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는 자는 [요 12:44-50]
 – 2026년 03월 15일
– 2026년 03월 15일 –

요 12:44-50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는 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영생에 이르는 길이다.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심판에 이르렀고 최후의 심판은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다. 자신의 말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예수님, 그의 명령만이 영생의 길이다.

 

1.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44~45절).
“외치다(크라조)”는 ‘큰 소리로 말하다’를 의미한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복음을 전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된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뒤에 자기보다 먼저 계신 분이 오신다고 외쳤고, 예수님은 성전에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외치며 가르치셨다(7:28). 또한 초막절에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자기에게로 오라고 하신다(7:37). 그리고 이제 44절에서 자신을 믿는 것은 곧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외쳐 이르신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중요하다. 하지만, 특히 외치신다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만큼 예수님의 간절함이 보이는 표현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것이 곧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신다(44절). 본문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시는 분으로,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자로 묘사된다. 그리고 아들을 영접하는 자는 곧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보냄 받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보낸 자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사상은 요한복음에서 계속된다(13:20). 예수님을 믿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곧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의로 와서 자의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보냄을 받아, 그에게서 들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곧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예수님을 배척하고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유대인들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면서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려 한다. 자기들의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 한다. 모순이다.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면서 자기들의 믿음을 지킨다고 오해하고 착각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보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 하신다(45절). 예수님을 통해서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본다는 사실은 요한복음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 아버지와 아들은 상호 내주하신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빌립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것이라 하신다(14:9). 이러한 사실은 앞서 41절에서 이미 언급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는데, 요한은 이것이 예수님의 영광을 본 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상호 내주하시기 때문에, 아버지를 통해 아들을 볼 수 있고,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볼 수 있다.

 


2. 구원과 심판(46~48절)
예수님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셨다(47절). 심판하지 않으시는 그의 사역의 성격에 대해 앞서 예수님은 이미 밝히셨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3:17). 이는 욥 9:39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오심이 낳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즉, 예수께서 오셔서 나타나는 구원은, 다른 한편으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 심판의 결과를 낳는다. 예수께서 심판하지 않으실지라도 그들은 불신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하게 되고, 이는 곧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본 단락은 또한 예수님의 심판은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다(48절). 그런 심판을 하나님은 아들에게 다 맡기셨다(5:22).

 


3. 아버지의 영생의 말씀(49~50절)
‘자의로’ 번역된 단어는 ‘나 자신으로부터’로 직역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의 기원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자신은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신다. 따라서 그의 말씀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고, 그래서 그의 말을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명령(엔튈레)’이 영생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아버지의 명령은 49절에 나와 있는 대로 예수께서 하실 말씀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아마도 영생을 가져오는 그의 죽음에 대한 말씀일 것이다. 이러한 말씀은 12:20~33에 자세히 소개된다. 그러나 십자가에만 한정 지을 수 없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십자가를 정점으로 해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으로부터 온다.

본 단락에서 예수께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심판한다(49절).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순종했는지 안 했는지 마지막 날에 심판받게 된다.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이제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을 심판하는 기준이 된다. 이런 면에서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말씀이 비교 대상이 된다. 둘째, 예수께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듣는 자에게 영생을 준다(50절). 특히 십자가에 대한 말씀,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말씀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러나 단순히 십자가에 대한 말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체 계시를 포괄하는 말씀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믿으며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대리인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고, 예수님은 그 계시의 절정으로서 하나님의 성품과 의지를 가장 잘 반영하는 ‘아들’로 오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부정하고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예수님은 빛이신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빛이 어두움과 함께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어둠의 일을 추구한다면 진정으로 참된 믿음인지 물어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의롭다고 불러 주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의로운 백성으로 예수님과 관계하며 살도록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계실 때는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도리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처럼 나무에 달려 심판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고, 그 순간까지 구원의 기회를 열어 두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선포하신 ‘말씀’만은 죽지 않고 살아서 마지막 심판 날에 그들에게 기소장이 되고 판결문이 되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남기고 승천하셨다. 하지만 동시에 말씀으로, 성령으로 여전히 임마누엘 하셔서 통치하고 계신다.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없고, 순종하지 않아서 구원 얻을 길은 없고, 회개하지 않고 심판을 면할 길은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우리에게 전달하셨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의지를 계시하고 실현하는 삶이었다. 그분이 하나님 말씀의 화신으로 순종의 삶을 사신 듯이, 우리도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순종할 때 그 삶 자체가 영생이 될 것이다.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기 두려워하는 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진리를 외치신다. 때로 차분하고도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지만, 그 권세는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처럼 강력하다. 그런 간절함 없이 냉담하게 전할 수 있는 생명의 복음이 있을까?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오셨는지를 거침없이 전하신다. 말씀은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실 만큼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아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이 오신 사건은 어둠의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사건이다. 빛으로 오셨기에 누구도 잃지 않고 아버지께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심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다. 어둠에 짓눌려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진심이고 진리다.

-그런데 세상은 그 진심과 사랑을 믿지 않았다. 구원받을 필요가 있는 어둠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빛을 거절하고 왕을 거절했다. 그렇게 스스로 멸망의 길로 나아간 것이고 심판을 자초한 것이다. 어둠의 삶이 곧 심판이다. 불신은 어둠만 심화할 뿐이다. 어둠의 심연에 싸이지 않기 위해 말씀에 응답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자신의 말로 장차 심판할 것이니 지금 말씀이 전해질 때 믿으라고 하신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고 그 삶 자체가 영생이 될 것이다. 빛이신 주를 믿음으로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된다. 구원은 어둠의 삶에서 빛의 삶으로의 변화다. 그러니 믿는다 하면서도 당당하게 믿음을 밝히지 못하면 여전히 어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어둠 가운데 거하는 것은 모순이고 모욕이다. 빛의 증인으로서 어둠에 순응하지 않고 어둠을 폭로하고 어둠을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주님,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지 않고 순종을 통해 참된 지식과 교제를 누리겠습니다.
*주님, 주님을 믿고, 주님을 보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빛 되신 주님을 더욱 신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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