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15-21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
빌립의 질문으로 다락방 강화가 계속 이어진다. 예수님의 떠나심이 제자들에게 주는 또 다른 유익은 보혜사 성령의 오심이다. 예수가 제자들과 영원히 거하시는 방식은 “성령을 통해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삶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스승의 떠나심에 자신들이 버려진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떠나심은 아주 잠깐이며 돌아오실 그날은 금방이 될 것이다. 그날이 되면 다시는 분리되지 않을 영원한 사랑의 연합이 현실이 될 것이다.
1. 사랑의 계명(15절)
1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행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내가 행하리라(에고 포이에소)”는 미래 시제보다 예수님의 강력한 의지를 강조한다. 15절이 같은 형식과 구조로 등장하는데, ‘만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이 조건절로 먼저 등장한다. 앞 단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친밀한 관계가 제자들에게 확대되었는데, 본 구절에서는 사랑의 관계로 구체화된다.
요한은 앞서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를 자세히 소개해 주었고(3:35; 5:20; 10:17) 제자들은 이 관계 안으로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새 시대 새 계명으로 사랑의 계명이 그들에게 주어진다. 예수님께서 본으로 보여 주신 발 씻음은 서로를 향한 사랑의 방식이다. 그것은 대상의 발 밑에 내려 앉음을 의미한다.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계명을 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다(8:42).
이렇게 사랑 안으로 들어온 제자들의 존재 방식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도 “내가 행하리라”와 같이 시간적 미래 보다, 강력한 의지와 당위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라면 그분이 주신 “서로 사랑하라(13:34)”는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법과 의무로서가 아니라 자발적 순종과 책임으로서 사랑이다. 예수는 율법을 지킨다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던 유대인들을 꾸짖으셨다(5:24).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랑의 영광을 더 사랑했다(12:43).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마음에 새신 법(렘 31:31~34)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의 삶으로 귀결된다. 사랑의 방식과 기준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13:34)”이다.
2. 보혜사 성령(16~17절)
과연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이 주신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을까? 유대인들은 스스로의 열심을 동원해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했다. 제자들도 남다른 열정으로 예수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만들어 낸 열심과 열정으로는 ‘그 길’을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을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을 통해 강조하셨다. 서로 발을 씻기고 목숨까지 내줄 수 있는 사랑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영으로만 가능하다.
예수님의 떠남이 궁극적으로 제자들에게 유익한데 그분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예수의 떠남이 가져올 결정적인 유익은 성령의 오심이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면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할 영을 구하실 것이다. 성령으로 번역된 ‘파ㅣ라크렐토스’는 대개 법정 변호를 맡은 대리자를 가리키지만(16:8~11), 예수님의 떠나심 이후 오실 보혜사는 제자들이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시는 예수님의 영이다. 지금까지 함께 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영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
예수가 보냄을 받았듯 보혜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아들의 이름으로 제자들 가운데로 보냄을 받으신다. 성삼위 하나님과 제자들이 사랑으로 온전히 연합된다. 이는 향후 포도나무 비유에서 확장될 것이다(15장). 예수님은 성령을 아버지께서 본인의 이름으로 보내신 보혜사로 말씀하셨는데, 본인이 아버지께 받아 보내신 것으로도 말씀하실 것이다(15:26; 참조, 행 2:33).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다. 예수님은 앞서 자신을 “진리”로 계시하셨다(6절). 그는 장차 죄와 의에 대해 심판하시며 제자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16:8~13). 제자들은 스승 예수처럼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지만, 세상을 이기신 예수가 성령과 함께 계실 것이기에 담대할 수 있다(16:33). 부활 이후 제자들을 찾아와 처음 주신 말씀도 “성령을 받으라”가 될 것이다(20:22).
예수님은 성령의 유무로 세상과 제자들을 구별하신다. 세상은 성령을 받지 못해 성령을 보거나 알지도 못하지만, 제자들은 그들 안에 거하시는 진리의 영을 알게 될 것이다. 보혜사는 제자들과 “함께” 그리고 “안에” 거하시며, 그들이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서 사랑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제자들은 자기 열심과 열정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예수가 “우리 가운데(1:14)” 장막 치셨듯이 성령이 “우리 안에” 영원히 장막을 치신다.
3. 다시 오리라(18~19절)
제자들은 떠나시겠다는 예수를 보면서 세상에 버려진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버려진 고아처럼 홀로 두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떠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돌아와 영원히 함께하시겠다는 말이다.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 잠시 떨어질 것이다. 이것은 반복되지 않을 단회적 이별이다. 지금 모든 것을 위해 떠나셔야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신 후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다.
