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모든 일이 여호와의 뜻대로 [창 24:50-67]
 – 2026년 04월 13일
– 2026년 04월 13일 –
창 24:50-67 모든 일이 여호와의 뜻대로
 
본문은 아브라함 종의 이야기를 들은 리브가와 리브가 가복의 반응이 중심 내용이다. 라반과 브두엘은 리브가와 이삭의 결혼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허락한다. 리브가도 일찍 떠나겠다는 종의 말을 따라 다음 날로 부모와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떠나며, 그곳에서 이삭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1. 리브가의 결혼이 허락되다(50~53절)
아브라함 종의 간증은 라반 가족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라반과 브두엘은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결혼을 허락한다. 본문에서 이제껏 등장하지 않았던 브두엘이 갑자기 등장한다. 여러 추정들이 있지만, 현재는 어떤 사정에 의해 장남 라반이 가장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본문이 브두엘보다 라반이 먼저 나열된다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라반이 리브가의 결혼 허락을 주도하는 장면은 향후 야곱의 이야기를 준비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그들은 리브가를 데려가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의 아내로 삼으라고 허락한다(51절). 리브가의 결혼이 최종적으로 허락되자 그 종은 다시 한 번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를 드린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혼인 절차가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먼저 결혼식 전에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신붓값을 내야 한다. 그것은 두 남녀의 약혼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의 종은 여러 가지 값 비싼  은금 패물과 옷들을 리브가에게 준다. 이어 그는 그녀의 오빠 라반과 어머니에게도 값진 물건들을 제공한다(53절).
 
 
 
2. 결혼을 결심한 리브가(54~58절)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에야 종과 일행들은 그날 저녁 식탁을 마음껏 즐겼다. 그날 밤을 거기서 보낸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일어났다. 종은 서둘러 라반과 그의 어머니에게 가서 가나안으로 돌아가겠다고 통보한다. 라반은 만류하며 며칠 더 묵고 가라고 요청한다. 이는 아브라함 종과 수행원들의 휴식뿐 아니라 리브가와 충분한 작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자칫 결례가 될 수 있었음에도 아브라함의 종은 왜 서둘러 떠나려 했을까? 
 
여러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개연성은 몇 가지 있다. 이미 어제 밤에 보인 라반의 탐욕적인 모습을 간파했을 수 있다. 그들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리브가를 내놓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종이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주인의 상속자가 될 이삭의 빠른 혼인이었다. 아마도 연로한 아브라함을 고려하면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음을 생각하여 결례를 무릅썼을 수 있다. 그러나 종은 라반과 그의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들은 리브가를 부른다. 라반과 그 어머니는 분명히 리브가도 지금 당장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브에게 지금 떠날 것인지를 묻자, 리브가는 간결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가겠나이다’.  메소포타미아를 떠나겠다는 리브가의 결단은 아브라함의 결단을 떠올리게 한다. 둘 다 각자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버리고 지시한 곳으로 떠나고 있다. 그 결정이 미적거리지 않는다. 단호하고 간결하다. 
 
 
 
3. 가나안으로 떠나는 리브가(59~61절)
라반의 가족은 리브가를 위해 유모 한 명을 붙여준다(59절). 이것은 아기가 태어날 것을 대비한 ‘젖먹이 유모’였다. 유모는 젖만 먹이는 것이 아니라 양육도 책임졌기에 대단히 중요한 직분이었다. 이 익명의 유모 이름은 그녀가 죽을 때 ‘드보라’로 소개된다(창 35:8). 
 
라반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는 리브가를 위해 복을 빈다. 리브가가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기를, 또한 후손이 적들의 성들을 차지하기를 기도한다. 씨의 번성과 성문의 획득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반복이다(창 22:17). 리브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 여종들(리브가의 개인 몸종들)과 함께 낙타에 오른다. 
 
 
 
