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1-12 첫 표적,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과 기쁨
예수님이 혼인 잔치 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의 기적을 행하고 치유와 축귀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드러내는 향연이다. 요한복음에서 기적은 ‘표적(세메이온)’이다. 이 기적들은 기적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그 의미가 더 중요하다.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요청되었다.
가나 혼인 잔치의 배경이 되는 당시 결혼식은 신부의 친구들이 신부를 신랑 집에 데리고 행진하여 저녁을 먹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개 결혼 축제는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삿 14:12). 모든 비용은 신랑 측이 부담한다. 만약 이 축제에서 음식이 떨어지면 신랑 측에 수치가 되었다. 당시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나면 신랑 측은 신부 측 친척들로부터 고소까지 당할 수 있었다. 그 축제 음식에서 포도주는 빠질 수 없는 것이었는데, 당시 포도주는 현재의 것보다 더 묽었다고 한다. 또 당시의 결혼은 마을 전체의 잔치였다. 자연스레 예수님과 첫 제자들도 초대받았고,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즐겼을 것이다.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잔치여서 많은 포도주가 사용되었고 반드시 점검하여 충분한 양의 포도주를 준비해야 했다.
1. 배경(1~2절)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이 시작된다. 시간저긍로 앞 사건 이후 사흘째 되는 날이고, 공간적으로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결혼은 개인을 넘어 마을의 잔치였고, 예수와 어머니와 제자들도 청함을 받았다. 이 제자들은 1장에서 예수를 만난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익명의 제자인 요한이다. 특히 나다나엘은 가나 출신이었다(21:2).
2. 예수와 어머니의 대화(3~5절)
잔치 중간에 문제가 생겼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이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잔치에 포도주가 없다도 말하자(3절), 예수님은 그 일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내고 되묻고 자기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한다(4절). 하지만 예수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예수의 말을 순종하라고 명한다(5절).
1장에 나타난 예수와 제자들과의 경우처럼 짧은 대화인데, 서로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방 얘기를 듣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포도주가 부족한 걸 안 것은 그녀가 잔치를 주관하는 신랑 측과 관련 있고(참조, 9절), 잔치 준비를 맡아 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결혼 잔치에서 음식과 포도주가 부족한 것은 상당한 결례가 되기에 마리아는 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왜 예수에게 말했을까? 요셉이 죽은 후 마리아는 가족을 부양하는 예수를 의지하며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푸념식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하인들에게 말한 것을 보면 상황을 해결하고 싶은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어머니는 아들 예수의 능력을 알고 그 능력 사용을 주문한 것일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 하인들에게 예수가 무엇이라 말하든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응답하는가? 예수님의 모습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여자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당시 문화에서는 비교적 공손한 표현임을 염두해야 한다. 하지만 어머니-아들 사이에 친근하게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다. 추측하기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 공손하게 거리감을 두기 위한 표현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또한,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표현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서로 거리감이 있는, 특히 예수님과 귀신 같은 적대적 상황에서 사용되었다(마 8:29; 막 1:24). 이런 표현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사용함에 있어 마리아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의도한 행동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이를 뒷받침 한다 하겠다.
요한복음에서 ‘때’는 종종 하나님이 의도한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데 특히 예수의 죽음과 그로 인한 결과나 영광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그렇기에 예수의 대답은 십자가의 영광을 향한 사역의 때, 곧 대중에게 공적으로 나설 때가 아니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다. 문제는 예수가 기적을 행했고, 저자는 이것을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마리아의 요청에 거리를 두고 자기 때에 대한 주도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의도라는 것이다.
3.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과 결과(6~12절)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예수님의 기적이 행해진다. 그곳에 정결예식을 위해 물을 담아놓은 큰 항아리 여섯이 있었다는 배경 설명을 시작으로(6절), 항아리의 물을 통한 기적 과정과 결과가 시간 순으로 등장한다.