예수의 길은 방향과 대상이 분명하다. 아버지를 떠나 세상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제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너희에게로’ 돌아오신다. 돌아오시는 목적도 분명하다(3절). 다시 세상과 제자들의 구별됨을 언급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1:11). 이제 아들이 세상을 떠나시면, 세상은 다시는 그분을 보지 못해 버려진 고아처럼 될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3:16)이지만, 그 사랑을 거절하면 버려진다. 유기는 곧 하나님의 심판이다. 물론 여기서는 ‘다시 나를 보지 못할’이라는 말씀이 ‘세상’을 향한 영원한 심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본다는 것은 세상으로서는 가장 큰 은혜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이 떠나시면 세상은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다. 믿는 자들만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23절). 이에 반해 제자들은 예수를 다시 볼 것이다. 영으로서가 아닌 죽음에서 부활하신 살아 있는 존재를 마주 대할 것이다. 예수님의 떠남은 곧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 세상의 손에 하나님의 아들이 죽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을 아들이 잃어버리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끝까지 사랑하시고 지키신다(6:39; 13:1).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제자들은 생명을 잃지 않고 살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살아나실 것이고 제자들은 살아서 부활의 주님을 대면할 것이다.
‘살아있다’는 말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상태를 의미한다. 죽음을 이기신 생명으로 오셔서 그 생명을 제자들에게 주심으로 제자들 역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4.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20~21절)
부활이 성취되는 “그 날”이 오면 제자들은 하나님과 아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묶여 있는 그 안에 참여할 것이다. 그들이 예수 안에, 예수가 그들 안에 거하시는 온전한 상태게 실현될 것이다.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과 연합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사랑의 삶이다. 얘수와 사랑으로 연합하는 것이다.
마지막 21절은 본문 14절과 인클루지오(수미쌍관)를 이룬다. 예수를 사랑하는 삶은 그분이 주신 새 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이제 그 역으로 계명을 지키는 자가 본인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실 것이며, 본인도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낼 것을 약속하신다.
제자들의 섬김과 사랑의 자리, 거기에 예수가 모습을 드러내신다는 약속인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제자들의 장래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떠날 지라도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함께 할 것임을 분명히 약속하신다.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위로자, 조언자, 옹호자, 돕는 자” 등으로 번역한다. 위로와 조언, 옹호와 도와 주시는 은혜로 “보살피고 은혜를 베푸시고, 보전 시켜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님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시는 분이시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사역하시는 모든 사역을 통해 진리를 전달 하신다. 즉,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을 생각나게 하신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곧 그들을 위로하고 도와줄 것을 약속해 주셨다.
-주님께서는 보내주실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표현 하셨다. 제자들에게 “보살피고 은혜를 베푸시며, 보전하여 주시는” 분이 이제껏 주님이셨다면,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 이시라는 것이다. 이제껏 보혜사이셨던 주님께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시면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돕고, 위로하며, 은혜를 보전하여” 주신다. 성령님은 영원토록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또 다른 보혜사 이시다.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의 “위로와 조언과 옹호와 돕는 자”가 되어 주실까?
-주님께서는 자신이 떠나시는 이유를 성령을 보내 주시기 위함이다 라고 하셨다. 28절에서는 그렇기에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기쁨이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다시 올 것(18절)”이라고 하셨다. 다시 오셔서 “영원토록 함께” 있을 것(16절)을 약속하셨다. 본문에서는 2회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것”을 반복하셨다(17, 20절). 마치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성막을 통해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충만하게 임하게 하여 보여 주신 것 처럼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실 것을 거듭 약속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함께 하여 주심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혜사”가 되어 주신다. 이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확인해 주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 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 14).”
-성령님께서 구원받은 성도 안에 거하시며 하시는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사랑하면(15, 21절)”이라는 말이 반복하여 사용된다.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삶의 방식이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새번역_15절).”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새번역_21절 상).” 성령님과 함께 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이는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을 각각 말씀하지 않으시고 함께 언급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지킨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계명은 주님을 사랑하면 당연히 지키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안에 거하시는 것의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삶을 판단해 보면 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을 통해 성령님의 도와 주심을 실제 하게 된다.
*주님은 보혜사 이시다.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유일한 분이시다. 성령님도 또 다른 보혜사 이시다.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보전하시는 분이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는 주님 밖에 베푸실 수 없고,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하여 보내주신 성령님은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보전하여 주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또 다른 보혜사는 “또 하나의 다른(완전히 별개의)”의 의미가 아니다. 주님께서 행하셨던 구원의 은혜를 이어 받아 “주님처럼” 우리들을 도와주시는 보혜사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의 개념이 아니라, “주님께 이어 받아 주님과 이어 주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보전하게 하기 위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것, 주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더욱 기억하게 하는 것, 생각나게 하는 것, 힘써 지키게 하는 것이다.”
*”주님께 이어 받은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님의 구원의 은혜와 이어 주는” 성령님의 역사는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것, 주님의 계명(가르침, 말씀)을 더욱 가치있게 붙잡아 지키며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고 시간이 지날 수록 도리어 풍성하여 지는 것은 성령님께서 주님의 은혜를 이어 받아 여전히 주님의 은혜안에 거하도록 이어 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세상이 이 사랑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이 사랑의 주님을 알지도, 보지도, 받지도 못하는 그들이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님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는가?
*주님,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주님께서 이어 주신 구원의 사랑을 주님과 굳건하게 이어주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나의 보혜사 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말씀을 지키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도와 주시는 성령님의 이끄심을 순종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