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요 7:25-36]
 – 2026년 02월 23일
– 2026년 02월 23일 –
요 7:25-36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초막절 중간에 있었던 예루살렘 유대인과 예수의 대화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예수의 메시아 됨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두 부류로 갈리는데,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님을 확신하고 당국의 체포를 촉구한다.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자들은 예수의 표적 행함이 그리스도로 손색없다는 견해다. 심각성을 파악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움직인다. 예수가 그리스도인지 의심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예수는 성전에서 계속 가르치시며 자신이 보냄을 받고 세상에 왔으나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말씀하신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다.
    
    
    
1. 예루살렘 주민들의 질문(25~31절)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에 대한 변론을 듣고 성전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예루살렘 사람”은 순례자가 아니라 예루살렘 거주민을 의미한다. 이들은 유대 종교 권력자들이 이미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초막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왔을 때 그를 알아보고 유대 종교 권력자들이 죽이려고 찾고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오셔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며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체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 주님들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았기 때문에 감히 체포하지 못하는 줄로 오해하며 의아해한다(25~26절).
    
27절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예수의 기원에 대해 언급한다. 예수를 확인한 사람들은 그의 부모가 요셉과 마리아이며, 그가 어린 시절 동안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라는 전승을 믿고 있었기에 예수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당시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요 7:42; 미 2:5). 하지만, 또 다른 유대 전승들은 그리스도는 갑자기 나타날 것이며 그때까지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선입관은 진리를 오해하게 하고 진리로 가는 길을 막는 걸림돌이 된다.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28~29절은 성전에서 가르치는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모습은 마치 구약의 예언자와 같다. 요한은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모습을 “외쳐 이르시되”라고 표현하며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엄숙하게 선언하듯 묘사한다. 또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라고 하신 말씀은 유대인들이 자신이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이며 갈릴리에서 온 것도 알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적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참된 분이시라고 증언한다. 예수를 알되 참 하나님과 참사람으로 이해할 때 올바로 아는 것이다.
    
30절에서 유대의 종교 권력자들은 예수를 체포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잡지 않았다. 요한은 이 상황을 예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수의 죽음은 초막절이 아니라 유월절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사람들은 예수를 체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며 이루어가신다.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조정하려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31절은 예수가 행한 표적에 대하여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행하신 기적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을지라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 알고 있었다. 이들의 믿음은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며, 온전한 믿음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며 예수의 기적과 그리스도의 오심을 비교한다. 유대인들은 모두 메시아가 오면 놀라운 기적을 많이 행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렇게 기적을 체험하고 신비한 경험을 토대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유지하려는 이들은 인격적인 예수를 만나기 어렵다. 신비한 체험에 바탕을 둔 신앙은 표적 믿음으로서 더 자극적인 체험만 추구하느라고 늘 갈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성전 경비병들과 예수의 가르침(32~36절)
32절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에 대하여 비밀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먼저 알고 대제사장과 함께 예수를 체포하려고 성전경비병을 출동시킨다. 바리새인들이 대제사장들보다 군중의 반응을 잘 파악하고 예수를 체포하려 했다. 두 그룹은 평소에 서로 반대되는 성향을 보이고 있었지만, 사두개인들로 구성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체포하는 일에 철저하게 연합하였다.
    
처음에 유대교에서 대제사장은 한 명이었으나, 로마의 정치 행위 속에서 대제사장을 임으로 임명하면서 많은 숫자의 대제사장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했고 성전 구역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어서 성전경비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33~34절에서 예수께서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아시고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예수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성전경비병들을 보았지만, 이 땅에서의 시간이 조금 남아 있음을 말씀하신다.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통해서 다시 돌아갈 것을 말씀하신다. 지금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체포하려고 왔지만, 때가 되면 예수를 찾으려고 해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더욱이 예수께서 가시는 곳에 아무도 올 수 없다고 선언하신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다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의 생각을 비우고 예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35~36절은 유대인들의 반응이 이어진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나 있는 곳에 오지 못하고 만나지도 못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가시는 유일한 장소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의미하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을 생각했다. 예수께서 그 장소에서 하시는 일로 그들이 생각한 것은 “헬라인을 가르칠 것”이란 추측이었다.
    
