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요 7:37-52]
 – 2026년 02월 24일
– 2026년 02월 24일 –
요 7:37-52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초막절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성령 보내실 것을 예언하면서 약속하신다. 이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를 구약에서 약속하신 선지자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체포하도록 성전경비병을 파송했지만, 그들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
    
    
    
1. 생수의 약속(37~39절)
본 단락은 에스겔 47:1~12를 배경으로 한다. 요한복음 2:13~22에 언급된 예수의 육체와 관련이 있다. 예수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오며, 그의 몸인 새롭게 된 성전으로부터(요 2:19~21) 생수로 암시된 성령이 흘러나온다. 여기서 물(생수)은 성령에 대한 은유다(겔 47:1~12). 요한복음에 의하면 중생은 예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성령)로 가능하다.
    
37~38절은 “만일 누구든지 목마르면 나를 믿는 그(사람)를 내게로 오게 하라 그리고 마시게 하라.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했듯이, 그 (예수)의 배에서부터 생명수의 강물이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로 읽어야 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는 성령의 근원이시다. 요한은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메시아이신 예수로부터 생수가 흐를 것을 약속한 부분으로 이해한다. 예수께서 4:13~14에서 언급한 것과 연결된다. 38절에 인용된 성경은 이사야 12:3과 에스겔 47:1~11, 스가랴 14:8이다.
    
39절은 요한의 설명이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요 3:37~38에 대하여 주석하며,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요한의 설명은 예수의 말씀에서 “생수”가 성령을 가리키고 있음이 확실하다. 생명의 물이 성령을 상징하고 있음을 말한다. 더욱이 요한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다”라고 설명한다.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약속은 요한복음의 일관된 신학 사상이다(요 14:26; 16:7; 20:22). 요한복음에서 예수와 하나님은 성령의 근원이다(요 14:26; 19:34).
    
 
    
2. 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40~44절)
예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정체성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첫째 반응으로 그를 “그 선지자”라고 고백한다. “그 선지자”의 배경은 신명기 18:15~18에 근거한다. 예수의 정체성에 대하여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초막절의 마지막 날 성전에서 말씀하신 요한복음 7:37~38의 말씀을 듣고 그의 정체성에 대하여 고백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예수가 선포한 예언자적 말씀 한마디가 아니라, 그동안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사건과 그의 말씀이 축적되어 나온 결과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가 누구신지 분명히 알 수 있다.
    
41~42절 예수를 선지자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한편 그를 “그리스도”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자 그런 예수의 정체성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나셨기에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갈릴리 기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라는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메시아의 출생지가 베들레헴으로 예언된 사실을 언급한다. 그렇지만 요한복음은 예수의 기원을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두고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요 1:11; 3:13, 31).
    
43~44절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들이 나오면서 그들 가운데 갈등 상황이 야기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체포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44절은 30절의 반복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기 전에는 사람들의 손에 잡히지 않으신다.
    
    
    
3. 성전경비병과 니고데모(45~52절)
45~46절에서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체포하라고 파송한 성전 경비병들이 그냥 돌아오자,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그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대답한다.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 말씀의 내용이 일반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감히 예수를 체포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성전 경비병들은 체험적으로 예수가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고 굳게 믿은 것이다.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 누구든지 그 말씀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47~49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를 체포하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오자 “너희도 미혹되었는가?”라고 질문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하여 “사람을 미혹하는 자”로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아무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성전 경비병들이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선언하며 그들을 저주한다.
    
50~52절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대하는 태도를 지켜본 종교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고데모가 예수를 위하여 항변하기 시작한다. 요한은 니고데모에 대하여 3:1~15에서 등장한 인물임을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라는 표현으로 소개한다. 니고데모의 등장은 요한복음에서 두 번째이며, 마지막 등장은 19:38~42이다.
    
니고데모의 항의는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는가?”였다. 이런 항의는 니고데모 자신을 궁지에 빠지게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율법의 정신을 언급하면서 예수를 변호한다. 이는 예수에 대한 니고데모의 태도가 변화되었다는 암시다. 예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없었지만, 니고데모는 그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항의한다. 이것이 자기희생을 각오한 실천적 믿음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율법에 따르면 어떤 일을 판결하기 전에는 허망한 풍설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출 23:1), 먼저 양편의 말을 들어보아야 한다. 신명기 1:16~17; 17:2~5; 19:15~19에 의하면 재판관들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 전에 샅샅이 조사한 후 판단해야 한다.
    
