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변함없는 요한의 증언_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22-36]
 – 2026년 02월 08일
– 2026년 02월 08일 –
요 3:22-36 변함없는 요한의 증언_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람들이 세례받기 위해 예수에게 몰려드는 것을 안 요한의 제자들이 불편한 심기로 스승인 세례 요한에게 묻는다. 이에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알리고 설득한다. 이어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 더불어 그 본질에 대한 심오한 가르침을 행한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시는 이’이며, ‘하나님이 보내신 이’이다.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맛본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도 마땅하다. 구구절절 철저히 예수를 증언하는 자의 본분에 마땅한 가르침이 울려 퍼진다.
                                                                                       
    
    
1. 예수와 요한의 세례(22~24절)
“그 후에”는 유월절을 마치고 갈릴리로 올라가기 전(4:3)이다. 24절에서는 아직 요한이 옥에 갇히기 전이라고 말한다. 공간적 배경은 우선 예수가 머물렀던 유대 땅이다. 이 표현은 예루살렘에서 나와 유대 시골 지역에 있었다는 의미다. 세례를 행한 것으로 보아 물이 있던 곳일 것이다. 또 다른 장소는 요한이 있었던 살렘에 가까운 에논이다. 논란이 있지만, 아마도 세겜에서 멀지 않은 사마리아 지역에 있던 물이 많은 곳일 것이다. 1:28에서 요한이 세례를 행한 곳은 이 지역에 비해 북쪽이었기에 짐작하기로 요단강이나 물이 있는 곳을 따라 이동하며 사역한 듯하다.
    
22절에 요한과 예수와 그들의 제자들이 등장한다. 예수의 세례는 요한복음에만 등장하지만, 그조차도 예수가 직접 행하지는 않았다(4:2).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기에 그들 관습에 따라 세례를 행했는데, 예수님의 암묵적 혹은 명시적 동의하에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 기간에 세례 요한도 같은 사역을 했다. 공간적으로 예수(유대 땅)와 세례 요한(사마리아 근처)이 떨어져 있었지만,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서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이루 진행될 요한과 제자들의 대화의 배경이 되며, 사마리아 여인이 만나는 사건(4장)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2. 세례 요한과 제자들의 대화(25~30절)
세례 요한의 제자 중 어떤 이들이 한 유대인과 정결 예식에 대해 논쟁한 후, 예수에게로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요한에게 말한다(25~26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아직 유대교의 범주를 넘지 못한 상태다. 그들과 다른 유대인의 논쟁은 유대교 내적 문제에 대한 충돌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승에 대한 자부심과 예수로 인한 위기감을 가감 없이 노출한다. 유대인과의 변론도 스승을 옹호하려는 과정이었을 것이고, 세례와 관련된 요한의 사역에 예수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불편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알고 있었음에도 예수를 요한이 ‘증거한 자’로 말하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로 간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스승에 대한 충성심과 함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경쟁심이 담긴 표현이다.
    
제자들의 이런 언급을 듣는 세례 요한의 심정은 어땠을까? 요한은 경쟁심으로 인해 불편해하는 제자들에게 대답한다(27~30절). 요한은 예수와 관련된 세 부류의 사람들을 언급하며 내용을 진행한다. 첫째, 예수에게 간 사람들이다(27절). 요한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예수에게 간 것은 하늘 하나님의 뜻이자 일하심으로 이해하라는 의미다.
    
둘째, 요한의 제자들이다(28절).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고 그의 앞에 보냄을 받은 자라고 자기가 말한 것을 증거하는 자들은 바로 제자들이라고 한다. 요한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고, 사역 소명과 관련해 자기는 메시아의 출현에 앞서 외치는 자로서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임을 말했는데, 제자들이 그 보증이라는 말이다.
    
셋째, 요한 자신이다(29~30절). 결혼식에서 신부를 맞을 주인공은 신랑이고 친구들은 신랑이 오는 소리에 함께 기뻐한다고 한다(29절). 결혼식 비유를 통해 자신의 소명과 예수와의 관계성을 부연하는 것이다. 여기서 결혼식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맺을 새 언약 체결 과정을 상징하고(참조, 렘 31:31~34), 메시아 예수는 신랑이고 신부는 예수를 통해 언약 관계를 맺을 신자들을 의미한다. 요한 자신은 그 과정의 들러리 중 하나로 결혼식, 곧 하나님의 구원 과정 성취를 기뻐하는 자라고 한다. 더 나아가 예수의 영향력은 더 커져야 하고, 자신은 더 작아져야 한다고 고백한다(30절).
    
