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31-42 예수님의 완전한 죽음, 드러난 제자
군병들이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음으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준비일에 동산에 묻히셨다. 이 과정에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믿음이 돋보인다.
요한복음은 세 종류의 믿음을 제시한다. 참 믿음, 거짓 믿음, 애매모호한 믿음이다. 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3:36). 그러나 거짓 믿음은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순종의 열매가 없는 것이다(6:66). 이와 달리 애매모호한 믿음도 있는데, 대표적인 본보기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숨기는 유대 관리들이다(12:42). 아리마대 요셉도 이러한 관리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용기 있는 행동으로 자신의 믿음의 열매를 보이는 자가 되었다. 빌라도를 두려워하여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할 때, 그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청했다(19:38).
1. 예수님의 시신(31~37절)
예수님이 죽으신 날은 안식일의 준비일이었고, 그 안식일은 특별한 날이었다(31절). 이는 유월절 주간의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신명기 21:22~23에 따르면 범죄자를 나무에 달아 죽이더라도 그 시체를 밤새도록 나무에 두지 말아야 한다. 시체가 땅을 더럽히기 때문에 당일에 장사해야 한다.
이 율법에 따라 유대인들은 군인들에게 시체를 치워 달라고 요청했다. 다리를 꺾어 치워 달라고 한 것은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 양옆 사람들의 다리는 꺾였으나,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셨기 때문에(33절) 다리가 꺾이지 않았다(32절). 대신 한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고, 그곳에서 물과 피가 나왔다(34절).
요한이 이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적 사실임을 밝히기 위해서다(35절).
또한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당시 교회 안에 들어온 잘못된 가르침에 대응하려는 성격도 있었다. 요한일서에 따르면 당시 교회 안에는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이단 사상이 있었다(요일 4:2~3). 아마도 2세기 이후 성행하던 가현설주의의 초기 형태의 거짓 가르침이 요한의 교회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요한일서에서는 이들을 적그리스도라 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성육신,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실제적인 죽음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요한복음의 묘사는 성경의 성취를 나타내려는 의도도 가진다(36~37절). 군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한 후 그 다리를 꺾지 않은 것은 성경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36절). 유월절 규례는 어린 양의 사체의 뼈를 꺾지 않도록 명령했다(출 12:46; 민 9:12). 또한 시편은 고난받는 의인의 뼈가 하나님으로부터 보호하심을 받는다고 말했다(시 34:20). 따라서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은 것은 이러한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죽으셨음을 나타내며, 그 죽음이 의인의 죽음이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한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것도 성경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37절). 스가랴 12:10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은총과 간구의 영을 주실 것이다. 그들은 전에 불순종하던 것을 기억하고, 그들이 찌르던 하나님을 바라보며 애통할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본문을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찌른 것과 연결시킨다. 그러나 “그들(37절)”은 로마 군인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유대인들도 포함된다. 넓게 적용하면 예수님을 죽게 한 모든 죄인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 그를 보며 애통할 것이라고 기록한다(계 1:7). 따라서 이 구절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죄인들이 애통하며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34절)”은 일차적으로 그의 죽음의 역사적 신빙성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실제 사람으로 태어나셨고, 실제 사람으로 죽으신 분이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바로 이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다.
요한은 35절이 말하는 “증언”이라는 표현을 통해, 누구보다 자신이 예수님의 실제 죽음을 증언하려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그의 증언이 참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을 독자들이 믿게 하려 했다. 이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곧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밝히고 독자들이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데 있다(20:30~31). 요한은 마지막까지 이것이 참된 증언임을 힘주어 강조한다(21:24).
2.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하다(38~40절)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가져간다(38절).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다(막 15:43). 그는 두려움 때문에 비밀리에 예수님을 믿었던 제자였다. 그런데 이제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다. 이러한 변화는 믿음의 발전을 여실히 보여 준다.
숨기는 믿음에서 당당히 드러내는 믿음으로 발전한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믿음을 숨기는 모습은 유대 관리들에게 이미 나타났었다(12:42).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 같은 공회의 회원인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나아왔다(39절). “백 리트라”의 무게는 거의 30kg에 가깝다. 이런 많은 향수는 주로 왕의 장례식 때 사용하곤 했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서 세 번 등장한다. 3장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영생에 대하여 무지한 자로 소개된다(3:1~21). 그러나 7장에서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변호하는 니고데모의 모습을 볼 수 있다(7:50~51). 이제 니고데모는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향품을 가지고 온다.
무서워하는 다른 제자들에 비해, 유대 지도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것이다. 이러한 니고데모의 행동은 독자들이 그의 내면적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
3. 예수님의 무덤(41~42절)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유대 장례 예식을 따라 예수님의 시신을 싸서 가까운 동산에 그 시신을 둔다(40~42절). 마태복음은 무덤의 위치를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를 위한 새 무덤에 두었다고 한다(마 27:60). 무덤은 바위 속에 판 굴과 같은데, 요셉은 무덤 입구를 큰 돌로 막았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도 마태복음과 비슷하게 예수님의 무덤을 설명한다(막 15:46; 눅 23:53).