52절에서는 예수에 대한 성급한 재판에 대하여 항의한 니고데모를 그와 함께 엮어서 얕잡아 보려는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라고 말한 것은 갈릴리 출신을 차별하여 하대한 증거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는 다르게 선지자 호세아와 나훔은 갈릴리 지방 사람이었다. 특히 요나는 갈릴리 지방 가드헤벨 사람으로 선지자가 되었다(왕하 14:25).
    
참고로 바벨론 탈무드에 의하면, 이스라엘 고을 중에 선지자가 나지 않은 고을이나 지파가 없다고 언급한다.
    
    
    
나는?
-예수는 자신을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는 자신이 죽고 부활한 뒤 예수가 보낼 보혜사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자들도 당장 모를 일을 유대인들이 알고 이해할 리 없다. 그들은 예수를 가리켜 ‘그 선지자’로 이해하기도 하고, 메시아(그리스도)로 주장하기도 하고, 그가 베들레헴이 아니라 갈릴리 출신이라는 이유로 메시아임을 부정하기도 했다.
    
-예수에 대해 정확한 지식은 없었지만, 그가 한 일에 근거하여 지금껏 예수처럼 말한 사람이 없었기에 그를 체포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예수에게 미혹되었다고 책망하였지만, 실은 그들은 있는 그대로 예수를 평가한 것이다. 차마 그를 메시아라고는 말하지 못했지만, 메시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 전에 예수에 대해 이보다 더 근접하며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또 있을까?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비추어 예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저주하자 니고데모는 예수가 한 말과 그가 행한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것이 율법에 비추어 얼마나 정당한지를 평가하기 전에 섣불리 저주를 선언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이는 예수와 예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그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밤에 예수를 찾아와 영생의 길을 묻던 자였는데, 이제 점점 빛으로 나아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새 시대가 오면 성령을 부어주시리라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대로였다. 말씀 사역은 성령의 은혜를 받도록 초대하며, 성령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게 하는 사역이다. 주의 말씀을 바로 전하면 성령 아닌 다른 영들을 막아준다.
    
*예수를 ‘그 선지자’로 이해한 사람들은 신명기 18:15~18을, ‘그리스도’로 인식하고 고백한 사람들은 미가 5:2를 근거로 한다. 이렇게 기적을 체험한 이후 성경에서 인식의 근거를 찾은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고백하는 예수는 어떤 말씀에 근거한 것인가?
    
*밤중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신앙 은닉자’의 대표자로 불린다. 심중에 믿음을 갖고 있되 공개적인 신앙고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그는 자신의 공의회원 신분을 예수를 위해 사용한다. 믿음이란 입술의 고백보다 자신의 귀한 것을 주를 위해 내어놓는 삶 자체다.
    
*주님은 생수의 원천(源泉)으로,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를 공급해 주신다.(37~39절). 광야 시절 반석에서 물을 내셨던 것처럼, 목마른 백성을 초청하시고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하신다. 이 생명의 물은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키며, 이 약속은 오순절 성령의 임재로 성취되었다. 나는 성령의 충만 가운데 영혼의 풍성함과 말씀의 부요함을 누리고 있는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는 주님의 초청이 내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음을 안다. 다함 없는 생수의 강 되신 주님을 어떤 상황에서든지 드러내고 증거하리라.
    
*주님의 말씀은 반응을 요구하며, 반응은 우리 믿음을 드러낸다. 주님의 선포는 예수 정체성에 관한 논쟁을 일으킴과 동시에 수용과 거부로 나타났다(40~43절). 선포된 말씀을 수용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반응하지 않는 것은 말씀의 인격성을 믿지 않는 것이며, 거부하는 것은 아직 내 자아를 섬기고 있다는 반증이다.
    
*오만과 편견, 독선은 종교 지도자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다. 예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굴복한 자들이 미혹되었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게는 율법을 알지 못하는 저주받은 자라고 말한다. 율법에 따라 먼저 해명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니고데모의 합리적인 비판을, 출신 지역의 비천함을 내세워 한마디로 거부한다(44~52절). 율법의 권위자라는 오만이 율법을 주신 분을 깨닫지 못하게 했고, 갈릴리에 대한 편견이 객관성을 상실하게 했다. 혹시 나에게도 그릇된 결정으로 이끌 수 있는 편견과 아집, 오만이 있지 않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한 줌의 율법 지식으로 천하를 판단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분위기에서 예수님을 변호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한다(50~52절). 나는 신앙이 과도하게 비난받는 상황 속에서 침묵하지 않고,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가? 여론이나 권위가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여 상황을 판단하는가?
    
    
    
    
*주님,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제 삶에 이미 흘러넘치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종교 지도자들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독선이 제 안에도 자리 잡고 있지 않는지 돌아봅니다.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겸손하게 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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