4.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62~67절)
이 일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이삭은 네게브 지역의 브엘라해로이에 거주하고 있었다. 헤브론에서 남쪽 가데스 근처에 있는 브엘라해로이까지는 약 90km의 거리다. 그런데 왜 이삭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매장한 헤브론에 거주하는데, 이곳에 있을까? 그리고 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아브라함이 있는 헤브론이 아니라 이삭이 있는 브엘라해로이로 데려올까. 또한 그가 65절에서 이삭을 ‘주인님’으로 호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삭이 결혼한 나이는 40세다(창 25:20).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았으니, 현재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다. 이후 35년을 더 살다 175세에 죽은 것이 확인된다(창 25:7).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가나안의 거부가 된 아브라함이 현재 자신의 생활권이 브엘세바와 헤브론, 브엘라해로이까지 넓혀져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종은 (먼저 아브라함이 있는 헤브론을 거쳐) 리브가를 이삭이 머물고 있는 브엘라해로이로 간 것이다. 본문의 주인공인 이삭과 리브가를 초점에 맞추고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삭을 ‘나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 이삭이 독점적 상속자의 자리를 굳혔고(창 25:5) 아브라함은 점점 노쇠하여 간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추측하기로 종은 일단 아브라함에게 돌아온 뒤 그녀의 도착 소식을 이삭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리브가를 데리고 브엘라해로이로 갔을 것이다. 리브가의 도착 소식을 들은 이삭은 아마도 때를 맞춰 그날 늦은 저녁까지 들에서 묵상하며 리브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리브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멀리 낙타 떼가 다가오고 있었다. 리브가도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먼 발치에서 낙타에서 내려 남종을 통해 그가 남편이 될 이삭임을 확인했다.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결혼식은 아마도 헤브론으로 복귀하여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삭이 리브가를 ‘사라의 장막’에 살게 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리브가가 이제 이삭과 더불어 아브라함 가문의 머리가 된다는 것을 시사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그는 다시 브엘라해로이로 이사한다(창 25:11). 이삭은 어머니 사라를 잃은 후 상실감이 컸다. 이제 그 자리를 리브가가 메움으로써 그가 큰 위로를 얻는다. 
 
연령을 계산해보면 사라가 죽은 뒤 3년 후에 이삭이 결혼했다. 사라가 90세에 이삭을 출산했고, 사라가 127세에 사망했으니 이때 이삭의 나이는 37세였다. 3년의 애도 기간을 지나 40세에 결혼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이삭은 큰 상실감속에 살았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한 아브라함의 결혼 계획과 믿음으로 주인의 명령을 따른 종의 순종, 그리고 그 믿음에 순적한 만남으로 화답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라반은 자신이 결혼을 승낙하고 말 여지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분명한 ‘여호와의 명령’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종은 라반이 아니라 하나님께 절한다. 라반의 허락을 이끌어낸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지체하지 않고 다음 날 떠나겠다고 한다. 라반의 (짙은 의도가 있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강행한다. 하룻밤은 다시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 휴식을 취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을 텐데도 종은 조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지자, 가족들의 기대와 달리, 먼 길을 즉시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가족들도 천만인의 어미가 되고 ‘원수의 성문을 얻는 씨’를 얻으라는 축복과 함께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순적한 인도 못지않게 리브가의 이 담대한 순종 역시 하란을 떠날 때 아브라함의 순종처럼(12:4)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 중요한 고리가 되었다. 
 
-이삭은 묵상 중에 종과 리브가 일행을 맞이한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시작하여 종의 기도로 진행하고 이삭의 기도(묵상)로 마감하는 참 멋진 혼사다. 이들의 기도에 놀랍도록 형통한 길로 화답하시는 하나님의 솜씨를 통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고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약속은 성취되어가고 있었다. 리브가는 어머니 잃은 이삭의 슬픔에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곳에서만 상실로 인한 슬픔과 고통이 위로와 기쁨으로 바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종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삭의 신부를 고르고 있을 때, 이삭도 역시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고, 기도로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혼사였다. 이렇게 기도 가운데 맞이했기에 종이 데려온 여인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내인 줄 알고 맞아들여 어머니 사라를 잃은 마음에 큰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또 리브가의 모습에서 대단한 결단의 모습이 보인다. 주저하지 않고 종을 따라가겠다고 결정한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리브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떠난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에 자신을 의탁한 것이다.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가장 형통하고 행복한 길이 아니겠는가!
 
*이삭은 묵상하는 사람이었다. 하루가 저물어갈 때 들로 나가 하루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인도하실 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묵상이다. 이삭의 이러한 행동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는 주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도 역시 기도로 사명을 감당하는 종.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한 가족과 공동체는 서로 많이 닮았다. 묵상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 뜻에 순종할 원동력을 제공한다. 
 
*순종은 묵상을 통해 가능하다. 하나님의 뜻을 여러 번 곱씹어보고, 되새겨볼 때 순종할 힘이 생겨난다.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는 힘은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인생의 때를 지날 때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날마다 주의 뜻을 구하는 삶은 순종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이에 따른 축복을 기다리게 한다. 
 
*언약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이야기 속에 결국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작하고, 기도함으로 진행하며, 기도함으로 결론짓는 이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기도와 묵상 속에 담겨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주님, 형통한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모든 일이 여호와의 뜻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에 반응하여 순종하는 리브가의 담대함과 단호함이 곧 나의 모습이기를 만들어가겠습니다. 
*주님, 묵상(기도)의 힘을 봅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며, 묵상으로 결론짓는 일상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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