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마지막 가르침 [요 13:1-17]
 – 2026년 03월 16일
– 2026년 03월 16일 –

요 13:1-17 마지막 가르침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저녁 만찬을 함께 하셨다. 이는 마지막 만찬이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마지막 가르침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선지자적인 행동 예언과도 같았다.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 중에 행하신, 충격적인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사건의 배경(동기)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한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새번역_1절).” 이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동과 같이 사랑하셨다는 의미와 함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온 인류를 향한 사랑을 끝까지 보이신 것을 가리키는 “행동 가르침”임을 일깨운다. 주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되 “이처럼” 끝까지 사랑하셨다.

세상은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긴 가룟 유다처럼(2절) 주님을 배반하는(11절) 사랑으로, 무리들이나 제자들처럼 전통과 관습, 문화, 사상과 같은 그 시대의 가치관으로 사랑으로 다가왔더라도, 주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이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리고 그 사랑의 모습을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으로 보여주셨다. 십자가의 모진 고난과 처절한 죽음으로 보여주셨다.

 

1. 저녁을 잡수시다가 일어나(3-11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3절에 “유월절 만찬을 드시는 중에(저녁을 먹는 중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아시고 행하셨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4-5절은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새번역).”라고 했다.

매우 의도적이었다는 의미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요한복음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주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는 도중에 자주 다투었고, 심지어 주님과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까지 다툰 것을 기록한다. 심지어 그 자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빵과 포도주로 비유하여 영원히 지켜야 할 성만찬을 제정한 자리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제자들이 이렇게 “누가 크냐?”의 문제로 자주 다툰 것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눅 9:46, 22:24). 마가도 마찬가지였다(막 9:34).

주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원하고 바라는 대로만 받아들였다. 주님의 예루살렘행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하는 길이었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이루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차지하기 위한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길이었다. 이 기막힌 가치관의 차이 앞에서 주님께서 “식사를 하시다가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제자들이 다투지 말고 서로 섬기고 사랑해야 할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직접 몸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이셨다.

베드로는 주님의 이런 행동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네가 섬김을 받지 않는다면 나와 상관없다(8절)며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제자라면 당연히 스승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민망히 여기며 거절한다. 그런데 주님은 거절하면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왜일까? 그것은 주님의 섬김을 받고 누려야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제자들을 포함한 우리들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는 것을 먼저 보여주신 “선지자적인 행동 예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주님의 섬김을 거부하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화목제물 되신 주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것과 같다.

맞다. 우리는 주님이 표본할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섬김을 받아 구원을 얻었다. 주님의 섬김을 거부하는 것은 신앙의 뿌리를 거절하는 것과 같다. 주님의 섬김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하고 송구스럽지만, 받을 때 받아야 한다. 나의 지식과 경험, 상식과 문화,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도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섬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 얻을 수 없다. 믿음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취사선택’하여 믿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섬겨주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산다.

 

2. 예수님처럼 우리도(12-17절)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의 의미를 이내 말씀해 주신다. “너희들이 선생 혹은 주로 나를 따른다면, 선생과 주 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섬기라(12-14절)”고 하신다. 특히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새번역_15절).”라고 말씀하신다.

세족식이라는 형식을 꾸준히 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세족을 한 것처럼 일상에서 “서로 섬기라(14절)”는 것이다. 서로 발을 씻겨주라는 말은, “누가 크냐?”로 다투는 것보다 더 복된 것은 “서로 섬기는 것”임을 일깨우시는 것이었다. 내가 더 좋은 것, 나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지 말고, 네가 더 좋은 것을 누려라, 네가 더 나은 자리에 앉으라는 것이다.

또 주님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새번역_16절).” 주님의 제자라면, 하나님을 믿는 그분의 백성이라면 반드시(진실로 진실로)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교회가 “다투는 제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여전해서 부끄럽다.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신 ‘본’을 따라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익숙한 가치관이 아니라 생소하고 어색하더라도 하나님 나라 가치관, 말씀의 가치관을 따라 순종해야겠다.

-가장 어색하고 생소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힘을 가져도 군림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가장 극악한 죄인에게 선고되는 십자가에 달리셨다.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상식을 넘어 사랑하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세상과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셨다.

-나도 그렇게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따라가야지…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하나님이 죄인들의 죄 값을 대신 치르는 상식을 넘어선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살아가야지…

-세상의 가치는 성공, 명예, 굳건한 능력과 힘으로 차지하는 “한 자리”이다. 누구나 이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히 행동으로 말씀하신다. 그렇게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것은 하나님 나라 가치관이 아니다. 전통, 상식, 힘, 능력, 성공 등의 세상 가치에 함몰된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삶은 하나님 나라 백성답지 않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누가 크냐? 누가 높으냐?”의 가치에 함몰된 삶이 아니라, 사랑하고 섬기되 발을 씻겨줄 정도로 “사랑하기에 기꺼이 섬기는” 가치로 살아야 한다.

-하늘 백성은 사랑으로 산다.

-하늘 백성은 섬김으로 산다.

-세상이 주는 달콤한 성공보다, 섬기고 사랑하는 가치에 더 의미를 둔다.

 

*주님, 너무 힘들고 어렵겠지만,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섬김으로 살아보겠습니다.
*주님, 예수님처럼…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본”을 따라, 더 예수님처럼 섬기며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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