7~8절에서 예수가 표적을 행하신다. 예수는 그 물통에 물을 붓게 하고 그것을 포도주로 만든다. 그 기적을 행하기 위해 그가 한 일은 돌 항아리에 물을 부으라고 말한 것이다. 바로 앞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말을 따르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 말을 통해 예수는 기적을 행한 것이다. 몇 가지 주목할 것은 첫째,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이 무엇을 상징하든지 간에 새 포도주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물이 포도주로 대체됐다. 예수가 건물 성전을 대체하는 성전이듯(2:21; 참조, 4:24), 예수는 그것을 먹고 기쁨을 얻는 새 포도주다. 둘째, 이 포도주는 항아리에 아귀까지 채워지는 풍성한 것이었다. 예수에 의해서 대체되는 새 질서의 특징이 바로 풍성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10:10).
9~10절은 연회장의 반응이다. 얘수는 하인들에게 이것을 연회장에게 맛보게 하라고 명령한다. 그는 그것을 맛보고 깜빡 놀란다. 예수가 기적을 행해서 만든 포도주가 인간이 포도로 만든 포도주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연회 초반에 사람들이 취하지 않아서 맛을 잘 알 때는 좋은 포도주를 내놓다가 취하기 시작하면 질이 나쁜 포도주를 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집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회당장은 예수가 기적을 행하여 만든 포도주인 것을 알지 못헸기에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하인들은 자기가 부은 것이 물이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이들은 기적을 목도했다. 예수의 기적을 목도한 사람은 믿음으로 반응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요한은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여기서 여한의 초점은 예수기 주는 새 질서, 새 포도주는 이전 어떤 것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데 있다.
11절은 이 표적의 의미를 설명한다. 요한은 이 기적을 단순히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말한다. 표적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기적이다. 그는 죽음을 통해서 영광받은 자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제자들이 아직 그것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인간으로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예수의 신으로서 본질을 알게 된 것이다. 요한은 이것을 ‘제자들이 믿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12절은 예수 가족의 이사(이동)을 언급한다. 예수 무리가 그들의 본거지인 가버나움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혼인 잔칫집에 잔치의 핵심인 포도주가 떨어졌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일순간 잔치의 흥겨움이 사라지고 원성과 불길함이 찾아올 수 있는 큰 위기다.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매우 위중한 상황이다. 세상의 즐거움이 가지는 한계다.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포도주에 의존하는 기쁨은 오래갈 수 없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진 사정을 알린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때가 오지 않았다. 그 때를 마리아가 정할 수는 없다. 예수는 이 일이 자신과 상관 없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삶의 주도권을 마리아나 상황에 넘기지는 않았지만, 하인들에게는 물동이 여섯에 물을 가득 부어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신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예수의 주도적인 결정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행한 일이었을 뿐 단지 상황에 이끌린 일이 이니었다. 이제 그가 하나님 나라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가 되었기에 행한 ‘표적’이다.
-연회장은 포도주의 출처를 모른다. 다만 이 포도주의 맛에 감동할 따름이다.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다만 이 포도주가 처음 나온 포도주보다 더 맛이 있다는 것만 안다. 우리가 모르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진행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달콤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있기까지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고 사람들의 순종이 있었다. 은혜는 그렇게 값없이 우리에게 오지만,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로 은혜가 된 것이 아니고, 받은 사람에게도 합당한 반응을 요구한다. 적어도 집주인과 마리아와 하인들은 이 포도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 잔칫집은 다기 기쁨을 되찾았다. 예수님의 모든 ‘표적’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예수님의 첫 표적이 일어난 곳이 왜 하필 혼인 잔치집이었을까? 혹시 우리를 신부로 만드시는 일을 하러 주께서 오셨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죄인인 나를 어린 양 예수의 신부로 만드는 일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일만큼이나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이에게 기적이 ‘표적’이 되지 않았다. 그랬다면 주님은 말씀하지 않고, 말씀으로 남기지도 않았을 것이며, 항상 초자연적인 표적으로만 드러내셨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이 행한 기적은 직접 목격하고 겪은 이들에게 ‘표적(사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표적을 행해도 믿지 못했고, 표적에 참여하거나 표적의 혜택을 누리고도 반응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이런 면에서 표적은 그것을 보고 듣는 이들의 상태를 진단하는 ‘리트머스’ 진단지가 아닐까? 일상속에서 기록된 말씀이 때로 성령의 역사로 놀라운 일로 나타날 때가 있다. 그것을 보고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 잔치는 신랑과 그 집에 수치와 조롱을 안긴다. 흥이 떨어진 잔칫집은 메시아를 거절한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로 빗대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 집에 포도주는 떨어졌지만, 예수님이 계셨다. 인생의 잔치에 참 기쁨과 풍요는 예수님에게서 나온다. 기막힌 포도주 맛만 보고 그저 놀라는 회당장이나, 잔칫집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들이 누리는 기쁨과 흥이 예수님이 아니면 이어질 수 없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기쁨과 흥이 더 풍성해지도록 첫 제자들과 하인들의 놀라움 속에 ‘표적’을 행하신 것이다. 예수 없는 세상의 번영은 공허할 뿐이다.
