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진정한 해갈, 예수 그리스도 [요 4:15-26]
 – 2026년 02월 10일
– 2026년 02월 10일 –
요 4:15-26 진정한 해갈,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는 능력으로 만나는 사람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리며, 자신의 본질을 계시 하신다. 오직 그 사람에게 영생(구원)을 주고자 하는 일념에서 그렇게 하신다. 예수님과 여인의 물에 대한 대화는 다른 국면을 만나다.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을 아는 능력을 사용하여 여인의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렸다. 여인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선지자로 이해하는 데 그치고 그를 사마리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려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배 장소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새 시대에는 장소가 아니라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 것이라고 하여 여인의 문제제기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결국 여인에게 자신을 메시아로 계시하신다.
 
많은 학자들이 본문에 나오는 다섯 남편 있었던 사마리아 여인을 방탕했던 사람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당시 유대 사회나, 세계관에서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혼을 감행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여인은 도덕적으로 방탕한 여인이기보다는 기구한 삶을 산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 여인은 육체의 만족을 위해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꾼 여인이 아니라 남편들에게 버림받은 희생자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지금 있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라는 서술에는 기구한 삶 속에 약간의 부도덕함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1. 선지자 예수(15~19절)
15절에서 예수님이 생수를 준다고 하자 여인은 그것을 요청한다. 10절에서 이것은 구하면 얻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육체를 위해 마시는 물과는 다른 영생의 물이었지만, 여인은 계속해서 자신이 원하는 물만 달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조그만 전진이 있다. 여인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돈 목마른 사람이라고 인정했고 생수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16~18절에서 예수님의 전지한 능력이 사용된다. 이제까지 육체를 위한 물과 영생을 위한 물의 엇갈리는 대화였지만, 그런데 예수는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 이 여인의 사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예수님은 대뜸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한다. 이것은 앞의 대화와 전혀 연결점이 없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예수라면 얼마든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만나기 전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무엇을 했는지 알았고, 니고데모가 자신을 인정하는 말을 하면서 찾아왔지만 그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대처하셨기 때문이다.
 
본문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이런 능력을 활용하여 이 여인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리기 시작하신다. 이 여인에게 남편 문제는 아킬레스 건이었다. 그래서 잡아뗄 생각으로 ‘남편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에 예수님은 공적으로는 그 말이 맞지만, 과거에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 같이 있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라고 한다. 물론 예수가 이 여인의 치부를 드러낼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다.
 
19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유대인 남자로 알았다가(9절), 좀 더 진일보하여 선지자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존재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녀가 예수의 정체를 완전히 알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낯선 유대인 남자를 그가 말하는 그대로 다 인정할 마음이 아직은 없었다.
 
 
 
2. 성전 예수(20~24절)
20절은 여인이 제기한 예배 장소의 문제다. 이것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결코 합의에 이를 수 없을 만큼 첨예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성전이 있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명기 12:5을 근거로 각각 서로의 예배 장소를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라고 주장해오고 있었다. 또 역사적으로 유대인 제사장 왕이 그리심 산 성전을 파괴한 일 때문에 둘 사이가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로 서로 화해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21~2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시대의 예배를 소개한다. 서로간에 좁힐 수 없는 간극에 대해 예수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온다. 첫째, 예배에서 장소는 이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21절). 예루살렘도 그리심 산도 장소일 뿐이라고 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예배는 유대인들의 몫이라고 한다(22절). 그것은 사마리아인들이 정성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예배 형식이 잘못되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계시가 유대인을 통해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구원의 계시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는 것이다. 반면 유대인들은 구원의 계시를 받아 아는 것이 예배라고 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든 유대인이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유대인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의 계시를 보여주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매우 관대하다. 그런데 이 부분만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단호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엇뜻 예수님도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의 편에서 말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예수는 그런 민족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구원사가 유대인들을 통해 전개되어 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셋째, 새롭게 예배하는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한다(23절). 어떻게 보면 이것은 모순처럼 들린다. 어떻게 그 시간이 오고 있으며, 또 벌써 그 시간이 도래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메시아의 도래로 그 시대가 벌써 와 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도래로 이제 어디에서 예배할것인지 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메시아의 십자가와 부활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여 성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대는 여전히 오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제 예수님이 성전인 시대가 된 것이다(2:19~22).하나님께 이르는 길,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길은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었다(14:6).
 
