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 [요 6:30-40]
 – 2026년 02월 19일
– 2026년 02월 19일 –
요 6:30-40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
 
오병이어 다음 날 가버나움 회당에서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과 예수와의 대화가 계속된다. 기적의 떡과 생선을 먹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새로운 표적을 구한다.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하늘의 만나를 언급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참 떡을 말씀하시며,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의 뜻은 그분이 보내신 그 아들, 예수를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하신다.
 
 
 
1.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30~35절)
30~31절에서 만나의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다. 표적의 기능은 표적 자체가 아니라 그 표적이 가리키는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께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라고 묻는다. 이런 질문은 성전 사건을 일으킨 예수께 유대인들이 요한복음 2:18에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주겠습니가?”라고 질문한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 이미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예수께 “당신은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입니다(6:14)”라고 고백했으나 그들은 예수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확신을 위해 또 다른 표적을 구한다. 유대인들은 자기 조상들이 출애굽한 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만나를 먹었던 기적 사건을 언급하며 예수께 그와 같은 표적을 요구한 것이다.
 
32~33절은 얘수께서 유대인들의 표적에 엄중하게 대답하시는 장면이다.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예수는 유대인들이 표적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것임을 강조한다. 그들은 모세를 넘어서 만나를 공급해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만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만나 자체에만 열광했다. 만나보다 더 큰 기적인 오병이어를 경험했지만 또 다른 표적을 요구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이 먹은 만나가 하나님이 주실 떡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하며, 모세의 만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실 것을 말씀하신다. 만나는 물질적이며 한시적인 임시방편으로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참된 양식은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주시는 떡으로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34절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이 주시는 떡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 떡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생명을 주는 영적인 떡을 육체의 양식을 위한 물질적인 떡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을 때, 그 생수를 마시는 물로 오해한 것과 비슷하다(요 4:14~15).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어 현실적인 필요를 해결하며 이 땅에서 명예와 물질을 풍족히 얻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하늘의 떡을 요구하던 사람들과 같다.
 
35절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하나님이 주신 참 떡으로 육체의 굶주림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다. 예수께서 생명의 떡과 함께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의미다. 영적 굶주림에 대한 말씀과 함께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도 육체적인 갈증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갈증을 의미하며 영생을 설명한 말씀이다. 즉, 얘수를 영접하는 자는 영적 굶주림이나 목마름에 결코 어덕이지 않을 것이란 약속이다.
 
 
 
 
2. 하나님 아버지의 뜻(36~40절)
36~37절에서 예수께서 사람들을 초청하시며 자기에게 오도록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예수를 눈으로 보고 그가 행하시는 기적을 체험해도 오지 않고 믿지 않는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을 먹고 영생을 얻는 길을 분명히 제시했지만 듣지 않았고 믿지 않았다.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를 대면하여 보면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생명의 구주로 믿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와 다른 반응이 나타난다. 기적 사건이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도록 항상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기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선언하신 것이다(요 20:29).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는 모두 나에게 올 것이며, 내가 그들을 결코 내쫓지 않을 것(37절)’이라고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셔야 사람들이 예수께로 올 수 있다. 그렇게 온 사람들을 예수께서 결코 내쫓지 않고 보존하시며 지키실 것임을 암시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섭리가 ㅇ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 결과 사람들은 예수께로 와서 그를 믿으며 영생을 선물로 받게 하신다.
 
38절은 예수께서 자신의 기원과 사명을 설명하시며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자신의 기원을 갈릴리 나사렛에 두지 않으시고 하늘에 두신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그의 뜻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처럼 자신을 선지자로 암시하면서 하나님이 보낸 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아들 예수의 삶은 전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신 뜻을 실천하고 순종하는 삶이다.
 
39~40절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두 가지로 설명하신다. 첫째는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낸 사람들을 끝까지 보호하고 인도하여 영생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인식하고 그에게로 와서 그를 믿고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셨기 떄문이다. 이런 점은 영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사역이며,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영적 출생이다.
 
