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5:1-17 참 포도나무 가지에 맺힐 사랑의 열매
다락방 강화(고별 강화, 13:31~16:33)가 이어지고 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한다. 예수님은 새 이스라엘을 만드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은그를 믿어 포도나무 열매를 맺는 가지에 비유한다.
1. 포도나무의 가지 비유(1~6절)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하나님을 “농부”로 묘사하신다(1절).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계시하시며 자신과 신자들의 정체성을 설명하신다. ‘포도나무’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시편 80:8~15은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원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로도 묘사된다. 참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자신을 참 포도나무인 자신에게 연결될 때, 이스라엘은 온전히 회복될 수 있다고 선언하신다.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2절)”는 직역하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내 안의 가지’가 된다. 이게 가능할까? 어떻게 예수님 안에 있는데 과연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이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믿음의 소유자를 암시한다. 겉으로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면의 변화도 없고, 그래서 삶의 열매도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열매가 없을 뿐 아니라, 결국 아버지에 의해 제거된다.
열매 없는 가지에 대한 아버지의 처분은 6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열매를 맺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깨끗하게 하여 열매를 더 맺을 수 있게 하신다. “깨끗하게 하다(카따이로, 2절)”는 포도 열매를 맺는 가지에 더 영양분이 공급되도록, 나머지 잔가지를 잘라내는 가지치기를 일컫는다.
먼저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훈련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성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고통스런 훈련이다(히 12:4~11).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윤리적으로 좀 더 성숙한 삶을 살게 된다. 이를 도덕적 깨끗함(정결)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미 깨끗한(카따로스) 상태가 되었다(3절). 그런데 이미 깨끗하게 된 자라 할지라도,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매일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13:10). 십자가 보혈을 통한 정결은 그리스도인의 최초 믿음에도 필요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지속적으로 필요하다(요일 1:7, 9).
따라서 3절이 말하는 ‘깨끗함’이란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정결이 되고, 2절은 하나님의 훈련을 통한 도덕적 정결, 혹은 십자가를 통한 제의적 정결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 그리스도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한다(4절). 그리스도도에 대한 참된 믿음을 통해, 날마다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께 훈련 받아야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이 요한복음이 말하는 믿음이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인 안에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이 거하신다(5절).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의 상호거주는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믿음으로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코리스 애무, 5절)”는 1:3을 생각나게 한다. 태초에 ‘그가 없이(코리스 아우투)’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었다는 말씀과 연결된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이 있게 만드는 통로였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이러한 예수님의 역할은 창조 사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예수님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만이 영생을 얻고, 영생의 열매를 맺는다.
2. 사랑하는 삶(7~12절)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한다(7절). 예수님은 말씀으로 그와 함께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정결해진다(3절).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예수님이 그 안에 거하신다. 말씀을 통한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의 상호 거주는 그로 하여금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참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 때, 그 기도 응답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때의 기도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과의 참된 연합을 통해, 예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다. 이런 기도가 많은 열매를 맺고,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8절).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8절)”는 열매를 맺는 삶,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 그리고 제자도가 서로 깊게 관련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7절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 거하는 삶이라 했다. 이러한 사람은 기도의 열매를 맺는다. 7~8절을 종합해 볼 때, 말씀과 기도, 열매와 하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이러한 그리스도인을 예수님은 ‘내 제자’라 하신다(8:31).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또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9절).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을 받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신다.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신것이다. 즉,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경험하고 난 후, 그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그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관련 있다(10절). 그 계명은 형제자매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12절).
3.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13~17절)
예수님의 친구로서 그리스도인은 그의 십자가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다(13절). 예수님은 친구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인데,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이 사랑을 경험한 자다. 또한 15절에서 예수님의 친구는 예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들은 것을 친구에게 알려주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선택의 주체에 대해 먼저 설명하신다(16절). 제자들이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상에서 제자들을 선택하고 부르셨다. 요한은 마치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을 선택하여 따라간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지만(1:37, 42), 예수님이 제지들을 택하셨다는 것은 신약성경의 일관된 사상이다(눅 6:13; 행 1:2, 24; 15:7).
16절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여 세우신 목적을 세 가지로 밝힌다. 첫째, 예수님은 제자들이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선택하셨다. ‘가서 열매를 맺다’는 예수님의 파송을 생각나게 하며, 이는 복음 전도로 회심자를 얻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은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고 있으므로 단순한 선교적 열매라기보다는 서로 사랑을 통한 선교적 열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제자들의 열매가 항상 있게 하기 위해 그들을 선택하셨다. 마지막 셋째,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항상 응답받게 하기 위해 선택하셨다. 여기서 기도는 앞서 나온 열매와 분리할 수 없다.
즉, 서로 사랑을 통한 선교의 열매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톹해 사랑하고, 기도를 통해 전도의 힘을 맺는 것이다.
나는?
-가지의 운명은 포도나무에 달려있다. 가지의 역할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이다.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겠지만 붙어있지 않으면 버려져 마르게 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했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려고 애썼는지를 살피라.
-예수에 붙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누리는 것이다. 그 사랑의 힘으로 계명을 준수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열매다. 계명의 내용 또한 사랑이 아닌가? 사랑을 받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가지의 본분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사랑은 종을 향한 주인의 사랑이 아니라 친구 간의 사랑이다. 친구 간에는 정보를 공유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들은 것을 우리에게 다 알려주신다. 그러니 친구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다. 이제 예수님의 친구인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 또한 분명하다(롬 12:1).
*주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길은 지켜야 할 “선”이 분명하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4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9절).”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안에”라는 표현을 12회나 반복하셨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주님께서 나의 안에 거하시는 것… “안에”는 주님과 나를 연결하는 연결선, 이음선이다. 가장 중요한 관계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내가 주님 “안에” 있어야 하고, 주님께서 나의 “안에” 계셔야 한다. 이를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 이렇게 고백하게 하셨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주님 안에 있어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주입시킨 성공해야 의미있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어야 “생명”이 있으니, 그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의미는 구원 받은 성도의 안에 계시는 주님의 성령으로 인해 주님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통해 확인되는데, 바로 “사랑하는 삶”이다.
*내가 주님 안에,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삶은 성공이나 실패 모두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어 가게 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 내가 주님과 한편되어 사는 것이 곧 진정한 이 땅에서의 승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은 “사랑하는 삶”,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는 삶은 “주님처럼 계명을 지키는 삶”,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 명령하신 계명을 지키는 삶이 의미 있는 삶…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실제적인 삶…
**주님, 참포도나무의 가지로 접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처럼 온전히 순종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주님 안에 거하는 분명한 선을 지키겠습니다. 사랑하라 하신 선을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