넷째, 그 예배 장식은 ‘성령과 진리’로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소에 상관없이 성령의 인도로 또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고 예수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거짓으로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3. 메시아 예수(25~26절)
이 여인은 얘수의 말에 거의 설득된다. 이의를 걸 내용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다만 여인은 그러한 예배는 메시아가 오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여인은 사마리아인으로서 ‘타헵(회복시키는 자, 유대 용어로 메시아)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메시아(타헵)가 오면 그 모든 것이 설명될 것이라고 보았다. 사마리아 사람에게 있어 ‘타헵’은 일종의 선지자요 선생이다. 그래서 그가 모든 것을 설명해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여인은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이 말을 한 것이다. 사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이것을 자세하게 설명해 준 것이다
 
26절은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요한복음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말한다. “네게 말하는 내가 바로 그(메시아)니라.” 
 
그리고 더 이상 대화는 기록되어 있지 않는다 이 여인은 이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입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왕 예수께서 그 나라를 만들고 이끌어가시는 방식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 살고 있는 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다. 그 사람의 지나온 역사를 존중하며 만나시고 그 사람의 구체적인 필요에 민감하여 채우신다. 그 사람이 가장 잘 알아듣는 말로 설명해주신다. 인격적인 만남이 이런 만남이 아닐까?
 
-예수님이 한 사람을 찾으시다.
 
-예수님께서 다시 목마를 일이 없는 생수를 줄 수 있다고 하자 여인은 그 물을 요구한다. 더는 정체를 숨겨가며 물 길러 오지 않아도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인의 진정한 목마름을 폭로하기 위해 남편을 불러 오게 하신다. 여인은 그간 다서 남편을 거쳐왔고 지금 같이 사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니 데려올 수 없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면서도 요구하셨다,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없지만, 여인이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가 회복되기 전에는 참다운 해갈은 없을 것임을 아셨던 것이다.
 
-여인은 사마리아와 유대 사람들 간의 첨예한 관심사인 예빼 장소에 관한 질문으로 화제를 돌렸다. 정말 궁금해서인지 남편 이슈가 불편해서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겠지만,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정한 해갈은 참된 예배의 회복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둘 모두 예배 장소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동안 그들 역시 이 여인처럼 목마름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 목마름이 깊어지는 헛된 일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으로 메시아 예수를 알고 인정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기 전에는 어디에서 예배하든 목마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진정으로 인간의 목마름을 해결하려면 다른 어떤 장소에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 영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드리는 예배이며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 영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드리는 예배이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며 드리는 예배이다. 영이신 하나님이 보이시는 예배는 나와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 가운데 성전을 삼으시고 그들의 예배를 받으신다. 이제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참다운 예배를 드릴 때가 왔다. 바로 그녀 앞에 계신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로 경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 하나님은 진리시다. 그래서 진리 안에 거한 자의 예배를 받으신다. 성령께서 진리로 인도하실 때 그 길을 따라 걷는 것 자체가 예배다. 그들의 고백이 예배고, 그들의 찬양이 예배고, 그들의 순종이 예배다. 그 사람이 서고 걷는 모든 순간이 예배다.
 
-예수께서 누구신지 알 때 진정한 예배가 시작된다. 예배는 영생을 누리는 자가 삶 전체로, 존재 전체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문화와 관습을 깨뜨리는 한 유대인 남자에서 선지자로, 그리고 이제 메시아로 이해를 바로잡아 간다. 그러면서 점점 영생의 길로 가까이 들어서고 참 증인과 예배자의 삶으로 나아간다.
 
*죄와 부끄러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치부를 들켜버린 여인은 예수님을 비난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한 여인에게 구원자로 드러내시며 더욱 깊이 만나주셨다. 나는 예수님의 물음(말씀)에 정직하게 답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모든 것을 낱낱이 아시며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다(16~19절). 눈앞의 문제만 해결받기 원하는 여인에게(15절)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지적하신다.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예수님 앞에 우리 모든 죄를 고백하는 것은,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숨기거나 꾸미지 말고 정직하고 겸손하게 그분 앞에 서야한다.
 
*내면의 목마름은 오직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다. 여인은 남편을 통해 내면의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17~18절).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목마름을 해결하려 할 때, 더욱 깊은 목마름을 느께게 된다. 지금 목말라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통해 그 목마름을 채우려고 하는가?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는 길을 열어놓으셔서 하나님을 진정한 마음으로 예배케 하셨다. 또 참된 예배를 원하신다(21~24절).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예배의 ‘장소’를 묻는 여인에게, 하나님께 초점을 돌려 예배의 ‘대상을 가르치신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오직 영이신 하나님 한 분께만 초점을 맞추며,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예배드리는가? 또 나는 예배자로서 어떤 모습일까?
 
*자기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기다려온 구원자(메시아, 타헵)이심을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이 여인만의, 이스라엘 백성만의 구원자가 아니라, 아직 그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구원자이시다.
 
 
 
*주님, 주님을 찾고, 주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주님, 주님은 나의 유일한 구원자, 나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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