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20-33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아니하면
온 세상이 예수를 쫓는다는 바리새인들의 대변이랄까(12:19), 유월절 축제에 참여했던 몇몇 헬라인들이 예수를 만나러 오는데, 예수는 이것을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 시간은 세상을 향한 심판의 시간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영화롭게 되시는 분이다. 그런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다. 하나님은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라는 응답으로 예수님께 힘을 주신다.
1. 헬라인들의 방문과 인자의 죽음(20~24절)
헬라인들이 예수를 찾아왔다는 것은 요한의 독특한 기술이며 다른 공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다. 예수가 공생애 기간에 직접적으로 헬라인들을 만났다는 것은 매우 특이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의 요청을 받은 빌립은 안드레와 함께 예수께 가서 이 사실을 보고하는데, 빌립과 안드레 역시 헬라 이름을 가진 제자다. 이 둘은 이방인이 예수님께도 나아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헬라인들이 찾아오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오는 것은 예수의 죽음의 시간이 가까이 왔음을 암시한다.
헬라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20절)로서,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뜻일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신약 성경 곳곳에 등장한다(눅 7:2~5; 행 13:43; 17:17). 이들은 예수님을 뵙고자 빌립을 찾았다(21절). 빌립은 벳새다 출신이고, 베드로와 안드레도 역시 벳새다에서 태어났다(1:44). 벳새다는 갈릴리 북쪽의 도시인데, 아마도 이 이방인들은 갈릴리 북쪽 인근에서 온 것으로 추측된다. 빌립은 그들을 안드레에게 소개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께 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22절).
‘인자가 영광을 얻는다(23절)’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16절에서는 ‘예수에게서 영광을 얻는다’라는 것이 그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지만 본문은 ‘인자가 영광을 얻는다’라는 것이 다분히 예수님의 죽음과 깊이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 “때(23절)”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포괄하나, 특별히 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24절부터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강조한다(24, 25, 27~28, 32~33, 34절). 이전에 그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지만(7:30; 8:20), 이제 ‘때’가 왔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죽음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과 인자의 영광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우주적 영역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11:52; 사 49:6; 52:15). 또한 당시 유대교에서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처럼 자유롭게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이방인의 뜰에서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참 성전 되신 예수님께 나아오게 된다.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4:23~24).
한 알의 밀알이 죽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한다(24절). 그렇다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곧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가 돌아갈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24절). “많은 열매”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질 영생의 열매를 뜻한다.
2. 제자들의 섬김(25~26절)
25절은 제자들의 죽음을 무릅쓴 믿음을 언급하고 26절에서는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임을 밝힌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그의 십자가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상이 따른다. 하나님은 그를 영생을 위해 지키실 것이며, 그를 존귀하게 여기실 것이다(25b, 26b절).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10:17),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를 위한 제자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영생을 위한 삶이며, 영생을 소유한 사람의 삶이다.
‘미워하다(미세오)’는 요한복음에서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단어다. 불신자의 특징은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7:7).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8:42). 이는 곧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다(15:23). 또한 예수님과 아버지를 믿는 신자들도 불신자들로부터 미움을 당한다(15:18~19; 17:14). 이에 반해 신자들의 특징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14:21)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는 것이다(25절). 그래서 마침내 영생을 얻게 된다. 비록 신자들은 세상에서 불신자들로부터 미움을 당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지키신다.
3. 인자의 죽음과 영광(27~33절)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에게 고통의 때다(27절). 예수님은 그때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때를 기꺼이 받아들이신다(27b~28a절).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님의 영광이 긴밀히 연결된다(28b절).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그의 지상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임을 가리킨다.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자 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육신으로부터 그의 죽음과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사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다.
하늘에서 난 소리를 곁에 선 사람들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29절). 천둥소리 혹은 천사의 소리로 이해한다. 예수님은 소리의 목적을 말씀하시는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곁에 선 무리를 위한 것이라 하신다(30절). 예수님과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는 이런 공개적인 기도 응답이 필요 없었다. 무리에게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11:41~42). 비록 무리가 하늘의 소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천둥소리나 천사의 소리 같이 들린 하늘의 소리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를 확증하고,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증명해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예수님의 죽음, 곧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때는 곧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의 때이기도 하다(31절). 예수님의 죽음이 세상에 대한 심판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속죄가 일어나는 곳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절하는 사람들의 죄가 드러나는 곳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자신의 죄를 핑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의 죄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을 일컫는다(14:30; 16:11). 십자가는 또한 사탄이 쫓겨나는 사건이다(31절). 얼핏 보면 예수님이 패배하고 사탄이 승리한 것 같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려는 목적을 성취하신다. 반면에 사람들을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목적은 실패한다.
32절과 34절은 인자의 들림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34절은 “당위”를 나타내는 헬라어 동사 “데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해야 한다”로 해석될 수 있다. 십자가는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필연적인 사역이다. 요한은 “데이” 동사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다른 필연적 사역인 부활도 소개한다(20:9). 또한 예수님은 표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9:4) 말씀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셔야 했다(10:16).
나는?
-헬라인들의 예수님 방문은 이제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할 때(11:52), 유대인의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을 불러 한 무리가 되게 하실 때(10:16)가 되었음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차별 없이 한 백성이 되게 하셔서 영광을 받으실 날이 온 것이다. 그러나 온 세상이 그를 쫓고 헬라인까지 자신을 뵙기 원하고 찾아왔는데, 지금은 자신의 세력을 곁집시켜 로마를 몰아낼 때가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을 살릴 때이며 또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을 때라고 하신다.
-밀알이 죽지 않고는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예수께서 죽음을 거치지 않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고 자신에게 속한 모든 백성들을 살릴 길은 없었다. 마치 내가 죽지 않고는 내 삶에서 어떤 사랑과 생명의 열매도 맺히지 않는다.
-죽음에 순종하여 삶을 얻을 것을 확신하며 골고다로 한 걸음씩 나아가셨던 예수님처럼 제자들도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미워할 때 영생을 얻는다 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를 섬기려거든 그곳이 예수님의 십자가 길이라도 예수님이 계신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도 제자들은 그것을 헌신이나 희생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 더 좋은 것(영생)을 이미 얻었고 또 얻을 것(부활의 몸)이기 때문이다.
-예수께도 눈앞의 십자가는 면할 수 있으면 면하기를 바라는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의 안위나 편안함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스러워지는 것이었다.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에서,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의 바람은 성취되었고 또 성취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세상의 왕(사탄)이 심판을 받아 쫓겨나고,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사람이 그 속박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주님,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속한 자아를 죽이고 삶 속에서 주를 위한 생명의 열매를 맺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가 수용해야 할 십자가를 늘 깨우쳐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