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8:21-30 들려주고 보여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
예수와 유대인들 사이의 논쟁이 계속된다. 예수는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악의적으로 왜곡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암시하시면서 “간다”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사용한 “간다”는 표현을 그의 죽음과 연결해 자결할 것으로 생각하고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는 그들을 향해서 나를 믿지 못하면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선언하시고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강조한다.
1. 예수가 가는 곳(21~24절)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들은 죄 가운데 죽을 것이며 자기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하신다(21절). 유대인들의 불신앙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그들은 참된 메시아이신 예수를 끝까지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한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의 수난 예고를 다루지 않지만, 대신 ‘간다’라는 표현으로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누구든지 예수를 끝까지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기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지 않고 살 수 있지만, 그 삶은 생물학적 인생일 뿐이다. 이 땅에 오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또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다.
예수께서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라고 했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가 자기 죽음을 암시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자결하려는가?”라고 생각한다(22절). 하지만 이미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었다(요 7:1). 유대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통해 그의 죽음에 대한 암시를 받았지만, 그를 향하여 “설마 자살하지 않겠지”라며 조롱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자기희생적 죽음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무의식적으로 말한 것이다. 유대인에게 자살은 창세기 9:5을 근거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죄로 간주했다. 유대인들처럼 예수를 오해하는 일이 없는지 살펴보고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한 올바른 믿음으로 자라가야 한다.
예수는 이런 유대인들에게 자신은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출생의 기원으로 말한다(23~24절). 예수는 위에서 오신 분으로 출생의 기원이 하늘에 있고, 유대인들은 아래에서 났으며 그들의 기원은 땅에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예수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지만, 유대인들은 세상에 속한 자라고 말한다. 즉, 예수께서는 자신과 유대인들이 속한 세계가 서로 다르기에 그가 가시는 곳에 유대인들이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그를 믿지 않는 유대인을 향해 믿지 않음이 죄악이라는 사실을 보다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설명하신다. 예수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알고 믿지 않으면 그들은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24절의 “죄”는 복수형으로 죄의 개별적 행위들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죄인이라고 생각했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이며, 자신들은 율법을 준수하고 살기에 의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는 이방인뿐 아니라 유대인도 모두 죄의 상태에 빠졌고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기에 세상에 속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의 백성 신분으로 살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의 고백이며, 그 고백을 삶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2.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25~30절)
유대인들이 또다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하여 묻자, 예수는 처음부터 자신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라고 말했다는 것을 강조한다(25절). 예수는 니고데모(요 3:1~15)나 사마리아 여인(요 4:1~42)과 대화했을 때도 자신이 누구이지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그 정체를 밝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과 기대로 인하여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못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정체성을 두고 의견이 이미 양분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예수를 “그 선지자(요 7:31)”로,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요 7:40~41)”로 이해했다. 또 다른 그룹은 그것을 거부했다(요 7:47~48).
하지만 예수는 자신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밝혔다. 자신을 “인자(요 5:27), 하나님이 보내신 자(요 5:23~30, 36~38; 7:16, 28~29, 33),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요 5:25~26)”로 드러냈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모두 거부했다. 예수가 누구신지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표출되는 믿음의 고백이 없으면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예수를 누구라고 인식하고 고백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예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자신이 그들에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다고 하면서 그들이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지적한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자신을 보내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시며 그분이 참되신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분명히 자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다시 강조하신다(26~27절). 그래서 예수는 마치 구약의 예언자처럼 하나님께 들은 대로 세상에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를 다시 분명하게 밝히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가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은 동일한 것임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증언했지만, 유대인들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예수의 말씀을 믿지 못할 때 다른 방법으로는 그를 믿을 수 없고,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어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로 호칭하면서 “들림을 받는다”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암시한다(28절). 요한복음은 “들림을 받는다”라는 표현으로 세 번에 걸쳐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표현했다(요 3:14; 8:28; 12:32).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야 비로소 유대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모든 경우에 그 아들 예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라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는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신다(29~30절).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시고 함께하신다는 표현을 요한복음 8장에서 4회나 강조한다(요 8:16, 18, 26, 29). 예수는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행하셨고, 하나님은 그를 혼자 두지 않으셨다.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를 믿었다고 하지만 온전히 믿음은 아니다. 유대인들이 온전한 믿음에 이르려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이해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믿음은 예수께서 아버지와 동행하신 거처럼 그리스도 안에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이며 사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거하지 않으면 거짓된 믿음이다.
나는?
-예수께서 자기 죽음을 예고하신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어(서) 가는 곳에 회개하지 않은 유대인 죄인들은 올 수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말뜻을 이해할 리 없었다. 그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예수가 자결할 것을 예고했다고 오해한다. 예수는 자신이 죽을 줄 아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도 아셨기에 그 죽음을 피하지 않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길로 가실 것이니 유대인들이 오해한 자결이나 다름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이기적인 자결이 아닌, 온 세상 온 인류를 위한 이타적인 희생의 죽음이었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땅에 속하였고 땅에서 난 유대인들이 위에 속하였고 위에서 난 예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예수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말씀대로 살아오신 분이기에 유대인들을 얼마든지 판단할 권한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보고 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사셨다. 땅에 속한 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하지 않으셨고, 땅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살지도 않으셨다. ‘처음부터’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해 왔다.
-아직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제자들마저 예수를 잘 모른다.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에라야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대리인(내가 그다), 즉 메시아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였고, 예수를 보낸 하나님께서 예수를 혼자 두지 않고 늘 동행하셨고, 당신이 기뻐하시는 일을 예수가 하도록 도우셨다. 예수의 이런 권위 있는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된다.
*유대인들은 예수께 끊임없이 질문하면서도 그의 말씀을 믿지 못했다. 반면,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처음부터 자신을 이 세상에 알리셨고, 계속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를 나타내셨다. 그들의 믿음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잘못된 지식과 자의적인 기대와 욕심이었다. 무엇보다도 순종(실천)의 부재가 영적인 인식을 가로막았다.
*예수는 이 세상의 현실 역사 속으로 보냄을 받았지만, 항상 영원 속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하셨다. 아버지께서 함께함을 가장 분명히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때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길은 그분이 하실 일을 행할 때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바로 깨달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죄와 어둠에서 죽어가고 있음에도 생명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며 조롱했다(21~22절). 자신의 상태와 임박한 위기를 깨닫는 것이 구원과 회복의 첫걸음이다.
*예수는 아버지께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26~28절). 하나님의 본체이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에도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가르침을 행하셨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아버지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드러내며 살고 있는가?
*주님, 죄 가운데 연연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뜻 가운데서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들려주시는 말씀이 선명하게 깨달아지기를 바랍니다. 주님,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분별하여 그 뜻 안에 거하며 살아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