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내가 한 가지 아는 것은 [요 9:24-41]
 – 2026년 03월 03일
– 2026년 03월 03일 –
요 9:24-41 내가 한 가지 아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한 사람을 두 번째로 소환하여 심문한다. 그때 눈 뜬 맹인은 자신의 치유를 근거로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과 그의 뜻대로 행하는 분이심을 확신한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눈을 뜬 맹인을 쫓아내어 버린다. 예수께서 눈 뜬 맹인을 다시 만나서 그에게 인자를 믿는지 확인하고, 바리새인들에게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1. 바리새인들과 시력을 회복한 사람(24~34절)
바리새인들이 눈을 뜬 맹인을 다시 소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요구한다(24~25절). 이는 예수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라는 요청이다. 그들은 맹인이 눈 뜬 기적을 믿지 않고, 예수를 죄인이라고 단정한다, 그 이유는 이미 16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가 안식일에 금지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에게 둘러싸인 눈을 뜬 맹인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내가 아는 한 가지 진리는 내가 전에 보지 못했던 사람인데 지금 볼 수 있다”고 증언한다. 그는 경험한 기적을 환경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확신 있게 증언한다.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은 계속해서 눈을 뜬 맹인에게 질문한다.
    
이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눈을 뜬 맹인은 그들을 향하여 분명한 증거와 이미 증언한 내용을 믿지 않음을 지적하며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고 싶은 것이냐고 빈정거린다.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반복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질문한 것이다(26~27절). 마음속에 자기가 원하는 욕심과 이기적인 정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닫고 있어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기다.
    
바리새인들은 눈을 뜬 맹인의 말에 대하여 분노하며 너는 예수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고 주장한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했던 것을 기억하며 예수의 기원에 대하여 알 수 없다고 말한다(28~30절).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예수에 대하여 땅의 기원을 알고 있었다(요 6:42). 바리새인들은 계속해서 눈을 뜬 맹인의 기적을 믿지 않으려는 것이다.
    
한편, 눈을 뜬 맹인은 자신이 체험한 것을 말하면서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기원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심한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31절).”는 그의 말은 시편 66:18과 잠언 15:29, 이사야 1:15에 근거하여 세상이 창조된 이후 예수께서만 행하신 기적이라는 증언이다. 즉, 눈이 떠진 기적을 경험한 그는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증언한 것이다. 참고로 이 기적을 근거로 바리새인들 가운데 일부는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인정하며 자기들끼리 논쟁했다(9:16).
    
바리새인들은 눈을 뜬 맹인이 말하는 것에 대해 그가 날 때부터 맹인이었기에 죄 가운데 태어난 것으로 간주하여 그를 내쫓아버린다. 이것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갖고 있는 죄와 병의 인과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관습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사상은 예수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존재했다(9:2).
    
    
    
2. 예수와 시력을 회복한 사람(35~38절)
예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을 치유해 주신 후에 그 사람이 바리새인들에게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다시 만나신다. 그리고는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질문한다. 예수께서 질문한 “인자”는 자신에 대한 정체를 묘사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주님은 같은 질문을 하신다. “네가 나를 믿느냐?.” 이 질문에 정직한 대답을 해야 한다.
    
36~37절은 눈 뜬 맹인과 예수와의 대화다. 예수의 질문에 눈 뜬 맹인은 “내가 인자를 믿습니다.” 또는 “내가 인자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 눈을 기적적으로 치유해 준 존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는 인자를 믿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누구인지 알려 달라고 요청한다. 이 요청에 예수께서 분명하게 대답하신다. 37절은 요한복음뿐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명확하게 예수께서 스스로 인자이심을 증언한다. “네가 그 사람을 지금 보고 있으며, 너와 말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다.”
    
38절은 예수의 자기 고백을 들은 눈 뜬 맹인의 고백이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의 인자를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한 것과 경배한 행동을 통해 그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보다 유대교의 종말에 나타나 기적을 행할 놀라운 “인자”로 믿었다. 이 인자는 다니엘 7:13의 “인자”이기보다는 에스겔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여호와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부를 때 사용한 “사람(인자)”일 가능성이 높다(겔 2:1, 3, 6, 8; 3:4, 10, 17, 25). 에스겔서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부르시는 호칭인 “사람”(인자)은 문자 그대로 “사람의 아들”(인자)이며 이것은 에스겔 선지자의 별칭이었다. 눈 뜬 맹인은 예수를 선지자로 본 것이다.
    
    
    
3.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의 선언(39~41절)
39절에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그들을 향한 심판 선언이다. 바리새인들이 육신의 눈으로 본다고 하지만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는 영적 시각장애인들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진리는 아니다.
    
40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경고하신 말씀을 듣고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한다. 그들은 눈으로 기적을 보고 확인했지만 믿지 않았다.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영적 안목이 열리지만, 육신의 눈으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영적인 눈이 열릴 리가 없다. 오히려 육신의 눈으로 보고 있기에 영적으로도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행동하는 자들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 그 자체가 심판일 수 있다.
    
