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6:25-33 주님의 말씀이 주시는 평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여 주신다(27절). 이런 이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수 있게 된다(25-26절)고 약속하신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28절)고 직접 밝히신다. 이에 제자들은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것”을 믿었다(29-30절).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을 믿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새번역_33절).”
1.이제야 우리는(30절)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이라는 표현이 본문에서 3회(27, 28, 30절) 반복된다. 제자들은 이것을 마지막이 되어서야 분명히 믿었다. 하지만 주님께서 보여 주실 것을 다 보여 주시고 가르치실 것을 다 가르쳐 주셨음에도 유대의 지도자들(세상 권력자들)은 주님께서 “하나님께서로부터 온 줄” 모른다. 아니 모른다기 보다 인정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제야 우리는, 선생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과, 누가 선생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환히 알려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믿습니다(새번역_30절).”
*”이제야 우리는” 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는다. 나도 이 표현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주님을 알아가는 것은 늘 현재 진행형이니 이후에 주님을 만날 때 얼마나 많이 놀랄까?
2.이제는 너희가 믿느냐?(31절)
그런데 주님께서는 곧이어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31절)” 라고 반문 하신다.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제자들이 주님을 하나님께서부터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의 속죄의 제물이 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다같이 하나 되어 주님의 뒤를 따라 가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 하신다.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 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벌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새번역_32절).” 제자들은 “주님을 혼자 버려 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진다.
“이제야 믿습니다” 고백한 제자들의 호기로움이 순식간에 싸늘해 진다. 믿는다고 고백한 것과 믿음으로 굳건하게 사는 것이 엇박자를 내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의 상태를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아! 나도 별반 차이가 없다. 믿음의 고백과 믿음의 행함이 엇박자일 때가 많다. “이제야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들이 하나씩 덧붙여질 때 마다 “이제는 믿겠느냐?”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 질 때마다 감내 해야할 믿음의 행함이 호락 호락 하지 않다.
3.그러나 용기를 내어라(33절)
그럼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격려 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새번역_33절).” 주님께서는 세상이 주님과 제자들을, 그리고 이후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적대할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믿음의 고백이 선명해지고, 믿음의 행동들이 확연하여 질 수록 세상은 더욱 적대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어김이 없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비유가 아닌 확실하게 말씀 하여 주신 목적이 있다.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이다. 주님 안에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시듯,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승리의 평화가 주님의 승리로 인해 제자들에게 주어진다.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주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평화를 누리도록 세상이 가만 놔두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 하신 평화와 세상을 이긴다는 말씀은 “환난”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이 주는 적대와 환난이 여전 하여도 그 환난에 무릎 꿇지 않는 사람, 세상이 주는 고통과 아픔을 꿋꿋이 감내하며 견디는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얻는 사람이 곧 하나님 나라 백성, 주님의 제자들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상이 주는 환난 속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말한 것은…(33절)” 이라는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일깨우신다. 세상이 주는 환난 속에서도 평화를 누리는 방법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신 것”을 통해서다. 즉, 주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통해 제자들은 환난 속에서도 평화를 누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더 깊이 깨우쳐 가는 것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릴 것이다. 이 평안이 환난을 이길 수 있게 한다.
*주님의 말씀이 주는 평화….
나는?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새 시대에는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을 더 이상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고 분명히 깨닫게 하실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구속 역사가 완성되고 성령께서 조명해주시는 새 시대에 살고 있다. 십자가와 부활이 주는 풍성한 의미를 성경 곳곳에서 배울 수 있다. 이제 예수님이 우리 위하여 대신 빌어주는 시대는 가고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창조주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와 예수님과 하나님 간에 더 긴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구속하시는 사랑으로 자신에게 나올 길을 마련해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랑과 믿음으로 화답할 때 주님은 기쁘게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갈 것이라는 거ㅗㅅ을 그때가 다 되었기 때문에 비유가 아닌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알려주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드러내는 데 있지 숨기는데 있지 않다. 듣지 않으려고 했을 뿐 들려주지 않으신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들려주시는 주님이심에도 듣지 못하는 것은 들려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미 밝히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알고 있고 또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매우 진전된 믿음이긴 하지만, 자신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만큼은 아니었다. 여전히 메시아의 죽음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십자가를 알고 수용하기 전까지는 참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의 소속과 정체와 운명을 잘 이해하고 알면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아는 것이 반드시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 분명한 자신의 정체를 밝히시면 더 판단하기 쉬워진다. 그러므로 반응도 더 분명해질 것이다. 다 떠나고 예수님 혼자 남을 때가 올 것이다. 잘 가르칠수록 잘 믿을 것이라고 성급하게 맹신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잘 알려줄수록 믿어야 할지 떠나야 할지가 더욱 분명해진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셨다. 하나님과 함께하시니 두려움 없이 그 길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아직 그럴 만한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제자들을 격려하신다. 잠시 연약한 믿음 때문에 흩어질 것을 아셨지만, 부활 후에 예수님이 세상을 이긴 것을 깨달아서 담대하게 주의 길을 걷도록 미리 용기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계셔서 사망까지 이기게 하셨듯이 세상이 결코 우리 또한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힘겨운 현실 가운데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쎠야 할 것이다.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고전 15:58)임을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확히 알게 하신 것은 평안을 주시련느 것이다. 세상이 예수님을 버려도 당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이니 놀라지 말라는 것이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니 담대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믿습니다”는 고백을 여전히 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제는 믿느냐?” 라고 늘 격려해 주신다. 부끄럽지만 이런 대화는 완성형이 없다. 그러나 이런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곧 주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 내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님의 말씀이 깨달아 지면 “이제야 믿습니다” 고백하고 그렇게 누리는 믿음의 평안이 어느 순간 세상이 주는 적대, 고난, 환난에서 나를 지켜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말씀이 확신을 주었고, 말씀이 평안을 주었으며, 말씀으로 세상의 적대를 당당하게 맞서게 하였다. “이것을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용기를 내어 주님께서 세상을 이겼듯이 우리도 세상을 이기어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주님의 말씀이 용기를 내게 하고 세상의 환난을 맞서게 하는 힘을 주신다.
*이제야 우리는(우리가 지금에야) …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주님, 늘 이제야 믿습니다를 반복하지만, 말씀을 알고 깨닫게 하여 세상이 주는 환란 속에서도 주님 안에서 평화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이 주는 평화를 늘 사모합니다. 말씀을 늘 기다립니다. 그 주시는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