*”더 큰 일을 보리라(1:50)”는 약속이 표적을 통해 성취되기 시작했다. 혼인잔치에서 행하신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얘수님의 정체와 오직 목적, 영광을 드러내는 ‘표적(sign)’이었다.
*주님은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사셨다(4절). 자신을 과시하거나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며, 메시아로서의 공적인 사역과 신분을 더 우선시하셨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고 계심을 밝히신 것이다. 내가 세운 계획들은 하나님의 뜻과 때에 맞춰져 있을까? 혹시 하나님과 상관 없이 내 계획, 내 때, 내 영광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주님은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키기에 충만한 기쁨을 주신다(1, 2, 7~9절)유대인들이 정결의식을 위해 사용한 돌 항아리의 물을 풍성하고 질 좋은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 집처럼 의식과 제도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포도주를 풍성히 제공함으로써 종말에 임할(암 9:13; 호 14:7) 구원의 은혜와 기쁨을 맛보게 하셨다. 예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충만한 기쁨을 삶 속에서 풍성히 맛보며 누리는가?
*예수님의 어머니의 모습에서도 놓칠 수 없는 교훈이 있다. 필요를 믿음으로 아뢰는 것이다(3~5절). 마리아는 결혼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또한 다소 회의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믿음으로 반응했다. 나는 마리아처럼 그렇게 반응할 수 있을까?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 잔칫집의 결핍과 이로 인해 일어날 수치와 조롱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런 상황을 풍성함과 기쁨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마리아처럼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마리아의 담대하고 당연한듯한 반응이 새삼 도전이 된다.
*기도는 순종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마리아의 요청은 하인들의 순종으로 이어졌고 덕분에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좋은포도주를 마시게 되었다. 말이 쉽지, 자신들이 돌 항아리에 물을 떠다 붓는 것이야 늘상 하는 일이니 그렇다고 쳐도, 그것을 떠서 회당장에 가져다 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쉽게 순종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물을 뜬 순간 이미 포도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지 않았고서야 이 순종의 이야기가 물흐르듯 진행될 수 있었을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아도 결국 하인들의 순종은 예수님의 기적이 새상에 드러나는 통로 역할임에 틀림없다. 오늘 내가 순종하는 작은 행동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나게 하는 큰 역사가 될 수 있다.
*혹시 순종 없이 기도만 하고 있지는 않는가? 기도하고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넘치고, 풍성한 행하심을 알고 누리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계시므로 수치에 직면하여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혼인 잔치가 더 풍성하게 기쁨이 넘쳠난다. 이처럼 주님이 계시므로 일어난 기쁨이 나의 일상에서도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는 주님을 따르면서, 여전히 율법의 영향 아래 있듯, 얽매이고 스스로 옥죄는 삶이 아닌지 말이다. 기쁨과 풍성함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곤고한 상황 속에서도 생동하리라 믿는다.
*주님, 믿음으로 기도하고 순종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기를 소망해 봅니다.
*주님, 첫 표적을 목도한 첫 제자들, 하인들의 반응과 표적의 과정은 모르지만, 더 좋은 포도주 맛을 보며 기뻐하고 더 풍성해진 잔치를 누리는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어떤 상황과 여건이든 그곳에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가나 혼인 잔칫집의 기쁨과 즐거움이 이곳에서도 이어짐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