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0:1-21 양의 문이 되시는 선한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
-양을 죽이고 훔치려는 강도와 절도는 밤에 문이 아닌 다른 데로 넘어오지만, 목자는 동트는 새벽에 문지기가 열어주는 문을 지나 양들에게 나아간다. 한편 성경이 약속한 메시아를 죽이려고 하고 그 메시아를 영접하는 이를 쫓아낸 영적 맹인이요 어둠의 사람인 ‘바리새인(9:39)이 바로 절도요 강도다. 돈과 예수님을 바꾼 가룟 유다 같은 자가 ‘절도’요(12:6), 폭력으로 세상적인 하나님 나라를 꿈꾸던 바라바 같은 자가 ‘강도’다(18:40). 지금도 예수님의 허락과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배경의 힘으로, 학식의 힘으로 담을 넘는 자는 모두 절도요 강도다.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 배를 채우는 이는 모두 절도요 강도다.
-참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알고 불러준다. 양은 그 목자의 음성을 알아채고 따라가며, 목자가 아닌 사람의 음성에는 놀라 도망한다. 지금 내 귀에 가장 크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들리는 음성이 바로 나의 목자다. 내가 듣고 따라가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인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려도 목자 예수님의 음성이 아니면 도망하는가?
-예수님은 양들이 목자 하나님(겔 34장)을 만나는 유일한 문이다. 그분만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14:6),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계단)이다(1:51).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풍성한 신적 생명(영생),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이 문을 무시하고 얻는 어떤 세속적인 성공이나 부나 명예라도 결코 우리의 생명을 살릴 수 없고 도리어 멸망시킬 것이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으면서도 자기 백성을 사랑하여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어놓으신 ‘선한’ 목자이시다. 세상의 권력자(삯꾼)는 양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다가 손해가 날 것 같으면 버리고 도망하지만, 도리어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양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을 자처하셨다.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살찌울지라도 그들은 결코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돈이든 사람이든 이념이든 예수님이 아니면 목자로 삼지 말아야 한다.
-목자만큼 양을 잘 아는 이가 없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양들인 우리와 누리시려고, 즉 풍성한 생명을 나누어주시려고 자기 목숨을 버리셨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안 만큼 주님을 알게 되고 영생도 풍성해질 것이다. 내 영혼 깊은 곳의 갈급함은 오직 선한 목자를 아는 지식과 그분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목자 예수님은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 즉 이방인들을 유대인과 한 무리가 되게 하실 것이다. 이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께 받은 계명이었고, 예수님은 스스로 이 계명에 순종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이 순종하는 사랑을 통해 우리 밖의 양들을 부르고 계신다. 하지만 예수님을 목자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예수를 귀신 들린 자라고 주장한 유대인들처럼 말이다.
*양의 안전은 목자에게 있다. 목자는 양을 보호해야 하지만 양도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를 따라가야 한다. 목자의 음성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는 타인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파멸을 자초하는 양이 있다. 양은 욕망의 목소리가 아니라 목자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불이 났을 때 출구를 찾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다. 양인 우리가 문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들어오고 나갈 때 안전과 풍성한 생명이 있다. 그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
*삯꾼은 강도보다 낫다. 강도는 양들을 희생시키는 자이지만, 삯꾼은 양들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자다. 하지만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양들의 안전을 지키시되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맡길 수 있는 목자는 예수님뿐이시다.
*목자의 음성을 따를 때 양은 가장 안전하고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3~5절). 나는 어떤 소리에 가장 민감할까? 누구의 목소리를 가장 크게 들을까? 오늘 내가 거부해야 할 타인의 음성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주의 음성(말씀)을 ‘들음’이 주님을 ‘따름’으로, ‘앎’이 ‘삶’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인생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예기치 못한 기쁨으로 뒤엉킨 현실일 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 주님의 자비로운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며 주님의 음성만을 듣고 나아가리라.
*듣는다고 모두가 다 깨달은 것고 아니며, 안다고 해서 다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를 믿지 못하고, 예수에 대한 논란만 키운다(6, 19~21절). 예수를 참 목자로 인정하지 않은 채, 영적 맹인이요, 목자의 양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말씀이 내 정체와 상태를 드러낼 때 외면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 말씀이 나를 진단하고 인도하도록 맡기는 법을 깨우쳐야 하리라.
*주님은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6절)을 위해 ‘다시’ 그 의미를 일깨우신다. 양들을 착취하고 오도하며 파멸로 이끄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뜻이요, 미약한 양들을 위한 배려였다. 주님은 자신이 양을 구원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문, 참 목자라고 선언하신다(7~10절).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도 없고, 내 삶에 필요한 생명의 양식도 얻을 수 없다. 자녀 됨도 없고, 아버지와의 참된 교제도 누를 수 없다.
*주님은 가지 백성을 사랑하여 아낌없이 목숨을 내어놓으신 ‘선한 목자’시다(11~15절).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와 사귐(영생)을 회복하여 누리게 하시려고 기꺼이 목숨을 버리셨다. 그 주님을 만나기 전에 인생의 목자로 삼았던 소유와 건강과 세상의 보호막을 의지하는 삶에서 떠나,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과 교제하는 삶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늘 반응하리라.
*주님, 제 인생의 목자 되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날마다 묵상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