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7:17-26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시기 전에 아버지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구하신다. 제자들이 세상으로 보냄받는다면 세상이 그들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 되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연합 안에 들어오기를 기도하신다. 제자들은 사랑의 공동체이며 영광의 공동체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창세전부터 누려 오신 영광을 제자들도 누린다.
1. 제자들의 거룩을 위한 기도(17~19절)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의 거룩을 위해 기도하신다(17절). 아버지께서 제자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신다. 거룩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특성이다. 아버지는 거룩하신 분이다(11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시다(6:69). 아버지의 영 또한 거룩하신 영이시다(1:32; 3:5; 7:39; 14:26). 따라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삼위 하나님과 관계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거처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14:23).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 안에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집이 되는 것이다(14:2~3).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진리’로 가능하다. 성령이 진리의 영이시고(14:17; 15:26; 16:13),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8:45; 14:6), 결국 삼위 하나님이 신자에게 임재하시는 방법은 예수님과 성령을 통해서다. 예수님과 성령 안에서 임재하신다. 이것이 곧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요,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언제 거룩하게 될까? 언제 말씀 곧 진리로 거룩하게 되며, 예수님과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는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18절의 ‘파송’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신 것과 아들이 그의 제자들을 파송한 것은 유비를 이룬다. 본문은 제자들을 파송한 것이 과거형으로 나오지만,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제자들의 파송을 기대하게 한다. 제자들의 실제 파송은 20:21에 등장하고, 18절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 파송 이야기가 20:21에 반복되어 나오기에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것(17:18)은 성령의 임재(20:22)와 관련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진리의 성령을 주실 때, 제자들은 거룩하게 되어 세상으로 파송된다.
제자들의 거룩과 파송을 위해 이제 예수님은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고 고백하신다(19절).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도록, 예수님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다.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앞서 예수님과 성령 안에서 거룩과 관련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주심으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이러한 일련의 구속사적 사건들을 위하여 이제 예수님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다. 이런 관점은 18장부터 이어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제사장 제물로 거룩하게 하는 예수님의 준비로 해석할 수 있다.
2. 제자들의 하나 됨을 통한 복음 전파(20~22절)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마치고,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 그를 믿는 미래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20절). 그 기도의 핵심은 ‘하나 됨’이다. 예수님은 미래의 제자들이 하나 되도록 기도하신다(21절). 이 하나 됨의 원형은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된 것 같이 미래의 제자들이 하나 되도록 기도하신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그 하나 됨을 닮을 수 있을까? 먼저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은 ‘영원한 존재론적 하나 됨’이다(10:30). 또한 실제적인 측면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사역하신다. 따라서 하나이신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영화롭게 하신다(17:1). 아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의 영광을 나눠 주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하나 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그러나 서로 세움과 상호 복종을 통해 그 하나 됨을 구현해야 한다. 제자들의 하나 됨을 위한 기도는 바로 그들이 서로 사랑하여, 교회의 하나 됨을 구현하라는 의미다.
이러한 제자들의 하나 됨은 놀라운 선교의 열매를 맺는다. 하나 됨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증거한다(21절). 교회가 하나 되어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게 될 때, 세상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믿게 된다(13:34~35). 앞서 제자 공동체는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에 파송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18절). 이것은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주실 때 이루어진다(20:21~22). 세상에 파송된 성령 공동체로서 제자들은 죄 용서의 사역을 하도록 명령받는다(20:23). 정리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세상에 파송되고 세상에서 죄 용서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그러나 17:20~26의 말씀을 토대로 죄 용서의 사역과 함께 선교를 위한 사명을 ‘하나 됨을 이루는 것’으로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 교회의 일치가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선교 사역이 된다.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광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주셨다(22절). 아버지의 명성과 명예가 아들에게 주어졌다. 아들에게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나타난다. 예수님은 이러한 영광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이는 아들의 계시 사역을 가리킨다. 아들은 그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아버지를 제자들에게 계시하셨다. 아들은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전하셨다. 이렇게 미리 알린 영광을 주신 것은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22절).