요한의 이런 대답은 예수와 요한의 관계성을 확인하게 하는데, 예수님은 기존 유대교 범주를 넘어 약속된 새 언약을 성취할 자이고, 요한은 그를 증거하는 자임을 보여준다. 또한 제자들의 경쟁심과 불안감에 대처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요한의 대답에는 이에 대한 원리들이 담겨 있다.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를 증거하는 자로서의 정체성과 소명을 제자들에게 확인시키며 자신이 이 상황에 요동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만 보았지만, 요한은 그것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라고 권면한다. 즉, 예수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증인으로서 자기 사역의 축소가 아니라 성공으로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안에서 궁극적 기대를 분명히 했다. 제자들은 자기 스승과 집단의 안정과 성공에 집중했으나, 요한은 자기와 예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궁극적 일하심, 곧 새 언약 약속이 온전히 성취되는 것을 기대하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고, 제자들을 그렇게 가르친다.
    
    
    
3. 요한의 신학적 첨언(31~36절)
사도 요한은 예수의 사역을 다시 설명한다. 예수의 기원에서 시작하여(31절) 증거 사역을 거쳐(32절) 결과(32~33, 36절)로 이어진다. 예수를 중심으로 하나님과 성령과 사람들이 언급된다. 하나님은 시작과 증거 과정과 끝(하나님의 진노) 전체를 주관한다. 성령은 하나님이 보낸 존재로서 예수의 증거 사역에 함께하며, 사람은 예수의 사역에 반응하는 존재다.
    
요한은 예수의 정체와 기원을 먼저 설명한다. 예수는 존재론적으로 피조 세계와 구분되는 ‘위’, 곧 하늘에 속한 자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35절)이며 아버지 하나님을 보고 듣고 함께한 창조주다(32절). 그 하늘에 속한 예수가 땅에 왔다(31절). 죄인들을 사랑하는 하나님 뜻을 따라 그들에게 생명 얻을 기회를 주기 위해 보냄을 받은 것이다(34절; 참고, 16~17절).
    
땅에 속한 자들은 땅의 것을 말하지만, 예수는 하늘 기원이 있기에 하늘의 것을 증거한다(31절). 핵심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일하심이다. 예수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고(32절),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1:14, 18)를 드러내어 그분의 참됨을 증거한다(33절). 이때 증거가 확실함을 보증하는 존재들이 있는데, 한 분은 하나님이다. 예수를 사랑하고 이 땅에 보내고, 그의 손에 만물을 주신 분이다. 하나님이 보증이기에 예수의 증거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34절). 또 다른 보증은 성령이다. 하나님이 보내셔서 예수의 세례 때 가시적으로 예수에게 임했는데(1:32~33), 그의 증거 사역에 함께하신다(34절).
    
이런 두 증인이 있기에 예수의 증거는 신뢰성이 있다. 증거의 결과, 믿음 여부에 따라 영생과 하나님의 진노로 구분되지만(36절), 대부분은 예수의 증언에 반응하지 않는다(32절).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자신을 내맡겨 응답하는 순종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36절).
    
이와 같은 설명에 의하면 예수의 사역은 삼위 하나님이 참여하는 구원 과정의 핵심이며, 예수는 참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의 증거는 하나님과 성령이 보증하는 확실한 진리이며, 그 증거에 믿음으로 응답해야 생명을 얻는다. 이와 같은 설명은 니고데모와 예수와의 대화 후 해설한 내용이나 1장 서론과 맥을 같이하고, 예수의 정체성(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과 믿음의 반응과 결과(영생)를 담은 복음서 기록 목적(20:31)과도 일치한다.
    
