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마리아의 헌신과 나사로의 증거 [요 12:1-11]
 – 2026년 03월 11일
– 2026년 03월 11일 –
요 12:1-11 마리아의 헌신과 나사로의 증거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신다. 베다니 나사로 가족이 예수와 제자들을 위해 잔치를 마련한다. 그때 마리아가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는다. 유다가 마리아를 꾸짖지만, 예수는 마리아를 허락하며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이 예수와 나사로를 보기 위해 베다니로 모여든다. 대제사장들은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한다.
    
마리아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향유를 부었다. 반대로 가룟 유다는 그 향유 부은 것을 허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돈을 위해서 예수를 팔아넘긴 사람은 가룟 유다다. 종교 당국자들은 예수님과 나사로에 대한 대중의 인기가 상승하자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한다.
    
    
    
1. 마리아의 헌신적 반응(1~3절)
계속되는 유월절 언급은(11:55; 1절) 예수님의 죽음이 유월절과 관련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본문은 예수님의 장례(7절)가 언급되어, 더욱 이 암시를 강조한다. 다른 복음서에 따르면, 본문은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마 26:6~13; 막 14:3~9). 나병환자였던 시몬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아, 잔치를 배설한 것 같다(마 26:6; 막 14:3).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시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베다니는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곳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1절).
    
또한 나사로의 누이들도 등장한다. 마태와 마가는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마 26:7; 막 14:3), 요한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향유를 부었다고 한다(3절). 그뿐만 아니라, 요한복음만이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묘사한다(2절). 이것은 이 단락이 11장의 연속선상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즉, 본문이 말하는 예수님의 죽음 암시는 앞 장에 나오는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한편, 마태와 마가는 향유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졌다고 기록했지만(마 26:7; 막 14:3), 요한복음은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한다(3절). 아마도 실제로는 예수님의 몸 전체에 향유를 부은 것 같다(막 14:8).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은 그녀의 겸손한 헌신을 나타낸다. 그녀는 종의 위치에서 겸손히 예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머리털로 겸손히 예수님의 발을 닦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11장에 나온 나사로 사건에 대한 감사에서 이러한 겸손한 헌신이 나왔을 것이다. ‘나드’는 굉장히 값비싼 향유인데, 그 한 근이 삼백 데나리온이라 한다(5절). 이는 노동자의 일 년 품삯에 해당한다. ‘한 근’은 로마의 중량 단위로, 약 327g의 무게다.
    
    
    
2. 가룟 유다의 반응과 예수님의 반응(4~8절)
마리아를 책망하는 가룟 유다의 이중성이 묘사되어 있다. 마치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이다(6절).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진작 알고 계셨다(6:70~71).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지 않는 유다의 모습은 양을 돌보지 않는 삯꾼의 모습과 유사하다(10:13). ‘생각하다(6절)’와 ‘돌보다(멜로, 10:13)’는 같은 헬라어 단어의 번역이다. 그는 또한 도둑으로 묘사되는데, 10장에서 양을 헤치는 자도 도둑으로 묘사된다(10:10). 따라서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지만, 예수님을 배반하고,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결국 양들을 해치는 자라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본문에서 묘사된 가룟 유다는 최후 만찬 장면과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최후 만찬에서 그의 모습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훨씬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13:21~30). 또한 요한은 유다와 마귀와의 밀접한 관계를 더 자세하게 소개한다(13:2, 27). 그리고 베드로의 위대한 메시아 고백을 소개하며 가룟 유다의 부정적인 역할을 비교하게 한다(6:71). 또한 그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자인지 마리아의 헌신과 대조하며 설명한다(12:6).
    
요한이 가룟 유다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예수님의 죽음이 사탄의 모략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예수의 대적자는 사탄이고, 사탄은 사람을 이용하여 예수와 그의 사역을 대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바람직한 제자도의 모습을 유다와 대조하여 설명하려는 것 같다. 유다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예수의 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강조하여 설명한다. 진정한 제자는 자신의 탐욕을 버리고, 영생을 위하여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다. 또한 그를 위해 자신의 것을 바칠 때, 예수님은 그러한 헌신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귀하게 사용하신다.
    
다음으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의 장례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7절). 헬라어 본문 해석은 흔히 예수님이 “나의 장례 때까지 그 향유의 나머지를 간직하도록 그녀를 가만두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니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이미 그 향유를 거의 다 사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3, 5절). 그러므로 문맥과 연결하여 해석하면 “그녀를 가만두어라. 그녀는 지금까지 나의 장례를 위해 이것을 팔지 않고 잘 간직하였다”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마리아는 이러한 의도 없이, 단지 자신의 겸손한 헌신을 예수님께 드러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예언한 가야바처럼(11:49~52), 이 여인도 부지중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비하게 되었다. 여인의 겸손한 헌신을 하나님은 섭리 중에 사용하셔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비하는 위대한 사역이 되게 하셨다.
    
