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_예수님의 첫 제자들 [요 1:35-51]
 – 2026년 02월 03일
– 2026년 02월 03일 –
요 1:35-51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_ 예수님의 첫 제자들
    
요한복음에는 열두 사도를 따로 부른 기사가 나오지 않지만, 첫 제자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다. 안드레와 무명의 한 제자(아마도 요한)는 본래 세례 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을 따랐다가, 베드로는 이들의 전도로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된다. 빌립은 예수님의 선택으로, 나다나엘은 그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결국 모든 제자 후보자는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한 후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서 종교 지도자의 제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보통 학생이 선생을 찾아와 제자 되기를 청하고, 선생이 그 청을 들어주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 되기는 선생이 제자를 부르고, 부름을 받은 자는 곧바로 그 요청에 응답하여 제자가 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요한복음에서도 제자가 스승을 택한 것이 아니라 랍비인 예수가 제자를 선택한다(15:16). 본문에서는 그 방식이 약간 다른 듯 보이나, 어떤 경우에도 제자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1. 예수님을 따라간 첫 제자들(35~42절)
35~36절에서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새로운 선생으로 소개한다. 세례 요한의 제자 중 두 사람이 예수를 따르는데 그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다(40절). 또 한 명은 ‘무명의 제자’라고 기록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13:23)라는 것이다. 즉, 요한이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불확실하다. 이미 29절에서 언급한 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한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예수님을 소개한 후에 일단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후 3:30에서 다시 등장하여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명언을 남기고 다시 퇴장한다. 세례 요한은 “증언자”의 사명대로 충실하게 감당하고 사라진다.
    
37~39절에서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된 두 사람의 제자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이 두 사람(안드레와 무명)은 사실 자신의 선택으로 제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의 소개로 어떻게 보면 예수님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를 따라갔다가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은 이들이 무슨 관심으로 자기를 따라오는지 묻는다. 그러자 두 사람은 예수님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다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이들의 요청을 나무라지 않고, “오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가 열 시(대략 오후 4시)쯤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예수님과 하루를 보낸다. 예수님과 저녁 한나절을 함께함으로 제자가 된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함께 거하니”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에서는 단순한 ‘머무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로 인격적 사귐이 있을 때 이 단어를 사용하는데,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예수와 인격적인 만남을 가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40~42절에서 안드레가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소개한다. 안드레는 무명의 제자와 함께 베드로를 만났는데(“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이를 보면 당시 보통 유대인들처럼 베드로와 안드레도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안드레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안 다음, 곧바로 이것을 그의 형제에게 말한 것이다. 한편, 예수님은 베드로를 알아보고 그에게 ‘게바’라는 새로운 이름을 준다. 요한은 친절하게 아람어 ‘게바’의 헬라어 음역인 ‘베드로’를 알려 준다. 추측하기로는 ‘게바’나 ‘베드로’ 모두 베드로의 본명이라기보다 별명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름이 있었지만, 굳이 ‘게바, 베드로’라고 불렀기 때문인데, 아마도 “바위처럼 굳건하게 서 있으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첫 제자, 안드레, 무명의 제자(사도 요한), 베드로(예수님을 만난 순서) 가 생겼다.
    
   
    
2. 예수님이 부른 첫 제자들(43~51절)
43~44절은 예수님이 빌립을 부르시는 장면인데,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는 모습과 비슷하다. 예수님은 권위를 가지고 보자마자 제자로 부르고, 안드레는 그 부름에 압도되어 곧바로 제자가 된다. 빌립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부연되지 않았지만, 나다나엘에게 전도하는 모습을 통해서 빌립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45~46절은 안드레가 예수를 만난 후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곧바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했듯이, 빌립도 자신의 절친한 친구(아마도) 나다나엘에게 같은 뜻의 말을 전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에 대해 나다나엘은 당시 지적인 유대인이라면 의당 했을 법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나사렛이 악명 높은 범죄 지역이라는 뜻이 아니라 메시아의 출현과 아무 관계가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 정도로 나다나엘은 구약을 잘 알고 있었다.
    
47~50절은 나다나엘이 제자가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그의 마음속을 다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그를 만나기 전에 그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계셨다. 문맥상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그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자로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 밑에서 하나님께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겠다. 아무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예수님은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나다나엘은 곧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고백에 동참한다. 신이며 인간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이 나다나엘을 제자로 만든 것이다. 제자들을 세우는 과정을 통해 예수님을 이제 더 큰 일, 곧 이후에 나올 예수님의 여러 표적과 같은 일을 행할 것을 예고한다.
    
51절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과 안드레, 무명의 제자, 베드로, 빌립에게 지금 경험한 것과 비교도 안 될 예수의 참 정체성 표적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다나엘을 비롯한 제자들의 고백이 파격적인 만큼 예수님의 파격적인 약속이다. 나다나엘의 이런 모습은 요한복음에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 첫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모습은 부활 이후 도마에게 동일하게 나타난다. 요한복음의 첫 부분과 끝부분을 비슷하게 연결하며, 이런 모습을 예수님의 사역 내내 의심을 믿음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유대인들과 대조가 된다.
    