    
    
나는?
-예수가 세례를 베풀기 시작하자 그에게 요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제자들은 이 상황이 불편했지만 요한에게는 자연스러웠고 당연했다. 예수의 정체를 알리는 것이 요한의 삶의 목적이었고, 자신이 사라져야 그가 더 돋보일 거라는 것도 알았다. 예수는 실체이고 자신은 그림자이며 지금은 신랑의 친구들처럼 신랑과 함께 신부의 존재를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떠나고 사라질 때를 아는 사람이 현명하고 살아있는 사람이다.
    
-예수의 말은 하늘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분만이 하나님을 직접 뵈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을 향한 계획을 들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는 자는 하나님을 참된 분으로 인정하는 자가 된다. 그는 제멋대로 말하지 않고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요한은 땅에 속한 자신은 감히 이 예수와 비교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이는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라면, 세례 요한 그는 겸손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단지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받은 왕이다. 이제 그 아들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고, 이 아들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영생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 아들 예수의 통치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이미 유일한 심판주 하나님 아버지의 심판 아래 놓인 자다.
    
*요한은 쇠하고 예수님은 흥해야 한다. 그래야 요한도 살고 예수님도 영광을 받으신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그대로 살았다. 그래서 요한 자신보다 예수께 세례받으러 가는 자들이 많다는 소식에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다고 기뻐한다. 주님의 흥함이 그의 존재 목적이었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때 자신에게도 영광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임무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행동이 분명했다. 세례 사역으로 말하면 그가 예수보다 먼저였고, 사람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적으로 보면 후발주자인 예수에게 사람들이 몰려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이라면 질투를 느낄 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은 하나님의 백성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결혼하도록 도와주는 들러리라는 것을 확실히 했다. 그는 예수 증언자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인물이었다.
    
*혼인날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다. 신랑의 친구인 들러리가 주인공처럼 행동하거나 도드라져서는 안 된다. 들러리의 역할은 오로지 신랑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의 배경이 되고 주변이 되는 일이다. 신랑의 기쁨이 들러리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어떤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삶이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예수님은 만물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다스리시는 분이고, 성령을 한없이 주시는 분이다. 그것이 그분이 흥하고 또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한 이유다. 그러니 땅에 속한 세상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고, 성령의 역사로만 믿을 수 있다.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을 참되신 분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다. 참된 축복은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께 참되다는 인침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에 속하여 친히 하나님에게서 보고 들은 바를 전하셨다. 영으로 다시(위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고 또 수용하게 된다. 참된 증언은 논리적인 증언이 아니다. 듣기 좋은 증언이나 아름다운 증언도 아니다. 보내신 분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성령의 감동으로 전하는 증언만이 참되다.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계가 결정한다. 그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 믿음은 곧 순종이다. 온 세상을 다스릴 전권을 위임받은 왕 예수의 통치 앞에 복종한다는 의미다. 그것을 거부한다면, 이미 진노 아래 있는 삶이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분의 주권 안에만 생명이 있고, 스스로 생명을 저버린다면 이미 진노가 임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겸손은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것이다. 요한의 제자가 예수님의 세례 사역을 시기하자, 요한은 그것을 하나님의 인정으로 여기며, 자신은 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조연임을 기쁘게 받아들인다(26~30절). 조연의 자리를 기쁘게 여기는 것, 얼마나 대단한가. 그는 자기 사역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흔들림이 없었던 신실한 증언자였다. 일상에서 예수님을 높이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님이 흥하신다면 내가 받는 작은 오해와 비판에도 기뻐할 수 있을 게다.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을 수 있다(27절). 제자들의 말에 요한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고는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대답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어떤 성과도 거둘 수 없다(시 127:1~2). 내게 주어진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감사하며 사역하리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으며 하나님을 계시하는 분이시다(31~34절). 하나님께서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시기에 그 증언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을 참된 분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땅에 속했지만, 신령한 하늘 세계를 알게 되어 참되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땅의 속한 일 때문에 마음이 힘들 때, 내가 받은 이 신령한 특권을 기억하며, 참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리라!
    
    
    
*주님, 제 삶을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제가 가진 것으로 주님을 기쁘게 높이겠습니다.
*주님, 제게 맡기신 것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사역자가 되겠습니다. 다른 이에게 맡기신 사역을 탐내거나 시기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겠습니다.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기꺼이 연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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