요한은 ‘하나 됨’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을 하나 되게 하는 목자시다(10:16). 우리(fold) 안에 있는 양들뿐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양들도 인도하여 하나로 만드신다. 이러한 구원과 하나 됨의 사역을 위해 그는 목숨을 버리는 목자시다(10:15).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을 암시한다. 주님의 교회는 새로운 신자들로 채워져 종말론적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형성할 것임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종말론적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약속하셨고, 그 공동체가 새로운 다윗에 의해 인도될 것임을 약속하셨다(겔 34장, 37장).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새 목자로 오셔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믿는 자를 불러 모아 종말론적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세우신다. 이를 위해 십자가에서의 희생적인 죽음을 감수하셨다(10:15).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과 하나 되는 교회 공동체의 관계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예언(?)에서 더 뚜렷하게 이미 나타났었다(11:49~52). 가야바는 예수님의 죽음이 이스라엘 민족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예언했다. 요한은 이러한 가야바의 예언을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된 교회의 하나 됨으로 해석한다. 즉, 예수님은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 죽으실 것이라 한다. 이스라엘이 흩어진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용서와 회복이 일어난다. 흩어진 자녀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로 회복되는 것이다.
3. 아버지의 사랑과 영광, 이름을 드러내는 선교(23~26절)
23~24절은 아버지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는 선교를 선포하신다. 제자들의 하나 됨은 그들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되셔서 제자들과 함께하실 때, 제자들은 온전하게 하나가 된다(23절).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알게 되고, 또한 아버지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앞서 21절에 언급된 하나 됨과 선교의 관계를 확대하여 설명하신다. 제자들의 온전한 연합은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알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한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다(3:16). ‘하나님의 사랑, 독생자의 오심, 영생의 메시지’가 교회의 하나 됨을 통해 세상에 증언된다.
예수님의 다음 기도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어 자신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는 것이다(24절). 이 구절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거하시는 하늘 성전일 수 있고, 또한 성령으로 그의 제자들과 함께하시는 공동체 성전일 수도 있다. 즉, 24절은 제자들이 영원한 하늘 성전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본다는 의미와 함께, 동시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공동체 성전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영광을 본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성령이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드러내어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그 영광을 경험한다. 이것은 제자들이 장차 하늘에서 경험하게 될 하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25~26절은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내는 선교를 강조한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신 아버지’라 했는데, 이제 25절에서 ‘의로우신 아버지’가 된다. 예수님께서 공의로운 하나님 아버지의 판단을 구하는 기도다. 주님은 세상과 그리스도, 세상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판단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이다.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려 오신 그의 아들을 거부했다(1:10~11; 8:40).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를 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오신 분인 줄 알고 그를 믿고 그를 따랐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의 계시를 제자들에게 전하셨다(26절). 이러한 이름과 말씀의 관계는 이미 6절에서 언급되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정체성과 명성을 나타낸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은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1:12; 2:23). 우리는 그 이름을 믿어서 영생을 얻는다(20:31).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셨다는 말은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셨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자기 계시 사역은 제자들이 아들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다.
나는?
-예수님은 제자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기를 구한다. 세상 악으로부터 깨끗해지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상태에서 제자들은 핍박과 함께 세상의 다양한 영향을 받게 된다. 매 순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세상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물들 수밖에 없다. 때로 허영에 사로잡혀 시대정신을 따르게 된다. 이렇게 부정한 세상으로부터 깨끗하게 되는 길은 진리인 아버지의 말씀뿐이다. 주께서 스스로 거룩하게 하실 수 있었던 것도 늘 아버지의 말씀을 청종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을 따라 세상을 분별하고 차별화를 통해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장에는 십자가 앞에서 두려워 흩어지겠지만, 결국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역할 것을 내다보신다. 더구나 그들이 전한 말씀을 목자의 음성으로 알아듣고 믿게 될 장래의 양들을 위해 미리 기도하신다. 세상은 이익을 내지 않으면 쉽게 해고하지만, 주님은 오늘 나의 연약한 모습만 보지 않고 자신이 친히 빚어 가실 우리의 장성한 모습을 보시며, 이를 위해 기도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님이 누렸던 하나 됨을 누리기 원하신다. 그것은 사랑과 순종으로 이룬 연합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서 하나 되면 예수님과 하나님이 우리를 성전으로 삼아 거하실 것이다(14:23). 예수님 말씀으로 변화된 성도들이 사랑으로 하나 된 모습만큼 세상 앞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세상에 구주요 왕이심을 증명하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세상의 특징은 미움과 원망이며, 분열이고 다툼이기 때문이다.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아무도 자기를 부인하는 사랑으로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 줄 수 없는데, 이것을 증명해야 교회라 할 수 있다.