둘째,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은 인간의 시직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그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역사다. 예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는 것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는 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 이해하고 있는 아버지의 뜻은 예수께 보내어 그 아들을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며 ‘마지막 날에 그들을 살리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어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는 자들은 지금 여기서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마지막 심판의 날에 생명의 부활로 살아나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란 의미다.
 
 
 
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시자, 무리는 모세가 하늘에서 떡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권위를 얻은 것처럼, 예수도 하늘에서 떡을 내려서 믿음의 대상이 될 만하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사실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늘에서 떡을 내려주신 것이듯, 그들이 경험한 예수의 오병이어의 기적도 예수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기적이었다. 이미 그들이 바라는 기적은 일어났다. 하지만 기적을 더 보여줘도 충분하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보다는 믿지 말아야 할 이유를 더 부지런히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기적도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강제로 마음 문을 여는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 자신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생명의 떡이시다 썩을 육신을 위한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영생의 양식이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듯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영생의 생수이시다. 이 양식을 먹는 일은 이 예수를 믿는 일과 같다. 그때 예수는 그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그들이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이 예수를 믿는 일이 바로 생명의 떡을 먿는 일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이고,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그것을 예수께서  이미 보여주셨다. 예수 역시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일이고, 그것이 예수가 생명을 누리는 방식이다. 제자들도 이 예수처럼 믿어야 한다. 그러면 예수가 나중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처럼 제자들도 마지막 날에 이 예수가 입은 부활에 참여할 것이다.
 
*믿음은 그분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분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가치관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더 많은 표적을 주고 심지어 주께서 다시 오신다 해도 그들은 믿어야 할 이유보다 믿지 않을 이유를 더 부지런히 찾을 것이다.
 
*예수가 생명의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생명의 떡이다. 그를 먹어야 한다. 그가 우리의 일부가 될 때까지 먹어야 한다. 그래서 그분이 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생각이 되어야 한다. 내가 죽고 그분이 살아야 한다. 내가 그분의 말씀의 화신이 되어 이 세상에 성육신적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즉, 내가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한다.
 
*예수 믿는 자를 단 한 사람도 내어쫓지 않고 지켜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일이다. 세상은 예수님의 나라를 선택한 이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한 그 다음부터는 그 왕이 책임져주신다.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지언정 그들의 영생은 앗아가지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이다.
 
*표적을 보았다고 모두 믿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는 표적보다 확실한 증거와 대면하여 가르침을 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믿도록 보여줄 다른 표적이 없는지 반문한다(30~31, 34절). ‘더 큰 것과 더 좋은 것’을 다시 보면 믿겠다는 고백이 허망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들이 표적을 베푸신 분보다는 표적을 더 신뢰하는 전형적인 불신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만나와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떡을 알아보지 못하는 저들은 눈뜬 소경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비밀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에서 하나님의 일을 깨닫는 믿음의 눈이 더 중요할 것이다. 영적인 시야를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주신 영생하게 하는 생명의 떡이다(32~33, 35~37절). 사람들은 조상들이 광야에서 머은 떡이 모세가 준 것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하루 양식을 위해서는 목을 매면서도, 영생하게 하는 생명의 떡은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영원히 배고프지 ㅇ낳고 목마르지 않을 유일한 길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오늘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들을, 끝까지 책임지신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맡기신 자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 부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일하시며,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셨다. 성도의 구원의 확신과 영생의 축복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주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나의 구원으로 성취되었다면, 그 구원을 얻은 나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
 
*선교에 참여한 모든 팀원들이 “더 크고, 더 좋은 일”보다, 지금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일에 감사하고 만족하기를 구해본다. 평범한 만남의 시간이 특별하게 되는 것은 믿음의 특권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며 보내는 시간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의미있는 시간으로,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 구원의 통로로 각자의 사역의 현장과 시간에서 역사하실 것을 믿는다.
 
 
 
*주님, 생명의 떡이신 주님이 주신 영생의 기쁨과 소망이 날마다 충만하기를 고대합니다.
*주님, 지금 누리는 은혜보다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구하기 보다 자족하며 주님과 동행하기를 추구하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는 하루이기를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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