이 말씀은 아이러니며, 예수의 복음이 온 인류에게 전파될 것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라는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께서 34절에서 하신 말씀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이미 잘못된 생각하고 있었고,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땅의 기원을 최고의 지식으로 알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예수가 드러내놓고 말해도 유대인들이 제지하지 못하자 혹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메시아가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예수의 출신지는 다 알려졌기 때문에 그가 메시아일 리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의 참 출신지는 갈릴리가 아니라 하늘이다. 우리 시대 예수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자신들의 제한된 정보가 말해주는 예수가 그에 관한 전부라는 전제하에 내려진 것들이다. 진리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겸손을 낳고 경청으로 이어진다.
    
-예수의 소속은 유대인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그곳이 아니다. 진정한 예수의 유래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이며, 그곳은 유대인들은 모르지만, 예수님만은 아시는 곳이다. 그분은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요셉의 아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는 스스로 사역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서 하시는 중이다. 유대인들이 이 말에 격분하여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실패한다. 그것은 아직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실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어디서 오셨는지도 모르지만,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른다. 그곳은 유대인들이 찾아도 찾을 수 없고, 오려고 해도 올 수가 없는 곳이다. 예수는 죽고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실 것을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이 이것을 알 리 없다. 그들은 예수가 여느 유대인들에게 가서 사역할 것이라는 뜻으로 짐작했다.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예수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 예수가 하시는 모든 말들을 땅에 속한 그들의 지식에 따라서만 이해하게 될 것이니 오해는 불가피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메시아 교리에 얽매여 예수님의 메시아 됨을 믿지 못했다. 과학주의 세계관에 갇힌 현대인들도 예수의 신성을 믿지 못한다. 예수의 삶은 본받을 만하다고 여기지만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진리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는다. 우리는 예수를 전할 때, 그를 보내신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 역사의 섭리를 함께 전해야 한다.
    
*표적을 본 무리는 예수의 인격보다 그의 능력에 의존하여 믿음을 고백한다. 예수의 기적 사건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증거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게 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진정한 믿음은 예수의 가르침과 하신 일을 인격적으로 알게 하는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예수께서 지신의 죽음을 암시하면서 내가 너희와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상상을 했다. 메시아에 대한 그릇된 선입관 때문에 눈앞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의 죽음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를 바로 알 때, 교회를 알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은 예수님을 아는 것에 방해가 되었다(25~27, 34~36절).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오실지에 대한 전통적인 지식이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의 견해나, 신학적인 입장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참된 지식을 얻는 데 실패했다. 모두 안다는 교만과 내 것만 옳다는 편협함이 예수님과의 관계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더 깊은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대인들은 예수가 나사렛 출신이며 목수의 아들이라는 피상적인 정보(어디서 왔는지 아노라)를 진리 판단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다. 즉 익숙한 것을 진리인양 오만한 판단을 한 것이다. 사람은 익숙할수록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종교적 지식은 충만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 지식이 가리키는 실체인 하난미을 알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었다.
    
*하나님에게서 나오셨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시다(28~29절).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를 그리스도로 보내신 하나님은 알지 못했다. 외모로 판단한 결과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예수님을 참 하나님과 연결 짓지 못했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영접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사람들 사이의 모든 형식과 경계를 허무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어디서 왔는지 분명히 아셨기에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분명히 아셨다(33~34절). 자신의 기원과 사명을 알고, 가야 할 종착점이 어디인지 아셨기에 사람들의 유혹에 흔들리거나 위협에 굴하지 않으셨다. 이제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을 완수하시고 아버지께 돌아가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곁을 떠나시는 것이 우리에게 절망일 수 없는 것은 몸으로는 떠나시지만, 영으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적과 가르침은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분노하여 잡고자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표적에 감동하여 믿었다. 말씀을 듣는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주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에게 믿음의 반응을 요구한다. 주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해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내가 가진 성경 지식이 옳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믿는 예수님이 성경적이라고 말하기 전에 나의 삶을 통해 그 말씀의 열매와 예수님의 인격을 세상에 보여주고 있을까?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34절)’ 때가 오기 전에, 주님과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다시금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과 반응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향한 진심과 진실함이 언제나 동행하기를 소망한다.
    
    
    
*주님, 주님의 말씀을 통해 바르게 믿으며, 주님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주님, 익숙함의 오만속에 빠져 성령께서 깨우쳐주시는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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