-제자들에게 영광을 주시는 주님이시다. 예수님이 받으신 영광이 십자가를 통한 영광이듯이, 제자들도 주님의 길을 따를 때 그 영광을 얻을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따를 때만 성도들은 진실로 하나가 될 수 있다. 아버지의 양들을 구속하여 그들을 거처 삼으시고(14:3), 예수님이 창세전에 하나님과 누리셨던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해 달라고 간구하신다. 이것은 이 세상 악에 빠져 실족하지 않도록 제자들을 지키셔서 그들도 영광의 관문인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해 달라는 간구다. 세상은 갈수록 자기 연민과 자기 사랑을 부르짖겠지만 제자들은 자기 부정과 십자가를 통해 영생과 영광을 누리기를 바라신 것이다.
*우리는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이 일치는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일치에서 출발한다. 주님은 성도들이 하나 됨을 이루기 원하신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 됨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친밀한 연합과 교제에 참여하게 된다. 또한 하나 됨을 이룬 공동체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온전히 드러낼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 안에 있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성도들이 서로 안에 있어 하나 되는 것, 그리고 그 하나 됨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 이것이 주님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따라서 공동체의 하나 됨은 하나님의 선물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사명인 것이다.
*우리 더온누리공동체가 다른 무엇보다 하나 됨을 이루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사랑은 조건이 있다. 조건이 사랑이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존재 자체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어떤 조건을 충족해서가 아니다. 나의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여전히 미덥고, 부족하기만한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주님의 모습이 그 증거다.
*더예수님처럼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나에게 보내주신 영혼들을 이처럼 사랑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쉽지 않다. 존재 자체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늘 조건을 찾고, 구하는 모습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주님 안에서 하나되어 사랑함을 온전하게 순종하지 못한다. 먼저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하나된 주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주님이 나를 그렇게 보아주듯, 존재 자체만을 볼 수 있는 성숙함이 일어나지 않겠나…
*우리의 하나 됨은 결국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로서 서로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듯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 됨을 통해 결국 사람들이 예수를 알게 된다고 하셨으니, 거룩한 부담감으로 이를 직면해야 할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결국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괜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본질을 예수님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신 그 사랑이 내 안에 머무는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안에 먼저 거하고 누려야 이웃을 존재 자체로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야 사랑을 행할 수 있다. ‘사랑받은 은혜’가 넘쳐야 ‘사랑하는 삶’을 자연스레 살 수 있다.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사랑을 누리는 은혜는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여정에서 깨닫고, 능력을 공급받아 순종할 수 있다. 말씀은 십자가의 사랑을 실제하게 한다. 성령님은 그 말씀을 깨닫게하고 깨우쳐주심으로 사랑의 힘으로 살아내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도 말씀이 그 사랑을 바라보게 해주셨다. 감사하다.
*우리, 말씀이 주는 은혜와 능력으로 기꺼이 사랑하며 살아내자. 주님의 간절한 기도는 이 모습을 꿈꾸며 하신 기도였다.
*주님, 나의 말과 삶, 그리고 하나 된 모습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이름을 잘 드러내겠습니다. *주님, 이미 주님 안에 하나 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신 대로 하나 됨을 힘써 지키며 서로 뜨겁게 사랑함으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