 확인한다. 두 그룹 사이에 일련의 짧은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종교 지도자들이 ‘네가 누구냐?’를 묻자(19절) 요한이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한다(20절). 그러자 ‘네가 엘리야냐?’라는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에 요한은 아니라고 답한다. 또 ‘선지자냐?’라는 질문에도 ‘아니다’라고 말한다(21절). 종교 지도자들과의 대화 주제는 ‘요한이 메시아인가’이다. 본문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메시아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음에도 요한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은 이미 그런 질문을 다른 이로부터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종교 지도자들이 물은 세 가지 호칭, ‘메시아’와 ‘엘리야’와 ‘선지자’는 모두 구약에서 말한 메시아 약속과 관련 있다. ‘메시아’는 일반적으로 왕과 선지자, 제사장의 직무를 위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는데, 본문은 특별히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된 존재로 인식되었다(사 11:1~10; 겔 34:23 등). 그중 엘리야와 선지자는 성령과 연관된 같은 부류다. 당시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성령이 떠나갔다는 생각이 있었다. 성령의 계시를 따라 ‘나’라는 일인칭으로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기대가 있었는데,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이 구원의 문을 열 때 성령이 다시 임할 것이고(욜 2:28~32), 그 성령의 임재를 가진 선지자로서의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이다(6:14; 7:40; 참조, 신 18:15). 말라기 4:5~6은 주님의 날이 이르기 전, 성령의 임재를 가진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요단강 주변에 과거 선지자와 비슷한 사람, 요한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엘리야와 유사한 모습이었는데(막 1:16; 왕하 1:8), 엘리야-선지자-메시아-구원의 때라는 논리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은 요한에게 메시아와 관련한 정체성을 계속 물었고 급기야 종교 지도자들도 사람을 파견하여 동일한 질문을 한 것이다. 요한은 이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22~24절은 세례 요한이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그에게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다(23절). 요한은 주저하지 않고 이사야의 예언(사 40:3)처럼 자기는 주의 길을 곧게 하려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말한다. 이 고백은 세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자신의 사역을 구약 약속의 성취 과정으로 소개한다. 자기 사역의 신적 기원과 하나님의 오래된 구원 계획이 이제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드러낸다. 둘째, 자신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이 임박한 구원을 준비하게 한다. 이사야 40장은 외치는 소리의 내용은 두 가지다. 사람들의 한계와 주의 영원함을 알게 하는 것이고(사 40:6~8), 다른 하나는 강한 능력과 온순한 사랑으로 임할 주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이다(사 40:9~11).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은 어둠에 있는 자들에게 빛으로 오실 예수를 맞을 수 있도록 회개를 촉구하고, 그분을 향한 기대의 마음을 주어 믿음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셋째, 예수의 정체성을 증언한다. 이사야의 내용에 의하면 외치는 소리가 증언하는 분은 주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요한이 증거하는 예수 역시 주님이라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요한의 증거는 듣는 자로 하여금 예수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인식하도록 돕는다.
    
25~28절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요한이 메시아도 엘리야도 아닌데 왜 세례를 주는지를 묻는다. 요한의 세례가 한 개인이 사람들에게 주는, 당시로서는 독특한 형태였기에 그가 사역하는 정당성과 정체성을 물었다. 이에 요한은 두 가지로 답하는데, 먼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을 뿐이라고 한다. 이는 이사야 40장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며, 주님을 맞을 준비를 시키는 것이었다. 둘째, 예수에 대한 증언이다. 요한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 뒤에 오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감히 그의 신발 끈을 풀 수도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신발 끈을 푸는 것은 제자가 스승에게 혹은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일인데, 요한은 그 일도 못 할 정도라는 것이다. 요한이 증언하는 존재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이사야에 의하면 외치는 소리로서 요한이 증언하는 존재가 ‘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결국 세례 요한 자신은 메시아나 엘리야나 선지자 같은 종말적 구원자가 절대 아니며,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의 두 역할, 곧 회개로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장차 임할 주님을 증언하는 일에 충실할 뿐임을 전달한다.
    
이 대화를 통해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는 신실한(?) 자들이라면 당연히 세례 요한이 말한 그 존재를 기대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대화는 장차 예수님의 사역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보여주는 복선과 같은 역할도 한다.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도 이들에 의해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받을 것이고, 그들의 순수하지 못한 동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도 그들은 거부하며 믿지 않을 것이다.
    
    
    
2. 세례 요한의 두 번째 증언 _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34절)
‘이튿날’ 예수가 세례 요한의 사역지에 나타난다. 이때는 요한이 예수의 세례 때 성령이 임한 것을 과거 사건으로 묘사하는 것을 볼 때 예수께서 이미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 시험을 경험한 이후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보고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한다. 보통 이런 상징 묘사는 예수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사람들의 죄를 해결하는, 유월절(출 12:1-11)과 이사야 53장의 양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과연 이 증언을 처음 듣는 이들도 그렇게 이해했을 리는 만무하다.
    
요한은 이런 자신의 선포를 부연하기 위해 추가 설명을 이어간다. 먼저, 자기 사역을 소개한다(30~31절). 그는 엄밀히 말하면 예수와 친척이지만(눅 1:36), 예수를 알지 못했다(31절). 단지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예수를 소개했을 뿐이다. 그의 증언은 이미 15절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기 뒤에 올 사람은 그의 선재성 때문에 자기보다 뛰어난 존재라는 것이다(30절). 그리고 자기가 그에게 세례를 준 것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주님이 임할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한다(31절). 즉,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가져올 주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낼 존재를 증언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기가 증거한 존재가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방법이다(33절). 핵심은 하나님의 계시와 성령이다. 주님이 계시를 통해 누구든지 성령이 그 위에 임하는 자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임을 미리 알려 주었다. 이후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줄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와 예수님에게 임했고(마 3:16; 막 1:10), 그것을 보고 예수가 주님이 보내신 분임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했다고 한다.
    
