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5:16-30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베데스다 못 주변에서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치유하신 후 일어난 사건의 연장이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자신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선언하시며, 최고의 재판관으로서 죽은 자를 심판하여 생명과 심판의 부활로 이르게 하실 것을 예언하신다. 16~18절은 예수님과 유대인의 안식일 논쟁을 다루고, 19~29절은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관계성을 다룬다. 구체적으로 19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을 한다고 말하고, 20~23절에서 그에 대한 이유를 생명과 심판과 관련해 설명하고, 24~29절까지 심판주에 대해 부연하는데 30절까지 이어진다.
1. 안식일 논쟁(16~18절)
38년 된 병자를 치유한 날이 안식일이었기에 예수님의 기적은 종교 지도자들과의 충돌로 비화한다. 게다가 병 나은 자가 자기에게 자리를 들고 가라고 시킨 자가 예수라고 고자질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를 더 박해한다(16절). 이에 예수와 유대인들과의 논쟁이 진행된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가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대답은 두 가지 요소를 담고 있다. 첫째,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성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한다. 예수가 ‘아버지-아들’ 관계를 한 왕으로서의 메시아이자(삼하 7:13; 시 2:7)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이 땅에 와서 그분을 계시하는 아들 하나님(1:14, 18; 3:16)임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런 측면에서 병자를 치유한 것은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계시한 것이고, 아들로서의 정체성과 사역에 대한 표적이 된다.
둘째, 안식일에 일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일하기에 그분의 아들 메시아도 일한다고 말한다. 당시 문헌에 의하면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하시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창세기 2:3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마치고 쉬셨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수의 이해는 분명하다.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신다. 단지 구원 계획의 첫 단계인 창조 과정을 쉬셨을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삼으려는 창조 전 계획(엡 1:5)을 쉼 없이 이루고 계신다. 생명을 창조하여 자녀될 자들을 계속 만들고, 여전히 세상을 유지하고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온전한 안식, 구원의 완성을 위해 예수를 보내어 자기의 은혜와 진리를 계시하고 죄를 해결하여 새 언약을 향한 길을 만드시고, 사람들을 초청하신다. 따라서 예수가 말한 ‘일’은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일이고, 병자를 고친 것은 그 계획의 일부인 뿐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말에 격분하여 그를 죽이려고 한다(18절). 예수가 말한 ‘일’도, 하나님의 계획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안식일을 어긴 것을 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묘사하고 자기 일을 하나님의 일로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의 시각에는 예수가 명시적으로 자기 행동을 하나님과 연계시켜 말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동격으로 여기는 분명한 신성모독을 범한 것이었다.
2. 예수님의 변론_아버지와의 관계성(19~29절)
19절부터 예수께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성을 ‘아멘, 아멘’을 시작으로 긴 변호를 시작한다. 첫 주제는 예수님의 사역과 아버지와의 관계성이다. 첫째, 사역의 기원성과 의존성을 변론하는데, 그는 아버지의 일을 본 것 외에 어떤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사역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으며, 그 내용은 그분이 행하는 것을 보고 따르는 순종이란 의미다. 예수님의 선재성(先在性)을 염두에 둔 표현이지만, 유대인들은 마치 선지자가 계시를 따라 순종했다는 말로 들렸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사역 이행성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무엇을 하든 아들이 똑같이 한다고 말씀했다. 예수가 하나님처럼 전능하다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본뜻은 그가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수행한다는 의미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예수는 존재론적으로 자신을 성부 하나님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오직 그분에 의해 보냄을 받은 계시자로서 그분의 뜻을 따라 그분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20~23절에서 생명과 심판의 주되신 예수를 드러낸다. 예수는 ‘왜냐하면’으로 앞의 내용을 부연한다. 세 가지 요소로 부연하는데, 첫째, 사역의 본질이다(20절).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을 보여 주고 더 큰 일 보여서 ‘너희’로 놀라게 하실 것이다. 예수의 사역은 사람을 향한 구원 사역이지만, 본질적으로 예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기에 십자가와 부활을 포함한 모든 과정은 예수를 위한 것이다.
둘째. 사역의 내용이다. 두 가지로 소개하는데, 하나는 생명을 주는 것으로(21절), 아버지가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는 것처럼 아들도 죽은 자를 살릴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죽은 자에게 다시 관계를 연결해 생명 얻게 하는 새 창조의 일이다. 하나님이 맡긴 것이지만, 예수의 주도권 요소도 함께 있다. 예수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역은 심판이다(22절).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모든 것을 심판할 때, 그 과정과 권세를 아들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주이자 심판의 주다.
셋째, 심판 사역이 목적이다(23절). 하나님이 심판을 예수에게 맡긴 것은 모든 이로 하여금 예수가 주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현재 그의 영광이 감춰져 있지만, 십자가로 사역을 완수하면 원래 영광을 회복하게 될 것이며(12:28), 이후 최후의 심판 때 예수의 영광이 모든 피조물에 온전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계시자이기에 그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므로 생명을 얻고, 그를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절하여 심판의 운명을 맞게 된다.