41절은 그런 바리새인들에 대한 심판 선언이다. 바리새인들이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맹인이었다면 그들은 심판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눈으로 예수를 확인하고도 믿지 않았기에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바리새인들이 심판을 받는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자신들을 의롭다고 생각하고 율법을 성취하러 오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의 대적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바리새인들은 맹인이던 사람을 불러 다짜고짜 예수가 죄인인 것을 시인하라고 위협한다. 진리를 외면하는 눈먼 바리새인들이 쓸 수 있는 무기는 강요와 전통(모세)의 권위와 색깔론(‘죄’, ‘죄 가운데 나서’)과 폭력밖에 없었다. 증거를 살필 마음의 여유마저 잃고 믿을 거라고는 자신의 종교 권력밖에 없는 가엾은 영혼의 맹인들이었다. 내 지식과 신념이 무너지고, 내 경험이 나를 배반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자유의 하나님, 내 지식과 이성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눈 뜬 자는 예수가 죄인인 것을 시인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이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명백한 증거를 외면하지 말라는 호소처럼 들리지 않는가? 신앙은 예수께서 하신 일, 예수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 예수께서 지금 살아계셔서 나의 삶에 하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체적인 역사 위에 세워진 신앙이다. 성경의 이야기나 선조들의 전통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참 신앙이지 않겠나! 예수 때문에, 예수로 인해 나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신앙이기를 바란다.
    
-소경이던 자는 너희’도’ 그의 제자가 되려느냐고 물음으로써 이미 자신은 예수의 제자가 되었음을 시인하고 있다. 그의 신앙은 고난 속에서 연단되고 점점 성숙하게 자라가는 움직이는 신앙이었다. 실제로 예수께서 죄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던 맹인이던 사람(24절)이 이제는 자신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역사적 증거를 들이대며 정면으로 반박한다. 하나님은 죄인을 통하여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실 리 없고 경건하여 그의 뜻을 행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며, 창세 이후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은 예수밖에 없다고 증언한 것이다. 삶으로 검증되고 다져진 그의 알차고 옹골진 지식은 관념과 전통의 모래 위에 쌓은 바리새인들 지식의 성보다 견고했다.
    
-맹인이던 사람이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는 그를 찾아가 주신다. 유대교의 담장 밖으로 쫓겨간 사람을 예수님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불러주신 것이다. 모두 죽음으로 여기던 출교를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진통이 되게 하셨다. 그의 신앙고백을 인정해 주시고 그의 고난을 위로해 주신 것이다. 점점 밝아지기 시작한 그의 영적인 눈이 더욱 밝아지도록 자신을 계시하신다. 예수는 인자로서 영적 이스라엘을 대속하실 고난의 종이시며(사 53장),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심판하실 분이라고 자신을 알리신다(단 7장). 맹인이던 사람은 어느새 주님이 가시는 고난의 길을 따르고 있고,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난의 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주님을 만나서 그를 경험하고, 그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는 점점 빛인 주님께로 나아갔고, 주님의 진정한 실체와 대면하고 있다. ‘예수라는 사람(11절)’에서 ‘선지자(17절)’로, ‘하나님께 들으시는 분(31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33절)’으로, 그리고 마침내 ‘인자’로 고백하고 그분을 경배하기에 이른다(38절). 고이고 갇히고 우려먹는 메마르고 죽은 신앙이 아니라, 열리고 자라고 날로 새로워지는 산 신앙이었다.
    
-주님은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 비우고 가난한 마음으로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는 생명을 얻지만, 자기 지식과 욕망으로 가득 차 예수를 판단하고 외면하는 영적 맹인은 심판 아래 놓일 것이다. 순종할 맘이 없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34절) 그 지식이 나를 오히려 영적으로 눈을 멀게 할 것이다.
    
*는 뜬 맹인은 자신이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증언한다. 바리새인들에게 이 증거를 외면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성경의 지식이나 선조들의 전통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 내 인생에 역사하신 오늘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참 신앙 아닐까!. 내가 확신을 갖고 증언할 수 있는 믿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어떻게 예수를 증언하고 있는가?
    
*바리새인들은 맹인이던 사람을 소환하여 예수가 죄인인 것을 시인하라고 위협한다. 그 증거를 살필 마음의 여유를 잃은 채, 명백한 증거를 외면하고 증인을 쫓아내기까지 한다. 이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던 신념 체제가 무너질까 두려워서일 것이다. 영적으로 눈먼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진리를 왜곡하고 증인을 위협하는 것뿐이다.
    
*주님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러 이 땅에 오셨다. 순종할 마음이 없고 더 이상 들을 것도 배울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아집은 영적으로 눈을 멀게 할 뿐이다. 하지만 가난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는 참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주위에는 아는 만큼 믿는 자와 알고도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10~13절). 눈 뜬 사람은 보지 못했을 때 예수를 만났기에 그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알게 된 만큼 믿었고, 믿은 만큼 반응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알면서도 반대 논리를 만들었고, 더 이상 답할 수 없을 때 쫓아버렸다. 이 답답한 광경을 보며 나의 믿음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아는 만큼 믿고, 믿는 만큼 반응하고 있을까?
    
*눈 뜬 맹인은 바리새인들보다 권력, 지식이 부족했지만, 예수가 눈을 뜨게 해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담대하게 증언한다(25절).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면 이런 일을 행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얼마나 담대하게 증거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 앞에서도 자신 있게 예수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그가 경험하고 확신에 따른 고백에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을 들려주는 사역자가 되고 싶다. 내가 아는 한 가지,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은 심판주이자, 구세주이다. 그렇기에 예수를 알아보고 영접하는 것이 구원이며,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는 것이 심판이다. 예수가 날 때부터 맹인 된 자의 눈을 뜨게 해주신 것은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여, 그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자기가 본다고,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예수를 거부하며 그 생명의 기회를 놓칠 뿐만 아니라, 믿음을 훼방하는 자가 되었다. 예수에 대한 바른 지식은 우리를 예수님과 깊은 관계로 이끈다.
    
    
    
*주님, 주님과 풍성한 사귐을 경험하게 해주시니, 그 주님을 확신하며 담대하게 전하겠습니다.
*주님, 제게도 그 깊은 영적 안목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서 더 올바르고 확고한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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