    
    
나는?
-세례 요한은 자신을 잘 알았다. 자신이 누구인지와 누가 아닌지를 알았다. 다들 그를 메시아로 기대했지만, 그는 주저 없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사람으로 살기보다 하나님이 부르신 정체성을 따라 살기로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 내가 어떤 존재가 아닌지를 잘 알고 그 소명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주님이 나에게 부여하신 참 자신을 알고 그대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증인의 길, 생명의 길일 것이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정의하신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알았다. 또한 그대로 살았다. 자신을 ‘소리’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자신이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말씀(예수 그리스도)’을 대변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소리인 자신을 ‘그 말씀’으로 오해하게 하면 안 된다. 받은 대로 전하지 않는 것도, 받지 않은 것을 전하는 것도 모두 말씀의 왜곡이며, 내가 소리가 아니라 말씀이 되는 죄다. 천하에 구원할 진리는 예수님밖에 없다. 세례 요한, 그는 그 말씀의 소리가 되기 위해 광야를 고수하며 세상의 소음을 섞지 않는 말씀의 소리로 살았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더온누리교회 성도 각자에게, 그리고 나에게 허락하신 증인의 사명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바르게 알았고 전했다. 또한 그분과 비교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았다. 아무리 메시아로 오해될 정도로 존경을 받았어도, 자신이 오실 ‘주’의 신발 벗겨드리는 시중을 드는 것조차 감당하지 못할 만큼 작고 보잘것없다고 고백한다. 그분은 세상 죄를 제거하기 위해 죄인들에게 제거당하실(19:15) 하나님의 종이시기에(사 53장)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경임을 알았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며 자기보다 먼저 존재하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언제 태어나셨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근원이 되는 창조주라는 고백이다. 예수님을 알았을 때 자신이 할 일도 알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도 알았고,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도 알았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춰야 하는지, 언제 나서야 하고 물러나야 하는지를 알았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메시아도,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부정한다. 이 모든 사람의 모습을 다 담고 있어서 기대하게 했지만,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정체와 사명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대를 따라 살지 않고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 살았다. 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이 아닌지를 아는 것이다. 남들의 기대를 거스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기대를 채울 때 참된 내가 될 수 있다.
    
-세례 요한은 선지자의 환생이 아니라 선지자가 예언한 사람이다. 특별히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그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것이 그가 준 물세례의 의미다. 죄를 회개하여 그 심령에 메시아를 영접하도록 준비하였다. 진정한 충성과 사랑은 더 큰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 온전한 순종으로 결정된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메시아나 엘리야나 ‘그 선지자’로 오해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세례는 뒤에 오실 메시아가 하실 진정한 세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자신은 메시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메시아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것은 공연한 낮춤이 아니고 ‘사실인정’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 때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다. 내가 메시아가 되지 않고 왕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구원 얻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러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29, 31절).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사람에게 죄 사함의 길을 마련해주시기 위해 친히 희생제물로 오신 것이다.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믿는 나는 그에게 드릴 감사의 고백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눅 4:18~19). 노아 홍수 후 비둘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신 것처럼 비둘기 같은 모양의 성령 임재는 예수님께서 새 시대, 메시아의 시대, 성령의 시대를 여실 것임을 암시한다. 믿음의 삶을 사는 길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닐까?
    
*예수님께 집중하면 사람들의 박수에 우쭐대지도, 권력자들의 추궁에 주눅 들지도 않게 된다. 많은 백성이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았다. 그의 영향력이 커지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세례 요한의 자격을 조사하러 찾아온다. 이에 세례 요한은 듣기 좋게 ‘오해’라고 하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 않고 분명하게 자신은 메시아가 아님을 밝히며, 사람들이 예수님께 집중하도록 확실하게 대답한다. 이 모습을 오늘날 소위 유명하다는 사역자들과 교회가 놓치면 안 된다. 주님을 향한 말과 태도가 어떠한가? 세상이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에게, 자기의 교회에 시선을 고정하게 하는 언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는 것은 아닌가? 나는 어떤 말을 외치는 소리꾼인가? 해야 할 말은 외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는 않는가?
    
*세례 요한의 모습을 묵상하며 자신을 과시하거나, 과대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세례 요한이 베푼 물세례는 메시아가 할 세례 사역(슥 13:1)의 표식일 뿐이다. 그는 자기 일이 단지 뒤에 오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며, 자신은 그분의 종이 될 수도 없을 정도로 비천하다고 말했다. 나는 나에게 맡겨주신 사역의 현장에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주님의 일을 하고 있을까?
    
    
    
*주님, 제게 허락하신 모든 상황과 여건 속에서, 어떤 사람 앞에서든지 단호하고 분명하게 예수님을 증언하겠습니다.
*주님, 혹시 제 안에 더 드러내고, 주인공 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늘 성령으로 다스려 주십시오.

댓글 남기기

매일성경 묵상

니고데모가 찾아오다 [요 3:1-15]

요 3:1-15 니고데모가 찾아오다 명절 기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많은 표적을 행하신다. 그때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다. 마치 유대교를 대표하듯 예수님의 정체성과 행하신 표적에 반응한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