이에 반해 요한복음의 예수님 무덤 설명은 독특하다. 예수님의 무덤을 “동산(케파스)”으로 묘사한 것은 요한복음이 유일하다. 요한은 예수님이 체포되신 곳도, 예수님이 죽어 묻히신 곳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곳도 ‘동산’이라고 언급한다(18:1, 26; 19:41). ‘케파스’는 신약에서 총 네 번의 용례가 있는데,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고난 이야기에서 세 번 사용된다.
나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오후 3시였다. 유대인들은 곧 있을 안식일 시작(오후 6시) 전까지 죄수들의 다리를 꺾어 십자가에서 시체들을 치워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했다. 안식일 규례(신 21:23)를 지키기 위해 십자가형을 당한 이들의 다리를 꺾으면서(원문은 ‘부수다’의 의미다) 속히 죽여 장사하려는 것이었다. 군병들은 바삐 움직였고, 주님은 이미 운명하신 후여서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시 34:20)라는 성경 말씀이 응했다.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죽였음에도 율법의 조항을 지키려는 위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주님의 장례를 서둘러 치른다(38~40절). 요셉은 빌라도에게 시신을 요청했고, 니고데모는 왕의 장례에나 바칠 만한 양의 향품을 가져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무덤에 장사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십자가의 죽음과 장례 과정이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주님은 유월절 어린 양(요 1:29, 36)이라 하셨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해의 유월절은 안식일이었다. 다리를 꺾지 않는다는 예언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출 12:46) 완전히 보호받을 의인(시 34:20)으로 예언되어 있다. “그들이 찌른 자를 보리라”(37절)라는 말씀은 주님의 재림을 내다본 것이다. 또한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무덤에 주님을 안장한 것은 사 53:9의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라는 말씀의 성취다. 주님의 옷을 제비뽑은 것(19:24)은 시 22:18의 말씀이 응한 것이고, “내가 목마르다”(28절)는 시 69:21의 말씀이 응한 것으로 보였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주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여겼음을 드러낸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존경받는 자였다(막 15:43; 눅 23:50). 아리마대 요셉은 의로운 자로, 주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산헤드린의 의결에 동조하지 않았다(눅 23:50~51).
공생애 기간 동안은 드러내 놓고 주님의 제자임을 밝히지 못했지만, 주님이 죽은 후 빌라도에게 시신을 요구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유대교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이 다윗 왕처럼 동산에 위치한 새 무덤에,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시신의 부패를 지연해 줄 몰약과 약 34kg 상당의 침향을 섞은 것을 가져와 아낌없이 주님의 몸을 장사한 것이다. 이제껏 감추고 있던 주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주님의 죽음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신 분이었음을 보인 것이다.
*주님이 죽으셨다. 요한은 그 이후의 상황을 자세하게 다룬다. 메시아이신 주님을 십자가에 죽이도록 했던 유대인들이 안식일 규정을 지키기 위해 다리를 부숴 달라는 요청을 하는 모습에서, 기막힌 종교적 폭력의 정점을 보게 된다.
*한편 감추었던 신앙을 가장 위험한 시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선명하게 드러낸 요셉과 니고데모의 모습이 인상 깊다. 빌라도가 팻말에 적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이 실제로 자신들의 사회적 기반에서 출교당할 각오를 하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주님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은 “목격자가 증언한” 것을 기록했다. 주님의 죽음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요한은 “(이것은 목격자가 증언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는 자기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여러분도 믿게 하려고 증언한 것이다.)”(새번역 35절)라고 기록을 남겼다. 주님은 확실히 죽으셨다. 주님의 부활은 사실이다.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주님의 제자임을 숨기고 있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결단했다.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보면서, 주님을 죽음으로 내모는 공회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바라보며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주님의 제자임을 가장 예민한 시기에 가장 담대한 행동으로 드러낸다.
*세상 속에서 주님을 믿는 삶의 걸음이 주님의 제자,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어쩌면 지금 한국 교회는 세상 속에서 가장 수치를 당하고 부끄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더욱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담대함이 필요하고, 말씀대로 살아내는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이제껏 세상 속에서 주님의 제자임을 감추고 있었다면, 담대하게 드러내야 한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며 감출 수 없다고 하셨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면, 드러내어 선명하게 나아가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담대하게 드러내야 한다.
*주님, 나의 죄를 대신하신 완전한 죽음, 그 은혜로 제가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그렇기에 세상 속에서 주님의 제자다움을 선명하게 드러내겠습니다. 그렇게 살아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