51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야곱의 사다리를 자신에게 적용하며 하신 말씀이다. 야곱이 보았던 사닥다리가 야곱과 하늘을 연결하여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듯이,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여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나다나엘에게만 하지 않으시고 듣고 있던 모든 다른 제자들에게도 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바로 야곱의 사닥다리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분이라는 것을 제자들이 체험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본 구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는데, 다니엘 7:13에 나오는 “인자 같은 이”에서 기원한 말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로 거의 예수 스스로에 의해 사용된다. 당시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여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는 메시아나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말보다는 ‘인자’라는 칭호는 예수님 자신을 부를 때 더 부드럽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인자’는 단순히 ‘나’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요한복음에서는 미래의 영광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나는?
-세례 요한은 자기보다 더 큰 분에게 자기 두 제자를 보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소개하는 예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그렇다면 부귀영화가 기다리는 길이 아니라, 어쩌면 인류를 위해 희생의 길을 가실 스승의 험한 길로 보낸 것이다.
    
-두 제자 중 하나인 안드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후 형제 시몬에게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전하고 그를 예수님께 인도한다. 그 시몬을 보신 예수님은 장차 “게바”로 불릴 그의 미래를 보고 알려 주신다. 그를 게바(반석) 같은 존재로 창조하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 내가 예수님께 인도한 그가 나보다 훨씬 더 하나님 나라에서 요긴하게 쓰임 받더라도 기뻐하자. 오히려 더욱 기대하자. 그렇게 하신 예수님의 능력과 의지를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은 빌립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빌립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빌립을 부르신 것이다. “따르라”는 말은 ‘방향을 바꾸라’. 기존의 삶을 ‘버리라’라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는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다. 제자가 되지 않는 성도는 없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도 안드레처럼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초대한다. 베드로의 참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로서 ‘더 큰 일’을 볼 자로 부르신다. *주님 앞에 가야 내가 누구인지, 나를 통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볼 수 있다.
    
-나다나엘은 예수께서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았다는 말을 믿음으로써 더 큰 일, 하나님의 사자(천사)가 인자(예수님)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볼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야곱은 사다리(계단)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계시의 장소인 성전(벧엘)이 되었는데(창 28장), 예수님은 친히 사다리(계단)가 되어 하늘과 땅을 잇는 성전이 되실 것이다. 나다나엘은 그 예수님을 통해 하시는 일, 즉 십자가와 부활로 자기 백성을 성전으로 만드시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제자를 낳는다.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과 나다나엘, 무명의 제자 모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를 이미 알고 계셨던 예수님, 자기의 장래를 알고 계시는 예수님, 그리고 자기의 삶을 주장하실 주권자 예수님으로 알게 되었고, 그릇된 이해와 제한된 기대를 꺾게 되었다. 지식이 먼저가 아니다. 만남이 먼저다. 그 만남이 생명을 낳는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냈다. 자기 제자를 고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잠시 내게 위탁하여 양육하게 하신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야 할 증언자의 사명을 너무나 잘 순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역하면서 교회는 성도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교회의 제자, 사역자의 제자, 나의 제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제자로 말이다. 나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나다나엘의 신앙고백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그를 참 이스라엘로 칭찬하셨다. 나다나엘은 그 칭찬에 걸맞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인정한다. 하나님 나라(참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 이스라엘처럼 제힘과 지혜로 인생을 꾸려가려는 자가 아니라, 나를 이미 아시는 예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자다.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찾으시며, 자신과의 교제로 초청하시는 분이시다. 자신을 따라오는 세례 요한의 두 제자에게 ‘와서 보라’고 하시며 그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셨고(38~39절), 빌립을 찾아 제자로 부르셨다(43절). 예수님의 이 놀라운 교제의 초청인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예수님과 충분한 교제를 나누고 있는가?
    
*예수님은 현재의 모습이 아닌 앞으로 변화될 모습에 시선을 맞추신다(42절). 시몬의 이름을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베드로)’로 바꾸어주셨다. 교회의 반석이 될 그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셨다. 혹시 예수님의 약속과 가능성을 무시하고 자신을 포함해 주위 사람들을 현재의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는가? 나를 향한 예수님의 기대는 무엇일까? 그 기대에 부응하며 살고 있는가?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50~51절). 예수님은 야곱의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사다리로서(창 28:12),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과 영광을 보게 되며,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게 해야 한다(35~37절).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게 했다.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보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게 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더온누리 성도들을, 예수님을 잘 따르도록 돕고 도와야지. 혹시 예수님이 아니라 나를 따르게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열정은 그분을 얼마나 깊이 만나는지에 달려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는 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눈 후에는 큰 확신을 갖고 형제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갔다. 나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누구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가?
    
    
    
*주님, 날마다 예수님과 더 깊은 만남과 교제를 누리며,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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