24~29절은 ‘아멘, 아멘’으로 생명과 심판에 대해 부연 설명 한다. 먼저 생명에 대해서인데(24~26절), 예수는 어떻게 생명을 얻을 것인가를 일련의 과정으로 소개한다(24절). 하나님이 죽은 자들의 세상에 예수를 보내시고 예수의 증거로 사람들이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순서다. 이러한 표현과 이어지는 설명에 의하면 생명과 관련된 몇 가지 강조 요소가 있다. 첫째,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성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며, 하나님을 계시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유일한 통로다. 그렇기에 그의 증거는 하나님의 증거이고, 그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모든 생명의 근원인 것처럼, 그분이 아들 속에 생명을 주어 새 창조주로서 새 생명을 주는 근원이 되게 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다.
둘째, 생명의 의미다. 영생은 막연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구원 과정의 최종 모습은 삼위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 사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17:3).
셋째, 그러므로 지금 예수가 증거하는 것에 반응해야 한다. 예수는 지금이 죽은 자들을 살게 하는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라고 부연한다(25절). 자기의 증거 사역을 유대인들은 거절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는 ‘아멘, 아멘’을 통해 이 요소를 강조한다. 결국 삼위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준비하지만, 최종 결과는 인간 믿음의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중심의 죄 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는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의 최고 배려다.
또 다른 부연 내용은 심판에 대해서다(27~29절). 하나님은 예수의’ 인자 됨’으로 인해 심판의 권한을 주셨다고 한다. 하나님께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아 통치하는 다니엘 7:13~14의 ‘인자 같은 이’가 바로 예수 자신이라고 소개한다. 예수의 이런 부연 설명을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는 생명 사역에 대해 현재를 중심으로 설명하나, 심판 사역은 순전히 미래 사건으로 묘사한다. 역사의 마지막 때 모든 이가 부활하여 평가를 받을 것인데(참조, 계 20:11~15), 예수가 아버지에게서 심판 권한을 받아 함께 평가할 것이다. 결국 예수는 창조로 시작한 구원 과정의 첫 단계부터 하나님과 함께한 존재이며, 구원 과정의 완성을 위해 반역의 통치 속으로 보내져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을 계시하고 그분께 갈 수 있는 생명의 다리를 놓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거절하면 장차 하나님/예수가 모든 것을 평가할 때 어둠과 함께 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지금 결정해야 한다.
나는?
-종교 권력자들은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에게 안식을 준 것을 보고는 그를 고친 예수를 통해 안식일의 참뜻을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안식일의 문자적인 규칙을 어긴 것을 문제 삼고 예수를 박해한다.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안식일을 제정하신 본래의 취지대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안식 주시는 일을 하고 계시기에 자신도 치유하였다고 하신다.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을 보았으면서도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언급하였다면서 그를 죽이려 한다. 안식일에 안식일의 주인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반 인식일 적인 존재들인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예수님은 제멋대로 일하지 않으신다. 본 것을 말하고 명령받은 대로 행하신다. 하나님께 위임받은 권한대로 행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다. 아니 아버지보다 더 큰 일을 아들이 행하신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당신의 권능을 아들도 자신이 원하는 자들에게 행사하게 하신다. 그런 예수를 향해서 자신들이 임의로 만든 기준대로 평가하는 유대 종교 권력자들의 처사가 얼마나 어리석고 가소로운지 모르겠다.
-아버지께 위임받은 아들의 권한 가운데는 최후 심판의 권세도 있다. 이제 삶과 죽음은, 이 아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아들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이미 생명이 있고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이미 사망 아래 있다. 나중에 선을 행한 자와 악을 행한 자 모두가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오늘 예수 안에 있는 안식에 참여하고 그 안식을 창조하는 일에 참여하는 자가 영원한 안식에도 참여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말씀만 전하셨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대표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게 하도록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 그분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결정한다. 그분의 통치에 복종하는 것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 없이 구원과 영생을 말할 수 없다. 구원은 인격적이고, 관계적이며, 실제적인 사건이다.
*심판과 영생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있을 것이다. 오늘 하나님 나라를 살지 않으면 그날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오늘의 심판이 영원한 심판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그 나라를 맛보고 감격하고 예배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나라를 사모할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는 길이자, 영원한 생명이 되신다(요 14:6). 죄로 인해 하나님을 찾을 수도, 하나님께 갈 수도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다(24절).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예수님께 찬양과 감사의 고백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생명과 심판의 권한을 가지신 분이시다(25~29절). 하나님께 권한을 위임받아 자기 말을 듣고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지만, 그 말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심판을 하신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심판에 이르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은 생명을 나는 어떤 일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예수님에 대한 공경 없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위탁하시고 보내셨기 때문이다(23절). 예수님을 공경하는 것은 기록된 말씀을 귀히 여기며 삶 속에서 순종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나는 예수님을 공경하는 삶에 자연스러운가?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서 중립적인 반응은 있을 수 없다(24~29절).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거나,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거뿐이다. 나는 예수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주님, 생명과 심판의 주님 되심을 인정합니다. 저를 영원한 심판에서 건져내시고, 영원한 심판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