    
    
3. 유대인들의 반응(9~11절)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들은 많은 유대인이 그를 보고 믿음에 이른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를 죽일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다. “모의하다(불류오)”는 요한복음에서 두 번 등장하는데, 모두 나사로의 죽음과 관련 있다(11:53; 12:10).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후, 유대 권력자들은 산헤드린 공의회로 모여,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11:53).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난 나사로를 보기 위해 모여들자, 예수님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 모의한다(10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반면에 예수님에 대한 죽음의 위협은 더 늘어났다.
    
그러므로 이 단락은 예수님의 복음이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뉘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한다(7:43; 9:16; 10:19; 11:45~46).
    
본 단락에서는 대제사장들이 단독으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부류로 등장한다(10절). 요한복음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가장 주요한 예수님의 대적자들이었다(7:32, 45; 11:47, 57; 18:3). 그런데 본문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가장 핵심적인 적대 세력은 대제사장들이라고 밝힌다. 실제 대제사장 가야바와 안나스는 예수님을 재판할 뿐 아니라, 그를 죽이도록 빌라도에게 넘긴다(18:24). 이러한 예수님과 대제사장들의 대립은 예수님이 진정한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진정한 대제사장이 오시자, 지상의 타락한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그를 대적하여 죽이려 한다.   
    
    
    
나는?
-유월절 엿새 전이고, 예루살렘 입성 이틀 전의 일이다. 계속되는 유월절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의 죽음이 유월절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님도 마리아의 헌신을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으로 받으셨다. 마리아는 이번에도 ‘주의 발아래’에 있다. 말씀을 듣기 위해 주의 발아래에 앉았고(눅 10:39),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발 앞에 엎드렸던(요 11:32) 마리아가 이제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그분의 발에 붓는다. 나사로의 일로 공회가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엄혹한 시기에 가장 값진 경배와 헌신을 드린 것이다. 헌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내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 아니겠나!
    
-하나님께 대한 예수님의 가장 극진한 대접은 그분의 때를 따라 그분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다가오셨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기다렸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라 행보를 정하셨다. 마리아와 나사로는 예수님을 초청하여 가장 극진한 대접을 하였다. 하나님 아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경배요, 나사로를 살려주신 은혜에 합당한 경배였다. 예수님을 향한 예배와 삶을 보면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며 또 그분이 베푸신 은혜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가룟 유다는 돈에 대한 자신의 욕심과 그것을 훔치려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명분 있는 반대를 하고 있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 더 진실을 강조하고 거짓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과 같다. 그는 이웃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웃인 예수님마저 팔아넘길 사람이었다. 옳고 그른 것을 잘 알고 지적하는 것보다 안 만큼 잘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간구해야지. 설득력 있는 갖은 이유를 들이대지만, 실은 돈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당장 예수님과 이웃에게 할 도리를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다는 가난한 자를 운운했지만, 실제로는 제 주머니를 채우려는 핑계였을 뿐이었다. 자신이 돈을 빼돌릴 기회를 놓친 상황에 대한 분노였을 뿐이다. 정의를 빌미 삼아 탐욕을 추구한다. 주님도 유다의 비난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 마리아의 희생적인 헌신, 또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희생적인 돌봄을 돈의 가치로 환산한다면 그 자리에 사랑은 없다. 자기 유익을 탐하는 자에게 사랑은 낭비로만 보인다. 즉, 예수님에 대한 헌신과 가난한 자의 구제는 배타적이지 않지만, 가룟 유다는 둘을 배타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님은 둘 다 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헌신을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으로 받으셨다. 눈앞의 풍성한 잔치를 즐기는데 머물지 않고 십자가의 시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본 것이다. 십자가의 순종은 이미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사로는 예수님의 부활 능력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어, 그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가 많아졌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과 똑같이 죽음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나흘 만에 살아난 나사로는 죽음마저 예수님의 권세와 권능에 굴복한 확실하고 강력한 증거였기에 예수님을 믿고 환호하며 앞다퉈 이 일에 증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꺾일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쫓았다. 그런데 이를 진압하려 나선 이들이 다름 아닌 대제사장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는 물론 나사로까지 죽여 없앨 작정이었다.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조차 부정하게 하려고 한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바치는 우리 헌신을 단 한 조각도 헛되이 만들지 않으신다. 다 예배로 받으신다. 그것은 거룩한 낭비다.
    
*예수의 증인은 세상으로부터 경계를 받는다. 헌신을 광신으로 호도하고 매도하는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내 인생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두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낭비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에게는 최선이고 최고다.
    
*세상 속에서 복음의 증거, 예수의 증인으로 드러나고 살아내야 하겠다.
    
    
    
*주님, 부활의 증인된 이 시대의 나사로처럼 살겠습니다.
*주님, 최고와 최선의 사랑을 드리되, 물질적인 가치로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가치를 가치로 알아보고 드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물질이 가치를 넘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대제사장들의 비겁함은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주님의 말씀마저도 부정하는 최악의 수였습니다. 혹시 나의 걸음에도 이런 모습이 있지 않는지, 늘 돌아보겠습니다.
*주님, 개혁된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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